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야기 속 주인공의 이름은 ‘소백과’. 다양한 초능력을 지닌 외계 존재인 소백과는 잠시 인턴십을 위해 지구에 왔습니다. 마침 소백과는 지구의 수 많은 지역 중 타이완 타이베이시에 도착했죠. 그리고는 타이베이시의 작은 ‘이(李) 씨 가족’과 함께 머무르며 남매인 아밍(李永明)과 아타오(李永桃)에게 다양한 지식과 세상에 대한 관심을 가르칩니다. 1년 후 소백과가 지구를 떠날 때쯤, 남매는 소백과로부터 많은 지식을 습득했고 자신이 살아가고 있는 주변 환경과 세상에 대한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마치 서울 도봉구 쌍문동의 고씨 집 주택에 도착한 아기공룡 둘리와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 소백과는 바로 타이베이 송산구에 소재한 한 출판사가 편찬한 백과사전 시리즈의 캐릭터입니다. 80-90년대에 타이완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기억한다는 <한성소백과(漢聲小百科)>. <한성소백과>는 1984년 12월부터 1985년 11월까지 출판된 어린이용 백과사전 시리즈로, 당시 어린아이를 키우는 집이라면 이 전집 하나쯤은 꼭 갖고 있었다고 할 정도로 대중화된 백과사전이었습니다. 일반적인 백과사전과 달리 이 시리즈는 12개월을 기준으로 각 권을 구성하였으며, 하루하루의 날짜를 단위로 삼아 추가 단원까지 합해 총 368개의 단원으로 구성되있습니다. 그리고 12권 전체는 앞서 소개한 ‘소백과’와 이씨 남매를 주인공으로 한 하나의 이야기 줄거리로 이어져 있고요.
지금과 같이 인터넷이 보편화되지 않았을 시기, 어릴 적 접한 백과사전은 그야말로 지식의 집합체였습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어른들도 미쳐 생각치 못했던 다양한 주제와 소재들을 색채감 있는 사진이나 그림과 함께 접하면, 아이들에게는 이것이 곧 세상이자 우주였죠. <한성소백과>는 “아이들을 다채로운 과학의 세계로” 이끈다는 슬로건 하에 지질, 지리, 기상, 진화, 인체, 건강, 생존, 동물, 조류, 곤충, 어류, 식물, 채소, 생태, 문화, 교통, 우주 등 열여덟 개의 주제를 아이들의 눈에 맞게 상세하게 소개합니다. 심지어는 홈런왕 야구선수의 타격 동작 분해도나, 투수의 투구법부터 집안 하수도 배관의 단면도 등 보이지 않는 벽 속이나 땅 밑에 숨어 있는 가스관, 전선들이 이 소백과 안에서는 한 눈에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지진과 태풍 등 자연재해가 잦은 타이완에 맞게 사고 발생 시 탈출 방법이나 야외 생존 기술 등도 있었고요.
지금의 30대에서 50대 사이의 타이완 사람들이 어릴 적 한 번쯤은 꼭 접했다던 <한성소백과>의 탄생은 1970년대 타이베이 송산구의 작은 작업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타이베이 지하철을 타고 타이베이 동쪽에 위치한 그린 라인 난징산밍역(南京三民站)에 도착해 난징동로(南京東路)에서 시민대도(市民大道) 방향으로 한 10분 정도 걷다 보면, 바더로(八德路) 골목 안에 눈에 띄는 건물이 보입니다. 회색 시멘트 건물 가운데 호리병 모양을 한 투명 문과 그 위에 영문으로 ‘에코(ECHO)’, 한자로 ‘한성(漢聲)’이라고 적힌 작은 간판이 있습니다. 바로 80년대 25만 세트 이상 판매된 <한성소백과>가 탄생한 한성출판사의 서점인 ‘한성항(漢聲巷)’입니다.
1971년 우메이윈(吳美雲), 황융쑹(黃永松) 등이 설립한 ‘한성잡지사(漢聲雜誌社)’에서 출발한 한성출판사는 당시 ‘동서문화의 균형’그리고 ‘전통과 현대의 연결’이라는 이념을 바탕으로 전 연령층의 독자를 아우르는 다양한 시리즈의 출판물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현재 출판사 겸 서점으로 운영되고 이 공간을 들어가면 서점 내부의 인테리어나 책 진열을 통해 1970년대 한성잡지사를 시작으로 이 출판사를 창립하며 가졌던 사명감을 생생히 느낄 수 있습니다. 잡지사가 막 설립되었던 1971년 당시는 중화민국이 유엔에서 탈퇴한 직후로, 많은 타이완인들이 자신들의 문화 정체성에 대해 혼란과 불안을 느끼던 시기였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타이완의 목소리를 세계에 알리고자 영문 잡지 를 창간했고, 동시에 타이완 내에서는 <한성>이라는 잡지를 통해 대중과 소통했습니다. 타이완의 민간 예술과 전통 풍속, 문화 유산을 철저히 조사하고 발굴하며, 1990년대 초에는 철거 위기에 놓였던 ‘석자정(惜字亭)’의 역사를 기록했고, 이들의 노력 덕분에 현재 타이완에 남아 있는 가장 큰 규모의 석자정을 보존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서점 안에는 앞서 소개한 타이완에서 가장 유명한 어린이 백과사전 시리즈 <한성소백과>도 있습니다. <한성소백과> 옆에는 비교적 최근에 출판된 <한성이 사랑하는 소소백과>(漢聲愛的小小百科)도 나란히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시리즈는 <한성소백과의> 주인공 ‘소백과’의 동생인 ‘소소백과(小小百科)’를 주인공으로 한 또 다른 백과사전 시리즈로 역사와 지리, 그리고 미래의 모습 등을 다룹니다.
1980년대, 백과사전 시리즈를 제작하기 위해 무려 80명이 넘는 편집자 및 직원들이 뛰어들었다고 합니다. 타이완에서 각 분야의 전문가 60여 명을 인터뷰하고, 현장 조사를 통해 문화재를 수집하기도 하는 등 방대한 자료와 지식 수집을 위해 직원들을 발로 뛰었죠. 그리고 편집 및 일러스트 팀만 각각 20명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출판 전 3년에 걸친 대프로젝트였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한성소백과> 시리즈는 총 12권이 한 세트로, 매달 한 권씩 주제를 다루며 실제 월별 일정에 맞춰 출간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소백과를 기획하고 제작한 황 사장은 “우리는 ‘내용 중심’으로 계획을 세웠어요.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가까운 것에서 먼 것으로. 먼저 각 권의 주제를 설정하고, 이후 18개 지식 분야로 분배했죠. 예를 들어 식물 이야기를 끝내면 동물 이야기로 넘어가고, 물고기를 소개한 후에는 꽃을 보러 가야 하죠. 대학 캠퍼스에서 두견화를 보려면 두견화가 피는 봄에 해당하는 달에 배치했고요. 이렇게 계획이 세워지면 본격적인 콘텐츠 제작에 들어갔다.”고 회고 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제작된 백과사전 속 컨텐츠를 하루에 하나씩 아이에게 설명해주면, 1년이면 365개의 주제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총 28차례 재판되었고 누적 판매량은 25만 세트를 넘어 타이완의 아동서적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책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현재에는 절판되었지만, 2014년에는 <한성소백과> 출판 30주년 기념판이 재출간되면서 이를 기념하는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30주년 기념 행사 직전인 2013년 황 사장은 한 인터뷰에서 소백과 출판 당시를 회고하며, 세상의 지식을 막 알아가는 단계에 있는 아이들의 본성인 호기심이 사회의 고정관념에 얽매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 출판물 역시 순수함을 최대한 유지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편집팀은 몸으로 뛰며 자료를 수집했고,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사진도 직접 현상하고 인화했으며, 지금은 시민대도가 된 철도길에 열차가 지나갈 때마다 건물이 흔들려 사진을 인화하는 도중 열차가 지나가면 다시 찍어야 하기도 했다는군요.
오늘날과 같이 고효율과 고수익을 추구하는 시대에는, 3~4년에 걸쳐 수 십명의 사람이 한 팀이 되어 백과사전 시리즈를 만드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보입니다. 수익과 효율에 맞지 않기 때문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절판된 <한성소백과>는 30주년을 맞아 재출간되었고, 사람들 사이에서 큰 회자가 되었습니다.
타이베이 송산구에 위치한 ‘한성항(漢聲巷)’을 방문하면, 중국어로 된 다양한 어린이 도서와 한성출판사가 그간 번역하여 소개한 고전 서양 동화책들도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어, 어릴 적 순수했던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합니다. 여기에 더해 한성이 그간 현지 조사와 연구를 통해 수집해 온 타이완의 다양한 민간 문화 및 예술품도 함께 엿볼 수 있습니다. 1980년대 타이완 민속 문예 수집의 산지이자 자라나는 아이들의 지식의 첫 걸음이 되어 준 한성출판사를 기억해봅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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