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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의 밀키스, 새콤달콤 연애의 맛, 칼피스(可爾必思)!

  • 2024.06.11
대만주간신보
타이완의 밀키스, 칼피스 - 사진: 타이완 세븐일레븐

‘사랑해요 밀키스!’라는 캐치프레이즈로 1989년 한국 광고계를 점령했던 주윤발, 기억하시나요? 당시 주윤발의 밀키스 광고는 외국인 광고모델 고용이 불가했던 1980년대 한국의 첫 외국인 광고모델이라고도 알려져있는데요. 일명 ‘우유 탄산 음료’인 밀키스는 동시대 다른 브랜드인 암바사를 제치고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음료수로 자리잡아 지금까지 판매되고 있는 음료수죠. 탄산음료의 톡 쏘는 느낌과 함께 콜라나 사이다와는 달리 혀 끝을 부드럽게 감싸는 크리미한 맛이 살짝 나는 밀키스는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한국의 음료 중 하나입니다. 탄산음료를 그닥 좋아하지 않는 저도 어렸을 적엔 슈퍼에 놀러가면 밀키스 한 캔을 꼭 사오곤 했는데요.  

제가 타이완에 온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편의점을 갔을 때, 한국의 밀키스와 유사하게 생긴 음료가 있어 반가운 마음에 집었던 기억이 납니다. 캔이 아닌 작은 페트병에 담겨 있고, 밀키스와 같이 약간의 뿌연 흰색을 띄고 있던 이 음료는 병 포장과 음료색만으로도 저로하여금 직감적으로 ‘밀키스 같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해 과감히 한 병을 사게 만들었죠. 아니나다를까, 그 맛이 밀키스와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부드러운 크리미함과 탄산이 함께 살아있는 음료의 맛은 유사하더군요. 그 때부터 지금까지 저는 밀키스가 당기거들랑, 이 음료를 가끔씩 사마시곤 합니다. 

이 음료의 정체는 이름하야 ‘커얼비스(可爾必思)’라고 알려진 ‘칼피스'입니다. 칼피스는 사실 일본의 한 승려 출신 기업가가 1919년 일본에서 먼저 출시한 음료인데요. 1920년대가 되자 음료 출시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타이완, 그리고 조선에도 칼피스가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에서 ‘가루피스'로 등장하기도 했을 만큼, 일제식민시기 칼피스는 타이완과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모두 사로잡은 음료로 자리하는데요. 도대체 칼피스의 어떤 매력이 일본, 타이완, 한국 사람들의 입맛을 모두 사로잡은 걸까요? 

칼피스를 개발한 승려 출신의 기업가, 미시마 카이운(三島海雲, 1878-1974)은 다름아닌 몽골에서 영감을 얻어 칼피스를 제작했다고 알려져있습니다. 일찍이 미시마 씨는 19세기 말  베이징으로 건너 가 일화양행(日華洋行)을 개설해 장사를 하기 시작했는데요. 1912년 신해혁명으로 청나라가 멸망하자, 그의 자산은 전부 청산되었고 부득이하게 일본으로 돌아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어떤 장사를 다시 시작할까 고민하던 그는, 그가 중국에 있을 때 러일전쟁(1904-1905)이 발발한 것을 떠올렸고, 당시 군마 공급을 책임지고 몽골에 갔던 기억을 되살렸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몽골인의 집 입구에는 우유, 요구르트 같은 전통음료가 상시 배치되어 있었고, 이 음료를 즐겨마신 몽골인은 긴 시간 말을 탈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체력도 매우 뛰어나 이 음료와 관계가 있다는 것에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가 몽골에서 발견한 우유 같은 음료는 마유로 담근 술, 아이락일 가능성이 큽니다. 

칼피스를 처음 개발한 승려 출신 기업가 미시마 카이운(三島海雲) - 사진: 위키피디아

몽골 여행 시 긴 여행으로 목이 말라 현지인들이 준비해둔 이 음료를 우연히 마신 미시마 씨는  버터밀크와 비슷한 식감뿐만 아니라 정신과 기운을 회복시켜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 후, 일본에 돌아온 미시마는 그가 마셔본 몽골 전통음료 연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음료의 주원료가 유산균이라는 사실에 착안하죠. 

그렇게 대중들이 쉽게 마실 수 있는 유산균 음료수를 개발한 미시마는 음료의 이름에도 유산균을 강조하고 싶었나봅니다. 유산균은 위장 건강을 조절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칼슘 흡수를 촉진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이 음료의 이름에 ‘칼슘'을 넣고자 했는데요. 여기에 원래 승려였던 미시마는 불교 경전인 <대반열반경>에 등장하는 ‘오미(五味, 젖이나 우유가 다섯 단계에 걸쳐 바뀌는 것)’에서 영감을 받아 칼피스 제조 과정을 비유하고자 했습니다. 결국 오미 중 가장 마지막으로 맛도 가장 좋다고 하는 '제호(醍醐)' 단계의 산스크리트어인 'sarpir-maṇḍa'를 참고해, 칼슘(カルシウム)의 ‘칼’과 오미의 제호에서 영감을 받은 맛을 나타내는 일본어인 사루피스(サルピス)의 ‘피스'를 합쳐 ‘칼피스'라는 이름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된 세계 최초의 유산균 음료수 칼피스는 그 출시일을 일본의 발렌타인데이라고 알려진 ‘칠석’으로 정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당시 중학교에서 일본어를 가르치는 그의 후배의 역할이 컸는데요. 미시마의 후배는 미시마가 건넨 칼피스를 마시자마자 시인과 같이 ‘첫사랑의 맛이 난다(有初戀滋味)’는 소감을 썼다고 합니다. 미시마는 이를 즉시 광고 슬로건을 가져다 썼죠. 그렇게 ‘첫사랑의 맛’을 강조하고자 출시일도 칠월칠석으로 결정했던 것입니다. 여기에 푸른 바탕에 하얀 점들을 뿌려 별들이 모여 만든 은하수를 묘사한 음료 포장은 칠석의 이미지를 세련되게 부각시켰고, 연애와 연결되면서 칼피스는 낭만적이고 모던한 이미지를 풍긴 음료로 재탄생했습니다.   

칼피스는 1920년대 초부터 타이완에서 판매되기 시작했습니다. 타이베이에 소재한 외국 제품 수입업체인 '이시구로 상회(石黑商會)'가 칼피스의 타이완 대리점으로 처음 설립되었다가, 1924년에는 주류 상점인 '다츠우마 상회(辰馬商會)'가 인수해 판매했는데요. 칼피스는 일본 식민시대에 매우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1923년 타이베이의 다다오청에서 태어난 타이완 식품회사의 원조격인 이메이식품회사(義美食品公司)의 가오텅자오(高騰蛟) 전 회장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그 시대에 어른들은 청초차(青草茶), 석류수(石榴水) 등 차를 우려 마셨고, 아이들은 레몬에이드나 라무네 사이다, 칼피스가 가장 인기있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칼피스가 타이완 전국에서 유행하자, 타이완에서 직접 생산한 토종 브랜드가 등장하기도 했는데요. 1919년에 타이베이에 설립된 목축장, ‘타이완축산주식회사(臺灣畜產株式會社)’는 1931년 칼피스와 유사한 ‘핫피(ハッピー)’라는 유산균 음료를 생산했습니다. ‘핫피'의 독음과 뜻은 바로 영어의 ‘해피(HAPPY)’로, 맛도 나쁘지 않은데다 칼피스보다 저렴해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다는군요. 

1945년, 일본이 패전하고 타이완 섬에서 물러나자, 칼피스의 인기도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다 1967년 4월이 되어서야 다시 타이완 상가의 진열대에 올랐는데요. 60년대 칼피스의 광고 카피는 "30여 년 전 모두가 사랑했던 칼피스가 다시 오다!(三十多年前大家喜愛的可爾必思再來了!)”였습니다. 마치 오랜만에 만난 옛 친구와 같이요. 그리고 '첫사랑의 맛'을 강조하는 캐치프레이즈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100년도 넘은 역사를 자랑하는 칼피스가 타이완에서 여전히 ‘새콤달콤한 연애의 맛’이라는 광고 캐치프레이즈로 유명세를 타며, ‘첫사랑의 맛'이자 가장 선호하는 유산균 음료로 지금까지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 흥미롭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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