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12일부터 18일까지 타이베이에서 남자 프로 테니스(ATP) 주최의 산타이즈 챌린저대회(2024華國三太子)가 개최되었습니다. 남자 단식과 복식 경기가 치뤄지는 이 대회에서 타이완의 허청루이(何承叡, 레이 호)와 한국의 남지성 선수 팀이 결승에서 일본 팀을 꺾고 복식 정상에 올라 트로피를 거머쥐는 성과를 거두었는데요. 허청루이와 남지성 선수는 각각 복식 세계 랭킹 145위와 121위의 선수로, 두 선수는 올해 4월에 한국 부산에서 열린 부산오픈 챌린저 대회에서도 팀을 이뤄 우승한 바 있어, 앞으로의 활약이 상당히 기대가 되는 남자 복식팀입니다.
허청루이 선수 외에도 타이완에는 테니스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또 다른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셰수웨이(謝淑薇, Hsieh Su-wei) 선수인데요. 1986년생으로 올해로 만 38세인 그녀는 2001년부터 프로선수로 데뷔해 올해 호주 오픈 여자 복식에서 우승, 최근 이탈리아 로마에서 열린 메이저 대회에도 출전할 만큼 20년 넘게 국제 주요 무대에서 활약하고 있는 놀라운 선수입니다. 4대 그랜드 슬램 중 미국 오픈을 제외한 나머지 경기에서 모수 우승을 차지한 바 있는 그녀는 진정 타이완을 대표하는 테니스 선수이죠.
테니스에서 세계적인 선수를 배출한 타이완,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서는 타이완의 테니스 역사에 대해 살펴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완에서 테니스가 가장먼저 시작된 건 청나라 말 잇따른 개항통상으로 서양인들이 테니스 용품을 가져오기 시작하면서인데요. 영화 <마지막 황제>에서 마지막 황제인 푸이가 자금성 안의 한 야외 공터에서 테니스를 친 장면이 나왔을 만큼, 19세기 말 당시 테니스는 그 자체로 귀족적인 성격이 강한 스포츠였습니다. 타이완 섬에서 열린 첫 테니스 관련 기록도 19세기 말 타이완 북부에 잠시 온 영국 차 상인 존 도드(John Dodd)가 영국에서 온 다른 교민들과 테니스를 쳤다는 사실이 전부이죠.
일본이 타이완을 통치하기 시작하자 테니스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성행할 만큼 보편화되기 시작했습니다. 1933년에 발행된 <타이완체육사>란 책에 따르면 1903년 전후로 타이베이에는 ‘타이완체육구락부’, ‘타이완은행’, ‘철도부’ 등에서 동호회 성격의 테니스 클럽이 생겨 단수이 세관에 위치한 코트에서 테니스를 쳤다고 기록하고 있고, 1909년 타이완 종단 철도 개통 축제에서는 테니스 경기가 개최되었습니다. 물론 일제시기 초기 이러한 클럽이나 대회에 참여했던 사람은 대부분 일본인이었습니다. 1912년에는 제1회 타이완 전국 테니스 대회가 개최되었고, 북부는 타이베이, 남부는 타이난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테니스팀을 조직해 테니스 문화가 타이완 섬에 사는 일본인들 사이에서 성행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은 타이완에서 철도부, 식산국, 타이베이 주청 등 주요 요직을 역임하다 마지막으로 교통국 체신부장을 역임한 도미즈 노보루(戶水昇, 1890-1955) 씨로, 그는 1898년 단수이관(淡水館) 건물의 넓은 뒤뜰에 테니스 코트를 짓기 시작해 홍콩에서 직수입한 라켓과 공, 네트를 사용해 테니스를 치기 시작했다고 기록했습니다.
타이완인이 테니스 코트장에 나타난 시기는 이보다 조금 나중인 1917년 전후입니다. 1916년부터 타이완에는 테니스 랭킹 제도의 효시라 할 수 있는 ‘전국 테니스 선수 랭킹’ 대회가 실시되었고, 1922년에는 제2차 교육령으로 타이완의 중등학교와 사범학교는 모두 타이완과 일본 학생이 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는 공학 제도가 실시되면서 타이완인이 일본인과 함께 테니스를 치는 기회가 늘어났습니다.
당시 학교는 테니스 보급에 가장 적극적인 기관 중 하나였습니다. 일제시기 타이완의 테니스 스타였던 젠쿤비(簡崑壁) 씨는 자신이 재학했던 난터우공학교(南投公學校)에서 1923년 테니스 코트를 건설해 자신을 포함한 학생들이 수업이 끝나면 꼭 코트장에 가서 경기를 보거나 연습했다고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공학교와 같은 초등학교보다도 일제시기 중등학교가 타이완의 테니스 열풍에 보다 적극적으로 기여했습니다. 당시 중등학교 중 테니스 명문으로 꼽혔던 타이완상공학교(臺灣商工學校)나 자이농림학교(嘉義農林學校)에서는 일본 전국 대회에 출전하는 선수들을 여럿 배출하기도 했죠.
1920년대가 되자 타이완 출신 선수들은 일본에서 개최되는 가장 큰 전국대회인 ‘메이지 신궁 테니스 대회’에 진출하기 시작했고, 심지어 좋은 성적을 거두고 맙니다. 1923년에는 이 대회에 참석한 타이완 남자 복식 조가 처음으로 8강에 진출해 준우승을 차지했고, 1926년에는 장루릉(張如陵), 장여우촨(張有傳), 두 명의 장 씨 선수로 구성된 타이완 복식조가 우승을 차지해 일본 테니스계를 놀라게 했습니다!
타이완에서 열리는 경기에서도 일본 선수만이 아닌 타이완 선수들이 활약하기 시작합니다. 1925년에 열린 타이완 전국 대회에서 처음으로 타이완 선수 팀이 일본 선수를 꺾고 월계관을 차지하기에 이르고, 1930년대가 되자 타이완에서 열리는 왠만한 테니스 대회에서는 이제 일본인보다 타이완 선수 출전 비율이 더 많아지게 되었을 만큼, 테니스는 학교를 중심으로 타이완인들의 취미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이때가지 타이완에서 유행한 테니스는, 지금의 일반 테니스보다 무르고 부드러운 공을 사용하는 소프트테니스(일명, 연식정구)였습니다. 소프트테니스란 19세기 말 일본에 테니스가 처음 들어왔을 당시 테니스공의 가격이 상당한 데다가 자체 생산도 불가능해 고무공을 사용해 치기 시작한 데서 유래된 일본식 테니스죠. 일반 테니스 공보다 구하기 쉬워 일반인들에게까지 확산되기에 유리했습니다.
당시 타이완체육협회는 소프트테니스 대신 하드볼을 사용하는 경식테니스를 보급하기 위해 1930년대에 들어서자 경식 테니스부를 설립하고, 일본으로부터 유명한 선수들을 타이완으로 초청해 시범경기 및 강연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소프트테니스에 비해 비교적 늦게 보편화된 경식테니스는 일본의 패망 전까지 타이완에서 소프트테니스의 인기를 넘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1937년에 간행된 ‘타이완인사감’ 명인록에 따르면 당시 정구나 테니스를 즐기는 사람은 67명으로, 당시 상류층 운동으로 간주되었던 골프와 당구가 각각 14, 17명이었던 것에 비해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즐기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납니다.
타이완에서 테니스는 야구와 함께 일제시기 가장 성행했던 구기 스포츠로 알려져있습니다. 초등학교와 중등학교를 통해 타이완인들의 생활에까지 깊은 영향을 끼친 테니스, 그 역사는 지금까지도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야흐로 테니스의 계절입니다. 4대 그랜드 슬램 중 하나인 프랑스 오픈, 롤랑가로스가 바로 어제 5월 20일 파리에서 시작되었고요. 뒤를 이어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윔블던 대회가 7월 1일에 개막합니다. 4대 그랜드 슬램 외에도 사실 남자 프로 테니스(ATP)와 여자 프로 테니스(WTP)에서는 1년 내내 전세계의 주요 도시를 누비며 여러 테니스 대회를 개최하는데요. 타이완을 대표하는 테니스 선수들의 국제 경기에서의 활약을 기대해봅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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