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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에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본 여성은?

  • 2025.04.22
대만주간신보
일제시기 타이베이 비행장(현 송산공항의 전신)에서 운행되던 정기 항공편, 민간 항공기 DC-2 후지호. - 사진: 聚珍臺灣

하늘, 수많은 이들의 꿈이 숨어 있는 장소이지요. 누군가는 연인과의 맹세를 별에담기도 하고, 누군가는 구름을 뚫고 나아가는 비행의 꿈을 품기도 했습니다. 타이완 여성과 비행기의 인연의 시작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1903년 말, 미국의 라이트 형제가 노스캐롤라이나에서 12초 동안 하늘을 나는데 성공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비행기가 등장했습니다. 그로부터 11년 뒤, 한 일본 비행사가 타이완을 찾아와 타이완 사람들에게 비행기를 처음 선보였죠. 1910년대의 비행기는 마치 대형 글라이더 같았습니다. 조종석도 없었고, 조종사는 외부에 드러났죠. 사람을 태울 수도 없었습니다. 사람들은 단지 비행을 ‘보는’ 용도로만 비행기를 접할 수 있었습니다.

1920년대가 되자 비행기 기술은 급속히 발전했고, 타이완에서도 남성 조종사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1928년에는 우펑(霧峰)의 명문가 자제인 린셴탕(林獻堂)의 아들이 유럽과 미국을 여행하던 중, 로스앤젤레스에서 2인용 비행기를 15분간 탑승하기도 했죠. 그러나 1920년대 말까지도 타이완 여성들은 그저 하늘을 올려다보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1931년, 타이완 여성이 마침내 ‘관객’의 위치를 벗어나 처음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이는 다다오청(大稻埕) 지역에서 두 명의 부잣집 부인이 만나는 데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부잣집 부인 중 한 명은 린진잉(林金英), 현재도 남아 있는 타이베이 구이더제(貴德街)의 한 고급 저택에 살고 있었으며, 남편은 타이베이 차상공회 회장이었습니다. 다른 한 명의 부인은 예바이(葉白), 외할아버지가 영국인이었던 그녀의 피부는 유달리 하얬다고 합니다. 그녀의 남편 쉬빙(許丙)은 타이베이의 유력 인사로, 정재계 인맥이 넓었습니다. 그들의 후손은 화난은행, 화난금융, 리징테크 등 현재 차타이완 주요 대기업의 임원들이기도 합니다.

1931년 10월 어느 날, 린진잉이 예바이의 집을 방문해 말했습니다. “내일 비행기 시승 초대장이 왔는데 좀 무서워. 너 갈 생각있어?” 그러자 예바이는 “총독부 인사 부인들도 간다던데, 괜찮을 거야!”라며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10월 6일, 예바이는 실제로 비행기를 탔습니다. 귀가 후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첫 비행 체험담을 들려주며 매우 들떠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훅’ 하고 날아올랐고 비행 중 창밖을 보니, 집은 성냥갑 같고 사람들은 개미처럼 움직이더라. 그렇게 무섭지는 않았어.” 그녀의 아들 쉬보옌(許伯埏, 1917년생)은 회고록에 어머니의 이 희귀한 경험을 적었고, 어쩌면 어머니가 타이완 최초로 비행기를 탄 여성일지도 모른다고 회상했습니다.

1930년대 초반, 타이완은 여객·화물·우편 수송용 민항 사업을 준비하고 있었고, 비행기는 장시간 시험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승 체험은 그 초기 활동 중 하나였고, 2일간 진행되어 하루 수차례씩 비행기가 떠올랐다고 합니다. 예바이 이후, 전 타이완 시멘트 공장 회장이었던 린보서우(林柏壽)와 린슝광(林熊光)도 가족과 함께 비행 체험을 했습니다. 

예바이의 장녀 쉬비샤(許碧霞) 역시 다음 날 수상비행기를 타고 하늘로 올랐습니다. 당시 중학생이던 그녀는 수업을 빼먹고 다녀와 어머니에게 혼나기도 했다고 하죠. 하지만 이는 타이완 여성이 수상비행기를 탄 최초의 사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1935년, 타이완에서 대규모 박람회가 열렸고, 그중 ‘관광 비행’이라는 새로운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타고 타이베이 상공을 10분간 돌며 체험할 수 있는 이 행사에는 2,000명이 넘게 참여했는데, 그중 30~40%가 젊은 여성들이었다고 합니다. 당시 타이완 여성들이 얼마나 활동적이고 또 대담한 성격을 가졌는지 보여줍니다.

1936년 1월 2일, 타이완 민항의 첫 정기 여객기가 송산공항에서 이륙했습니다. 당시 항공권 한 장은 110엔으로, 보통 직장인의 4~5개월 치 월급에 해당했습니다. 그래서 당시 웬만한 타이완 부자들도  대개는 비행기 대신 배를 택했기에, 이런 조건하에서 여성이 비행기를 탄다는 건 상당한 뉴스거리였습니다. 

1937년 신문엔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젊은 시절, 핑둥(屏東) 고향에서 말을 타며 일꾼들을 지휘하던 여성 ‘장아수이(莊阿隨)’가 80세에 일본에서 비행기를 타고 타이완으로 귀국했다고요. 또, 타이완 보험업자 류밍(劉明)의 부인은 아픈 딸 류신신(劉心心)의 치료를 위해 가족과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일본에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1945년 일본의 식민 통치가 끝날 때까지, 비행기 승무원은 있었지만 모두 일본인 여성들이었고, 타이완 여성은 단지 승객에 그쳤다고 합니다.

일본식민시기에 스튜어디스가 되려면 고등여학교 졸업자여야 했습니다. 이는 초등학교 교사와 같은 학력 요건이었죠. 전쟁 후에는 학력 기준이 높아져 대학 졸업자만이 승무원이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과거의 키 156cm 이하가 바람직한 스튜어디스 상이었다고 하는군요. 양팔을 들어 기내 선반에 손이 닿을 만큼 키가 커야 하는 요즘과는 정반대의 조건이라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전쟁 후 수십 년 동안, 타이완은 사실상 외국 여행이 불가능했기에 비행기를 타려면 회사 증명과 업무 출장 명목이 있어야 했다고 합니다. 그에 반해 스튜어디스는 며칠에 한 번씩 외국을 다녀올 수 있어, 한때 ‘하늘의 귀족’으로 불리기도 했다고 하죠.

그리고 타이완 여성이 스스로 조종간을 잡고 하늘을 날게 된 것은 1992년, 공군사관학교 출신의 우원잉(武文瑛)이 훈련기를 단독 조종하며, 타이완 첫 여성 비행사로 하늘을 날았습니다.

타이완에서는 일제 식민 시기에 비행기를 탑승해본 여성은 여럿 있었던 반면,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 직접 비행기를 운전한 여성 비행사에 대한 사례는 아직 없는데요. 같은 시기 한국에서는 최초 여성 비행사 권기옥(權基玉, 1901-1988)이 있었습니다. 권기옥은 1917년 평양에서 미국인 스미스의 곡예비행을 보고 꾸기 시작한 비행사의 꿈을 중국의 한 항공학교에서 이루었는데요. 그녀가 다니던 숭의여학교에서 졸업할 당시 3.1 운동이 일어났고, 권기옥은 3.1 운동 참여 후 상하이로 망명을 가 이곳의 선교사 학교에서 중국어와 영어를 배우며 비행사의 꿈을 키웠습니다. 그러다 중국 윈난 육군항공학교 1기생으로 입학해 임시정부와 몇몇 중국인의 도움으로 1925년 항공학교를 무사히 졸업해 조선인 여성으로는 최초로 비행사 자격을 갖추게 되었죠. 

타이완과 한국은 일본의 식민 치하에서 서로 각자 다른 환경과 조건 하에서 적지 않은 여성들이 서로 다른 이유로 비행기와 접촉하기 시작했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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