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대만주간신보> 방송일이었던 올해 1월 2일,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을 넘어 세계 무대를 석권한 조선인 무용가 최승희의 1936년 타이완 방문 공연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해드렸었던 것 기억하시나요? 당시 최승희는 무용계의 선두주자로서 중국, 일본, 조선, 타이완 등 일본 제국의 관할 하에 있는 주요 도시의 공연장을 오가며 도쿄의 좌익예술 영역에서 문학가, 공연예술가, 음악가 등과 교류했습니다. 1936년 최승희는 대만문예연맹 도쿄지부의 초청으로 타이완에서 공연한 후 당시 타이완에서도 무용 열풍을 일으켰는데요. 대표적인 예로 타이완 최초 무용가 린밍더(林明德)를 꼽을 수 있습니다. 린밍더는 1936년 타이완에 온 최승희의 공연을 직접보고는 무용을 하기로 결심하고 일본으로 가 최승희 밑에서 무용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타이완 최초의 무용 예술인인 린밍더가 일본에서 최승희를 사사하면서 전문 무용가로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타이완 최초의 무용가 린밍더(林明德, 1914-?)를 연구한 연구자 쉬웨이잉(徐瑋瑩)은 타이완의 1세대 남성 무용가 린밍더가 최승희의 대만 공연을 보고 본격적으로 무용가로의 삶을 위해 일본으로 유학 가 최승희를 사사했다는 사실을 연구를 통해 처음으로 밝혔습니다. 타이완 무용계에서 이렇게 중요한 인물을 역사적으로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데요. 오늘 <대만주간신보> 시간에는 린밍더와 타이완 무용계를 중심으로 최승희의 대만 공연을 재탐색하기로 합시다!
린밍더는 타이완 1세대 무용가로 잘 알려져 있는 차이루이위에(蔡瑞月)보다 몇 년 전에 태어났습니다. 1936년 7월 최승희 공연을 보고 그해 일본으로 유학 가서 최승희 사사한 린밍더는 1937년에 유럽과 미국 순회 공연에 들어가게 된 최승희에 의해 최승희의 스승인 이시이 바쿠의 연구소로 들어가게되죠. 그렇게 무용가로서 자신을 연마한 린밍더는 이후 1943년 중국 무용 요소를 자신의 무용으로 만들어 도쿄에서 단독 공연을 하기에 이릅니다.
일제시기, 타이완 무용 예술은 최승희의 방문 이전에는 거의 알려져있지 않은 예술이었다고 쉬 연구자는 말합니다. 초기 타이완에서 무용을 가르치고 전수할 수 있었던 루트는 총 세 가지가 있었는데요. 하나는 학교 내 체육 교육으로 가장 광범위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용을 접할 수 있게 했습니다. 바로 이 때 앞서 언급했던 차이루이위에를 포함한 1920년대 출생 타이완 1세대 여성 무용가들이 바로 이 학교 교육을 통해 무용을 접하면서 전문 무용가의 길을 가게되죠. 두번째는 일본인이 타이완에서 직접 개설한 개인무용연습소를 통한 방법입니다. 학교에 비하면 이러한 개인무용연습소는 매우 소수의 사람들만 배울 수 있었죠. 그리고 마지막이 바로 일본이나 한국 무용가의 타이완 공연입니다. 바로 린밍더와 같은 경우인데요. 린밍더는 비록 남성이지만, 1936년, 그의 나이 22살이었을 때 최승희의 공연을 직접 보고는 바로 일본행을 결정합니다. 10년 전 최승희가 경성공회당에서 일본인 무용가 이시이 바쿠의 공연을 보고는 도쿄로 달려간 것과 상당히 유사하죠.
린밍더는 학교에서 무용을 처음 접한 다른 타이완 여성 무용가들과는 완전히 다른 노선에 있었습니다. 타이완 1세대 여성 무용가들은 1920년대 출생에 타이완에서의 근대식 학교 교육 이후 일본으로 유학을 가는 소위 ‘정석'의 길을 갔다면 린밍더는 조금 달랐죠. 1914년생인 린밍더는 타이완에서 태어났지만 중국 푸젠성 샤먼에 위치한 한 중학교에서 재학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나이 22살에 타이완에서 최승희 공연을 보고 일본 유학을 결정하죠. 1943년 일본에서 개인 무용 공연을 한 첫 타이완인이기도 합니다. 최승희가 조선의 전통 무용을 소재로 자신의 무용 세계를 넓혀갔다면, 린밍더는 경극 등 중국 전통 무용을 소재로 자신의 무용을 창작해갔습니다.
1919년 3.1운동 전후로 한국에서도 그랬던 것처럼 1920년대 타이완 내에는 일본의 식민 통치에 대한 반성적 성찰로 ‘민족문화운동’ 물결이 이렀습니다. 1914년 대만문화협회가 출현해 <대만민보>라는 타이완인 자체 민족 간행물을 발행했고, 1920년대 초, 일본 유학 경험을 한 타이완 학생들은 타이완 권리 회복 운동을 한창 진행했으며,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도 자주권, 반일을 조직하려는 흐름이 증가했죠. 그러면서 자신의 조상이라고 여겨지는 사람과 문화에 대한 연결과 접촉이 증가하면서 적지 않은 타이완 사람들이 중국으로 유학을 갔다고 합니다. <대만민보>에서는 중국의 동태를 계속해서 타이완 사람들에게 보도했고, 1920년대 중국으로 간 타이완 유학생들도 점차 증가했죠. 일본 경찰은 여권 제도 제한 등 행정적인 압박을 가해 타이완인의 중국행을 막고자 했습니다.
1920년대는 린밍더의 10대 시절이죠. 린밍더 역시 반일 성향이 강했던 학생이었습니다. 1926년 그는 중국 샤먼에서 유학하며 중학교를 다녔고, 1933년 그가 타이완에 돌아왔을 때 일본 정부는 중국에서 유학했던 그의 이력으로 인해 민족주의자라는 특별감시 대상으로 낙인을 찍기도 했죠. 그랬던 린밍더가 3년 뒤인 1936년 조선의 민족 색깔이 강한 최승희의 무용을 보고 일본행 결정 했을 것이라고 쉬 연구자는 추측합니다. 최승희의 무용이 린밍더가 일본 경찰 당국에 대해 갖고 있던 분노, 또 중국 무용에 대한 열정을 몸소 실천으로 옮기게 된 결정적 계기인 셈이죠.
최승희 공연 이후 린밍더 1936년 일본 유학 시작했고, 그의 뒤를 이어 차이루이위에는 1937년, 리차이어(李彩娥)는 1939년 일본 이시이 바쿠 무용학교서 무용을 수학하기에 이릅니다.
무용이 사람의 마음을 당기고, 민족 이데올로기를 증진하는 역할이 있음을 타이완 관중들은 최승희의 공연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1936년을 기점으로 무용을 진지한 예술영역의 일부로 여기고, 무용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죠. 최승희의 타이완 방문이 그 이전 일본 이시이 바쿠 무용가의 방문과는 달리, 무용 그 자체를 떠나 대만 예술 사회 지식인들의 여론, 소개, 비평, 선전 등의 활동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대만문예연맹은 최승희에 관한 각종 토론을 통해 타이완 문예계뿐만 아니라 일반 사회 인사들로 하여금 무용에 대한 진중한 시각을 갖고, 여론 공간을 만들어 무용을 예술로서 중시하고 기대하는 시각을 마련했습니다. 조선의 젊은 여성이 춤을 통해 자신의 민족 특색을 나타내는 작품 연출, 같은 피식민자인 타이완인에게 특수한 의의 가진 것이죠. 특히 <아리랑조> <무녀의춤> <습작> 등 조선 민족 무용 색깔 짙은 창작물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대만문예연맹 회원 중 우톈샹 작가는 "우리 동양인에게 일맥상통한 생명력을 주었다" (1936)며 우톈샹 포함 타이완 지식인들은 피식민자라는 신분상의 관계에서 연대감을 가지며 최승희의 무용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여기에는 무용하는 여자를 '예단'(藝丹)이라며 한국의 '기생'으로 보았던 기존의 사회적 시선을 타파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가 있습니다. 무용 공연이 전문화 되면서 여성 무용가가 문화인, 지식인들로부터 예술 영역의 일원으로 인정 받았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기도 하죠.
일제시기 치과의사이자 작가였던 왕창슝(王昶雄)는 무용가 린밍더에게 쓴 "무용가 친구에게"(給舞蹈家的友人) 편지에서 최승희를 언급하며 무용가 린밍더에게 쓴소리를 남긴 바 있습니다.
“(최승희) 그녀처럼 상황에 따라 무릎을 꿇고 동정을 구하거나, 혹은 즉시 에너지를 왕성하게 뿜어낼 수 있다. 사타구니 밑의 치욕도 참고 견딜만큼 그녀는 굳건하고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 솔직히 말해서 너는 이 정도의 결심과 강인한 성격이 없다.” (王昶雄 2002: 23)
린밍더와 최승희를 연결해 준 무용. 여기에는 단순히 무용에 대한 한 개인의 예술적 열망이나 타이완 한국 간의 예술 교류라는 차원을 넘어 일본 식민 치하 피식민지의 문예 인사들이 예술을 통해 서로를 격려하고, 정치 억압적 환경 하의 자신의 잠재의식을 서로 공유하고 있었는 지 모릅니다.
참고문헌
徐瑋瑩, 「舞蹈, 跨域與反殖民-1930年代朝鮮舞姬崔承喜來臺的機緣與影響」, 『藝術與文化論衡』3期, 臺中市:國立勤益科技大學, 2013, 91-107쪽.
徐瑋瑩, 『落日之舞:臺灣舞蹈界藝術拓荒者的境遇與突破 1920-1950』, 新北市 : 聯經出版事業股份有限公司, 2018, 159-228쪽.
王昶雄 <給舞蹈家的友人-我的書集(四)> 《王昶雄全集(第三冊),散文卷(二)》 2002, 21-24.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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