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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해협 구조 확립한 '다천섬(大陳島) 철수'... 중화민국과 함께한 다천인(大陳人)의 발자취 👣

  • 2025.02.26
랜드마크 원정대
장제스 총통을 모시는 사찰 ‘장공감은당(蔣公感恩堂)’ 내부 - 사진: 위키백과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최근 2주 동안 <포르모사 문학관> 시간에서 제7·8대 Rti 회장이자 작가 핑루(平路, 본명 路平 루핑)의 시리즈 소설 ‘타이완 3부작’을 소개해 드렸는데, 3부작의 마지막 작품 《몽혼의 땅(夢魂之地)》은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을 모티브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타이완 근현대사를 주도한 장씨정권(장제스-장징궈)의 종장을 그리며 타이완 3부작의 마침표를 찍었습니다. 

판밍루(范銘如) 정치대 교수는 추천서문에서 “저자는 주인공의 현대적 시각을 통해 장징궈 총통의 입에서 언급되지 않은 역사를 보완하려고 한다”며, “ ‘숙녀의 무덤(淑女墓)’으로 장징궈 총통이 추진한 10대 건설사업(十大建設)에서 여성 노동자들의 기여를 부각시키고, 중화신촌(中華新村)의 철거로 장씨정권의 신화를 깨뜨리고, 장제스 총통을 모시는 사찰에서 장제스 총통의 자리가 관세음보살에 대체된 것으로 장씨정권의 쇠퇴를 반영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몽혼의 땅’이라는 제목처럼 독자를 역사의 현장으로 데려갈 뿐만 아니라, 수많은 역사적 랜드마크를 소재로 하여 읽을 만한 역사소설입니다. 오늘은 《몽혼의 땅》에 언급된 랜드마크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관련 프로그램:
전 Rti 회장이자 소설가 핑루(平路)의 타이완 3부작① 


중화민국-미국 공동 군사작전 '다천섬 철수' 🚢

신력을 얻어 장징궈 총통의 노년 시절로 소화된 주인공은 가오슝의 해안마을 치진(旗津) 출신인데요. 그의 부모는 1955년 장징궈 총통이 지휘한 ‘다천섬 철수(大陳島撤退)’와 함께 중국 저장 다천섬에서 타이완으로 건너왔습니다. 다천섬 철수는 중화민국 국군과 미군의 공동 군사작전으로, 오늘날 타이완해협의 구도를 확립했습니다. 

1949년 중화민국 정부가 타이완으로 이전된 후, 중화민국의 실질적 영토는 타이완섬, 펑후섬(澎湖), 진먼섬(金門), 마주열도(馬祖), 그리고 다천섬을 포함한 중국 저장성 동부에 있는 작은 섬들만 남았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의 발발로 인해 중국의 일부 병력이 한반도로 파견되면서 다천섬 정세가 완화되었으나, 한국전쟁이 끝나자 중공은 최우선 임무를 한반도에서 타이완으로 전환해 1955년 다천섬 위에 있는 이장산섬(一江山島)을 점령했습니다. 방어막을 잃은 다천섬을 지키기 어려웠던 데다 1954년 12월 체결된 <미국-중화민국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군의 방어 범위가 타이완섬과 펑후섬에 제한되기 때문에, 중화민국 정부는 다천섬을 포기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다천섬 위치 - 사진: 안우산

미국 해군 제7함대의 협조로, 다천섬을 포함한 4개 섬의 주민 및 주둔군 3만 명이 타이완 지룽항(基隆港)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이는 ‘다천섬 철수’, 미군과의 공동작전은 ‘금강 계획(Operation King Kong)’이라고 불립니다. 작전이 성공한 후 중화민국 정부는 저장성정부를 폐지했고, 이로써 중화민국의 실질적인 영토는 현재의 타이완섬, 펑후섬, 진먼섬, 마주열도만 남게 되었습니다.

정부에 대한 확고한 지지에 감사하기 위해, 다천섬 주민들은 피난민이 아닌 ‘다천의포(大陳義胞)’라고 불리며, 직업에 따라 타이완 각지에 있는 마을 ‘다천신촌(大陳新村)’ 35곳으로 배치되었습니다. 다천사람의 운명은 중화민국 정부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어 국민당과 장제스-장징궈 총통에 대한 애정이 깊습니다. 타이완에 정착한 후 군대 또는 공무에 투신한 사람이 많았고, 다천신촌에서는 장제스 총통을 모시는 사찰이 잇따라 세워졌습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장제스 사찰은 가오슝 치진의 ‘스젠신촌(實踐新村)’, 즉 《몽혼의 땅》 주인공의 고향에 있습니다.


타이완에 온 다천사람들 - 사진: 위키백과

장제스 사찰 소개에 앞서 다천섬 출신 가수 커서우량(柯受良)의 ‘사나이(正港的男兒)’를 띄워드립니다.


총통을 모시는 사찰 ⁉️

1947년 타이완 전역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봉기인 228사건 78주년을 앞두고, 관련 시민단체들이 오는 28일 다양한 행사를 열릴 예정입니다. 장제스 총통은 당시 최고지도자로서 많은 타이완 국민에 의해 228사건의 주범으로 지목되며, 민주화 이후에는 장제스의 동상과 관련 기념관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잇따랐습니다. 하지만 다천사람이 사는 다천신촌에서는 180도 다른 상황인데요. 장제스와 장징궈 총통은 여러 차례 다천섬을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다천사람들을 중공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했기 때문에 다천사람의 높은 존경을 받았습니다. 

1975년 장제스 총통 별세 이후, 타이완 전역의 다천신촌에서 온 대표 35명이 타이베이 국부기념관에서 열린 장례식에 참석해 큰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가오슝의 스젠신촌에서는 장제스 총통을 모시는 사찰 ‘장공보은관(蔣公報恩觀)’와 ‘장공감은당(蔣公感恩堂)’이 세워지면서 장제스 총통의 탄생 및 서거 기념일마다 성대한 제사가 열립니다. 사찰에는 장제스 총통뿐만 아니라 다천사람이 고향에서 모시는 신(阮弼真君 완필진군, 漁師大神 어사대신, 三官大帝 삼관대제, 觀世音菩薩 관세음보살)도 있는데, 이는 다천사람의 집단 정체성을 확립하는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다천 문화에서 바다의 수호신으로 여겨진 완필진군을 모시는 사찰 - 사진: CNA

그러나 2000년 이후 타이완 최초의 야당(민진당) 출신 정치인 천수이볜(陳水扁)이 총통으로 당선되면서, 신화로 추앙받던 장씨정권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습니다. 또한 어르신들의 별세와 함께, 장제스 총통을 숭배하는 문화도 점차 사라졌습니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춰 사찰 측은 2006년 제단 가운데 있는 장제스를 관세음보살로 대체했습니다. 지난 30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아침마다 사찰에서 향을 피우던 한 할아버지는 이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다천사람에게 장제스, 장징궈 부자는 새로운 삶을 열어준 은인이지만, 타이완 토박이에게는 228 사건, 그리고 38년간 이어진 백색테러와 군부독재를 가져온 악당입니다. 보는 시각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달라지는 거죠. 아픈 역사에 따른 사회적 대립은 타이완이 지금까지도 안고 있는 과제입니다.


소중한 다천 문화 🌟

한편, 다천사람의 언어는 타이저우어(台州話)로, 타이완사람이 주로 사용하는 민난어(閩南語), 하카어(客家語)와 다릅니다. 언어 외에 다천사람도 다천섬의 특색요리와 양조 기술을 가져와 타이완의 문화를 풍부하게 했습니다. 다천사람의 독특한 문화를 보존하기 위해 지난 2014년 화롄(花蓮)에  ‘다천 박물관(大陳故事館)’이 개관했습니다. 젊은 다천사람들은 음식, 공예, 전시 등 다양한 방식으로 타이완에 뿌리내린 다천사람의 문화를 적극적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가오슝시정부도 지난 2016년 치진에서 다천 문화 페스티벌을 열어 낡은 마을을 벽화의 골목으로 만들었습니다. 비록 다천사람은 타이완에서 극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중화민국 타이완에 없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일부입니다.


생강차로 만든 다천섬의 국수요리 - 사진: CNA

다음주는 계속해서 장제스-장징궈 총통에 관한 랜드마크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趙孝嚴,「義村?眷村?大陳義胞第三代的在地青年行動」,中華民國眷村資源中心。
2. 石文誠,「總統也可以變成神?──高雄旗津的蔣公信仰」,故事。
3. 秦雅如,「一個比原住民還少的族群,大陳地域復興計畫。趙孝嚴:每個在做地方事的人,都是實踐者或傳承者」,微笑台灣。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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