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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국의 밤'을 밝힌 전등

  • 2025.04.29
대만주간신보
1940년대 전등이 환하게 밝힌 타이완의 야시장을 묘사한 린인딩의 수채화 - 사진: artogo

바나나의 노란색, 오렌지의 붉은색, 연한 청록색에서 짙은 초록색까지, 다양한 색상의 과일들이 덩굴 아래에 쌓여 있어,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습니다. ‘남국’인 타이완에서 다채로운 색상의 과일은 이 섬의 가장 대표적인 특산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과일들이 어두운 밤에도 신선한 색감과 밝은 광채를 발할 수 있는 것은, 덩굴에 매달려 있는 전선과 그에 연결된 텅스텐 전구 덕분입니다.

1940년, 유명한 수채화 화가인 란인딩(藍蔭鼎, 1903-1979)이 그린<남국의 밤(南國之夜)>이라는 수채화에 담긴 풍경입니다. 1903년에 태어나 일제 시기에 성장한 이 화가에게 어두컴컴한 밤 중에 환히 비추는 조명이 어떤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듯합니다. <남국의 밤> 외에 그의 초기 작품에서도 밤의 국수 가게나 연극 무대를 주제로 삼은 경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밤을 소재로 한 작품들에서는 항상 밝게 빛나는 등불이 도시의 한 구석을 비추며, 사람들이 밤에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밤에도 자유롭게 오가는 것에 대한 갈망, 이 갈망이 인류가 빛을 추구하게 만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조명 기술이 아직 발전하지 않았던 시대에는, 어둠 속에 놓인 사람들은 대부분 ‘등불’이나 ‘촛불’에 의지해 앞길을 비춰야 했습니다. 하지만 동식물의 기름을 태워 얻는 빛은 고작해야 ‘한 치 앞만 내다볼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어둠 속에서 진정한 자유는 얻지 못했죠. 조명 기술이 부족해 밤에는 할 수 있는 활동이 지나치게 제한되었던 과거에는 할 수 없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연의 리듬에 순응해 ‘해 뜨면 일하고, 해 지면 쉰다’는 삶의 방식을 유지해야만 했고, 이는 산업화 시대가 도래해 인공적인 조명으로 어둠의 장벽이 무너지기 전까지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옛사람들이 해가 지면 무조건 집 안에만 갇혀 지내지만은 않았습니다. 실제로 과거 사람들이 사용한 등불과 촛불도 점점 품질이 개선되었고, 일정 수량 이상이 모이면 밤에도 연회장이나 상업 시장 같은 장소를 밝힐 수 있었을 정도라고 하죠. 예를 들어 18세기 말, 제주 출신의 조선인 이방익은 남타이완의 부성(府城, 지금의 타이난)에서 “밤에 유리등을 켜서 대낮처럼 밝은” 거리 풍경을 본 적이 있었다고 기록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 문인들이 밝기를 표현할 때 자주 쓰던 ‘대낮처럼(如晝)이란 표현은 촛불이 제공하는 희미한 빛을 상상해본다면 사실상 꽤나 과장된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의 밤은 여전히 ‘공포와 불안으로 가득 찬’ 시간이었고, 촛불의 희미한 불빛이 도시 전체를 뒤덮는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밤을 안전하게 느끼거나, 이를 일이나 여가 시간의 연장으로 여기지는 못하였습니다.

류밍촨(劉銘傳)이 타이완에 켠 불빛

빛의 품질을 대낮과 유사한 수준으로 끌어올린 최초의 인공 조명은 19세기 후반부터 널리 사용되기 시작한 아크등(arc lamp)이었습니다. 이 조명 기술이 급격히 발전하자 사람들은 ‘야간 생활(nightlife)’이라는 개념이 비로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아크등하면, 1888년, 타이완 순무(巡撫) 류밍촨(劉銘傳, 1836-1896)이 타이베이성에 설치를 명령했던 가로등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타이완 전등 발전사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전등입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청나라 말기에 잠깐 불을 밝힌 이 몇 개의 전등은 실제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당시 사용된 발전 설비들도 대부분 몇 년 뒤인 1895년 청일전쟁 와중에 파괴되었죠. 타이완의 전등 사업이 진정한 기반을 다지고 점차 민간으로 확산되며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일제식민치하에 들어서였습니다.

1910년대 무렵, 발전소 건설과 더불어 전등 사업도 타이베이 이외의 여러 지역에서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부터 타이완 각지의 주민들은 도시 거리마다 켜진 전등 불빛에 하나둘 놀라움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전등은 시골 지역의 사람들에게는 멀고도 낯선 전설 같은 존재였습니다. 작가 룽잉쭝(龍瑛宗)의 단편소설 <야류(夜流)>에서도 전등은 “마을 사람들이 상상할 수 없는 마물”로 묘사되었으니까요. 도시화된 북쪽 도시를 직접 방문해보지 않는 한, 그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본 사람은 드물었습니다.

1913, 자이전등주식회사

그러나 1910년대에 들어서며 전력망이 구축되고 거리 조명이 빠르게 확산되면서, 전등은 점점 더 많은 타이완인의 일상생활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유명 화가 천청보(陳澄波)를 예로 들면, 그는 1913년, 열차를 타고 고향인 자이(嘉義)를 떠났는데, 바로 그 시기에 ‘자이전등주식회사’가 막 설립되었습니다. 그가 방학을 맞아 고향을 방문했을 때, 도심 곳곳이 밤이면 화려한 조명으로 반짝이는 광경에 놀랐고, 그가 익숙하던 거리들이 전혀 다른 밤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자이에서는 전등주식회사가 설립된 시기와 같은 해인 1913년 원형 교차로에 중앙 분수대가 설치되면서 물과 전등이 함께 빛나는 새로운 공공 공간이 조성되었습니다. 원형 광장이 처음 만들어졌을 때 분수대 주변에 설치된 전등들은 시민들이 밤에 산책하고 더위를 식히는 최고의 장소로 만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 원형 교차로와 연결된 주요 거리는 밤이면 역시 환한 조명 속에 북적이는 상업 지구로 탈바꿈했습니다. 유명 지식인인 린셴탕(林獻堂)도 1931년 친구들과 자이 거리에서 밤늦게까지 유람하다가 밤 10시에야 여관으로 돌아갔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무렵, 타이완의 여러 도시 중심 거리들에서는 사람들이 밤에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는 조건을 이미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이트 라이프의 시작! 일본의 ‘납량회’와 타이완의 ‘야시장’

전등의 보편화로 밤에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되면서 오늘날 타이완 사람들이 사랑하는 야시장 문화가 조성되었습니다. 사실, 타이완의 야시장은 이미 200년 전부터 존재했으나, 일제 초기에는 더욱 활기를 띨 수 있었습니다. 이미 1905년, <타이완일일신보>의 기자는 자이 구도심의 주요 거리 곳곳에 등불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로 인해 야시장이 자연스럽게 생겨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910년경의 또 다른 보도에 따르면, 여름밤 자이의 동쪽 시장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거닐 수 있는 장소가 되었고, “시장 안에는 과자와 간식을 파는 좌판이 줄지어 있었으며, 등불들이 군데군데 켜져 마치 대낮처럼 환했다”고 전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야시장’이라는 형태는 단순히 전통 한인 사회의 문화뿐만 아니라 일제시대 민간에서 자주 열렸던 ‘납량회(納涼會)’의 영향도 적지 않습니다. 여름을 나는 일본의 밤 문화인 ‘납량회’는 일제시기 타이완 섬 전역에서 점점 더 자주 열리게 되었고, 이 과정에서 전등 역시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실제로, 전등이 점점 더 보급되기 시작한 1910년대 이후, 이러한 야간 공공행사들은 종종 군중을 끌어들이는 수단으로 전등을 적극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매년 말에 열리는 각 대도시의 ‘연말 대할인 행사(歲暮大賣出)’에서는 각 상점들이 전력 회사에 임시 전등 설치를 신청해 가게 분위기를 북돋았을 정도입니다. 타이베이에서는 이 행사에서 사용된 전구 수가 해마다 증가했습니다. 1910년에는 약 1,100개 정도 사용되었던 임시 전구 수가 1926년에는 거의 5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이 숫자만 보더라도 우리는 이 10여 년 동안 연말 타이베이의 밤이 얼마나 밝아졌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전구는 조명용도로만이 아니라 눈부신 장식물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예컨대 1915년, 타이베이에서 열린 ‘타이완권업공진회(臺灣勸業共進會)’에서는 54미터 높이의 탑을 특별히 설치했고, “탑 안에는 강력한 전등을 설치하여 빛을 뿜어냈으며,” 도시의 밤에 눈부신 새 랜드마크를 세움으로써 모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러한 광고탑 설치는 이후 여러 행사에서 광범위하게 채택되었으며, 전등이 손님을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수단으로 인식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오늘날 인파로 가득한 타이완 야시장의 모습, 즉 전등이 거리의 가판대를 밝히는 장면은 일제시대 초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37년 발행된 <시보(詩報)>라는 잡지에 실린 ‘야시장’을 주제로 한 연작 시들에서도, 대부분의 작품은 “전광(電光)의 변화”, “반짝이는 전구”가 만들어내는 시각적 충격을 묘사하고 있죠. 이 시기에 이르러서야, 전등이 사람들에게 만들어준 밝음과 자유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낮처럼’(如晝) 밝은 상태가 되었습니다.

기름등에서 전등으로, 20세기 전반기의 타이완 사람들은 조명에 있어 일대 변혁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의 그림자가 타이완을 점점 짙게 드리우면서, 잦은 공습 훈련과 ‘등화 통제’는 순식간에 도시 전체를 어둠과 정적 속에 빠뜨리곤 했습니다. 그리고 연합군의 폭탄 투하로 인해 전 섬의 전력 시스템이 큰 피해를 입었고, 야시장의 화려한 불빛 또한 한동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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