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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시멘트’의 역사

  • 2025.03.25
대만주간신보
타이완의 첫 시멘트 공장은 1917년 타이완 남부 가오슝(高雄)에 설립된 ‘아사노 타이완 제1공장’이다. - 사진: international materials

TCC라고 불리는 ‘타이완 시멘트 주식회사(台灣水泥股份有限公司, 약칭 台灣水泥)’는 타이완의 대표적인 시멘트 생산 기업입니다. 1946년 5월 공기업으로 설립되었으나, 1954년 11월 민영화 되면서 루강 구씨 가문이 경영을 인수하게 되죠. 그리고 1962년 주식시장에 상장되면서, 타이완 최초의 상장 기업이 되었습니다. 현재까지도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타이완의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인 시멘트 회사의 역사는 사실 일본 식민 통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집과 건물, 도로 등 도시 기반 시설의 기초공사를 상징하는 시멘트. 한 여름 뜨거운 날씨를 자랑하는 타이완은 마치 뜨거운 찜통 같고, 오늘날 시멘트는 마치 이런 날씨의 주범인 듯 여겨지곤 하는데요. 시멘트 산업이 수질과 경관을 파괴한다고 알려지면서 순환경제의 ‘적’처럼 취급받기도 합니다. 그러나 100여 년 전, 일본이 타이완에 처음 시멘트를 도입했을 당시, 시멘트는 영어 ‘cement’의 일본어 발음인 ‘세멘토(セメント)’라 불리며, 값비싼 수입품이자 서구 문명의 상징이었습니다.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는 타이완 시멘트의 역사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타이완인들에게 시멘트가 얼마나 획기적인 소재였는지, 정치가이자 학자인 1907년생 천이숭(陳逸松, 1907-2000)은 자신의 회고록에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1920년, 그는 일본인 교사의 인솔 아래 자신과 같은 10대 또래 소년 다섯 명과 함께 일본 유학길에 올랐다. 일본에서 기차를 타고 가던 중 계곡에서 짙은 갈색 연기를 내뿜는 수많은 굴뚝을 보았고, 교사는 그것이 ‘시멘트 공장’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 유학길에 오를 정도로 박식했던 10대 타이완 소년들이 시멘트가 무엇인지 몰랐다. 이를 통해 1920년 당시에도 타이완 사회에서는 시멘트가 아직 대중화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시멘트의 기원과 영국에서의 발전

시멘트는 근대 서구에서 발명된 재료 중 하나다. 특히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였던 영국은 시멘트 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 18세기 해상 강국이었던 영국은 잦은 난파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튼튼한 등대를 세우려 했고, 기존의 목조 등대는 거센 파도에 쉽게 무너졌다. 이에 영국 의회는 토목 기술자 존 스미턴(John Smeaton)을 고용했고, 그는 점착성이 있는 석회암을 가열하고 분쇄한 뒤 물과 혼합할 경우 그 성질이 점차 단단해지는 것을 발견했다. 이 원리를 이용해 만든 ‘에디스톤 등대(Eddystone Lighthouse)’는 시멘트가 건축 소재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영국의 여러 전문가들이 다양한 토양과 온도를 이용해 시멘트를 개량하는 데 성공했고, 1851년 런던 하이드파크에서 열린 최초의 세계 박람회에서 시멘트의 강도가 공개적으로 실험되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후 시멘트는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타이완에서의 시멘트 도입

타이완에서 시멘트 사용이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 역시 영국과 관련이 있다. 1891년 타이완 북부 단수이(淡水)에 건설된 영국 영사관에서 처음 사용했기 때문이다. 시멘트의 발상지였던 만큼, 영국은 바닥에 철판을 깔고 시멘트를 덮는 방식으로 영사관을 시공했다. 하지만 당시 타이완의 주택은 대부분 초가집이나 흙벽돌로 지어졌으며, 부유한 지주들만이 목재와 기와를 사용할 수 있었다. 심지어 외국인 선교사들조차 자신들의 건물을 짓는데 시멘트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1870년 스페인 신부가 재건한 핑둥(屏東) 완진(萬金)의 한 천주교 성당의 공사비 내역을 보면, 석회, 목재, 벽돌 등의 비용만 기록되어 있고 시멘트는 포함되지 않았다. 또한, 1882년 캐나다 선교사 맥케이(George Leslie Mackay)가 단수이에 설립한 옥스퍼드 학당(Oxford College) 역시 중국 푸젠성 샤먼에서 수입한 목재와 벽돌을 사용했으며, 벽돌 접착제는 전통적인 ’삼합토’였다.

그러다 1895년, 일본이 타이완을 점령하면서 타이완에서의 시멘트 사용이 급격히 증가하기 시작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 이후 서구 건축기술을 도입하면서 이미 시멘트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특히 1870년대, 일본 정부는 요코스카(横須賀) 조선소 건설을 위해 프랑스에서 시멘트를 수입하려 했으나 가격이 너무 비싼 나머지 자체 생산을 추진해야 했다. 1875년, 일본 내무성은 도쿄 후카가와(深川)에 일본 최초의 시멘트 공장을 설립하고, 시멘트 자체 생산을 시작했다. 이후 여러 민간 시멘트 회사도 잇따라 등장했으며, 그중 1883년 도쿄에 설립된 ‘아사노 시멘트 회사(淺野セメント)’는 타이완의 시멘트 산업 발전과 밀접한 관계를 맺었다. 

참고로, 한국에서 시멘트를 생산하게 된 역사는 1919년 일본의 시멘트 브랜드 중 하나인 ‘오노다(小野田) 시멘트’가 조선에 진출해 평양에 공장을 건설하면서 시작되었으며, 그 이전에는 일본에서 수입을 해서 사용했다. 오노다 시멘트는 1881년 설립되어, 일본에서 최초로 포틀랜드 시멘트를 생산하기 시작한 회사다. 

타이완에서의 시멘트 산업 발전

타이완 총독부는 1899년 타이완 북부의 지룽항 보수공사를 위해 일본과 해외 여러 시멘트 업체에서 제품을 수입하여 품질 테스트를 진행했다. 이후 타이완에서의 시멘트 사용이 점차 증가했고, 타이완 총독 관저(현 타이베이 빈관, 台北賓館)가 1901년 9월 완공되었다. 이는 타이완에서 최초로 시멘트를 사용한 공공 건축물이다.


과거 타이완 총독부 관저(현 타이베이 빈관). - 사진: 국립타이완역사박물관

그 후 시멘트가 철근을 감싸는 현대적인 철근 콘크리트(RC) 공법이 도입되면서, 다양한 건축물에 활용되기 시작했다. 1907년 철근 콘크리트 전봇대가 등장했고, 1908년에는 철근 콘크리트 다리, 1910년대에는 철근 콘크리트 방파제와 부두가 건설되었다. 1908년에는 타이완 최초의 철근 콘크리트 건물인 ‘타이베이 전화 교환소’가 완공되기도 했다. 

1910년, 앞서 소개한 일본의 민간 시멘트 기업인 ‘아사노 시멘트’가 타이베이에 사무소를 설립하고 타이완 북부 시장을 차지하기 시작했다. 한편, 남부 시장은 조선에도 진출한 ‘오노다 시멘트’가 차지했다. 그러다 1917년, 타이완 남부 가오슝(高雄)에 타이완 최초의 시멘트 공장인 ‘아사노 타이완 제1공장’이 설립되면서 타이완에서의 본격적인 시멘트 생산이 이루어졌다.

시멘트는 초기에 나무통(樽)이나 마대에 담겨 운반되었으며, 종이 포장 시멘트는 쇼와 시대인 1930년대에 들어서야 등장했다.

‘세멘토’에서 ‘수이니’로, 전후 시멘트 명칭 변화

타이완에서 시멘트가 사용된 지는 벌써 100년이 넘었다. 일제시기에는 시멘트를 일본식 용어인 ‘세멘토(セメント)’라고 불리기도 하고, 서양의 흙이란 뜻의 ‘홍마오투(紅毛土, 서양의 흙)’ 외국의 석회라는 뜻의 ‘양후이(洋灰)’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그리고, 현재 타이완에서 흔히 사용하는 시멘트의 중국어 표현인 ‘수이니(水泥)’라는 용어는 국공내전 이후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으로 이주하면서 공식 명칭으로 자리 잡았으며, 일본어 ‘세멘토(セメント)’라는 용어는 일본의 패전과 함께 타이완에서 사라졌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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