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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 지명에 숨어 있는 과거의 흔적들 1 - 농경사회

  • 2025.06.04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타이베이 지하철 레드라인, 치리안(唭哩岸)역. - 사진: 위키피디아

타이완의 수도 타이베이는 타이완에서 가장 발전하고 번영한 도시입니다. 타이베이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타이베이 101, 중정기념당, 국부기념관, 타이베이 돔 등이 이를 상징적으로 드러내죠. 한편, 골목길이나 작은 상점 등 타이베이에서 일명 ‘소소한 여행’을 하다보면 도시의 가장자리에서 특정 시기의 개발의 흔적을 발견하기도 하고, 등산이나 사이클링 등을 하며 타이베이의 산과 하천을 경험하다보면 이곳만이 선사할 수 있는 자연의 선물을 누릴 수도 있습니다. 도시 발전 과정 속에서 수많은 디테일과 풍성한 이야기를 남긴 ‘살아있는 도시’ 타이베이. 

오늘 어반스케처스타이베이 시간에서는 타이베이 곳곳에 숨어있는 지명 속에 담긴 과거의 흔적들에 대한 이야기 들려드리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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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의 곳곳에는 이곳에서 과거 사람들이 살던 자취가 스며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사용하는 지명은 이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경우가 있죠. 

각기 다른 시대에, 여러 세대의 외지인들이 처음 타이베이라는 산으로 둘러싸인 분지의 중심에 도착했을 때, 습지와 호수가 뒤섞인 이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입으로 호명하며, 낯설고 생소한 환경을 언어로 하나하나 확인하여, 마침내 정착하고 때론 싸워나간 기록들이 지명에 담긴 것입니다.

 

수 백 년 전 원주민의 정착이 남긴 지명

오랜 시기 이전부터 타이베이 분지에서 살던 원주민은 케타갈란족(Ka-tagal-an, 凱達格蘭). 그 족명(Ka-tagal-an)에서 알 수 있듯이, 원주민 언어에서 “안(an)”으로 끝나는 단어는 “~의 장소”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케타갈란(Ka-tagal-an)’은 ‘물이 고여 있는 평지 습지’라는 뜻으로, 이들이 처음 이 분지 중앙에 도착했을 때 눈앞에 펼쳐졌던 지형, 곧 습지와 늪지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치리안(Ki-Li-Gan, 唭哩岸)’이라는 지명을 들 수 있습니다. 타이베이 지하철 레드라인 북쪽 단수이로 향하는 방향에 있는 역 이름 중 하나인 ‘치리안’역시  “안(an)”으로 끝나며, 이 단어는 바다가 육지 속으로 파고들어 와 있는 곳을 칭하는 ‘만(灣)’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는 필리핀의 타갈로그어와 같은 남도어계 언어와 동일하며, 과거 단수이강이 이 지역에서 굽이쳐 흐르며 마치 바닷가의 만처럼 보였던 지형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실제 치리안의 위치는 산과 가까워 지대가 높고 앞으로는 단수이강이 흐르는 것이 보이는 지형을 갖고 있죠. 

타이베이 남동쪽, 원산구(文山)에 소재한 ‘마밍탄(馬明潭)’이라는 지명도 원주민어로 ‘우는 소리’를 뜻하는 “마능”이라는 발음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처럼 수백 년 전 이 분지가 아직 한족(漢族)으로부터 개척되지 전 시절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내려온 원주민 언어는, 세월의 여과를 거쳐 오늘날 우리의 일상 속 지명에 조용히 깃들어 있는 것입니다.

 

한족들의 이주 이후 전해진 지명

청나라 중기, 광활한 중국 대륙에 살던 한족들이 대거 단수이강 유역으로 이주하며 개간을 시작한 이후부터는 ‘언어’의 스펙트럼이 훨씬 풍부해졌습니다.

한족 정착지의 개간 전선과 고산족 원주민 영역 사이 경계에 말뚝을 잇따라 박은 울타리인 ‘목책(木柵)’을 설치해 마을을 방어했고, 마을 중심에는 ‘북을 두는 정자(鼓亭)’를 세워 경보용으로 사용했습니다. 개간에 참여한 사람들은 ‘공관(公館)’이라는 공공장소에 모여 곡식을 계량하거나 세금을 논의했습니다. 바로 오늘날 타이베이 지하철 그린라인에 있는 지하철역 ‘구팅’과 ‘공관’ 입니다. 당시에 작명한 이런 이름들이 거의 변화 없이 오늘날 지하철역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참 신기한대요. 물론, 스마트폰을 보며 무심히 역을 지나치는 오늘날 타이베이 시민들은 이 지명들이 한때 농경과 개간 시대의 생산 중심지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죠.

농경 생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을 옮기거나 저장하는 수리(水利) 시설이었습니다. 따라서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타이베이 분지는 밭두렁과 수로가 얽히고설킨 일명 ‘물의 도시’였다고 할 수 있죠.

타이베이 분지의 동쪽 절반, 즉 오늘날 송산구(松山), 다안구(大安), 신이구(信義) 일부에 해당하는 지역과 성곽 남쪽 지역인 원산구는 예전에 모두 류공수로(瑠公圳)와 무리설수로(霧裡薛圳) 등 관개 시스템의 일부였습니다.

원산(文山) 지역의 얕은 산지에서 시작된 수원(水源)은 나무판자로 만든 물길, 즉 ‘간(梘)’이라 불리는 도랑을 따라 흘렀고, 이 수로의 끝자락이 오늘날의 ‘징메이(景美)’입니다. ‘간의 끝’을 뜻하는 타이완어(민남어) 식 표현에서 ‘징메이’라는 지명이 유래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지금도 타이베이 분지 곳곳에는 과거 수로 위에 덮개를 씌워 만든 도로가 여럿 존재합니다. 예를 들어, 완화구 일대를 동서로 가르는 시장루(西藏路)는 일본 식민지 시기에 만든 배수로 위에 조성된 길이고, 시내중심에서 북쪽 스린구까지 타이베이를 남북으로 길게 가로지르는 신성남북로(新生南北路) 전체 역시 대 배수로 위에 덮개를 씌운 것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도로 정비로 지하에 묻힌 물길이지만, 과거에는 햇빛 아래 모습을 환하게 드러내며 아직 농경사회의 일부였던 타이베이에 거주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물길이 되어 주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농경사회에서 벗어나 외국 상인들에게 항구를 개방하면서 점차 산업도시로 성장하게 된 타이베이의 성장과정에서 주목할 만한 지역에 대해 이어서 소개해드리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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