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1960년 6월 18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이 타이완을 방문했습니다. 공산주의 확장에 맞서 미국과 아시아 우방 간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순방이었습니다. 장제스 총통은 군복을 입고 직접 쑹산공항으로 가 아이젠하워 대통령 일행을 영접했습니다. 최고 예우를 뜻하는 21발의 예포가 발사되면서 두 지도자는 역사적인 순간을 남겼죠. 미국 대통령의 타이완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자 유일입니다.
환영식이 끝난 후, 두 사람은 지프차와 오토바이의 호위를 받으며 타이베이 ‘그랜드 호텔’에 도착했습니다. 가는 길 내내 타이완 국민들로 가득찼고, 심지어 악대 연주와 춘절에만 볼 수 있는 용춤이 펼쳐져 온통 축제 분위기로 뒤덮여 있었습니다. 민주화의 이전 타이완에서는 보기 드문 풍경이었습니다. 장제스 일기에 따르면, 최소 15만 명의 타이완 국민이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보러 왔다고 합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그랜드 호텔에서 식사한 후, 인근 충렬사를 방문해 혁명 선열들에게 꽃을 바쳤고, 오후 3시 총통부에서 장제스 총통과 회담했습니다. 두 사람은 회동 후 대국민 담화에서 양국의 굳건한 우의를 재확인했습니다. 19일 새벽 장제스 총통 내외가 살았던 스린관저(士林官邸) 내 예배당에서 예배한 뒤 장제스 총통과 2차 화담을 가졌습니다. 이어 아시아 순방의 다음 순방국인 한국으로 떠나 24시간의 타이완 방문을 마쳤습니다.

타이완을 방문한 아이젠하워 대통령과 장제스 총통 - 사진: 야오줘치(姚琢奇)/Public Domain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방문은 타이완 외교의 전성기이자 그랜드 호텔의 첫 번째 절정이다” 기자 리퉁하오(李桐豪)는 《붉은 집(紅房子:圓山大飯店的當時與此刻)》에서 이렇게 묘사했는데요. 당시 그랜드 호텔 객실 100개 중 아이젠하워 대통령 일행이 무려 90개를 빌렸습니다. 언론들은 그가 묵은 스위트룸과 음식 내용을 앞다투어 보도했으며, 온 나라가 열광에 휩싸였죠. 영부인 쑹메이링(宋美齡)이 설립한 그랜드 호텔은 짙은 정치적 성격을 띤 타이완 최초의 5성급 호텔로, 아이젠하워 총통의 방문 외에도, 1979년 타이완-미국 단교 협상, 1986년 민진당 창당, 1990년 헌정개혁을 위한 회의 등 타이완 역사를 좌우하는 사건들이 모두 이곳에서 벌어졌습니다. 오늘은 Rti 중앙방송국 뒤에 있는 그랜드 호텔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1970년대 타이완 최고층 빌딩 🏢
마천루들이 도시 곳곳에 우뚝 솟아오르기 전에, 그랜드 호텔은 한때(1973~1981) 타이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특히 호텔이 위치한 젠탄산(劍潭山)은 예로부터 풍수적으로 제왕을 상징하는 ‘용의 동굴(龍穴)’로, 일본 식민지 시대에는 타이완에서 사망한 기타시라카와노미야 요시히사 친왕(北白川宮能久親王)을 모신 타이완 신사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일본 정부는 신토교를 널리 보급하기 위해 타이완 신사를 신토 최고의 신인 아마테라스 오미카미를 모신 ‘신궁(神宮)’으로 승격시켰습니다. 하지만 1945년 미군의 폭격을 당해 건물 일부가 소실되었습니다.

타이완 신사 - 사진: 위키백과
일본 패배 후 중화민국 정부는 외빈을 맞이할 공간을 마련하고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도록 일본 식민지의 상징인 타이완 신궁을 철거해 그 자리에 ‘타이완 호텔’을 세웠습니다. 1952년 쑹메이링을 비롯한 정부 고위층이 결성한 ‘재단법인타이완친목회’가 타이완 호텔을 인수해 지명에서 따온 ‘위안산 호텔(圓山大飯店)’, 즉 현재의 그랜드 호텔로 이름을 바꿨습니다. 주요 관리자는 쑹메이링의 조카딸 쿵링웨이(孔令偉)였습니다.
원래 호텔의 규모는 매우 작았는데, 1963년 1차 공산을 거쳐 1973년 건축가 양줘성(楊卓成)이 설계한 14층짜리 중국 궁전식 빌딩이 완공된 후에야 타이완의 최고층 빌딩으로 떠올랐습니다. 이 과정에서 쿵링웨이는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요. 쿵링웨이는 쑹메이링의 맏언니인 쑹아이링(宋靄齡)와 쿵샹시(孔祥熙) 전 중화민국 재무장관의 둘째 딸로, ‘쿵얼 아가씨(孔二小姐, 쿵씨집안의 작은 아가씨)’라고 불립니다. 남자 정장 차림에 짧은 머리를 한 공링웨이는 키가 작지만 일 처리가 깔끔하고 호텔의 실권자였습니다. 그는 호텔 개축의 1차 설계도를 보고 지붕이 어른이 어린아이의 모자를 쓴 것처럼 작아 보인다며, 건축가에게 다시 설계하라고 지시했는데, 추가 비용은 모두 정부에서 부담했습니다. 또한 호텔 산기슭에 있었던 국방부가 호텔 입주자들이 국방부 내부를 한눈에 들여다볼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해도 전혀 소용없었고, 결국 국방부가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만큼 쿵리웨이의 권력이 높다는 방증이죠.

쿵링웨이(좌1)와 쑹메이링(가운데) - 사진: 진주간
비밀 터널 대공개 🕳
2006년 처음 공개된 피난용 터널도 쿵링웨이가 계획한 겁니다. 총통과 외빈을 비롯한 고위층 인사를 보호하기 위해 그랜드 호텔 지하 2층에는 비밀 터널 두 개가 있는데요. 두 터널은 너비 2미터, 높이 2.2미터로, 2~3명이 동시에 통행할 수 있습니다. 동쪽을 향한 동터널은 산 아래의 ‘쿵링웨이 고택(孔二小姐故居)’과 ‘위안산 클럽(圓山聯誼會)’, 즉 저희 Rti 방송국 쪽으로 통하며, 서쪽을 향한 서터널은 젠탄공원(劍潭公園)으로 통합니다. 이 중 가장 특별한 시설은 행동이 불편한 사람을 위한 서터널의 ‘시멘트 미끄럼틀’인데요. 총통이 피난할 경우, 세 명의 보안 요원이 동행해야 하며, 한 명은 총통을 안고 다른 한 명은 터널 끝에서 총통을 맞이하고, 나머지 한 명은 옆에서 대기해야 합니다. 호텔에서 탈출 후 수상 비행기를 타고 타오위안에 있는 자오판산 행관(角板山行館)로 이동합니다. 현재 동, 서터널은 모두 일반대중에게 개방되며, 인터넷을 통해 가이드를 예약할 수 있습니다.

호텔 지하 2층에 있는 서터널 - 사진: Rti
7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그랜드 호텔에는 총 111개국의 원수와 수많은 글로벌 스타들이 방문했는데, 이 중 박정희 대통령과 배우 배용준도 묵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1995년 발생한 화재로 인해 호텔 옥상과 최고급 객실이 소실되었고, 3년간의 복원 공사 끝에 운영을 재개했습니다. 최근 몇 년간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이미지를 벗어나기 위해 관광 가이드를 통해 호텔의 문화적 역할 강화에 전력하고 있습니다. 앞서 언급된 터널 외에, 국가원수들이 묵었던 로얄 스위트룸도 개방되어 신비로운 베일을 벗었습니다. 이제는 상류층만의 호텔이 아니라 타이완의 문화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한편, 리퉁하오는 《붉은 집》에서 호텔 이발소에서 수십 년간 근무한 이발사의 이야기를 다루는데, 이 분은 영화 <효자동 이발사>처럼 장징궈, 리덩후이 전 총통의 이발사로, TSMC 창업자 모리스 창(張忠謀)의 머리를 깎아주기도 했습니다. 당시 아직 결혼하지 않은 모리스 창이 그에게 TSMC 주식을 사라고 추천한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더 이상 타이완 최고의 호텔이 아니더라도, 그랜드 호텔은 여전히 젠탄산에 우뚝 서서 그의 이야기를 계속 전하고 있습니다.
엔딩곡으로 그랜드 호텔의 정성기인 1980년대의 명곡, 페이위칭(費玉清)의 ‘매화꽃(一翦梅)’을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李桐豪,《紅房子:圓山大飯店的當時與此刻》。
2. 開箱老照片》美國總統艾森豪訪華,中央社。
3. 楊媛婷,圓山龍穴的前世今生,自由時報。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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