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의 대표적인 영화 시상식, 진마장의 6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지난 주 무사히 막을 내렸습니다. 타이완에서 영화는 그 어떤 장르의 예술 보다 사람들의 일상과 기억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장르인데요. 진마장 60주년인 올해가 끝나기 전, <대만주간신보> 시간에서는 오늘부터 일제시기 타이난 외곽의 항구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의사 우신롱(吳新榮)이 당시 타이난 시내를 중심으로 영화를 접한 이야기에 대해 나눠보고자 합니다.
타이완에서 영화는 1920년대부터 흥행하기 시작한 오락, 레저 문화입니다. 일제시기 영화를 둘러싼 문화활동과 소비풍조는 강한 정치취향이나 사회운동과 같은 반식민지적 색채를 제거한채 새로운 소비문화로서 당시 타이완 문화인과 지식인과 같은 공동체 사이에서 흥행하게 되었습니다. 식민정부가 조성한 도시 계획은 도시와 농촌간의 분업을 가져왔고, 도시와 농촌 사이에 이동이 빈번해지면서 1930년대 중고등 교육을 받은 지식인, 상인, 시민들의 일상생활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죠. 그러면서 정치와 무관해보이는 ‘영화’와 같은 오락활동을 둘러싸고 과거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일상의 생활습관을 당시 타이완 사람들은 겪었어야 했습니다.
<우신롱일기전집(吳新榮日記全集)>의 영화이야기
일제시기 타이난 외곽의 항구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의사 우신롱(吳新榮)은 1933년부터 1967년까지 무려 35년 간 일기를 썼습니다. 우신룽의 일기에 담긴 시대는 일제시기와 국민당 정권이라는 두 정권에 걸쳐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막론하고 우신롱 개인이라는 인물의 일생에서 영화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했는지 알려주는 중요한 사료입니다. 우신롱이 남긴 <우신롱일기전집(吳新榮日記全集)>에서 영화 관련 이야기를 뽑아내 별도로 연구한 역사학자 천원송(陳文松)은 이 일기에 대해 “일생을 타이완 영화 발전사와 함께 하는 우신롱 일기의 가장 특별한 점은 우신롱의 개인적인 ‘영화 관람’에 대한 역사적 단서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열정에 의해 끊임없이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영화 평론’까지 남겼다는 데 있다”고 평가합니다.
타이난 시내 외곽 항구 출신의 의사인 우신롱에게 영화를 보는 것은 일생동안의 변함없는 취미였습니다. 그의 일기에서 영화에 대한 그의 감상과 평론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간결하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당시 일제시기 영화에 대한 그의 관람후기는 마치 오늘날의 영화평론가가 쓴 글과 같습니다. 1933년부터 1967년까지 그가 써내려간 30여 년 간의 일기에서 비록 정권은 두 번 바뀌고 타이완은 엄청난 정치 경제의 변화 속에 소용돌이 치고 있었지만, 영화를 향한 그의 애정만큼은 한 번도 변하지 않았죠. 지극히 개인적인 그의 일기가 기술한 영화에 대한 기록은 일제시기에 왜 사람들이 영화를 봤는지, 어디에서 영화를 봤으며, 혼자 보았는지 혹은 다른 사람과 같이 보았는지 등등 일반적인 역사책에서는 다루지 않은 일상생활을 탐닉할 수 있게 해줍니다.
1930년대 일본 제국을 흔든 오락문화, 영화
1930년대, 일제시기 중반에 들어서면 영화 관람은 어떤 지적인 매력과 더불어 오락성과 사교성을 갖춘 멀티영역으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일제시기 일본, 조선, 타이완 등 일본 제국을 넘나들며 최고의 무용가로 활동했던 최승희가 1930년대 무용가로서 도쿄에서 흥행하자마자 <반도의 무희> 등 영화를 찍은 것을 보면 1930년대 일본 제국에서 영화가 한창 흥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같은시기 타이베이에서 활동한 작가, 예룽종(葉榮鐘)이 영화를 처음 접하게 된 동기로 에어컨을 꼽았는데요. 그는 점심에 기쿠모토 백화점(菊元百貨)에서 밥을 먹고, 서문국제극장(西門國際戲院)이란 영화관에 들른 다음, 오후 서너시가 되어서야 근무하던 신문사로 출근을 했다고 한다. 출근 전인 정오에 그가 영화관에 간 것은 당시 타이베이에 있는 서문국제극장이 가장 먼저 에어컨, 즉 냉방을 설치한 영화관이었기 때문이었다. 한 여름 무더운 타이베이 시내에서 차가운 바람을 쐬며 낮잠 한 번 편히 자는 것이 그가 처음 영화관을 가게 된 이유였다. 그렇게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에서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영화가 상영하면 그 영화가 주는 긴장감과 전율이 그를 영화에 몰입하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외곽에서 시내로 영화보러 가는 의사 우신롱
일제시기 타이난 부성(府城) 출신의 유명 작가 예스타오(葉石濤)는 이런 말을 남겼죠. “타이난은 사람들이 꿈을 꾸고, 일하고, 사랑하고, 결혼하고, 유유히 지내기에 적합한 좋은 곳이다(臺南是一個適合人們作夢 、 幹活、戀愛、 結婚、 悠然過日 子的好地方)”라고요. 타이난 현지인의 관점에서, 자신의 고향의 ‘부성’을 소개하는 대표적인 구절인데요. 의사 우신롱이 태어나고 활동했던 지역인 타이난 부성(府城), 즉 타이난 시내는 타이완 남부의 지식인과 문화인들이 모여 취미와 오락을 즐기는 대표적인 도시였습니다. 영화도 예외는 아니었죠.
일제시기인 1907년 염수항(鹽水港)에서 태어나고 자란 우신롱(吳新榮, 1907-1967)에게 영화는 그의 일생과 함께하는 안식처였음. 그가 태어나고 자란 염수항은 지금의 타이난 외곽에 위치한 작은 항구 도시. 당시에 이 외곽에서 다양한 문화활동을 접할 수 있는 타이난시로 들어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은 생각만큼 간단한 일은 아니었음. 거리로 따지면 약 20킬로미터인데, 우신롱이 살았던 일제시기에는 교통수단이 지금처럼 원활하지 않아 시내를 가려면 반나절 내지 하루의 시간이 걸렸기 때문. 우씨의 일기에 따르면 의사로서 낮에는 왕진을 했던 그는 저녁에 휴진을 한 후 버스를 타 타이난 시내로 들어가 영화를 관람한 후 근처 카페나 시장에 들러 이곳 야식을 먹은 후 여관에서 하룻밤을 묵고 다음날 아침 첫차를 타고 동네로 돌아왔다고. 그는 한 달에 평균 두세 번 시내에서 이렇게 휴가를 가졌다고 일기에 기록하고 있다: “쇼핑을 한다. 산책은 혈압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급할 때를 제외하고는 삼륜차를 타지 않고 목적지까지 걸어간다.” “거리를 구경하고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 영화 한 편을 보고, 좋은 영화가 있으며 두 편을 보기도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배가 고프면 나는 야시장에 가 간식을 이것저것 먹었다.” (1942년 9월 12일 일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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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적, 청취자님들께서 즐겨가던 영화관은 어떠했나요? 집에서 영화관까지 가는 여정은 어떠했나요?
일제시기 타이난 출신 의사 우싱롱의 영화 이야기를 시작하지 청취자님들 한 분 한 분의 영화 이야기도 궁금해집니다. 다음주에는 우싱롱이 어렵사리 타이난 시내에 도착해 관람한 영화에 대한 그의 감상을 함께 읽어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 참고문헌
陳文松 《來去府城透透氣:一九三○~一九六○年代文青醫生吳新榮的日常娛樂三部曲》 蔚藍文化, 2019.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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