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2024년도 벌써 반이 지났네요. 보커라이(博客來), 청핑(誠品) 등 타이완 서점들이 올해 상반기 베스트셀러를 잇달아 발표했는데, 지난해와 유사하게 자기계발, 재테크 분야의 도서가 꾸준히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TOP100에는 문학작품이 많지 않지만 《불편한 편의점》, 《삼체(三體)》등 외국소설, 그리고 타이완 에세이 작품 몇 편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 중 중국계 미국인 작가 쾅링슈(匡靈秀, R.F. Kuang)의 소설 《바벨(Babel)》과 《옐로우페이스(Yellowface)》가 타이완에서 출판된 지 얼마 안 되었음에도 좋은 성과를 보이며 SNS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번체자 공부를 위해 지난해 타이완으로 유학을 왔던 쾅링슈는《바벨》의 타이완 출판 과정을 지켜보고 신간 발표회에 직접 출석했습니다. 행사 진행을 맡은 저작권 매니저 탄광레이(譚光磊)는 “국제도서전이 아닌 시점에 외국의 판타지 소설 작가를 타이완에 초청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언급했습니다. 쾅링슈는 “타이완에 온 이유는 맛있는 음식뿐만 아니라, 풍부한 중국어 과정 때문”이라며, “20세기 전반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로서 많은 번체자 자료를 읽어야 하여 타이완은 좋은 목적지”라고 설명했습니다. 오늘은 타이완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쾅링슈 작가에 대해 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현재 타이완에서 출판된 《바벨》과 《옐로우페이스》는 쾅링슈의 데뷔작이 아닌데요. 1996년 중국 광저우에서 출생한 그는 4살 때 부모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성적은 우수했지만 주변에 아시아계 학생이 많지 않아 줄곧 조롱을 받았습니다. 한 번은 샤오룽바오를 학교에 가져갔는데 친구들이 냄새가 심하다며 가까이 가기를 꺼렸습니다. 자라면서 겪었던 불편한 경험들은 그로 하여금 정체성 혼란을 갖게 했죠. 이어 대학 2학년 때 중국 베이징에 잠시 머물렀던 동안,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로부터 19-20세기 중국이 침략당한 역사를 알게 되어 점차 중국 문화에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귀국 후 중국 역사를 전공하며 전쟁 연구에 몰두했고, 졸업을 앞둔 2018년 영국과 청나라의 무역수지 문제로 일어난 아편전쟁에 기초한 역사소설 《양귀비 전쟁(The Poppy War)》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서양 문단에서 보기 드문 중국 전쟁사 소설로 주목받은 퀑링슈는 석사과정을 밟으면서 두 편의 속편을 완성했습니다.

쾅링슈의 데뷔작 《양귀비 전쟁(The Poppy War)》 - 사진: 예스24
네뷸러상(Nebula Award), 로커스상(Locus Award)과 함께 세계 3대 SF상으로 꼽히는 휴고상(Hugo Award)이 지난해 처음으로 중국에서 열렸는데, 이미 네뷸러상과 로커스상을 수상하며 유력 후보로 거론되었던 쾅링슈의 두 번째 작품 《바벨》은 예상외로 최종 후보 명단에서 제외되었습니다. 《바벨》뿐만 아니라 중국 당나라 여황제인 측천무후를 주인공으로 한 중국계 캐나다 작가 자오시란(趙希然, Xiran Jay Zhao)의 소설 《아이언 위도우(Iron Widow)》, 그리고 영국 작가 닐 게이먼(Neil Gaiman)의 만화 《샌드맨(The Sandman))》을 원작으로 한 동명 넷플릭스 드라마도 특별한 이유 없이 후보에서 제외되었습니다. 휴고상 심사위원단이 중국 측의 눈치를 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심사위원들이 주고받은 이메일이 지난 2월 유출되면서 사실로 확인되었습니다. 심사위원장인 데이브 맥카티(Dave McCarty)는 지난해 6월 심사위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후보작이 중국, 타이완, 티베트 또는 중국에서 문제가 될 수 있는 주제에 초점을 맞춘다면 특별히 유의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렇다면 《바벨》은 어떤 민감한 주제를 다뤘을까요? 이 소설은 《양귀비 전쟁》의 핵심주제를 이어가며 183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식민주의, 제국주의, 권위주의, 자본주의를 비판했습니다. 소설에서 영국은 ‘은 마법’을 통해 패권적 지위를 유지해 왔는데요. 은 마법이란 은괴의 양면에 서로 다른 두 언어의 어휘를 적어 정확하게 번역할 수 없는 의미를 물리적 효과로 변환시키는 마법입니다. 예를 들어 한 면에는 영어 ‘invisible’, 다른 한 면에는 중국어 ‘무형(無形)’을 적으면 사람을 보이지 않게 만드는 마법을 부릴 수 있습니다. 은 마법의 독점을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 언어를 연구하고 새로운 어휘 조합을 끊임없이 발견해야 하는 상황에서, 은 마법을 주관하는 옥스포드대 번역센터 ‘바벨’이 비유럽권 학생 모집에 적극 나섰습니다. 주인공 로빈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 중국 광저우에서 영국으로 떠났습니다. 훌륭한 번역가이자 은 마법사가 되고 싶었던 로빈은 십여 년 만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을 때 영국이 은의 재고를 확보하기 위해 중국에 전쟁을 일으킬 준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나라, 심지어 자신의 조국을 착취하는 데 도와주는 권력의 하수인이 되지 않도록 반정부 비밀조직에 가담해 영국을 무너뜨리려 합니다.

네뷸러상(Nebula Award)과 로커스상(Locus Award)을 수상한 쾅링슈의 판타지 소설 《바벨(Babel)》 - 사진: 청핀서점
바벨탑은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건축물로, 인간이 하늘에 닿으려고 쌓은 탑입니다. 자신을 신과 동등하게 여기는 인간의 오만한 행위를 저지하기 위해 신은 인간의 언어를 혼란시켜 서로 소통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소설에서 영국도 이런 오만한 존재입니다. 쾅링슈는 역사적으로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미국의 예일, 프린스턴, 하버드 등 명문대는 모두 노예제와 식민주의에 의존해 발전했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한 판타지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언급했습니다. 이 웅장한 소설은 현실과 판타지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쾅링슈의 광활한 문학의 길을 닦았습니다. 그의 최신작을 소개하기 전에 먼저 바벨탑을 모티브로 한 노래 우칭펑(吳青峰)의 ‘바벨탑 축제(巴別塔慶典)’를 띄워드리겠습니다.
《바벨》을 통해 신예 판타지 소설가로 떠올랐지만 쾅링슈의 다음 작품은 판타지와 전혀 무관한 미국 출판업의 이야기인데요. 쾅링슈는 보커라이와의 인터뷰에서 예술가가 다른 분야의 이야기를 시도하지 않으면 작품이 쉽게 지루해질 것이라며, 타이완에 처음 왔을 때 타이완 대표 디저트 더우화(豆花)를 매일 먹다가 금방 질린 것처럼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타이완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는 최신작 《옐로우페이스》는 백인 작가가 중국계 친구의 원고를 훔쳐 출판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이야기입니다. 소재는 전작과 매우 다르지만 핵심 주제는 여전히 인종·문화 간 갈등입니다.
영어 옐로우페이스란 다른 피푸색의 인종이 동양인처럼 분장하고 째진 눈 등 신체 특징을 강조하는 인종차별적 행위인데요. 소설에서 백인인 주인공은 친구가 세상을 떠나기 전 완성한 제1차 세계대전 기간 유럽으로 파견된 중국인 노동자에 관한 소설을 자신의 이름으로 출판하고 대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백인이 중국인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일었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도록 중국 연구에 몰두하고 중국계 작가 육성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하는 등 유색인종의 친구가 되기 위한 노력을 많이 했지만 비난의 물결은 여전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이야기가 확실히 그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이죠.
인종 문제는 미국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이슈 중 하나인 만큼 《옐로우페이스》는 《바벨》보다 더 민감한 작품일지도 모릅니다. 특히 중국계 미국인 쾅링슈가 백인의 이야기를 쓰고, 소설에서 백인 주인공이 중국계 친구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그야말로 신의 한 수입니다. 만약 거꾸로 하면 어떻게 될까요? 명확한 답이 없는 모호성이 광링슈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슬기로운 신세대 작가의 작품에 대해 관심이 있다면, 이미 한국에서 출판된 《양귀비 전쟁》 3부작을 한 번 읽어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쾅링슈의 최신작 《옐로우페이스(Yellowface)》 - 사진: 청핀서점(誠品書店)
▲참고자료:
1. 匡靈秀,《巴別塔學院》。
2. 匡靈秀,《黃色臉孔》。
3. 〈匡靈秀著「罌粟戰爭」 追尋文化認同〉,世界日報。
4. 楊詠翔,「翻譯是種魔法,是帶著意義穿越時空的不可能任務。」──專訪《巴別塔學院》作者匡靈秀,OKAPI。
5. 楊勝博,「現場》語言是記憶,也是揭開帝國暗影的究極魔法:奇幻小說《巴別塔學院》新書分享會」,OPENBOOK閱讀誌。
6. 呂佳蓉/吳柏緯,「中國辦雨果獎蒙陰影 匡靈秀趙希然等作家被取消資格疑政治審查」,中央社。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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