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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문화부 장관으로 선임된 작가 샤오예(小野)

  • 2024.04.22
포르모사 문학관
줘룽타이(卓榮泰, 좌) 차기 행정원장은 지난 12일 기자회견에서 작가 리위안(李遠, 우)을 신정부의 문화부 장관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 사진: CNA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오는 5월 20일 제16대 중화민국 총통으로 취임하게 되는 라이칭더(賴清德) 현임 부총통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신정부 내각의 1차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차기 행정원장은 줘룽타이(卓榮泰) 전 민진당 당대표, 차기 행정원부원장은 정리쥔(鄭麗君) 전 문화부 장관, 차기 행정원 사무총장은 공밍신(龔明鑫) 국가발전위원회 주임위원이 선임되었습니다. 1차 명단에 이어 줘 차기 행정원장은 지난 12일 내정부, 교통부, 법무부, 문화부, 교육부 등 부서의 장관 인선을 밝혔습니다. 이 중 필명 샤오예(小野)로 알려져 있는 작가 리위안(李遠)이 문화부 장관으로 선임되어 화제가 되었습니다. 리위안은 명단 발표 전까지 거의 거론되지 않았던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라이 차기 총통은 명단 발표 이전 유능한 초당파적 인재를 등용할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는데, 무소속 리위안은 2018년 지방선거 기간에 커원저(柯文哲) 전 타이베이시장 선거본부의 총책임자를 맡았고, 같은 해 개인신분으로 민진당 소속 가오슝(高雄)시 시장 후보인 천치마이(陳其邁)에게 지지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선거참모와 작가 신분 외에도 영화 작가로 활약해왔으며, 방송국 사장, 타이베이 문화기금회 회장, 타이베이 미디어 실험학교 교장 등을 역임했고 문학, 연극, 영화, 방송, 문화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각 명단이 밝혀지자 문화계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자오정민(趙政岷) 시보(時報)출판사 이사장은 중앙사와의 인터뷰에서 타이완은 10년의 문화정책이 시급히 필요하다며, 리위안은 손자를 둔 장관으로서 젊은 층과 소통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어 손자 세대에게 좋은 문화환경을 창출하도록 장기적인 문화정책을 내세우기를 기대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타이완시각예술협회는 실무경험이 많은 샤오예와 정리쥔의 지도 아래 타이완의 문화예술산업이 근본적으로 발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100권 이상의 책을 집필한 샤오예는 원래 ‘리샤오예(李小埜)’라고 했는데, 할아버지 리광위안(李光遠)을 기념한다는 의미에서 부모가 출생신고를 할 때 ‘리위안’이라는 이름으로 호적을 등록했습니다. 그의 부모는 1960년대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신문사에 여러 차례 투고했고, 당시 중학생이 된 리위안도 부모의 발자취를 따라 ‘샤오예’라는 필명으로 문학상에 참여했습니다. 1975년 대학생활 이야기를 다룬 소설《번데기(蛹之生)》를 통해 등단하여 연합보 문학상, 타이완 중국문예협회 소설상, 금정장(金鼎獎) 대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지난 2005년 《번데기》 출판 30주년을 맞아, 샤오예는 출판사의 초청을 받아 30주년 기념판에 수록된 새로운 서문을 쓰고 《번데기》의 출판과정을 밝혔는데요. 당시 대학생이었던 샤오예는 15만자 짜리의 원고를 들고 여러 출판사에 문의했지만 모두 거절당했습니다. 포기하려고 했을 때 대학 친구의 소개로 더 이상 책을 내지 않으면 면허가 취소되는 출판사와 만났고 출판의 기회가 생겼습니다. 출판계획이 확정된 후 아버지의 친한 친구이자 화가 천팅스(陳庭詩)에게 그림 한 폭의 사용권을 받아 책표지에 사용했는데, 출판사 사장이 인쇄 비용을 줄이기 위해 화가의 허락없이 함부로 그림의 색깔을 바꿨습니다. 샤오예는 출판사의 행위가 맞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책의 출판을 위해 끝까지 싸우지는 않았습니다. 

모두의 예상과 달리 《번데기》는 출판되자 해적판이 나올 정도로 대상공을 얻었습니다. 화가는 책 표지를 보고 샤오예 아버지에게 불만을 표했고, 지려고 하지 않았던 샤오예 아버지도 젊은사람에게 이렇게 따지면 안 된다는 답장을 썼습니다. 아들 때문에 두 사람의 오랜 우정에 균열이 생겼고, 비록 금방 화해했지만 샤오예는 늘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번데기》는 여러 차례 재출판되었으나 출판사의 주도로 인해 다른 그림작가를 구해 새로운 표지를 만들기만 했고 초판의 표지를 수정해 다시 출판하지는 않았습니다. 30년의 세월이 흘러야 샤오예에게 속죄할 기회가 왔는데요. 30주년 기념판 출간에 맞춰 샤오예는 표지를 최초 버전으로 바꾸고 작품의 원래 색깔을 복원할 것을 출판사에 요구했습니다. 비록 아버지와 화가는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재출판을 통해 감사와 사과의 뜻을 전했습니다.

어릴 적부터 문학에 대한 열정과 소질을 보인 샤오예는 문예과를 택하지 않았고 오히려 생물학을 전공했습니다. 국립사범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유학길에 올라 박사학위까지 취득했습니다. 백색테러 피해자인 샤오예의 외삼촌이 23살 때 총살되었기 때문에 그의 부모는 자식이 교사가 되어 평범한 삶을 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샤오예는 창작에 대한 갈망을 포기하지 못해 중앙영화회사(中影)에 입사해 시나리오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민주화 이전 영화를 찍으려면 사실상 국민당 산하 조직인 중앙영화회사에서만 가능했는데, 샤오예는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30살의 젊은 나이로 1980년대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 운동(Taiwan New Cinema)’의 주력을 맡았습니다. 그 이전 사회 밑바닥에서 힘들게 살고 있는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는 정부를 비반하는 것으로 간주되어 현실과 동떨어진 영화만 존재했습니다. 타이완 영화의 앞길을 위해 샤오예, 우녠전(吳念真), 허우샤오셴(侯孝賢) 등 당시의 신세대 영화인들은 타이완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실주의 영화를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샤오예가 작가를 맡은 영화로는 <공포분자(恐怖份子)>, <고령가 소년 살인사건(牯嶺街少年殺人事件)> 등이 있고 금마장 후보에 다섯 번이나 오른 바 있습니다. 그는 비즈니스 투데이(今周刊)와의 인터뷰에서 “내 인생 가장 좋았던 시절은 전부 영화에 바쳤다”고 말했습니다.

영화계를 떠난 후 다시 작가로서 글을 쓰고 50살에야 직장에 복귀했습니다. 그는 타이완 3대 방송사의 사장과 이사를 역임했고, 타이베이 국제도서전 심사위원을 맡기도 했습니다. 커원저가 2014년 타이베이시시장으로 당선된 뒤 타이베이 문화기금회 회장을 맡았습니다. 여러 역할을 해온 샤오예는 정치대학교 중어중문학과의 간행물에서 “나를 이 자리에 오를 수 있게 해준 것은 사랑과 열정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한”이라고 토로했습니다. 뜻을 이루지 못했던 아버지 대신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샤오예는 스스로가 영원히 움직이는 상태에 있다고 믿습니다. 여러 개 직업을 가진 것을 선호하는 이른바 ‘멀티잡 시대’에 선구자와 같은 캐릭터죠. 생물학 전공인 학생작가에서 영화작가, 방송국 회장, 학교 교장 등을 거쳐 타이완의 문화부 장관까지 자신의 가치를 최대화했습니다. 앞으로 타이완의 문화산업을 어디로 이끌어나갈지 무척 기대하네요.

엔딩곡으로 타이완 뉴웨이브 영화 운동의 막을 연 영화 <세월 이야기(光陰的故事)>의 동명 노래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邱祖胤,「小野接任文化部長 業界盼帶領台流、出版升級」,中央社。
2. 王寶兒,「鄭麗君李遠納新內閣 視盟:對未來高度期待」,中央社。
3.  「『這裡不是小野, 是我 』專訪作家小野(上),政大中文<文海>。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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