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추적추적하게 오는 타이베이입니다. 지난 주까지 화창했던 가을 햇살이 주말 사이에 사라지고 이번 주부터는 하루종일 가랑비가 내리는 날씨로 바뀌었습니다. 타이베이의 겨울은 서울의 겨울과는 조금 다릅니다. 서울의 겨울 평균 기온이 최저 영하 5도에서 외고 영상 2~3도 정도라면 타이베이는 최저 10도 안팎에 최고 20도 정도로 온도만 보면 한국의 가을과 다를 바 없죠. 그런데 문제는 바로 비입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쉴새없이 내리는 비는 타이베이 거리를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체감 온도를 확 낮춥니다. 폭우처럼 비가 세게 내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하루종일 내리는 가랑비, 보슬비가 타이베이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참 잘 어울리는 타이베이 겨울이죠.
중화민국 기상정은 오늘(6일) 타이완 동북부에서 불어오는 계절풍이 몰고 오는 찬 공기가 유입된 데다가 물기도 많아져서 타이베이를 포함한 중북부 지역에는 한동안 비가 내릴 가능성이 매우 높고, 내일과 모레 사이에는 기온이 13도까지 떨어져 추운날씨가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고 예보했습니다.
타이베이로 여행 오는 한국 관광객들이 부쩍 증가한 요즘, 한국의 추운 겨울 날씨를 피해 타이베이로 놀러 오는 사람들이 적지 않은데요. 아쉽지만 타이베이의 겨울은 여행을 하기에는 적합한 날씨가 아닙니다. 안개가 자욱한 데다 비구름까지 있어 하루종일 흐린 날씨인 것은 물론, 여기에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면 해외여행 특유의 즐겁고 유쾌한 흥마저 사라지게 만들죠. 연말이면 한국의 기온은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면서 살갗을 에는 추위가 기승을 부리죠. 두꺼운 패딩과 장갑은 물론 목도리와 귀마개에 털모자까지 써도 들어오는 찬 공기가 기억납니다. 타이베이의 기온은 한국처럼 낮지 않지만 습한 날씨와 강한 바람으로 살갗을 에이진 않지만, 뼛솟까지 시린 추위가 온몸을 덥칩니다.
2017년 겨울, 제가 타이베이에서 겪었던 첫 겨울이 생각납니다. 타이베이에서 첫 겨울을 지내던 그 해, 한국보다 한창 높은 온도임에도 불구하고 타이베이 시민들이 한국의 겨울과 같이 어그 부츠에 두꺼운 패딩을 입는 옷차림이 왠지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눈도 오지 않는 나라에서 어그 부츠라니요. 차라리 비를 피하기 위한 장화라면 모를까요. 그리고 이십여 년 간 한국의 혹독한 추위를 무사히 견뎌온 터라 타이완의 겨울은 거뜬히 넘어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타이베이의 첫 겨울은 유난히도 쌀쌀하고 우울했습니다. 타이베이의 겨울을 만만하게 본 저의 불찰이었죠. 건물 옥상이이나 베란다 천장을 때리는 빗소리가 새벽부터 들려와 잠을 설칩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눈뜬 아침, 겨우 몸을 일으켜 창문 밖을 내다보면 햇살은 전혀 없고 어둠만이 타이베이 시내를 덮고 있죠. 그렇게 어둠에 쌓인 도시를 눈으로 계속 바라보기 보단, 오히려 비의 양에 따라 달라지는 빗소리의 리듬과 선율에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 빗줄기가 얇아질 때는 ‘우두두두두두’, 빗줄기가 굵어지면 ‘쏴아아아아’... 그렇게 빗소리의 변주곡을 듣다 보면 평소에 커피를 잘 찾지 않던 저도 어느 새 커피 향을 맡으며 비로 흠뻑 젖은 도시의 내음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타이베이의 겨울을 무사히 지나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평소에 감성적이지 않던 사람도 타이베이의 비와 추위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지요. 우울하거나 울적하다는 영어식 표현 ‘블루하다(feel blue)’가 자연스레 연상됩니다. 그렇게 하루종일 쏟아지는 빗소리에 파묻혀 사색에 잠기다 보면 점심을 챙겨먹는 일도 가끔 깜빡할 때가 있죠. 그렇게 타이베이의 겨울비는 집에 가만히 앉아 감상에 깊이 젖을 때 떠오르는 나만의 음악을 틀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등 나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선사하기도 합니다.
타이베이의 겨울 빗줄기를 뚫고 출퇴근을 하거나 등하교를 하는 타이베이 시민들은 만발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타이베이 같이 습한 날씨에는 캐시미어나 울 재질의 가디건이나 니트는 삼가하는 게 좋습니다. 세련미는 조금 덜하더라도 방수 기능이 있는 상하의와 신발을 신는 것이 타이베이에서의 일상을 지속가능하게 하는 현명한 옷차림이죠. 흔히 ‘바람막이’라고 하는 등산복 재질의 외투를 타이베이에서는 흔히 볼 수 있고, 신발도 세련된 가죽 소재의 신발 대신 방수가 가능한 운동화나 장화를 신은 타이베이 시민들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대낮에도 컴컴한 하늘에 비가 추적추적 오는 타이베이의 날씨는 오늘도 계속됩니다. 그리고 타이베이 시민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겨울의 비를 톡톡히 대비해 일상을 살아갑니다.
엔딩곡으로는 푸베이자(傅珮嘉)가 부른 ‘12월의 비(December Rain)’를 띄워드립니다. 미국 국적의 화교인 가수 푸베이자는 베이징에서 태어나 19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까지 타이완과 홍콩에서 주로 활동했는데요. 그녀의 노래 ‘12월의 비’는 2001년 발표한 곡으로 하루종일 비가 주룩주룩 오는 타이베이의 날씨하면 바로 떠오르는 노래입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Rti 중앙방송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