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을 대표하는 미술가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을까요? 바람이 세게 불기로 유명 신주(新竹)의 지주 집안에서 태어나 타이완 여성으로는 최초로 일본에서 미술을 전공해 ‘타이완 여성’을 주제로 다양한 작품을 남긴 타이완 1세대 여성화가 천진(陳進). 일명 ‘규수 화가’로 불리며, 여러방면에서 타이완 미술계의 한 획을 남긴 화가 천진에 대해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 알아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완 신주(新竹) 출신의 천진(陳進, 1907-1998)이 미술에 입문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입학한 여자고등보통학교의 미술선생님이었습니다. 1922년 타이완공립타이베이여자고등보통학교(현 타이베이 중산여고) 입학한 천진은 당시 미술교사였던 일본인, 고오바라 고토오(鄉原古統, 1887-1965)의 추천으로 미술에 입문하게 되는데요. 그녀의 첫 은사인 고오바라 고토오 선생은 일본 나가노에서 태어나 마츠모토에서 교직생활을 하다 타이완으로 건너와 타이완 후학을 양성하는 데 매진한 인물입니다. 특히 고오바라 선생이 자신의 동료들과 함께 타이완에서 개최한 타이완미술전람회는 타이완 출신 화가들의 대표적인 등용문이 되는데요. 당시 잡지 <대만시보(台灣時報)>에 따르면, 그가 타이베이 신공원(현 228기념공원)에서 타이완에서 활동중인 일본계 미술교사들과 함께 타이완미술전람회 개최를 논의했다고 합니다. 그의 제자인 천진도 바로 이 타이완미술전람회를 통해 데뷔하게 되죠.
그녀의 데뷔를 설명하기 전, 1925년 고등여학교를 졸업한 천진은 고오바라 선생의 권유로 일본 유학을 결심합니다. 도쿄에 소재한 여자미술학교 일본화 사범과에 합격해 본격적으로 미술 전문 교육 과정을 밟아가는데요. 그녀가 일본에 유학을 가 있는 사이 일본제국미술전람회를 본떠 만든 제1회 타이완미술전람회가 1927년 열렸습니다. 천진의 선생 고오바라 씨는 이 전람회에서 1회부터 9회까지 심사를 맡았고, 천진도, 동양화부에 자신의 작품을 출품해 입선을 하게 됩니다. (<자세(姿)>, <양귀비꽃(けし)>, <아침(朝)>) 당시 출전한 화가 중 천진을 포함한 3명의 타이완 화가 외에 나머지 입선자는 모두 일본인이었다고 하니, 그녀의 데뷔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듬해 열린 제2회 타이완미술전람회에서는 작품 <태풍(野分)>으로 특선을 받았는데, 이때 중요한 인물과 인연을 맺게 됩니다. 바로 당시 심사위원 중 한 명이었던 화가 마츠바야시 게이게츠(松林桂月)입니다. 화가 마츠바야시가 중요한 이유는 그의 소개로 천진이 당시 ‘미인화’로 유명한 일본 풍속화가의 문하에 들어가 지도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미인화는 일반 초상화와 달리 어떤 지역, 어떤 시대가 아름다움에 대해 갖는 이상적인 인물을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일본에서 미인화는 이상적인 여성을 섬세하게 묘사하는 장르로서 당시 성행했었는데요. 일본 미인화 화가들의 영향을 받으며, 그는 ‘타이완 여성’을 주목하기에 이릅니다. 심지어 천진이 1934년부터 1937년까지 타이완 남부 가오슝에서 3년 간의 교편생활을 마치고 1945년까지 일본에서 거주하는 동안에도 그녀의 작품에는 항상 타이완 여성이 중요한 주제로 등장했는데요.
그 이유를 곰곰히 살펴보면, 그녀가 타이완 출신으로서 타이완 문화에 대한 남다른 애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또 다른 현실적인 이유는 당시 자신 주변에 있는 일본 화가들이 ‘향토색(鄉土色)’을 강조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앞서 소개해 드린 천진이 제2회 타이완미술전람회에서 만난 일본 화가 마츠바야시 씨가 대표적인 사례죠. 마츠바야시는 심사위원 일로 타이완을 처음 찾은 1928년 <대만교육>이란 잡지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앞으로 타이완의 독특한 색채와 열정에서 재탄생한 훌륭한 작품이 많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도쿄는 도쿄, 교토는 교토, 조선은 조선으로 각기 다른 향토예술을 가지고 있는 만큼 타이완 본섬에서도 자신만의 향토예술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해본다.”
동양화가였던 마츠바야시는 동양화의 내용과 기법은 민족생활에 기반한다고 여겼기 때문에, 각 지역마다의 특색이 있으며 이를 잘 살려내는 것이 동양화가로서의 역할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타이완미술전람회를 통해 마츠바야시와 인연을 맺은 천진은 일본에서 거주하는 7년 동안 마츠바야시 외에도 일본에서 활동하는 다른 동양화, 미인화 화가들과 교류하며 유사한 조언을 많이 들었으리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죠.
“천진은 미인화로 유명해졌는데, 그녀가 전람회에서 입선한 작품들은 대체로 미인화다. 미인화라고 해서 그녀가 그린 것은 타이완의 미인이다. 그녀가 그린 타이완 미인은 기본적으로 상류사회의 규수들이다. 우아하고 아름다운 기질로 가득 차 있다. 다른 관점에서 보자면, 천진이 활동했더 1930년대에 그녀가 그린 미인화는 당시 사회가 기대하는 타이완 여성에 대한 관점, 관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그 시대에는 여성이 부드럽고 아련하며 정숙하고 단아한 그런 이미지였어야 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인정하는 여성상이다. 천진은 미인화를 그릴 때 기본적으로 자신 주변의 자매를 모델로 삼아 그렸는데, 작품에서 드러나는 여성의 자태는 상당히 정숙하고 단아한 모습을 담고 있고, 이것이 곧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요구하는 일종의 ‘부덕(婦德)’임을 알 수 있다.”
- 천수이차이(陳水財) 국립가오슝사범대학 미술과 교수
천진, 그녀가 일본에서 유학하고 일본 화가의 문하생으로서 자신의 예술활동을 펼쳐나간 시기 매진했던 미인화는 그녀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성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30년대 그녀의 작품 속에서 재현되는 타이완 여성은 하나같이 부드럽고 정숙하며 청순한 이미지를 풍깁니다.
일본 미인화에서 재현되는 일본 여성의 아름다움 대신 타이완 본토 여성의 아름다움이 묻어나오게 하기 위해 천진은 단순히 의상을 기모노에서 치파오로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타이완 상류층 가정의 가구와 장식 등 민예(民藝) 요소를 상당히 세밀하게 묘사했습니다.
1945년 일본의 식민지배가 끝나자, 7년 간의 일본 생활을 접고 천진은 타이완 본도로 돌아옵니다. 이듬해인 1946년 결혼한 후 아이를 낳으면서 그녀는 ‘화가’로서뿐만 아니라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삶을 겸해야 했는데요.
그리고 1968년에 <향란(香蘭)>이라는 작품 속에 등장한 여성은 30년대 작품과 비교해 상당히 성숙되고 안정감을 선사한다. 간결한 선으로 표현한 이목구비와 옥 장신구와 함께 채도가 낮은 노란색 치파오를 입고 있는 작품 속 여성은 옆에 놓인 하얀 난꽃, 그리고 자개 장식이 돋보이는 고가의 가구와 함께 고귀한 기질을 드러낸다.
천진은 그녀의 삶 속에서 시대에 걸맞는 이상적인 타이완 여성의 자태를 자신의 작품으로 표현했다. 대상은 자신의 가족일 수도 친지들일 수도 그녀 자신일 때도 있었죠. 타이완 최초로 미술을 전공한 여성이자, 타이완인 최초로 타이완미술전람회에서 입선은 물론 심사위원까지 겸했으며, 일본 식민지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끊임없이 창작활동을 하며 후학들을 양성했던 천진. 타이완 미술계를 대표하는 1세대 여성으로서, 그녀가 남긴 작품을 통해 우리는 193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시대가 요구했던 이상적인 타이완 여성의 면모를 읽어볼 수 있습니다.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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