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광화문 교보문고, 이 아름다운 서점은 한국 최대 서점의 본점일 뿐만 아니라 외국인 유학생이었던 저에게 아지트와 같은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알록달록한 책 표지, 향기로운 책 냄새, 책 페이지 넘기는 소리… 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책의 세계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타이완판 교보문고인 청핀(誠品, Eslite)서점도 오랫동안 머물 수 있고 떠나기 싫은 아늑한 문화공간인데요. 타이베이 시내 최고 번화가인 신이구(信義區)와 중산구(中山區)에 가보셨다면 청핀서점이 낯설어하지 않으실 겁니다.

타이완판 교보문고 ESLITE 청핀(誠品)서점 - 사진: RTI 선충룽(沈聰榮)
그러나 2024년 새해가 되면서 신이구에 있는 청핀 신이점이 영업을 종료했습니다. 세계 최초로 24시간 영업을 하는 둔난(敦南)점이 지난 2020년 5월 31일 문을 닫은 데 이어 24시간 서점의 임무를 이어받은 신이점은 지난 12월 24일 임대차 종료로 폐업했습니다. 2006년 1월 1일 0시부터 18년 동안 타이베이 시민들과 함께 해왔던 신이점과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청핀은 신이점의 역사, 연도별 베스트셀러가 기록된 회고전, 밤 8시 후 열린 심야 특강살롱, 웨딩드레스 촬영 이벤트, 독자들의 얼굴을 그려주는 초상화 이벤트, 이틀 연속 진행된 콘서트, 24시간 동안 쉬지 않는 팟캐스트 및 ASMR 방송, 손으로 하는 체험활동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인 마지막 영업일, 타이베이101 외벽에 “안녕! 청핀 신이점!”이라는 메시지가 적혀 있는 가운데, 8만 5천 명의 독자들이 신이점에 몰려들어 하루 최다 방문객 수를 세웠습니다. 이날 밤 10시반 수천 명의 사람들이 신이점 밖에서 카운트다운하면서 마지막 순간을 함께 맞이했습니다. 서점 측에 따르면, 12월 24일까지 지난 한 달 동안 방문객 수 100만 돌파, 책 10만 권 판매 등 놀라운 성과를 기록했고 소비자는 20-40대 젊은 층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출판업이 불황에 빠진 지금, MZ세대들이 여전히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은 정말 반가운 소식이죠.

신이점과 작별인사를 하기 위해 모였던 사람들 - 사진: 청핀서점 페이스북
신이점이 폐업한 후 쑹산문화단지(松山文創園區)에 위치한 숭옌(松菸)점은 오는 20일 청핀서점의 세번째 24시간 서점이 될 것입니다. 24시간 서점이 중단되지 않도록 지난 12월 25일부터 오는 1월 20일까지 중산구에 있는 난시(南西)점이 숭옌점을 대신해 24시간 동안 영업합니다. 우밍졔(吳旻潔) 청핀 회장은 지난 24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독자들이 신이점 벽에 남긴 메시지 중 ‘청춘’, ‘함께하기’ 등 키워드가 가장 많이 보이는데 대부분 50대 이상이 참여했던 둔난점 폐업과 달리, 신이점은 인터넷 시대에 태어난 세대들과 청춘을 함께하는 동반자”라며, “2024년부터 숭옌점은 세대를 뛰어넘는 자유의 아이콘이 될 것”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독자들이 신이점 벽에 포스트잇을 붙이고 있다. - 사진: RTI 선충룽(沈聰榮)

오는 1월 20일부터 세번째 24시간 서점이 될 청핀 숭옌점(松菸店) - 사진: 청핀서점 페이스북

24시간 서점이 중단되지 않도록 난시점(南西店)이 지난 12월 25일부터 오는 1월 20일까지 24시간 영업한다. - 사진: 청핀서점 페이스북
과거 10여 년 동안 우리와 함께해준 청핀 신이점, 고생많았고 감사했습니다. 신이점의 개업과 비슷한 시기에 발표한 노래 장전위에(張震嶽)의 ‘안녕(再見)' 지금 띄워드리겠습니다.
타이난 출신인 저는 2014년 대학교에 입학해서 타이베이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24시간 서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지하철을 타고 청핀 둔난점에 갔는데, 밤 10시 넘어도 등불이 환하고, 나무 바닥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을 보고 타향에 있는 저는 갑자기 외롭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람들 모두 나와 함께 책을 읽고 있으니 참 좋았다는 생각이 확 들었습니다. 타이베이에 대해 점 더 익숙한 후 학교와 비교적 가까운 신이점에서 문을 닫을 때까지 책을 읽곤 했습니다. 서점은 백화점보다 늦게 문을 닫았기에 백화점 폐점 이후 다른 출구로 가야 지하철에 갈 수 있었는데, 맨 처음에 어떻게 갈 지 몰라서 외국인과 함께 폐점한 백화점에서 길을 잃었고 결국 경비원 덕분에 겨우 길을 찾았던 기억, 아직도 생생하네요.

세계 최초 24시간 서점인 청핀 둔난점(敦南店) - 사진: 청핀서점 홈페이지
타이완이 경제적으로 크게 성장했던 1980년대, 청핀서점 창립자 우칭유(吳清友)가 주방기구 장사를 통해 번 거금을 갖고 런던에 가서 예술품을 구입하기로 했으나 거래 과정에서 현지인들로부터 차별을 당해 결국 거래를 포기했습니다. 그는 타이완에서 예술서적을 파는 서점을 열기로 결심했고 타이베이 런아이로터리(仁愛圓環) 맞은편에서 청핀서점 1호점을 설립했습니다. 1층은 유럽산 도자기, 유리 등을 파는 매장, 2층은 서점, 지하실은 갤러리로 당시 타이완에서 보기 드문 복합문화예술 공간이었습니다. 1995년 도시재개발로 근처 빌딩으로 옮겨져 훗날 24시간 영업하는 둔난점이 되었습니다.

타이베이 런아이로터리(仁愛圓環)에 있었던 청핀서점 1호점 - 사진: 청핀서점 홈페이지
1호점이 옮겨진 전 청핀은 타이완 록스타 우바이(伍佰), 음악 프로듀서이자 가수 레이광샤(雷光夏) 등 연예인과 협력해 18시간 동안의 퍼포먼스를 선보인 바 있습니다. 그날 밤만 되면 쥐 죽은 듯 조용한 런아이로터리는 인파로 가득 찼습니다. 이 행사는 대성공을 거둔 훗날 24시간 서점 운영의 기초를 닦았습니다.
작가 위안츙츙(袁瓊瓊)은 청핀서점이 1999년 주최한 응모이벤트에서 “24시간 노래방이 있는데 24시간 서점이 있으면 안 되나요?”라는 글을 남겼습니다. 같은 해 3월 청핀 10주년을 맞아 둔난점에서 세계 최초의 24시간 영업을 시작했는데, 독자들의 큰 호평을 받아 3개월 동안의 시험운영은 무제한 연장되었고 21년 후인 2020년에 되어야 도시 재개발로 폐업했습니다. 청핀 갤러리 자오리(趙琍) 이사는 톈샤잡지(天下雜誌)와의 인터뷰에서 “아침 출근할 때 캐리어를 들고 다니는 홍콩 손님을 많이 봤는데 그들은 서점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커피를 마시면서 공항으로 향했다”고 묘사했습니다.
타이베이에서 집값이 가장 비싼 다안구(大安區)에 위치했던 둔난점은 CNN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쿨한 서점’, 타임지가 선정한 ‘아시아 베스트 서점’으로 꼽혔고 영국, 프랑스, 한국, 일본 등 외국 언론들도 보도한 바 있습니다. 1989년 오픈한 둔난점은 문화적으로 덜 발전되었던 시대, 타이완인을 계몽하는 지식의 등대였습니다. 신의점 폐업을 앞두고 열린 행사는 사실 둔난점 폐업 당시 이미 한 번 열렸고, 차이잉원(蔡英文) 총통도 둔난점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폐업 4일 전 둔난점을 방문했습니다.

둔난점을 방문한 차이잉원 총통 - 사진: CNA
중국 시장 진출에 실패한 데다가 내부 정책으로 청핀은 2016년부터 10여 개 지점의 영업을 중지했지만, 코로나 팬데믹이 일단락되면서 타이완 곳곳에서 새 지점이 오픈합니다. 작년 9월 28일 정식으로 개업한 신베이 신뎬(新店)점은 지하 1층, 지하 4층, 영업면적 63,000제곱미터로 최대 규모의 청핀지점입니다. 뿐만 아니라 올해 하반기 열릴 예정인 타이난 옌청(鹽埕)지점은 타이완 남부에서 가장 큰 서점이 될 것입니다.

지난해 9월 28일 개업한 청핀 신뎬(新店)점 - 사진: 청핀서점 홈페이지
우칭유가 2017년 세상을 떠난 후 현대무용가 린화이민(林懷民)은 “청핀은 많은 타이완사람들을 미학적, 문화적으로 계몽하는 역할을 했다”며 “책 한 권 또는 멋진 스위스칼을 사는 것부터 우리는 많은 일, 심지어 자신을 요구하게 될 것이고 이는 쉽지 않다”고 하면서 우칭유를 추모했습니다. 타이완 최대 서점인 만큼 청핀은 단순한 서점에서 벗어나 타이완의 문화발전에 크게 기여해왔으며 모든 문학청년의 마음 속에 진보의 씨앗을 뿌렸습니다. 또한 24시간 서점은 잠이 안 드는 밤에 우리와 함께하는 가장 좋은 동반자입니다. 3번째 24시간 서점이 될 숭옌점은 오래오래 영업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告別誠品信義18年『遊逛.最終回』特展,倒數31天與你珍藏最後回憶」,誠品。
2. 「誠品信義12/24平安夜熄燈!4大珍藏活動共度最後美好時光」,誠品。
3. 江昭倫,「誠品信義再見!單日湧8萬5千人告別 101點燈祝福」,RTI。
4. 陳一珊,「告別敦南誠品|台北最美好的意外!一場持續了21年不打烊的大冒險」,天下雜誌。
5. 葉素萍,「誠品敦南將熄燈 蔡總統重溫舊時光挑了這本書」,中央社。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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