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시간 타이완 제16대 총통 부총통 및 입법위원 선거를 앞두고 1935년 타이완에서 열린 첫 민선 투표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는데요. 타이완의 첫 정당인 타이완 민중당, 그리고 타이완지방자치연맹 등 구체적인 정치 운동의 색을 띈 단체들이 결성되기 이전 타이완인들의 정치, 문화, 민족적 정체성의 단결을 위해 설립된 단체가 있었습니다. 바로 1921년에 설립된 타이완문화협회(臺灣文化協會)입니다.
타이완문화협회는 1921년 린셴탕(林獻堂)과 장웨이수이(蔣渭水) 등이 발족해 타이완 전국 각지의 지식인들을 결집해 세계적 흐름을 따라 진보적인 이념과 가치관을 전달하고, 타이완인의 정체성과 민족 의식을 추구했던 단체입니다. 일제 식민 통치 하에서 일반 대중들을 향해 근대 지식문화를 보급하고, 타이완인의 문화공간을 조성하고자 했는데요. 지방유지, 의사, 변호사 등 당시 일본 유학을 통해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 지식인들을 주축으로 타이완 전국각지에서 문화계몽운동을 펼쳤습니다. 예를 들어, <대만민보>(臺灣民報)라는 기관지를 통해 대중들에게 매일매일 새로운 뉴스를 전달하고, 그 밖에 강연회, 신문 읽기, 연극, 영화 등 각종 문화 활동을 통해 대중들을 결집시키고자 했죠.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서는 타이완문화협회 100주년을 기념해 3년 전인 2021년 중화문화총회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백년추구(百年追求)’에 소개된 타이완문화협회의 역사적 의의에 대해 소개해드리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해당 영상은 유튜브에서도 보실 수 있으니 저의 해설을 들으시면서 영상을 보시면 도움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다큐멘터리는 1923년 2월 도쿄에서의 한 풍경을 묘사하면서 시작합니다.
“1923년 2월 도쿄. 그 날의 날씨는 맑고 추웠습니다. 한 무리의 학생들이 도쿄역 옆에 서서 크고 작은 깃발을 들고 서있습니다. 깃발에는 '대만 의회의 청원단 설치를 환영한다'는 글과 함께 '자유', '평등' 등의 글귀가 적혀 있습니다. 현장에서 한바탕 큰 소리가 들리자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고, 하늘에는 작은 비행기 한 대가 빙빙 돌고 있었습니다. 이 비행기를 조종한 사람은 바로 타이완 최초의 조종사, 셰원다(謝文達)입니다. 그는 비행기에서 수만 장의 전단지를 뿌렸고, 전단지에는 ‘타이완에게 의회를 달라!’라고 써 있었습니다.”
이어 국립대만대학의 역사학과 대학원의 천추이롄(陳翠蓮) 교수는 당시 타이완인들이 도쿄에서 의회 설치 청원 운동에 참여한데에 대한 당시의 배경과 상황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920년대 운동의 기원은 사실상 타이완 의회 청원 운동과 같은 정치 운동입니다. 1920년대는 근현대사에서 일본이 가장 자유롭고 개방된 시기였고, 타이완을 식민 지배 하는데 있어서도 상당히 안정되었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중산층 이상의 타이완 사람들과 그의 자제들은 일본에 가서 공부했고, 그들이 일본에서 목격한 사회의 모습은 타이완과 큰 차이가 있었습니다. 타이완 사람들은 노예처럼 굴며 총독부의 억압을 받고 있었고, 어떠한 소리가 없고 어떻게 소리를 내는지도 몰랐던 것이죠.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미국 윌슨 대통령이 주도한 식민지 자결주의 사조가 불기 시작했습니다. 타이완인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인들의 저항운동은 항상 활발했고, 독립을 요구했는데 이 사조에 따라 그들은 1919년에 3·1독립운동이라는 큰 저항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당시 타이완 유학생들에게는 큰 충격이었죠. 그렇다면 우리 타이완 사회는 왜 이렇게 세계와 차이가 날까? 설마 우리 타이완 사람들이 정말로 비교적 하등한 국민이어서 일까? 우리는 우리 자신의 권익을 쟁취할 줄 모를까? 총독부의 이런 억압을 계속 받아야 하나? 그래서 그들은 우리 타이완 사람들도 인간답게 살자고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천 교수는 1920년 이전 윌슨 미국 대통령이 제안한 민족자결주의와 그에 따라 발생한 식민지 조선에서의 3.1운동이 일본에 유학 중이던 타이완 학생들을 비롯한 지식인층에게 타이완인을 위한 정치에 대한 강한 열망을 불러일으키게 했다고 설명합니다.
이어 중앙연구원 타이완사연구소 우루이런(吳叡人) 연구원은 말합니다.
“타이완에 대한 일본의 통치는 근본적으로 평등한 통치가 아니었고, 타이완인은 일본의 국민이지만 2등 국민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식민지 차별 통치 자체가 사실상 타이완인들의 정체성을 어느 정도 정치화시켰고, 그들에게 내가 가지고 있는 정체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했죠. 총독의 독재를 감시하면서 일본에 동화되지 않고자 한다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첫째는 내가 일본 정부의 동화주의(同化主義)를 받아들이는 것이고, 둘째는 조선사람과 같이 강한 저항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강한 저항이 있을 경우 무자비한 탄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당시 린청루(林呈祿)는 타이완 의회 설치, 즉 식민지가 자치를 할 수 있는 의회를 설치해야 한다는 제3의 주장을 내세웠습니다. 그렇게 되면 타이완인은 의회라는 방식을 이용해 이성적으로 자기 결정을 하고 하나의 주체가 되어 일본 총독을 견제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죠. 이러한 생각은 사실상 매우 현대적 가치입니다. 일본 총독의 통제하에 타이완은 사실상 정치운동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문화(文化)’로 포장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장웨이수이(蔣渭水)와 같은 지식인은 타이완인인 우리가 직접 단체를 만들자고 제안했습니다. 이 단체는 주로 사상과 여러 운동을 추진했고, 그는 그것을 ‘문화 운동’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이 단체를 타이완문화협회(臺灣文化協會)라고 불렀습니다.”
그렇게 1921년 타이완문화협회가 창립되었고, 제1차 타이완문화협회 이사회는 단체 창립 이후 타이베이, 신주, 타이중, 위안린(員林), 타이난 등 타이완의 주요 도시에 신문 읽는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동시에 서점이나 극단, 강연도 진행해 문화 활동을 통해 정치 운동을 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립고궁박물원의 우미차(吳密察) 원장은 타이완문화협회 창립자인 장웨이수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본래 의사인 장웨이수이는 타이완을 허약하고 지식 부족증에 걸린 환자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내놓은 처방은 모든 사람이 지식을 갖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더 이상 무지한 사람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타이완대학의 천 교수는 당시 타이완문화협회 창립 전후로 발간된 여러 종류의 간행물들을 소개하면서, 이 간행물들이 당시 타이완 청년들의 지식과 사상의 보고라고 소개합니다.
“저희가 지금 한번 볼게요.이것이 바로 타이완 최초의 잡지인 <대만청년>(臺灣青年)이고, 이것은 <대만민보>(臺灣民報)와 <대만신민보>(臺灣新民報)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복각판이죠. <대만청년>을 살펴보면, 첫 호가 출판된 시기는 대략 1920년 7월쯤이었습니다. 일본에서 유학중인 타이완 유학생들이 도쿄에서 출판한 간행물이죠. <대만민보>는 타이완의 1920년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으며, 그 후에도 비교적 대규모의 토론이 민보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만민보>는 1920년대부터 30년대까지 당시 사상을 모아놓은 상당히 중요한 보고라 할 수 있습니다. 처음으로 타이완 사람들이 직접 자신의 사회에 대해 어떤 사회를 건설해야 하는지 등 그들의 모든 상상은 아마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국립대만문학관 수숴빈(蘇碩斌) 관장은 문화협회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사상의 해방이었다고 말하며, 그들은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중이 어디에 있는지 찾고 대중들을 대상으로 신문의 내용을 소개해 전세계 추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려주었다고 설명합니다. 그러면서 <대만민보>의 창간사는 “친애하는 우리 어르신과 형제자매”라고 시작했다고 강조합니다.
100년 전 신문, 잡지, 그리고 영화는 모두 새로운 매체, 즉 미디어였죠. 20세기 새로운 미디어인 간행물과 영상 등이 타이완문화협회를 통해 식민지 타이완에 전파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100년 전 신문, 잡지, 그리고 영화와 같은 매체는 마치 오늘날의 스마트폰 사용이나, 일론 머스크의 스페이스X와 같이 매우 획기적인 일이었다고 덧붙입니다.
타이완문화협회 백주년 기념 다큐멘터리의 내용 다음 주 <대만주간신보> 시간에 이어서 이야기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출처: 중화문화총회, 타이완문화협회 설립 100주년 기념 다큐멘터리 <百年追求>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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