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타이완의 소리 RTI공식 앱 내려받기
열기
:::

‘찬바람 속에 장미꽃’ 차이루이웨(蔡瑞月) 무용연구소

  • 2023.02.08
랜드마크 원정대
차이루이웨 무용연구소 - 사진: 타이베이관광웹사이트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10일 동안의 설연휴가 끝난 후 많은 사람이 2월 말에 228연휴를 기다리고 있는데요. 다만 2월 28일은 무슨 날인지 타이완인으로서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228사건은 1947년 2월 28일부터 같은 해 5월 16일까지 타이완 전역에서 벌어진 반정부 봉기고 당시 정부의 학살로 사망자 수는 18,000명-28,000명으로 추정되었습니다. 타이완 역사상 최대의 아픔으로 남아있는 사건입니다. 올해는 228사건의 76주년입니다. 이번 주부터 <랜드마크 원정대>에서 타이완 각지에 있는 228사건 관련 랜드마크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228사건은 타이완의 백색테러 시대를 연 중요한 역사적 사건인데 70년이 넘은 지금, 과연 어디부터 접하는 게 좋을까요? 중국어 영화로는 최초로 베네치아 국제 영화제(Venice Film Festival)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영화 <비정성시(悲情城市)>는 마침 오는 24일에 4K 리마스터링 버전으로 재개봉할 예정입니다. 제 부모님과 비슷한 세대들이 1989년에 개봉한 이 영화를 통해 228사건을 처음 알게 된 경우가 많습니다. 228사건을 이해하는 데 영화는 진입장벽이 낮고 매우 좋은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랜드마크 원정대> 첫 회에서 소개해 드린 영화 <류마거우15호(流麻溝十五號)>에서도 228사건 관련 이야기를 다루는데요. 주인공의 하나로 항상 빨간색 드레스를 입은 무용가 천핑(陳萍)은 228사건 피해자 차이루이웨(蔡瑞月)의 제자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리고자 하는 랜드마크는 바로 타이베이 한가운데에 소재하는 차이루이웨 무용연구소(蔡瑞月舞蹈研究社)입니다.


영화 <류마거우15호(流麻溝十五號)> 중인공의 하나인 천핑(陳萍, 가운데)은 228사건 피해자 차이루이웨(蔡瑞月)의 제자를 모티브로 만들어진 캐릭터다.  - 사진: thuànn TAIWAN

타이완 현대무용의 어머니로 불리는 차이루이웨는 1921년에 타이난에서 태어나 타이난여고에서 일본 현대무용의 아버지인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을 보고 무용가의 꿈을 품게 되었습니다. 그는 직접 이시이 바쿠에게 편집을 쓰고 결국 16살 때 일본에 가서 이시이 바쿠에게서 현대무용을 사사했습니다. 당시 타이완의 무용 발전이 '무용의 사막'이라 불릴 정도로 매우 침체했는데 2차 세계 대전 직후 차이루이웨는 타이완 스스로의 현재무용 발전에 투신하기로 결심했고 개인 공연을 포기해 귀국했습니다. 

1947년에 그는 시인 레이스위(雷石榆)와 결혼했으나 생각지도 못하게 2년 후 중국 광저우(廣州) 출신인 레이스위는 고발을 당해 국외로 추방되었고 차이루이웨도 연루되어 뤼다오(綠島) 감옥에 3년동안 수감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이별 때문에 차이루이웨, 레이스위, 그리고 그들의 아들 레이따펑(雷大鵬)은 40년이 지나야 재회할 수 있었습니다. 좁은 감방에서 수감자 20명이 같이 갇혀 있어 다리를 전혀 펴지 못 하고 누워 자는 것도 교대해야 가능했는데 이런 환경에서 차이루이웨가 여전히 춤을 출 수 있었는데요.


차이루이웨(蔡瑞月)와 남편 레이스위(雷石榆) - 사진: 차이루이웨 무용연구소

차이루이웨는 수감자들을 데리고 간단한 스트레칭과 춤을 통해 몸을 단련했고 춤꾼과 관객 역할을 번갈아 하면서 서로를 응원했습니다. 감옥은 사람을 가둘 수 있지만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을 가둘 수 없습니다. 이것은 바로 무용의 정신이겠죠. 교도소 측은 차이루이웨가 춤을 출 줄 알고 군인을 위문하는 공연 준비를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로 인해 차이루이웨는 감옥에서도 자유롭게 춤을 창작할 수 있게 되었는데 당시 다른 수감자에 따르면 뤼다오감옥에서 유일하게 남기고 싶은 기억은 차이루이웨가 춤추던 모습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 아래 밝고 맑은 달빛이 흰 옷을 입은 차이루이웨의 몸짓에 쏟아진 장면은 마치 천국 같다고 묘사했습니다. 차이루이웨의 아름다운 춤 덕분에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완강하게 버텨 왔던 사람은 얼마나 많을까요?

1953년 출옥 후 차이루이웨는 오랫동안 정부로부터 감시를 당했고 한 달에 한 번씩 경찰서에 가서 보고를 제출해야 하며 심지어 갑작스럽게 출국 금지되어 해외 공연을 부득이하게 취소한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압박에도 불구하고 춤에 대한 열정으로 차이루이웨는 타이베이 중산북로(中山北路)에서 무용연구소를 설립했습니다. 해당 건물은 1925년 전후에 지어진 일본 관원의 기숙사였고  무용연구소가 설립된 후 타이완 현대무용가를 육성하는 중요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1994년에 타이베이 지하철 공사로 무용연구소를 철거하기로 결정했는데 차이루이웨의 며느리 샤오워팅(蕭渥廷) 등 무용가 3명이 기중기에 매달려 있는 채 15층의 높이에 24시간 동안 단식 투쟁을 했고 결국 1999년에 무용연구소가 타이베이시 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문화재 자격을 받은 바로 다음 날에 무용연구소에서 악의적 방화로 인해 화재가 일어났는데 다행히 각계의 적극 지원을 통해 재건되었습니다. 현재 차이루이웨 무용연구소에 예쁜 카페와 넓은 잔디밭이 있고 일반 시민들도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무용연구소의 철거를 반대하기 위해 차이루이웨의 며느리 샤오워팅(蕭渥廷) 등 무용가 3명이 기중기에 매달려 있는 채 15층의 높이에 24시간 동안 단식 투쟁을 했다. - 사진:  차이루이웨 무용연구소

한편 차이루이웨의 아들 레이따펑에 따르면 차이루이웨는 1960년대에 타이완 최초로 남자 발레 클래스를 개설했으며 그 이유는 발레를 배우고 싶은 레이따펑이가 여자 위주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들의 발레 꿈을 위해 차이루이웨는 실제 행동으로 아들을 응원하고 결국 레이따펑은 호주의 국가현대무용단에 가입해 어머니의 정신을 계승했습니다.

인재 육성 뿐만 아니라 차이루이웨도 타이완과 세계 각국의 무용 교류 및 인권운동을 비롯한 각종 사회운동을 적극 촉진해 왔습니다. 2005년에 차이루이웨가 돌아가셨고 다음 해부터 차이루이웨재단은 차이루이웨 국제무용축제를 개최하기 시작했습니다. 차이루이웨 무용단과 지속적으로 교류 해온 일본, 호주, 미국 무용단 외에 2019년 처음으로 한국 무용가를 초청했는데 초청을 받은 무용가는 차이루이웨처럼 춤으로 사회운동에 헌신한 이애주입니다.

한국 국가무형문화제 승무의 예능보유자 이애주는 1987년 6월 민주항쟁 때 이한열 열사의 장례식에서 운구 행렬을 이끌며 ‘한풀이춤’으로 고인의 넋을 달랬습니다. 평생에 춤으로 사회운동에 투신했고 불의와 부정에 대항해 온 이애주와 차이루이웨의 춤 유형이 많이 다르나 춤으로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사회에 참여하는 정신은 일맥상통이었습니다. 차이루이웨 국제무용축제를 계기로 양국의 대표적인 춤꾼은 춤으로 시공간을 넘어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영광스럽게 이애주 선생님의 한국어 통역으로서 2019년 무용축제를 참여했는데요. 당시 무용축제의 테마는 ‘붉은 제국에 저항하다(抵抗紅色帝國)’였고 주로 중국에 맞서 벌어진 홍콩 시위를 응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주제를 호응하려고 한 이애주 선생님은 ‘한풀이춤’이 아닌 세계평화를 바라고 억울한 영혼들을 달래는 ‘태평춤’을 선보였습니다. 거의 일주일 동안의 공연을 관람하면서 저는 이애주 선생님이 자주 말했던 ‘춤은 곧 정치다.’, ‘춤은 곧 사회다.’ 라는 교훈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백색테러를 겪은 차이루이웨와 6월 민주항쟁에 참여한 이애주는 더 좋은 미래가 오겠다는 확신을 갖고 춤으로 이 완벽하지 않은 세계와 끊임없이 대화했습니다. 


2019년 차이루이웨 국제무용축제에서 한국 무용가 이애주(우3)와의 사진 - 사진: 안우산

‘장미 고적(玫瑰古蹟)’으로 자칭하는 차이루이웨 무용연구소는 찬바람 속에도 시들지 않은 차이루이웨의 의지를 물려받아 후인에게 자유를 향한 불굴의 정신을 남겼습니다. 과거 228사건은 타이완인이 입을 다물고 절대 언급하지 않았던 사건이었고 민주화된 지금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중요한 역사가 되었습니다. 다음 주에는 더 많은 228사건 관련 랜드마크를 소개할 예정입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玫瑰古蹟-蔡瑞月舞蹈研究社。
2. 林巧棠,《假如我是一隻海燕》。
3. 雷大鵬、黃念謹、楊雅橘,「剪不斷、束不住的靈魂羽翼 ——我的母親蔡瑞月的玫瑰歲月」,台灣基督徒女性靈修協會。
4. 吳易蓁,「麥子的死與重生:蔡瑞月舞蹈節十週年」,想想論壇。
5. 顏佑珊,「生命的舞蹈之詩:韓國的「人間國寶」舞蹈家李愛珠」,風傳媒。

프로그램 진행자

관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