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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엽귀근(落葉歸根)에서 낙지생근(落地生根)으로, 타이베이의 보물 화난신춘(化南新村)

  • 2023.02.01
랜드마크 원정대
타이완국립정치대학교 옆에 있는 외성인 마을 '화난신춘(化南新村)' - 사진: 안우산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주 외성인 먹거리의 천국인 남문시장(南門市場)을 소개한 데 이어 이번주는 제가 외성인 요리를 처음 접한 장소, 제 모교 국립정치대학교 옆에 있는 외성인 마을 ‘화난신춘(化南新村)’을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타이완에서 장제스(蔣介石) 정권을 따라온 외성인(外省人), 그리고 그전에 이미 타이완에서 정주한 한족인 본성인(本省人) 간의 대립은 매우 심각한 사회이슈인데요. 비록 1980년대 타이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본토의식(本土意識)’이 대두되면서 현재 세대는 본·외성인의 구분에 대해 크게 신경을 쓰지 않지만 여전히 사회 곳곳에서 이로 인한 현상을 볼 수 있습니다. 1992년까지 타이완의 주민등록증 상 중국의 본관이 표시되어 있었는데, ‘타이완성(臺灣省)’으로 표시되면 본성인, 중국대륙의 각 성으로 표시되면 외성인이며, 설령 타이완에서 출생하더라도 아버지나 할아버지의 중국 본관을 표시해야 한 상황이었습니다. 이 규정은 많은 혼란과 갈등을 일으켰기 때문에 정부는 1992년 본관을 출생지로 변경했습니다.


1963년부터 1976년까지 본관만 표시되었던 타이완 주민등록증 - 사진: Thinking-Taiwan

언어 측면에서도 본·외성인의 구분이 보일 수 있는데요. 1945년 타이완이 중화민국에 반환된 이후 국민당은 정권의 정당성을 확립하도록 국어 이외 타이완어(台語), 하카어(客家語), 원주민어, 일본어 등 언어를 금지하는 국어운동(國語運動)을 적극 추진했습니다. 여기의 국어는 베이징 관화(官話)를 기초로 제정된 표준중국어를 뜻하며 바로 지금 중화민국의 공식 언어입니다. 국민당은 국어운동을 통해 권력을 강화했으나 이러한 언어 차별화 정책은 타이완의 사회적 대립과 정치적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본·외성인 갈등하면 1947년에 일어난 228사건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228사건은 타이완 전역에서 일어난 민중봉기 사건으로, 당시 국민당 정부의 만행에 맞서 싸웠던 본성인들은 외성인 위주의 정부로부터 폭압적으로 학살되었습니다. 228사건 이후 본·외성인 간의 대립은 더욱 심각해졌습니다. 그러나 본성인뿐만 아니라 학살당한 외성인도 있었습니다. 저는 화난신춘(化南新村)에서 ‘외성인의 228사건’이라 불리는 펑후(澎湖) 713사건을 처음 알게 되었는데요. 당시 중국 산둥성(山東省)에서 도망하러 온 교사와 학생들이 펑후에서 모함을 당해 국민당 정부로부터 총 300여 명이 처형되었습니다. 화난신춘에서 거주했던 위안줴페이(苑覺非) 교수는 바로 산둥학생 중의 한 명으로 결국 타이완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저처럼의 90년대생들이 본·외성인 갈등에 무과심한 것은 사실입니다. 저도 화난신춘을 통해 해당 이슈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많은 역사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화난신춘의 소재 위치는 원래 정치대의 법학원 빌딩을 짓기 위해 농민들로부터 징수된 토지였는데, 1960년대 태풍으로 수해가 발생해 중국에서 온 교수들이 타이완에 안착할 수 있도록 해당 위치에서 우선 교수 기숙사를 지었습니다. 그 후 화난신춘은 각 분야의 석학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지식의 전당이자 본성인 교슈와 외성인 교수가 교류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또한 붉은 벽돌로 지은 2층 단독주택으로서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높고, 주변에 다양한 종류의 식물이 있어 도시 한가운데 녹음이 우거지는 특별한 존재입니다.


화난신춘(化南新村) 보존운동의 발기인 천수메이(陳淑美, 좌)와 위안쥐민(苑舉民, 가운데) - 사진: 안우산

그러나 2015년 정치대가 사전 예고 없이 갑자기 화난신춘의 두 건물을 철거했는데요. 자칭 ‘화난신춘의 이웃’인 천수메이(陳淑美)와 펑후 713사건을 겪은 학생인 위안줴페이의 아들 위안쥐민(苑舉民)이 이 상황을 보고 무슨 행동이든 반드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해 화난신춘의 보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정치대를 졸업한 천수메이는 결혼 이후 화난신춘 바로 옆에 살기 시작했고, 역사학을 전공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타이완 역사를 다루는 화난신춘에 애정을 갖고 있습니다. 그는 정치대가 화난신춘과 작별 인사를 하기 위해 개최한 화난신춘 관련 전시회에서 위안쥐민을 우연히 만났는데요. 곧 법학원 빌딩으로 재건될 화난신춘을 보고 한숨을 쉰 천수메이는 자기도 모르게 “어떻하지”라고 중얼거리자 옆에 있었던 위안쥐민은 “그렇죠. 어떻하죠”라고 대답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을 맺었습니다. 그 때부터 그들은 화난신춘의 보존을 위해 분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화난신춘(化南新村)의 마지막 주민인 량시춘(梁錫純) - 사진: 안우산

두 사람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당시 화난신춘의 마지막 주민인 량시춘(梁錫純)과의 인터뷰였습니다. 정치대 세무학과 교수 장쩌야오(張則堯)의 부인인 량시춘은 국공내전(國共內戰) 때 연이어 패퇴한 국민당을 따라 중국 베이징에서, 난징(南京), 지앙시(江西), 홍콩을 거쳐 타이완으로 왔는데, 중화민국 정부 이전 과정의 목격자라고 할 수 있죠. 두 사람은 글 외에도 영상으로 화난신춘을 기록하려고 하고, 결국 지인의 소개로 저와 반친구 3명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방송학 전공인 저희는 마침 다큐멘터리의 제작을 배우고 있어 량시춘을 주인공으로 화난신춘에 관한 첫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2015년부터 2018년 졸업 때까지 화난신춘 보존 운동을 쭉 지켜본 저희는 다큐멘터리 3편을 제작했는데, 화난신춘이 2018년 타이베이시정부로부터 문화재로 지정된 것까지 기록했습니다. 비록 2019년 정치대의 소원(訴願) 때문에 화난신춘의 문화재 자격이 한 때 취소되었지만 재심사를 거쳐 전역이 보존되어야 한다는 좋은 결과를 얻었습니다. 영상 뿐만 아니라 저희도 잡지 제작에 관한 수업에서 화난신춘의 외성인 음식을 이미지와 글로 기록했습니다. 고기 완자 요리인 스쯔터우(獅子頭), 돼지 앞다리 요리인 빙탕저우쯔(冰糖肘子), 풍부한 토핑에 수제 칼국수(刀削麵)... 외성 요리가 타이완 현지 재료와 만나 새로운 모습으로 향수병에 시달린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겠죠.


잡지에서 수록된 고기 완자 요리 스쯔터우(獅子頭) 및 돼지 앞다리 요리 빙탕저우쯔(冰糖肘子)의 레시피 - 사진: 안우산

보존운동을 막 시작했을 때 이처럼의 좋은 결과는 단 한번이라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다양한 형식으로 화난신춘의 아름다움을 기록해서 참 다행입니다. 량시춘은 2018년 9월에 돌아가셨고 만약 화난신춘 보존운동이 없었다면 이 소중한 이야기들도 사라질 수밖에 없죠. 화난신춘 보존운동을 기록하면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는 망고나무의 이야기인데요. 중국 북방 지역에서 온 류지산(劉濟善) 교수는 아이가 타이완에서 태어났을 때 집 앞에서 남방 지역에만 있는 망고나무를 심었고, 낙엽이 뿌리로 가듯이 사물은 반드시 돌아갈 곳이 있다고 뜻하는 ‘낙엽귀근(落葉歸根)’, 그리고 어떤 곳에 뿌리를 내린다고 뜻하는 ‘낙지생근(落地生根)’, 사자성어 두 개를 통해 스스로가 타이완에서 정착하게 된 과정을 묘사했습니다. 고향을 잃어버리는 고통은 망고의 향기 속에서 점점 사라지겠죠. 

문화재가 된 화난신춘의 보존은 이제 정치대의 몫입니다. 정치대가 이 보물과 같은 아름다운 존재를 잘 간직하기를 바라며 본성인과 외성인 간의 갈등도 망고나무의 이야기처럼 해소되기를 바랍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政治大學化南新村,國家文化資產網。
2. 化南新村,是家。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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