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주 동남아 근로자가 타이완에서 착취를 당해 결국 살인을 저지른 비극을 다루는 소설 《바츠먼의 변호인(八尺門的辯護人)》를 소개해 드렸는데 사실 이와 같은 사건들은 타이완 곳곳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타이완 어업 주무기관인 행정원 어업서(漁業署)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외국인 근로자가 타이완 선장이나 선원을 살해한 사건은 최소 23건이 발생했고 외국인 근로자가 착취나 학대를 당한 건은 공식 기록이 없지만 23건 이상에 달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뿐만 아니라 타이완 비영리 독립언론 ‘보도자(The Reporter)’와 인도네시아 시사주간지 ‘템포(Tempo Magazine)’가 2016년 공동 발표한 특집보도에 따르면, 역외고용(境外聘僱) 제도를 통해 타이완 원양 어업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들은 근로기준법 미적용으로 열악한 노동 환경에서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가장 많은 원양 어선을 갖고 있고 일본 다랑어 시장의 절반을 장악하는 타이완 어업의 이면에는 수많은 착취와 학대가 있습니다.
1980년대에 들어 산업구조 변화, 근로기준법 실시 등 원인으로 타이완 기업들은 인건비가 보다 저렴한 외국인 근로자의 도입을 정부에 요구하기 시작했고 1991년 외국인 근로자 도입은 정식으로 실시되었습니다. 국가발전위원회(國家發展委員會)에 따르면 2022년 타이완의 동남아 근로자 수는 72만 8000명에 달했으며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한 2020년과 2021년을 제외하면 해마다 증가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적별로는 베트남(35.18%), 인도네시아(34.35%), 필리핀(21.26%), 태국(9.20%) 순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러나 타이완인은 과연 타이완 경제에 크게 기여한 동남아 근로자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타이완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아포(阿潑)는 타이완인이 서양국가에만 치중하고 타이완의 이웃들, 즉 아시아국가들에 대한 무지에 착안해 자신의 여행 경험과 인류학 지식을 바탕으로 에세이집 3권을 출판했습니다.
신문학과 인류학을 전공해 졸업 후 경제기자로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아포는 끊임없이 성공한 인물을 인터뷰했고 어떻게 직장이나 특정분야에서 높은 위치로 올라갈 수 있는지, 어떻게 인생의 첫 100만 뉴타이완달러 (한화 약, 4,340만 원, 2023/4/12 기준)을 벌 수 있는지 취재했습니다. 수습기간이 만료되었던 날, 아포는 평소대로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엘리트를 취재하다가 대규모 재해를 초래했던 타이완 921 대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이 순간에 수많은 사람이 평생 모은 재산이 지진 속에 없어졌습니다. 목숨조차 지킬 수 없는 시점에서 몇 백 만을 갖고 있어도 소용없는 거죠.
2010년 일본 오키나와를 여행한 아포는 대부분 타이완인이 타이완과 매우 가깝고 깊은 관계를 갖고 있는 오키나와를 여행 명소로만 여기는 사실을 놀라워했습니다. 그 후 아포는 항상 강연에서 극적인 말투로 “만약 2차 세계 대전 말기의 아이스버그 작전(Operation Iceberg)은 오키나와가 아닌 타이완에서 일어났다면 전쟁 후 미국은 타이완을 점령했을 것이고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때 군용기도 타이완에서 이륙했을 것”이라고 하며 근현대사에서 타이완과 오키나와 관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합니다.
주변 나라에 대한 타이완인의 무지는 아포가 글을 쓰게 된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아포는 독자들이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을 통해 다른 나라와 문화를 이해하기를 바란다는 취지에서 2013년 《슬픈 경계선(憂鬱的邊界)》을 출판했습니다. 서양국가와 다른 타이완인의 관점에서 베트남, 캄보디아, 라오스, 인도네시아, 태국, 미얀마,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오키나와, 한국, 중국 조선족 자치구, 홍콩, 마카오 등 동아시아 나라들의 이야기를 담아냅니다.
섬나라인 타이완은 자신과 접양하는 이웃나라가 없으므로 타이완인에게 국경을 넘으면 바로 다른 나라에 있는 것은 매우 초현실적인 경험인데요. 국경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중국과의 군사적 충돌을 막기 위한 타이완해협 중간선입니다. 한 나라의 주권 행사 범위를 상징하는 국경은 수학처럼 절대적인 것이지만 영토분쟁과 정치적 이슈 때문에 간혹 변화무상이기도 하죠. 끝이 보이지 않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최근 들어 빈번해지고 있는 타이완해협 중간선이 넘는 중공군의 무력시위. 지도에서 똑바른 선을 그을 수 있으나 세상일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감정도 마찬가지로 확실한 선만으로 멈출 수 없는 거죠. 감성적인 사람이 절대적인 국경을 만나면 각양각색의 이야기가 있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아포는 경계선은 슬픈다고 합니다.
그러면 경계선을 모두 없애면 세상이 좋아질려나요? 아포가 매우 존경하는 폴란드의 작가 리샤르드 카푸시친스키(Ryszard Kapuściński)는 《헤로도토스와의 여행》에서 ‘경험의 경계를 넘으면 바로 세계이다’고 말했습니다. 국경, 세대, 인종, 계급 모든 경계선은 고정적이지 않고 유동적이어야 합니다. 양쪽에 있는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새로운 성찰과 경험을 얻습니다. 그래서 아포는 ‘경계선은 거울이다. 그쪽에 있는 사람은 우리고, 우리도 그쪽에 있는 사람이다. 서로를 관찰해야 우리는 우리가 될 것이다.'고 작성했습니다. 철학적으로 작성하기에 이해하기 좀 어렵지만 여행기와 함께 보면 금방 풀어냅니다.
아포가 베트남을 갔을 때 공항으로 가던 길에 택시 기사는 “타이완 사람들은 베트남에 와서 장가들길 좋아한다죠?”라고 했고 아포와 동료는 어찌할 바를 몰라 서로 멍하니 쳐다보다가 말끝을 흐리며 “그렇죠. 뭐.”라고 대답했습니다. 다음에 가사는 “내 친구가 그러는데 베트남 신부가 싸기 때문에 그렇대요. 그럼 당신네 타이완 여자들은 아주 비싸겠네요?”라며 계속 질문을 던졌습니다. 기사의 호기심을 받아줄 여유를 없던 아포는 결국 침목을 택했으며 타이완에서 공부하던 베트남 여학생을 떠올렸습니다. 그 학생은 국적 때문에 항상 베트남 신부로 오해를 받았다고 했는데 아포는 타이완 여성들의 가격을 물었던 택시 기사의 질문을 받은 순간에 그 학생의 분노를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타이완에서 일어나는 일은 베트남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도 타이완과 결코 무관하지 않습니다. 글로벌 사회에 사는 우리는 서로의 거울입니다. 아포는 ‘국경은 사람의 사고와 감정을 제한할 수 없다’고 작성했는데요. 끊임없이 밖으로 나아가야 비로소 정해진 경계선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고, 편협한 마음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늘 자신이 편견이 없다고 자부하지만 사실 편견은 우리의 가치관과 사고방식에 녹아있습니다. 마침 《바츠먼의 변호인》에 이와 대응할 수 있는 문구가 있습니다. ‘그는 차별이라는 의미를 알고 있지만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모른다. 그와 같은 세대들이 악의적인 행동을 하지 않으나 무심코 하는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슬픈 경계선》에 이어 2015년 아포는 타이완과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슈를 다루는 에세이집《개입하는 방관자(介入的旁觀者)》를 출판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자원봉사했던 경험부터 나병 환자를 수용하는 타이완 러성요양원(樂生療養院)의 보존운동까지 아포는 세계 곳곳에 보고 들은 것을 기룩해 타이완인에게 방관만 하지 말고 개입하라고 당부합니다.
《슬픈 경계선》은 프랑스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évi-Strauss)의 《슬픈 열대(Sad Tropics)》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면 《개입하는 방관자》는 수전 손택(Susan Sontag)이 《타인의 고통(Regarding the Pain of Others) 》에서 ‘방관’에 대한 사고를 이어가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위 작품들에 비해 아포는 담담한 기행문 형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내서 부담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한편 《슬픈 경계선》은 이미 2020년에 한국에서 출판되었는데 타이완과 매우 비슷한 발전과정을 갖고 있는 한국에도 인류학 관점에서 풀어낸 여행기가 필요한 거죠. 깔끔하고 세련되는 아포의 필치를 통해 타이완과 한국 독자 모두 동아시아 이웃나라에 대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造假.剝削.血淚漁場:跨國直擊台灣遠洋漁業真相〉,報導者。
2. 〈國際人力移動〉,國家發展委員會。
3. 阿潑,《憂鬱的邊界》。
4. 阿潑,《介入的旁觀者》。
5. 唐福睿,《八尺門的辯護人》。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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