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타이완 동부 화롄에서 지난 3일 발생한 리히터 규모 7.2의 강진으로 7일 기준 사망자는 13명, 부상자는 1,145명으로 늘었습니다. 이번 지진은 1999년 9.21대지진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는 1996생인 제가 겪어본 가장 강력한 지진입니다. 지진 발생 전인 오전 7시 50분 쯤에 제가 키운 앵무새 2마리가 갑자기 큰 소리로 질러 저를 깨우고 비몽사몽 중에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60초 가까이 흔들리며 물건이 계속 떨어지는 장면이 정말 무서웠습니다. 한국 여행을 마치고 막 타이완에 도착한 저는 너무나 피곤했지만 여진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타이완 중앙기상서에 따르면 8일 오후까지 약 750회의 여진이 발생했고, 이 중 160회는 유감 지진입니다.
중국에서 가까운 타이완의 외딴섬인 진먼(金門)과 마주(馬祖), 그리고 중국 푸젠과 광둥에서도 유감 지진이 날 정도로 이번 지진은 규모가 컸습니다. 타이완 곳곳에서 건물에 균열이 생기거나 천장이 떨어지는 피해가 발생했지만 9.21대지진 이후 대폭 강화된 내진설계 덕분에 대규모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지진으로 진앙인 화롄에서는 여러 건물이 기울어졌고 한국분들이 즐겨가는 타이루거(太魯閣) 국가공원도 큰 손해를 입었습니다. 국립둥화대(東華大學) 자연자원 및 환경학 류잉싼(劉英三) 교수는 “지진 이전의 서비스 수준을 회복하려면 최소 3년이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지진이 발생한 후 100개가 넘는 정부와 국제기구가 타이완에 위로의 뜻을 전하며, 필요한 지원을 제공할 의사를 밝혔습니다. 이에 타이완 정부는 재해구호 역량이 충분해 대부분 나라의 협조에 마음으로만 받겠다고 답했지만, 타이루거의 복잡한 지형으로 인해 구조 작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 튀르키예의 지원만 받았습니다. 튀르키예 구조대는 9.21대지진 후 타이완에 도착한 첫 외국 구조대로, 지난해 현지에서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에서 사용된 무인기와 열 감지 등 기술지원을 제공했습니다. 7명으로 구성된 튀르키예 구조대는 지난 6일 저녁 타이완에 도착했습니다.
화롄 지역 외에 중부 윈린(雲林)에 위치한 100년 이상 역사를 지닌 후웨이 설탕공장(虎尾糖廠)의 굴뚝도 부러졌습니다. 1909년부터 가동된 후웨이 설탕공장은 타이완설탕공사인 타이탕(台糖)의 3대 설탕공장 중 유일하게 가동 중에 있는 공장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에 일본 식민지였던 타이완은 심한 폭격을 당했는데, 비행장이 있는 후웨이는 폭격의 주요 대상이 되었지만 설탕공장의 아이콘인 굴뚝 두 개가 강력한 폭격에도 불구하고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지난 2001년 가동이 중단된 굴뚝 하나가 이번 지진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공장 직원이 45m 높이의 굴뚝이 부러지는 장면을 핸드폰으로 찍었고, 콘트리트 덩어리가 아래 지붕에 떨어졌지만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 윈린현 정부는 해당 굴뚝은 문화재 자격이 없으나 중요한 랜드마크로 타이완설탕공사와 함께 복원 작업을 추진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평원을 위주로 이루어진 타이완 서부는 사탕수수 재배에 좋은 곳으로, 북부 신주(新竹)에서부터 남부 가오슝(高雄)까지 모두 대표적인 설탕공장이 있습니다. 다만 1990년대부터 생산 비용의 증가로 대부분이 관광 지향적인 문화단지가 되었고, 현재 가동 중인 설탕공장은 후웨이 공장과 타이난 산화(善化) 공장 2곳밖에 없습니다.
19세기 중반부터 중국 청나라가 서구 열강에게 여러 차례 패하면서 청나라의 일부였던 타이완의 주요 항구가 잇달아 개항되었는데, 대외무역을 중요시하는 타이완은 세계 각국과 교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서 일본은 타이완 설탕의 주요 수입국이었기 때문에 타이완을 식민지로 점령한 후 타이완의 제당업을 적극적으로 발전해 타이완 곳곳에 현대화된 신식 공장을 세워 설탕의 자급자족을 이뤘습니다. 후웨이 설탕공장은 설립된 지 1년 만에 타이완 생산량 1위를 차지했으며, 후웨이도 ‘설탕의 도시’로 알려져 타이완 제당문화의 중심으로 떠올랐습니다.
이어 1946년 설립된 타이완설탕공사는 일본 정부와 기업의 제당장을 접수해 타이완 제당업의 관건적 역할을 맡아왔습니다. 특히 1950-60년대에 설탕 제품을 대량 수출해 타이완에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1964년 타이완 전체 수출의 79%를 차지할 정도로 당시 타이완 최대의 기업이 되었습니다. 1990년대 국제 설탕 가격의 폭락과 생산 비용 증가로 산업 전환을 시작했는데, 지금 후웨이 설탕공장에 가면 제당업의 역사, 제조 과정 뿐만 아니라 설탕공장이 운영하는 빙수집, 아름다운 일본식 건축, 철도 마니아가 열광하는 꼬마열차, 100년 역사를 지닌 커라단 나무 등 특수 풍경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윈린현 한가운데에 있는 후웨이는 일본 식민지 시대에 설탕공장의 설립 덕분에 크게 발전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 고속철도의 개통과 중부과학단지의 설립으로 더우류(斗六)와 함께 윈린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제당업이 더 이상 타이완의 주요 산업이 아니지만 설탕공장은 여전히 후웨이의 랜드마크로서 후웨이인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설탕공장 근처에 있는 후웨이 철교(虎尾溪鐵橋), 둥신공원(同心公園), 타이완 인형극인 포대희(布袋戲) 박물관도 가볼 만한 곳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설탕공장의 빙수집은 절대 놓칠 수 없는 필수 코스입니다! 빙수의 원료가 설탕물이기 때문에 타이완설탕공사는 설탕공장의 매점에서 아이스바와 빙수를 판매하고 직원들이 수익 배당을 받을 수 있도록 해왔습니다. 설탕공장의 선업 전환과 함께 이제 빙수는 타이완설탕공사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타이완 각지의 설탕공장은 각자의 특수 맛이 있는데, 후웨이는 보리싹으로 만든 초록색 빙수(麥苗冰沙)와 사탕수수 아이스바(甘蔗冰棒)가 제공되어 있고, 기본 맛을 선호한다면, 팥, 땅콩, 우유, 파인애플 등도 있습니다. 나중에 타이완의 설탕공장을 방문할 기회가 생긴다면, 아무리 추워도 빙수를 꼭 드셔야 합니다!
엔딩곡으로 윈린 출신, ‘발라드 왕자’라 불린 타이완 가수 장신저(張信哲)의 ‘신앙(信仰)’을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姜宜菁,「百年台糖虎尾糖廠煙囪躲過二戰 不敵強震斷裂」,中央社。
2. 劉建邦,「花蓮地震土耳其特搜隊晚間抵台 林右昌:借重無人機特殊技術太魯閣救災」,中央社。
3. 曾佳萱、江柏緯、呂彥,「太魯閣封閉『修復期無法預估』 專家:恐3到5年」,三立新聞網。
4. 台灣製糖工廠百年文史地圖。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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