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교통부의 공식 통계 자료에 따르면, 운전면허를 소지한 여성은 약 5.27백만 명으로,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중 44.7%입니다. 타이완 중남부 자이시에서는 여성 운전자의 비율이 45.1%로 남성과 거의 동등한 수준이기도 합니다. 통계의 숫자만큼이나 2025년 현재 운전을 하는 여성은 흔히 볼 수 있지만, 100년 전으로만 거슬러 올라가도 이는 신문에 오르내릴 만큼 정말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는 타이완에서 최초로 자동차를 운전한 여성들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1922년 11월 하순, 날씨가 서늘해질 무렵, 멍자(艋舺, 현재의 타이베이 완화) 지역의 경찰서에 한 명의 젊고 아름다운 아가씨가 들어왔습니다. 그녀는 서양식 옷도 일본 기모노도 아닌, 치파오를 입고 있어서 한 눈에 봐도 타이완 사람이었죠. 경찰서에 온 그녀는 운전면허를 신청하고자 했습니다. 경찰이 이름을 묻자 그녀는 ‘차이자오(蔡嬌)’라고 했고, 부유한 집안의 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녀의 나이는 겨우 17살이었죠. 경찰은 고개를 저었다. 당시엔 만 18세 이상이어야 운전이 가능했기에 그녀는 아쉽게 발길을 돌려야 했습니다.
이 일은 신문에 실렸습니다. 그만큼 이례적인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타이완에 자동차는 매우 적었습니다. 타이완 북부 전체를 통틀어도 100대가 채 되지 않았죠. 1912년에야 타이완의 거리에서 첫 자동차가 목격됐고, 그 뒤로도 자동차가 급속도로 증가하기는 커녕, 한 대씩 천천히 늘어났습니다. 그로부터 10여 년 후,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명 ‘운전수(運轉手)’는 고수입의 신흥 직업이 되었고, 일반 노동자와는 달리 기술직 종사자처럼 여겨졌습니다. 운전 연습장이 생기기 시작했고, 신문 한쪽엔 운전학원 광고가 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운전을 여성과 연결 짓는 움직임은 전혀 없었다. 광고에서도 ‘운전수는 신사의 새로운 직업’이라고 강조했을 뿐이었습니다.
앞서 소개한 소녀, 차이자오가 “나도 운전하고 싶어요”라고 외치기 전까지, 타이완에서 운전면허를 가진 여성은 오직 외국인 여성뿐이었습니다. 어떤 외국 영사의 아내거나 외국인 차 상인의 부인이었을 가능성이 컸죠. 1922년 봄, 일본 여성 ‘고기쿠(小菊)’는 도쿄에서 운전을 배운 후 타이베이에 와서 면허를 땄습니다. 하지만 타이완 여성 중 운전을 할 줄 아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차이자오가 운전을 하고 싶어 한 것은, 당시로선 아주 대담하고 전례 없는 꿈이었습니다. 마치 지금 여성들이 전투기를 몰고 싶어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랄 할까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이 문제로 면허를 취득하지 못한 그녀가 18살이 된 뒤 운전을 했다는 이야기는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차이자오 사건이 있은 다음 해인 1923년,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 지역에서 궈위예(郭玉葉)라는 이름의 여성이 자동차 학원에 등록해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그 결과 역시 마치 조약돌 하나가 우물 속에 떨어지 듯, 어떠한 소식이 없었습니다.
1920년대는 사상이 해방되던 시기였고, 여성의 자주성에 대한 논의가 확산되던 때였습니다. 타이완 여성들이 운전을 꿈꾸기 시작한 것은, 자립과 독립에 대한 갈망이기도 했습니다. 특히 운전은 단순히 가정에서 나와 근무하는 ‘모던 여성’의 직업(예: 타자기 치는 사람, 전화 교환원, 카페 종업원)과는 달랐고, 오직 남성의 전유물 같던 일에서 여성이 운전대를 잡는다는 건, 다른 어떤 직업을 갖는 것보다도 더 강한 독립의 상징이었습니다.
1927년, 드디어 타이완의 첫 여성 자동차 운전사가 타이중에서 등장했습니다. 그녀의 이름은 샤오정처우(蕭鄭綢). 그녀는 자동차 학원에 다닌 궈위예와 달리, 운전사였던 남편(蕭金水)으로부터 운전을 배웠고, 배우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남편의 가르침으로 1927년에 면허를 취득한 그녀는 남편과 함께 같은 버스 회사에 다니기 시작했고, 타이중과 칭수이(清水)를 오가며 매일 아침 7시부터 저녁 8시까지 13시간씩 일했습니다. 13명의 다른 남자 동료들과 같이요.
5월 어느 날, 하루는 승객을 태우고 타이중으로 향하던 중 그녀가 운전하던 버스가 사루(沙鹿) 근처에서 차량 앞부분에 불이 붙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침착하게 승객들을 내려 대피시켰고, 결국 모두 무사할 수 있었습니다.
타이중에 샤오정처우가 있엇다면 그로부터 1년 뒤인 1928년, 타이베이 스린(士林) 지엔탄(劍潭) 출신 여성, 우진(吳謹)은 오늘날 타이베이시, 신베이시, 지룽, 이란을 포함한 타이베이 주 최초의 여성 운전사로 기록되었습니다. 550명의 합격자 중 유일한 여성이었습니다. 신문은 마치 연예인처럼 그녀의 사진을 실어 이 사실을 소개했습니다.
1932년, 타이완 최초의 자동차 잡지인 《타이완 자동차계(臺灣自動車界)》는 창간되자마자 여성 운전사에 대한 인터뷰 기사를 연재했습니다. 기사 중에는 “이제 여성도 박사, 변호사가 될 수 있다. 경제가 어려운 지금, 여성은 남성의 부속물이 아니라, 사회의 최전선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투사가 되어야 한다”며 운전하는 여성을 ‘진보적인 여성’으로 추켜세웠습니다. 신주(新竹)의 한 여성 운전사를 소개할 땐 ‘교통계의 꽃’이라고 표현하며 존경심을 드러내기도 했죠.
자유롭고 모던했던 20~30년대를 지나, 전쟁의 실재가 깔린 40년대와 내전의 그림자가 드리운 50년대에 이르러 자동차는 더 이상 유행이 아닌 국가 비상사태를 위한 동원 수단이 되었습니다. 그에 따라 여성의 운전 기술 역시 ‘애국과 국가 기여’의 중요한 능력으로 여겨졌습니다.
1958년, 타이완성 부녀회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단기 여성 운전 교육반을 열었다. 당시 회장이었던 정위리(鄭玉麗)는 “운전 교육반을 만든 이유는 국가 동원 정책에 부응하고, 여성의 운전 기술을 육성해 전시에 여성도 국가에 큰 힘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이렇게 엄숙하게 말한 만큼, 교육생들도 만만치 않았다. 타이완대 졸업생 도우 씨, 금릉 여자대 졸업생 양 양씨도 있었습니다.
오늘날, 여성이 운전을 한다는 건 더 이상 특별한 일이 아니죠. 앞으로 100년 뒤에는 자동차는 물론 지하철, 기차, 비행기, 우주선까지도 여성들이 운전하는 시대가 오겠지요?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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