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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의 일본기독교회

  • 2024.02.20
대만주간신보
1916년에 완공된 타이베이일본기독교회(좌)와 현재의 타이완기독장로교 지난교회(우)

타이베이 지하철 블루라인의 타이베이 기차역과 산다오스역(善導寺) 사이, 감찰원과 입법원, 행정원, 외교부 등 타이베이의 주요 정부기관이 모여있는 중산난루(中山南路)길을 걷다보면 뜻밖에 만나게 되는 오래된 건물이 하나 보입니다. ‘타이완기독장로교회 지난교회’(臺灣基督長老教會濟南教會)라고 써있는 이 건물의 외관이 심상치 않습니다. 빨간 벽돌로 켜켜이 쌓아올린 고딕 양식의 교회 정문 위에는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고, 세로로 길고 위는 뾰족한 아치형태로 되어 있는 창문이 교회 벽면 곳곳에 있는데요. 타이완 정부의 주요 정부기관과 달리 독특한 자태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지난교회의 역사를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 파헤쳐 보도록 하겠습니다. 

현재에는 타이베이시 지난루(濟南路)에 위치하고 있는 ‘타이완기독장로교회 지난교회’는 원래 타이베이 행정교회(臺北幸町敎會)로 타이완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1916년 타이베이 시의 행정(幸町, 사야마치)에 설립된 일본기독교회였습니다. 즉 타이베이시에 사는 일본 기독교인들을 위한 교회였죠. 하지만 이 교회에 반드시 일본인 신자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기독교 환경이 척박했던 당시 타이베이에 이 교회를 설립하기 위해 거액을 기부한 사람 중에는 타이완 사람도 있었죠. 

타이완의 일본인을 위한 일본기독교회의 시작은 이 교회가 지어지기 20년 전인 18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타이베이 일본기독교회는 1916년(다이쇼 5) 유키마치(行町), 지금의 지난루(濟南路)에 완공되었다. 광복 후, 교회는 여러 차례 이름을 바꾸었고, 마침내 지금의 ‘타이완기독장로교회 지난교회’로 명명되었으며, 타이베이시 지정 기념 역사물로 지정되었다.

1895년 청일전쟁 후 타이완이 일본에 할양되자, 일본 기독교 전도국은 제10차 총회에서 타이완 전도 개시안을 승인했고, 이때부터 일본의 개신교는 교파를 구분하지 않은 '기독신도일치회(基督信徒一致會)'로 본격적으로 타이완 각지에서 선교를 전개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본 기독교의 타이완 선교 물결을 타고 이듬해인 1896년 일본 야마가타 현 출신의 한 목사도 타이완에 오게되는데요. 그의 이름은 ‘가와이 가메스케(河合龜輔)’ 입니다. 

에도 시대인 1867년에 태어난 가와이 목사는 서양 문물에 보수적이었던 집안의 반대를 무릎쓰고 도쿄로 가 서학을 가르치는 미타히데학교(三田英學校)에서 수학하며 기독교를 접한 뒤 도쿄 아카사카에 있는 일본기독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메이지학원에서 신학부를 졸업하고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 전도 활동을 하다, 1896년 영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타이완 선교 사업에 선택되죠. 결혼을 하고 ‘스루(都留)'라는 이름의 어린 딸까지 있었으나 가족들을 뒤로하고 선교의 사명으로 타이완에 오게 됩니다. 

1867년생으로 1933년 3월 17일 세상을 떠난 가와이 가메스케(河合龜輔) 목사는 타이베이 일본기독교회의 초대 목사로 1896년부터 1912년까지 재임했다. 

일본기독교가 타이완에 온 1895~1896년 무렵에 타이완에는 몇 년 전 이미 타이완에서 선교활동을 시작한 영국과 캐나다 선교사들이 터를 잡고 있었습니다. 그 중 타이베이에는 캐나다 장로교에서 파견된 맥케이(Mackay) 목사가 자리하고 있었죠. 일본기독교를 대표해 1896년 타이베이로 건너 온 가와이 목사는 먼저 타이완에 온 맥케이 목사와 교류하며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일본 기독교인 전도 업무를 맏게 됩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 타이완에 왔을 때인 1896년에는 타이베이에 예배를 드릴 수 있는 마땅한 교회 건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캐나다 장로교가 시먼에 설립한 멍자교회(艋舺教會)의 자리를 빌리기도 하고, 일본 사관들에게 하루 2시간씩 영어를 가르쳐준다는 조건으로 일본 육군이 타이완에 상주하던 부대 중 하나인 수비대(守備隊)의 장소를 빌려 근근히 예배를 이어갔습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맥케이 목사와 타이완 기독교인이자 타이베이의 부유한 상인이었던 리춘성(李春生)의 도움으로 시먼가 근처에 작은 주택을 얻어, 40명 정도 되는 일본교회 신도들을 데리고 예배를 할 수 있는 장소를 마련할 수 있었죠. 

1896년 11월 일본기독교회 총회에서 전도국장 오오기미 도모이치로(大儀見元一郎, 1845-1941)를 타이완에 파견하여 시찰하고, 그 달 22일 타이베이 일본기독교회(臺北日本基基督敎會), 줄여서 타이베이교회(臺北敎會)를 정식으로 설립하기로 합의하고 설립식을 가졌는데 이것이 현재의 타이완 기독장로교회 지난교회의 전신입니다. 이날 저녁 집회에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참석했다고 해요. 

하지만, 시먼의 작은 주택은 정식 교회 건물은 아니었습니다. 1897년이 되자 타이베이 일본기독교회 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일주일간 밤마다 전도대회 및 기도모임을 가졌는데, 여기에는 나가노 겐키치(長野源吉), 리춘성, 옌칭화(嚴清華) 목사 등이 참여하는 등 일본인 150명, 타이완인 170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고 합니다. 

이렇게 타이베이 교회에 참석자가 늘어나고 좌석은 부족해지자 밖에 서서 예배에 참석해야 하는 사람들이 늘었습니다. 그러자 일본 기독교회는 교회당 건축을 계획하여 5천 엔의 예산을 모금하기로 결정하죠. 부녀회는 음악회를 개최 약 108엔을 모금했고, 당시 총독이었던 제4대 타이완 총독, 고다마 겐타로(兒玉源太郎)도 간접적으로 독일 영사 및 네덜란드 영사관 서기관에게 협조를 얻어 바이올린 및 풍금 합주회를 개최하여 후원금을 모금했습니다. 이렇게 십시일반으로 교회 건축 기금을 마련하기도 하는 한편, 리춘성 선생과 같이 부유한 상인으로부터 땅 300평과 현금 2천엔을 기부받기도 하면서 일본기독교회는 교회 건물 설립을 위한 자금을 마련해 1900년 작은 교회당을 완성했습니다.  

가와이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타이베이 교회는 은총과 감사로 가득하다. 회개하고 가정예배를 시작하거나 이름을 밝히지 않고 봉사하는 사람, 심지어는 비신자들까지 회당 건축을 위해 헌금을 내기도 한다. 이것은 도대체 무슨 징조인가, 죄악이 증가하는 곳에서 총애도 따라서 증가하고 있다. 죄악이 판치는 타이완에서 신도들이 받은 총애는 일본 본토 교회 못지않다.” 특히 가와이 목사와 타이완 상인 리춘성 선생의 인연은 각별했습니다. 

1897년 3월 잠시 일본에 갔다 아내를 데리고 다시 타이완으로 돌아온 가와이 목사는 타이베이 외에도 지룽, 신주, 화롄 등 비교적 외진 곳에서도 선교 활동을 이어갔었습니다. 이 때 타이완에서 출산을 하게 된 목사의 부인을 축하하기 위해 리춘성 선생은 각각 50마리의 닭이 들어 있는 큰 대나무 케이지 두 개를 갖고 직접 방문했습니다. 그러면서 타이완에서는 산모가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매일 닭 한 마리씩 총 100마리씩 먹어야 한다는 말을 전해 목사 부인을 놀라게 했다고 하네요. 타이베이의 큰 손, 리춘성 선생과 가와이 목사 사이의 각별한 관계를 알 수 있는 에피소드입니다. 

타이베이 일본기독교회의 1대 목사인 가와이 목사가 일본인 목사로서 처음 타이완에 정착해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일본 신도와 타이완인을 위한 목회 활동에 적극적이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현재 타이베이의 지난교회의 전신인 교회 건물은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시먼 주변의 작은 회당이 전부였죠. 1907년이 되자 이 공간마저 부족해지자 일본기독교회는 또 다른 교회 건축을 위한 성금 모금 활동을 이어갔죠.

그러던 중인 1912년(다이쇼 2년), 오오타니 야스시(大谷虞 おおたにやすし) 목사가 제2대 목사로 부임합니다. 오오타니 목사는 타이완에 오기 전 식민지 조선의 한 일본교회에서 관리직을 맡다 1912년 해임되고 타이완으로 건너와 이곳 타이베이 교회의 두 번째 목사가 됩니다. 1916년까지 재임하는 동안 그는 새 교회 건물 건축경비 모금에 온 힘을 쏟았는데요. 방송국을 돌아다니며 모금을 청하기도 하고, 리춘성 장로로부터 2천엔을 추가로 기부받기도 했습니다. 어느정도 자금이 모이자 기존의 옛 회당을 팔고, 1915년(다이쇼 4년) 2월 타이베이 사야마치(幸町)에 착공을 시작했죠. 이 때 교회 건물을 설계한 사람은 이데 가오루(井手薰)로, 타이베이 총독부를 비롯해 일본 정부의 주요 건물을 건축한 이데 가오루가 일본기독교회 타이베이 교회의 설계도 맡았습니다. 그리고 1년 4개월만인 1916년(다이쇼 5년) 완공해 지금과 같은 고딕양식의 교회를 완성하게 되었죠.  

가와이 목사가 처음 타이완에 온 해가 1896년이니, 1916년 번듯한 교회가 지어지기까지 무려 20년의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교회가 완공된 그 해 8월 1대 목사인 가와이 목사와 일본기독교회의 원로 목사인 우에무라 마사히사(植村正久) 목사가 타이베이 교회에 초대받아 헌당식을 거행했고, 총독부의 민정장관도 행사에 참여해 교회 건물 완공을 축하했습니다.  

50년 간의 일본 통치 시간 동안 타이베이의 일본기독교회에는 앞서 소개해드린 1대 가와이 목사, 2대 오오타니 목사를 포함해 총 4명의 일본인 목사가 다녀갔습니다. 그 중 카미 요지로(上 與二郎) 목사는 1918년에 부임해 1947년까지 무려 29년간 타이베이 일본기독교회에 있었죠. 카미 목사는 타이완인에 대한 선교를 넓히기 위해 노력했고, 1944년(쇼와 19년)이 되자 ‘일본기독교회 타이완 교단’이 설립되어 카미 목사는 타이완 현지 모든 교회 집무를 통괄하는 일을 맡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1년 뒤 1945년(쇼와 20년) 종전을 맞아 일본의 타이완 통치가 끝나자 ‘일본기독교회 타이완 교단’은 해체를 선언해야 했고, 타이베이를 떠나야만 했던 일본인 신도들은 도쿄에 치토세 교회(千歳教会)를 설립해 종교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이 사라진 교회 건물에는 타이완 출신의 신자들이 일본어가 아닌 타이완어로 예배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 참고자료

지난교회(濟南教會) 홈페이지: http://www.chi-nanchurch.tw/building

무라카미 사쿠라코(村上櫻子) ‘아버지 가와이 가메스케 목사와 타이베이일본기독교회의 옛 일(家父河合龜輔牧師與台北日本基督教會的往事)’: http://www.laijohn.com/archives/pj/Kawai,K/at/Taihoku/Murakami.htm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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