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무치 화재 사고와 장저민의 사망 소식
-2022.12.03.-주간시사평론
지난 11월24일 중국 신장(新疆)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사고로 10명이 사망하며 제로 코로나 정책에 따른 엄격한 방역 조치에 대한 불만과 화재로 고인이 된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를 표하는 군중들이 백지혁명을 일으켰다. 이러한 현상은 1989년 베이징 티엔안먼(天安門)을 중심으로 중국 곳곳에서 피어난 민주운동 열기와 흡사한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중화인민공화국의 제3대 지도자 장저민(江澤民)이 백혈병과 다발적 장기 부전으로 11월30일 향년 9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장저민은 티엔안먼 사태 유혈 진압 후 제3대 중국 최고 지도자가 되어 양안간의 문을 활짝 열었던 주역이기도 하다. 그 반면 1996년 타이완해협 위기를 불러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장저민 사망 당일 중국은 중앙TV뉴스 속보 방식으로 이 소식을 전했다. 평소 정치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 내면에 무엇이 숨겨져 있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게 된다. 비록 장저민은 권력 핵심에서 물러난 지 오래이지만 보통 권위주의체제는 전 국가주석의 사망을 제때 발표하지 않기 때문이다. 혹시 우루무치 화재로 파생한 대정부 항의 시위의 초점을 돌리려는 의도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시진핑의 3연임 집권 초기에 별세한 장저민에 대한 공과를 논할 때 현재의 1인 독재로 보이는 시진핑과 비교하다 보니 장저민의 업적을 부풀려 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장저민은 확실히 덩샤오핑의 뒤를 이어 개혁과 부흥의 길을 텄지만 그는 반체제 인사에 대한 탄압을 더 강화하였고, 인권운동가, 민주주의 활동을 하는 사람 그리고 파룬공(법륜공) 성원들을 잡아들이며, 국가의 ‘안정 유지’에 주력했었다. 이른바 국가의 안정이란 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 나라를 발전시킨다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중국공산당의 집정 권력을 영원히 승계한다는 데 목적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장저민의 안정 유지 정책은 지금의 시진핑이 그의 정치적 통제력을 강화하는 튼튼한 기반으로 작용하였다고 본다.
국가주석이 되기 이전 1980년대 중후반에 장저민은 상하이(上海)시위원회 서기를 맡았다. 1989년 64학생운동의 물결이 일면서 중국공산당 내부에서는 티엔안먼 광장 시위 학생들을 동정하는 개혁파와 진압을 주장하는 강경파 간의 의견이 엇갈리며 당내 분열 현상이 드러났고, 그래서 공산당 정권이 파국적 위기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조짐도 보였다.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 덩샤오핑이 장저민을 총서기로 발탁하며 온건파 또는 개혁파로 불렸던 쟝오즈양(조자양)을 축출하였고, 쟈오즈양은 권력 핵심층에서 완전히 제외되며, 그후 죽을 때까지 연금되었다.
정치와 군사 및 인사권을 모두 한손에 쥔 장저민은 2004년 군사위원회 주석직에서 내려오면서 관직은 없지만 그는 상하이를 연고지로 하는 정치 군사 지도부들과 함께 막후에서 중국공산당에 대한 작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성과’는 2012년에 시진핑을 후계자로 선택한 것 등이 포함되어 있다.
베이징의 입장에서 볼 때 89년 티엔안먼 사태로 외교적 고립 상황 아래서 집권하게 된 장저민은 중국을 세계무역기구에 가입시키면서 엘리트 경제인들의 공산당 입당을 환영하는 한편 국외 투자자를 유치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는 공산당의 현대화를 이룰 수 있게 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고 ‘중국의 굴기’를 이끌어 내며 경제 강국으로 만들 수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회주의 국가 중국이 어느새 미국에 이은 세계 제2대 경제체로 부상할 줄 알았을까? 장저민의 ‘업적’을 하나 더 추가하자면 아무래도 2008년 하계 올림픽 주최권을 따낸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앞서도 언급했듯이 장저민은 국가의 안정 유지 노선을 고집한다는 이유로 중국공산당의 일당독재 집정 권력에 도전하는 모든 반체제인사에 대해 탄압했고, 그러한 안정 유지 명목 아래 오늘날의 시진핑이 무소불위할 만큼의 거대한 권력을 장악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어줬다고 본다.
파룬공에 대한 무자비한 진압을 발동한 건 1999년이다. 당시 근 1만 명의 파룬공 성원들이 전국 각 지에서 베이징의 권력중심 중난하이(中南海) 주변에 집결하며 평화적으로 수련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며 당 기관지에서 파룬공 성원들이 중난하이를 포위한다고 지적하였고 장저민 정권은 그들에 대한 진압을 단행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줄곧 국가의 안정을 강조했다. 안정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주장했는데, 그의 후계자들에게도 ‘안정’이란 구호는 매우 쓸모있는 통치 도구로 작용하고 있다.
봉쇄에 가까운 코로나 방역 조치로 우루무치 아파트 화재 사고의 진압이 늦춰져 희생자가 발생했다. 중국 국민들은 평소에 ‘자유’라는 것에 대해서 그리 신경을 쓰지 않는 듯하다. 태어나고 자라며 배우고 생활한 환경에 너무 익숙하다 보니 자유롭지 않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러한 현상은 학력이나 도농 환경에 따른 차이는 거의 없다.
현재 전세계 거의 모든 국가들이 위드 코로나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중국은 아직까지도 강제 격리와 대규모적인 항원 검사와 봉쇄 등 엄격한 수단으로 코로나 바이러스를 억제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중국 국민은 코로나 방역의 끝이 안 보인다는 좌절과 무력감에 빠지며 민원이 들끌고 있는 것이다. 중공당국이 11월 초순 방역 최적화라는 명목의 20조 규정을 선포하며 코로나 방역 조치를 개선하고자 나섰지만 제로 코로나라는 큰 그림이 변화하지 않고 각지에서의 봉쇄와 격리로 인한 혼란 상황은 계속될 것이라 여겨진다. -白兆美
원고. 보도: 백조미



Rti 중앙방송국
Rti 중앙방송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