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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렬사와 신사 한 곳에? 타이완 현대사의 목격자,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 문화단지

  • 2023.04.12
랜드마크 원정대
일본 신사에서 충렬사로 개축한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 문화단지 - 사진: 타오위안 관광국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최근 타이완에서 타오위안(桃園)의 한 랜드마크에 관한 논쟁이 매우 뜨거운데요. 타오위안시 지정문화재인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 문화단지(桃園忠烈祠暨神社文化園區)’는 작년 12월 일본 고유의 종교인 신토(神道)의 신을 타이완으로 모셨는데 항일 영웅을 추모하는 충렬사에서 일본 신을 모시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지난 3월 타오위안시청은 외주업체에게 신을 일본으로 돌려보낼 것을 지시한 후 또 한 차례 비평을 당했습니다. 일부 시민들은 정부가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며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문화재의 가치와 정신을 임의로 파괴한다고 항의했습니다. 관광 발전을 위해 충렬사와 종교를 혼동하여 논의해서는 안된다는 의견도 존재합니다.

천차만별인 충렬사와 일본 신사는 어떻게 한 곳에 공존할 수 있을까요? 이슈 핵심에 접근하려면 우선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 문화단지의 역사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1930년대 타이완 일치시기 때 일본은 신토를 널리 보급시키기 위해 타이완 곳곳에 신사를 짓었는데 타오위안 신사도 그 중의 하나입니다. 타오위안 신사는 타오위안 시민을 수호하는 취지에서 타오위안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후터우산(虎頭山)에 지어졌습니다. 일본 법령에 따라 신사 주변에는 자동차나 마차의 출입, 벌목과 사냥 모두 금지되어 신사는 깨끗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1945년 일본 패배 후, 중화민국 정부는 일본 문화를 없애며 비용을 절약하기 위해 신사를 중국식의 충렬사로 개축하기 시작했습니다. 타오위안 신사는 타이완에서 첫 번째 충렬사로 개축된 신사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언급한 국민혁명충렬사(國民革命忠烈祠)의 전신도 신사였습니다. 타오위안 신사는 네덜란드인을 몰아내고 정씨왕국을 세운 정성공(鄭成功), 일치시기 일본에 대항하고 ‘타이완 민주국’을 세운 류융푸(劉永福), 츄펑쟈(丘逢甲), 청나라에 반항한 황화강 사건(黃花崗起義)의 열사들, 중국공산당에 맞서 희생된 군인들, 그리고 순직한 경찰, 소방원, 간호사 등 애국선열을 모시고 있습니다. 


문화단지 입국에 있는 충렬사 석비 - 사진: 타오위안 관광국

1972년 일본은 중화민국과 단교한 후 타이완 정부는 탈일본(去日本化) 정책을 실시하고 각지의 신사를 철저하게 철거하기로 했습니다. 다만 기존 신사 중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문화적 가치가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았던 타오위안 신사는 각계의 반대와 주목으로 결국 그대로 보존되었습니다. 당시 개축계획의 담당 건축사는 신사를 보고 신사의 완전성과 가치를 긍정하며 낙찰을 포기했습니다. 1985년 타이완 가장 오래된 텔레비전 방송국의 하나인 중화 텔레비전 공사(中華電視公司, 약칭 華視CTS)가 신사 보존 여부에 관한 토론회를 열어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계엄령을 해제하기 전에 타이완 사회에서 이처럼 문제를 공론화한 것은 참 대단하죠. 그 후 타오위안 신사의 가치를 인지한 타오위안시청은 본격적으로 신사의 수리와 복원을 시작했습니다. 1994년 타오위안 신사는 문화재 자격을 받고 일본 외에 현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신사로 많은 일본 관광객을 끌어들였습니다.  

2000년대에 들어 신사의 관광가치를 최대화할 수 있도록 타오위안시청은 외주업체를 구하고 적극적으로 문화재를 활용해 이벤트와 체험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2016년 타오위안 신사는 정식으로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 문화단지’로 개칭되었는데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잘 보존되어 있는 신사 건축은 점차 주목되어 코스프레 촬영지, 영화 촬영지 등 핫한 장소로 탈바꿈했습니다. 중화권에서 대체 불가한 타이완 가수 저우제룬(周杰倫)의 노래 <닌자(忍者)>의 뮤직비디오와 2014년 흥행에 성공한 타이완 야구 영화 <카노(KANO)>가 타오위안 신사에서 촬영한 바가 있습니다. 또한 2019년 신사 건축사의 아들과 손자가 신사의 수리를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하고 충렬사에 모시는 열사들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신사 입구에 세워진 도리이(鳥居) - 사진: 타오위안 관광국

다음에는 이번 이슈의 쟁점으로 들어갑시다. 작년 9월부터 타오위안 신사는 일본 홋카이도 구시로시의 돗토리(鳥取)신사와 협력해 일본의 신사 문화, 체험 이벤트를 도입하고 큰 인기를 얻었는데요. 그러나 일본 신을 맞이하고 항일 영웅과 함께 모시는 것에 대해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애초에 신사였던 신사는 세상이 바뀌면서 충렬사가 되기 때문에 일본 신을 모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며 일본 신사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의견이 있는 반면, 충렬사에서 일본 신을 모시는 것은 매우 불경스럽다는 부정적인 의견도 있습니다. 타오위안시청은 신을 일본으로 돌려보낸 것에 대해 이벤트 기간이 종료됨에 따라 절차대로 진행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타오위안 신사 보존 문제는 십여 년 전부터 존재하는데 일본 신을 모시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면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일부 사람은 충렬사를 다른 곳으로 옮기며 신사 문화단지를 보존하고 일치시대에 관한 사료를 전시하는 식으로 진행하자고 제안했습니다. 타오위안 충렬사 및 신사는 타이완처럼 여러 정권을 거쳐 복잡한 역사 때문에 애매모호한 상태에 처하고 있습니다. 신사를 충렬사로 개축하는 것은 일시적인 방편인데 신사가 지어진 지 85년이 된 현재는 이행기 정의 개념처럼 문화단지의 앞길을 잘 생각하야 합니다. 

타이완 공영 방송인 공공 텔레비전(公共電視台, 약칭 公視PTS)이 ‘최초의 충렬사, 최후의 신사’라는 제목으로 타오위안 신사의 복원 과정을 기록했는데요. 이 제목만큼 타이완 현대사의 목격자인 타오위안 신사는 매우 특별하고 유의미한 문화재입니다. 정부와 외주업체가 어떻게 협력할지, 문화재를 어떻게 활용할지, 국민의 의견을 어떻게 수용할지, 타이완과 일본의 문화교류를 어떻게 촉진할지, 관광을 발전하면서 다양한 문화가 어떻게 타이완에서 공존공영할지 잘 고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만약 해당 이슈는 타이완과 같이 일본 식민지가 되었던 한국에서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타이완은 한국에 비해 일본에 대한 태도가 비교적으로 우호적입니다. 여러 민족과 나라의 통치를 거쳐 이민사회로 발전해온 타이완은 한국만큼 고유문화의 뿌리가 깊지 않기 때문에 외래문화에 대한 수용도가 높습니다. 또한 2차 세계 대전 후 228사건, 본성인과 외성인의 대립, 백색 테러 등 요인으로 일본 정부에 대한 반감은 그다지 많지 않았습니다. 민주화 이후 일본 노래, 아이돌, 드라마, 만화, 에니메이션 등 대중문화의 유행으로 일본을 동경하는 사람이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타이완은 한국과 상당히 다른 태도를 가지고 있는데 이번 이슈를 통해 자신의 역사, 국가의 정체성, 다른 나라의 문화, 이데올로기의 대립 등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엔딩곡으로 타오위안 신사에서 촬영한 영화 <카노>의 OST ‘용감한 자의 낭만(勇者的浪漫)'을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가수는 타이완 원주민 타이야(泰雅)족인 뤄메이링(羅美玲)입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許倬勛,「桃園忠烈祠暨神社 撤日本神祇惹爭議」,自由時報。
2. 陳布萊,「桃園神社供奉「天照大神」背棄忠烈祠祖宗?歷史糾葛一次看懂」,城市學。
3. 路永平,「觀點投書:三種無知,二重傷害,一般粗魯─桃園神社事件暴露的問題」,風傳媒。
4. 施景耀,「在全台第一個被改建忠烈祠的桃園神社祭拜日本天照大神,究竟有沒有問題?」,關鍵評論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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