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는 본래 원주민이 생활하던 공간이었다. 한족의 개척 흔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스페인, 네덜란드 시대를 거쳐 17세기 정성공(鄭成功) 시기에 이르러서이다. 당시 한족의 정착지는 주로 바다와 인접해 있는 지룽(基隆)과 단수이(淡水) 일대에 국한되었다. 오늘날 도시 구분으로 본다면 모두 신베이시(新北市) 북쪽 지역이다.
타이베이 평지의 본격적인 개척은 그 이후에야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문헌에 따르면, 강희 48년(1709) 천라이장(陳賴章) 개척단이 오늘날 타이베이의 남서쪽인 완화(萬華) 지역인 다자라(大佳臘) 일대의 개척 허가를 받은 것이 타이베이 평지 개척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여러 개척자들은 점차 타이베이 평지로 들어왔고고, 그렇게 오늘날 우리가 아는 타이베이의 모습이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했다.
지금의 타이베이는 번잡한 도로와 인파로 기억되지만, 도시 곳곳에는 개척의 흔적이 조용히 남아 있다. 이들은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며, 우리가 다가가 관심을 기울일 때 비로소 옛 이야기를 들려준다.
1 한족 개척의 흔적을 증명하는 곳, 샤오컹(小坑)의 토지신을 모시는 푸더궁(福德宮)
맑은 개천이 흐르고, 숲이 우거지며, 새소리가 울려 퍼지는 ‘샤오컹 하천 문학 산책로(小坑溪文學步道)’는 마음을 정화시키는 길이다. 그리고 이 길의 언덕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오래된 나무 아래에는 마치 100년 전부터 이 땅을 개척한 정(鄭) 씨 가문을 그늘 아래에서 보호해 온 듯, 토지신을 모시는 작은 절, 푸더궁(福德宮)이 있다.
청나라 시대, 현재의 국립정치대학교 일대는 ‘신흥(新興)’이라 불리며, 광활한 논밭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원주민과 한족이 교역하고 방위시설이 있었던 ‘번자공관(番仔公館)’을 지나, 오늘날의 즈난궁(指南宮) 일대에 해당하는 지역이 펼쳐진다. 이곳은 징메이 하천(景美溪)의 북쪽 지류인 샤오컹 하천과 남쪽 지류인 다컹 하천(大坑溪)가 갈라지는 분수령이기도 하다.
샤오컹의 개척은 청나라 옹정(雍正) 연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광둥성 다푸(大埔) 출신의 랴오(廖) 씨 가문이 처음 이곳에 정착하면서, 한족이 원산(文山) 지역으로 진출하는 문을 열었다. 건륭(乾隆) 초기에는 취안저우(泉州) 출신의 가오(高) 씨와 수(蘇) 씨 가문, 저우(周) 씨 가문, 장(張) 씨 가문이 무자(木柵) 일대를 개척하며 남쪽으로 확장해 나갔다. 건륭 중·후기에 이르러 개척의 발걸음은 징메이 하천을 따라 샤오컹으로 이어졌고, 산등성이를 넘어 다컹(大坑) 지역까지 퍼져 나갔다.
한족이 샤오컹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개천가에서 사람 모양을 한 돌을 발견하였다. 이를 신성하게 여긴 개척민들은 ‘석두공(石頭公)’을 모시며 안전을 기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석두공과 함께 토지공의 석상과 목각상이 함께 모셔지게 되었고, 공동으로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광서 2년(1876)에 세워진 중수(重修) 기념비를 보면, 이곳 샤오컹 토지공 사당(福德宮)은 장(張), 쑤(蘇), 정(鄭) 씨 가문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그 전통이 이어지고 있다.
타이베이 평지의 다른 지역과 비교하면, 이곳은 개척이 늦게 이루어진 편이며, 원주민의 생활 공간과 가까웠던 만큼 갈등도 존재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 넓은 삶의 터전을 찾고자 했던 개척자들은 결국 샤오컹 하천의 상류까지 올라왔고, 이곳에 그들이 정착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2 쌀을 지고 넘어간 그 길, 탸오미 옛길(糶米古道)
앞서 소개한 샤오컹 하천 주변 지역인 징메이(景美), 무자(木柵), 원산(文山) 지역과 비교하면, 현재 타이베이 의과대학(臺北醫學大學)이 위치한 지역과 외성인의 대표적인 집결촌인 스스난춘(四四南村)이 위치한 신이구(信義區)의 산장리(三張犁) 지역은 한족이 비교적 일찍 개척한 곳이다. 개척자들은 정부로부터 ‘산장리’라는 지역에서 경작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아 정착하였다.
한족이 산장리보다 동남쪽으로 더욱 진출하여 징메이, 무자, 원산 지역에 마을을 형성하자, 이곳에서 수확한 쌀과 농산물을 운반해 판매할 필요가 생겼다. 그러나 평지를 따라 이동하는 길은 돌아가야 해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기 때문에, 사람들은 산을 넘어가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길이 바로 ‘탸오미구다오(糶米古道)’, 번역하자면 쌀 운반 옛길이다. 이 길은 기존의 한족이 개척한 산장리와 이후에 개척한 원산 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교통로가 되었다.
청나라 선종 때인 19세기 중엽(도광[道光] 연간, 1820~1850)에 이 길을 따라 오랫동안 쌀을 지고 넘던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이 길을 지날 때마다 길가에 있는 오래된 녹나무 그늘 아래에서 잠시 쉬고,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마시며 갈증을 해소하곤 했다. 이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쌀을 지고 길을 넘을 때마다 한 짐(擔)을 지고 간 사람은 한 그릇의 쌀을 남겨두었고, 이 쌀을 모아 사당을 짓기로 했다. 결국, 쌀을 짊어지고 이 길을 오가던 여러 사람들이 힘을 모아 작은 토지공(福德正神) 석상을 조각하고 사당을 세우게 되었는데, 이곳이 바로 탸오미 공묘(糶米公廟)이다.
1980년대에는 지역 주민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공묘를 개축하였고, 함께 오래된 옛길도 정비되었다. 이 옛길은 도심 속 번잡한 거리 한쪽에 자리하고 있지만, 길을 따라 한 번만 방향을 틀면 마치 조용한 마을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양옆으로 나무들이 터널처럼 길을 감싸고, 공기가 맑으며, 곳곳에 작은 연못과 같은 예상치 못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현재 이 길은 시민들이 산책하고 운동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이제 더 이상 쌀을 지고 길을 넘는 사람들은 없지만, 옛길과 사당을 따라 걷다 보면,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고된 노동을 했는지, 이 길이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3 잊혀진 관개(灌漑)의 흔적, 신좡즈피(新庄仔埤)
타이베이 동쪽 끝, 난강(南港) 지역은 대략 청나라 옹정(雍正)~건륭(乾隆) 연간에 한족이 지룽(基隆)에서 지룽강(基隆河)을 따라 현재의 시즈(汐止) 지역까지 확장되면서 개척된 장소다. 이 시기 한족이 지룽강을 건너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북쪽의 항구인 ‘북항/베이강(北港)’에 대응하는 ‘남항/난강(南港)’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
오늘날 문화재로 지정된 난강의 췌가 조택, ‘더청쥐’(闕家祖厝德成居) 같은 유적을 통해, 당시 취안저우(泉州)에서 난강으로 개척을 온 췌차오핀(闕朝聘), 췌차오시(闕朝熙) 형제의 발자취를 찾아볼 수 있다. 현재 난강 지역에서 췌(闕) 씨 성을 가진 가문이 크게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이들의 개척 역사와 맞닿아 있다.
당시 개척민들은 농경지에 물을 대기 위해 자연적인 연못을 활용하거나 인공 저수지를 조성했다. 난강에는 현재까지도 비교적 넓은 면적을 유지하고 있는 세 개의 큰 저수지가 남아 있는데, 신좡즈피(新庄仔埤), 허우산피(後山埤), 산충푸피(三重埔埤) 가 그것이다. 이 중에서도 신좡즈피는 오랜 기간 빗물에 의해 자연적으로 형성된 저수지로, 초기 한족의 개척 시절부터 생활용수와 농업용수로서 필수적인 역할을 해왔다.
하지만 20세기 들어 근대적인 도시 개발과 경제 변화 속에서 신좡즈피 역시 점차 면적이 줄어들 수밖에 없었다. 수십 년간 흙과 자갈이 퇴적되면서 현재의 신좡즈피는 과거에 비해 훨씬 축소되었지만, 다행히도 일부 지역이 군사 통제 구역으로 지정되었던 덕에 비교적 자연 상태를 유지한 채 보존될 수 있었다.
현재 신좡즈피는 인위적인 개발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새들이 머물기에 좋은 서식지가 되어, 타이베이 시의 대표적인 조류 관찰 명소로 자리 잡았다. 타이베이시 공원 및 가로등 관리처(臺北市公園路燈工程管理處) 의 생태 조사에 따르면, 현재 신좡즈피에는 16종의 다양한 물새들이 서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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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베이에 숨어 있는 과거 한족 개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 걸으며, 도심의 경계에 자리한 문화 유산들을 만나볼 수 있다.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도시 속에서도, 이곳들은 마치 속삭이듯이 과거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우리가 한 걸음 다가가 그곳을 거닐어 본다면, 그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도시의 소음과는 또 다른 역사의 메아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위 글은 아래 글을 번역, 재구성하여 작성했습니다.
張哲翰 <異鄉人生根的樹蔭下:靜靜坐落在臺北邊緣的文化點> 《故事》, 2024.11.21.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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