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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개발과 젊음을 상징하는 동취(東區)

  • 2023.08.17
어반 스케쳐스 타이베이
타이완 작가들의 작품을 공공 전시해 놓은 동취 지하상가(東區地下街). - 사진: cityseeker

타이베이를 자유여행하는 한국인이라면 꼭 들르는 곳이 있죠. 타이베이 101, 용캉제, 단수이, 용산사, 그리고 동취. 동취(東區)는 타이베이 지하철 블루라인인 중샤오푸싱(忠孝復興), 중샤오둔화(忠孝敦化), 국부기념관역(國父紀念館) 일대 지역으로 타이베이의 동쪽 지구를 일컫습니다. 동취의 위치를 보다 정확하게 설명하면 푸싱난루의 서쪽, 국부기념관이 있는 광푸난루의 동쪽으로 스민다다오와 런아이루 사이입니다.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 이 구역 안에 촘촘히 나 있는 작은 골목길에는 감각적인 편집샵들이나 미용실, 식당, 바들이 모여있어 큰 상권을 이룹니다. 동취가 한국인들, 특히 젊은 한국인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은 이유 중 하나도 이곳이 서울의 가로수길이나 연남동과 같이 좁은 골목길을 돌아다니며 세련된 샵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이베이의 서쪽에 위치한 시먼(西門)이 10~20대들의 놀이터라면, 동취는 20~40대들이 즐기기 좋은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시먼이 서울의 홍대와 같이 자유롭고 들썩거리는 분위기가 있다면, 동취는 서울의 가로수길과 같이 안정적이면서도 인상적인 편집 샵이나 고가의 미용실, 분위기 좋은 바가 많기 때문에 이를 소비할 수 있는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입니다. 오늘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 시간에는 타이베이의 젊음을 대표하는 상권, 동취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동취가 처음부터 이렇게 번화한 지역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이곳은 논과 황무지로 도시 개발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곳이었죠. 일제시기 현재의 타이베이 시먼과 다다오청 일대, 그리고 총독부 주변으로 타이베이 성곽 안은 일부 도시 개발을 했지만 동쪽으로의 확장은 거의 미진해 현재의 신성난루(新生南路) 부근에 그쳤습니다. 동취는 여전히 미개발된 농지에 불과했죠. 동취가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중화민국 국민정부가 들어선 이후인 1960년대 이후입니다. 60년대 들어서자 정부는 타이베이시를 동쪽으로 확장하는 개발을 추진했고, 그 결과 동취는 80년대 중반부터 타이베이의 신흥 상업중심지로 부상하면서 시먼이나 타이베이 기차역 상권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죠. 

한국에서도 서울의 강남 일대가 지금의 강남이라는 명성을 얻기 전까지는 서울에 포함되지도 않고 제대로 된 이름조차 없는 미개발 지역이었다죠. 1960년대 일자리를 찾기 위해 서울로 모이는 타지역 인구가 급증하면서 기존의 강북만으로는 수용할 수 없어지자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김현옥은 박흥식 화신실업 회장과 함께 남서울계획을 내놓았죠. 강남 개발의 신호탄을 울린 계획을 시작으로 1970년대에는 지금의 한남대교인 제3한강교와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서서히 인프라를 구축하였고, ‘토지구획정리사업'으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 민간 건설업체들의 아파트 건설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아파트의 시대가 열렸죠. 여기에 기존 종로와 중구 등 강북에 있던 명문중고등학교들도 강남으로 이전해 8학군의 시초를 이루었죠. 

타이베이의 도시 발전사를 보면 동취 역시 하나의 상권으로서 타이베이 시의 중심지 중 하나가 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일입니다. 개발의 원인은 과도한 인구 밀집이었죠. 첫 번째 인구 유입의 계기는 중화민국 국민당의 타이완 남하였습니다. 당시 국민당 고위 관료 및 군인을 포함해 200여만 명의 중국 본토 사람들이 중화민국 정부를 따라 타이완으로 한꺼번에 이주했습니다. 수많은 외성인 관료들은 타이베이의 중앙정부에 출근해야 했지만 기존의 일본 정부가 거주한 사택과 기숙사는 제한이 있었죠. 여기에 1960년대 서울과 마찬가지로 같은 시기 타이완에서도 대학교육과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남부지역에서 타이베이로 올라와 학업이나 노동을 하는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습니다. 1967년 타이베이 시는 인구 100만 명을 돌파해 직할시로 승격되었습니다. 그러자 일제시기 때 개발된 기존의 시먼이나 중앙정부 부근에 인구 과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타이베이시정부는 타이베이 서쪽 외에 여전히 미개발 중이었던 동쪽 일대를 개발해야만 했습니다. 

서울에서 강남 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강북과 강남을 연결하는 한강 다리를 건설하는 작업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면, 타이베이에서도 서쪽과 동쪽을 연결하는 도로 건설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타이베이 시정부는 교외로 가는 교통로를 개설하기 위해 4년짜리 공공사업 건설 계획을 시작했고, 그렇게 중앙정부 일대와 동취를 연결하는 지금의 중샤오동루(忠孝東路)가 개통되었습니다. 197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지금의 동취가 있는 중샤오동루 4단 주변은 교외의 농촌과 같은 풍경이었다고 해요. 이후 중샤오동루 3단과 4단이 개통되면서 타이베이의 동쪽인 동취가 개발되기 시작했고, 노선을 따라 상권이 생기고 여기에 2000년 전후로 타이베이 지하철 블루라인이 통과하게 되면서 타이베이의 새로운 상업 중심지로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중샤오동루 남북으로 동취를 구성하는 작은 골목길 속 건물들은 대부분 유사한 형태를 지닙니다. 5~10층짜리 건물 1층은 상가로 임대해 각종 음식점과 상점들이 들어와있고, 2층 이상은 주택가로 사용하는 일명 주상복합의 형태이죠. 동취 지역 개발이 이뤄지자 이 지역의 땅값과 임대료가 급상승해 1층 매장은 점점 더 작은 형태로 분할되어 지금의 동취 상권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동취하면 지하상가를 또 빼놓을 수 없죠. 지하철이 완공되고 2002년 7월 정식 운영을 시작한 동취 지하상가(東區地下街)는 현재 중산 지하상가와 함께 타이베이의 최대규모 지하상가입니다. 지하철 블루라인 중샤오푸싱역(忠孝復興)에서 중샤오둔화역(忠孝敦化)까지 총 725m에 이르는 길이에 35개 점포가 있어 비가 쏟아지거나 햇볕이 따가운 날에는 바로 이곳 지하상가에서 구경할 수 있는데요. 지하상가에는 타이완의 유명 서점인 청핀서점(誠品書店)부터 맛집, 의류 부티크, 편의점, 음반점 등 각양각색의 상점들이 있습니다. 여기에 지하상가 사이사이에 예술광장과 예술거리가 있어 타이완 작가의 작품들을 손쉽게 감상할 수 있기도 합니다. 참. 1 km 가까운 길이의 동취 지하상가에는 무려 17개의 출입구가 있으니 출입구의 위치를 미리 확인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소고(SOGO), 밍야오(明曜) 백화점 등 대형 쇼핑몰부터 골목골목의 여러 편집숍과 멋들어진 상점, 특색 있는 맛집이나 카페가 있는 동취. 2000년대 이후 동취보다 더 동쪽에 있는 신이취(信義區) 일대가 개발되면서 또 다른 신흥 상권으로 부상한데다, 임대료 상승으로 유명 노점들이 폐업하는 등 지금의 동취는 전성기였을 때 만큼의 명성은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골목 골목을 산책하며 타이완의 패션 동향을 느끼고 싶거나, 작은 테라스가 있는 카페나 맛집에서 여유롭게 커피 한 잔 하고 싶다면 동취를 적극 추천합니다. 시먼과 신이취에서는 느낄 수 없는 멋을 이 곳 동취에서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엔딩곡으로는 타이완 락 밴드 빠싼야오(八三夭)의 ‘동취동취(東區東區)’를 띄워드립니다. 2003년에 결성된 빠싼야오는 8월 31일에 결성되어서 밴드 이름도 831이라고하는데요. 2012년 발매한 3집 앨범의 타이틀곡인 ‘동취동취’는 스트레스,  썸 등 고민을 가진 젊은 세대들이 동취에 모여 신나게 파티하는 모습을 노래해 발매 후 타이완 젊은 층에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2021년에도 기존의 락 사운드에서 일렉 사운드가 추가된 새로운 버전의 ‘동취동취'가 나올만큼 지금도 회자되는 신나는 노래입니다. 

청취자분들의 젊음은 어떠셨나요? 아니 지금의 젊은은 어떠하신가요? 어떤 사람은 늙어도 젊고, 어떤 사람은 젊어도 늙었다고 하죠. 모두가 매일매일 누구도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는 만큼 ‘젊음'이라는 희망과 활기를 갖고 삶을 가꾸어나가시기를 바라면서 지금까지 <어반 스케처스 타이베이>의 서승임이었습니다.   

2021 새로운 버전의 "동취동취"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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