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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완 야시장(夜市)의 기원은?

  • 2024.05.14

외국인들이 타이완에 놀러오면 가장 먼저 찾는 관광지 중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야시장’을 들지 않을 수가 없죠. 야시장은 사실 외국인뿐만 아니라 타이완인이 좋아하는 미식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해가 지고 서늘해진 밤거리를 친한 친구나 가족들과 함께 걸으며 노점에서 파는 맛난 음식들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해 함께 먹는 기쁨은 생각보다 훨씬 큰데요. 그렇다면 타이완의 야시장은 과연 언제부터 시작된 것일까요? 

타이완의 일제식민시기가 시작된 1895년부터 하나둘씩 타이완 섬으로 오기 시작한 일본인들이 타이완에서 간파한 사실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타이완 사람들은 장사를 할 때, “주로 낮에 일하지 밤에는 거의 일하지 않는다"는 것인데요. 일본 사람들은 날이 어두워지면 가게들도 같이 쉬는 타이완 상인들의 문화를 매우 흥미롭게 관찰했습니다. 그래서 일본 정부가 출판한 신문에서도 일찍이 타이완 상인들의 장사 문화를 소개하기도 했죠. 

그러자 타이완에 온 일본인들은 이런 시장의 상황을 점차 바꾸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타이완 보다 상대적으로 북쪽에 있는 일본. 그곳에서 온 일본인이 타이완 땅을 밟자마자 가장 걱정되는 건 한여름의 무더운 더위였습니다. 특히나 일본에서 입었던 전통 복장을 상대적으로 무더운 타이완에서도 입으려니 더할 나위 없이 더웠겠죠. 예를 들어, 일본 여성들이 입는 기모노만 해도 발을 단단히 감싸는데다가 옷감이 상반신과 하반신, 전신을 가리죠. 타이완 사람들처럼 가볍고 얇은 타이완 셔츠에 바지는 칠부나 팔부에 품이 헐렁한 옷을 입는 습관이 없었던 일본인들에게는 타이완의 날씨가 더욱 괴로웠을 겁니다. 타이완에서 여름나기는 북쪽에서 건너온 일본인들에게는 결코 만만이 볼 상대가 아니었죠. 

"한낮의 더위가 찾아왔다. 외출을 삼가하라.” 

상인의 입장에서 보면, 밖은 더워 죽을 지경이지만, 가게 안의 장사는 사람이 없어 오히려 냉랭하기 그지없죠. 한낮의 뜨거운 더위를 몰고오는 태양이 기운 밤에서야 겨우 손님을 들일 수 있었습니다. 

일본의 통치가 시작된지 2년이 지난 1897년 여름, 타이베이 성 안와 북문, 서문 밖의 일본 상점들은 이미 밤에 장사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낮의 더위가 누그러들 때 즈음 장사를 시작하면 왕래하는 손님이 오히려 낮보다 많아 그 일대는 시끌벅적했습니다. 그리고 일본인들은 이것을 ‘야시장(夜市)’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일본어에도 밤 야(夜) 자에 시장 시(市)자를 쓴 ‘야시장(夜市)’이라는 단어가 있지만, 당시에만 해도 현재 길거리에 노점상들이 집결해 장사하는 개념과 완전히 같지는 않았습니다. 일제시기 초기에 ‘야시장’이란 일반 상점들이 낮뿐만 아니라 밤에 문을 열고 장사를 한다는 의미가 더 컸죠. 일본 도쿄에서도 가장 사람들이 붐비는 긴자에는 전쟁 전이면 밤이 되고 나서 노점상들이 구름같이 모여 들어 장사를 하기도 했고, 도쿄 니혼바시 지역에도 완구, 잡화, 수입품 등을 파는 야시장 노점들이 성행했다고 합니다. 

1905년 타이완 남부 자이(嘉義)라는 지역에 시가지의 주요 도로를 확장한 후 가로등을 설치하였습니다. 그때만 해도 가로등은 지금과 같은 전등이 아니라 일본상인연합회에서 매일 밤 노동력을 고용하여 기름을 부어서 불을 붙이는 방식이었죠. 등불 몇 개로 인해 예전엔 먹물처럼 짙은 밤이었던 데 반해 이제는 낮과 다름 없다며 모두들 놀라며 잇달아 나가서 거리를 거닐고 시작했고, 덕분에 장사도 번창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당시 신문에서도 ‘결국 야시장이 되었다’ 고 보도하기도 했죠. 

자이뿐만이 아닙니다. 타이난(台南)시의 일부 거리에도 소위 야시장이 속속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상인들은 여름 해질 무렵에 도로에 상점을 차렸습니다. 행인의 구매에 대비하기 위해 어떤 가게들은 자전거에 각종 물건을 진열하여 손님들이 편리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게 저녁이면 상점 앞에 별도의 노점을 차려 물건을 파는 ‘야시장’을 운영하는 사람 중 대부분은 일본 상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가오슝(高雄)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1908년에 시장을 관리하는 한 타이완 상인 예종치(葉宗祺)는 새 시장의 위치가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치진(旗津)과 멀다고 생각하여 당국에 치진 천후궁(天后宮)의 사당 앞에도 작은 시장을 설립할 것을 요청했습니다. 그리고 매일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야시장으로”으로 운영했죠. 이것이 현재 타이완 야시장의 모태라고 알려져있습니다. 

1920년대에 들어서자 타이완 각지에는 야시장이 많아졌습니다. 여러 상품들을 길가에 진열해 가로수를 틀어놓으면 밤이어도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몰려옵니다. 물건을 구입하면서 동시에 야경도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일제시기 타이베이에서 가장 떠들썩했던 원환 야시장(圓環夜市)은 1930년 무렵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29년 경제 대공황으로 미국 자동차를 대리 판매하는 타이완 대리상을 포함해  타이베이 다다오청(大稻埕) 일대 상인들은 1930년이 지나자 마치 바람 빠진 풍선처럼 녹초가 되어 땅에 주저앉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기가 좋지 않아 다다오청의 타이완인 가게는 장사가 잘 되지 못했죠. 그러자 일부 상인들은 원환공원(지금의 닝샤제寧夏街 27번지) 앞에 모여 야시장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1930년대 중반에는 타이베이 식물원의 한 전람회로 입구 양쪽에 각각 노점이 있는 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데, 바로 일본식 '옥대/야타이(屋台)'입니다. 전통적으로 타이완의 노점상들은 주로 특정한 수레 없이 직접 장사할 짐을 메고 다녔는데, 일본식 ‘야타이'는 일제시기 들어 일본인들에 의해 전해진 현대식 노점상의 전신이었습니다. 지금의 타이완 야시장에서 볼 수 있는 여러 수레 포장마차의 초기 버전인 셈이죠. 

1935년, 닝샤루 부근의 한 초등학교 교사가 한 걸음 더 나아가 관공서에도 야시장을 개설했습니다. 당시 신문에 실린 바에 따르면, 야시장의 범위는 펑라이공학교(蓬萊公學校) 앞 도로 양쪽으로 바로 오늘날 ‘닝샤 야시장’(寧夏夜市)이 있는 곳입니다. 같은 해 닝샤 야시장쪽은 좋은 노점상 자리를 쟁탈하기 위해 칼부림이 동원된 싸움까지 일어났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제시대 타이완 각지의 노점에는 이미 적지 않은 야시장이 들어서 장사 성황을 이루기 시작했고, 앞서 소개해 드린 가오슝의 사례처럼 절 앞에서 판매하는 야시장도 종종 있었습니다. 물론 교통방해 혐의로 경찰로부터 시장 안으로 이전하라는 명령을 받은 바 있긴 했지만요. 일본 정부는 타이완에 여러 형태의 시장을 만들었는데, 오늘날 타이베이 홍로우처럼 하나의 건물 안에서 장사를 할 수 있게 허가를 하기도 했지만, 야외 공터에 담장을 둘러 이곳에서 장사를 하게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담장이 쳐있는 공터는 아무리 밤에 열리는 야시장이어도 타이완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얻지 못했죠. 타이완 사람들이 좋아하는 야시장의 본질은 장소에 구속받지 않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시끌벅적하게 즐기는 형태였던 것은 과거에나 지금에나 마찬가지였나 봅니다. 

  ►참고자료

陳柔縉,《舊日時光》,2012,97-103。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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