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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세이션을 일으킨 펠로시의 타이완 방문

  • 2022.08.06
주간 시사평론
미 연방 하원의장 낸시 페로시 일행은 선풍적인 19시간 타이완 방문을 마치고 8월3일 오후 5시43분경 전용기를 이용해 한국으로 향했다. -사진 중화민국 외교부 제공

센세이션을 일으킨 펠로시의 타이완 방문

-2022.08.06.-주간시사평론-

8월2일 밤, 미 연방 하원의장 낸시 펠로시는 베이징당국의 각종 위협에도 불구하고 원래 아시아 순방 공개 일정에 없었던 타이완 방문을 전개하며 민주의 타이완을 부각시키는 효과를 발휘했고, 8월3일 오후 한국으로 향한 후, 펠로시 타이완 방문의 후폭풍으로 간주되는 중국인민해방군의 타이완 봉쇄에 가까운 실탄군사훈련이 이어졌다.

펠로시는 타이완 방문에서 워싱턴당국이 ‘타이완관계법’ 등을 근거로 하는 약속들을 확고히 실천하겠다는 정치적 메시지를 밝혀 타이베이당국의 높은 찬사를 받았고, 여야를 불문하고 펠로시를 환영하는 입장을 표명했다.

이번 방문은 8월2일 밤 10시 44분즈음에 전용기가 타이베이 숭산(松山)공항에 착륙하면서 전세계 주요 언론들은 타이베이에 초점을 맞췄다. 베이징도 예상했던 대로 거센 반발을 표출했다. 이날 밤 11시18분경 인민해방군은 타이완 주변의 6개 구역에서 군사훈련을 8월4일 정오부터 3일 동안 전개한다고 선포했는데 군사훈련의 범위를 볼 때 타이완을 3일 간 봉쇄하겠다는 것과 다름없다고 여겨졌다.

도착한 날 밤 늦게 (밤11시34분) 펠로시는 타이완 도착 성명을 발표했다. ‘미국은 민주주의 타이완을 지지한다는 약속을 실천한다’라는 내용이 담겨졌다.

거의 자정이 될 때 중화민국 총통부는 8월3일 펠로시 의장과 면담하며 영빈관인 타이베이빈관에서 오찬을 베풀 것임을 발표했다.

자정을 갓 넘긴 새벽 12시5분경 중국 국무원 타이완사무판공실은 민진당은 ‘타이완독립’ 기도를 포기하지 않으면 분신쇄골(粉身碎骨-몸과 뼈를 부수며 가루로 만든다는 뜻으로 참혹하게 죽는다는 뜻)할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타이베이시간 8월3일 새벽 1시27분경 미 백악관은 미국은 타이완독립을 지지하지 않지만 낸시 펠로시의 타이완을 방문하는 권리는 절대로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는 아무래도 미국의 중국정책에는 변함이 없다는 걸 베이징에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라고 본다.

도착한 늦은 밤에 이미 어머어마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는데 다음날 일정은 타이완에게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8월3일 오전 9시에 국회 교류가 있었고 당시 펠로시는 “타이완의 친구”라는 칭호는 자신에게는 아주 큰 찬미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10시43분 총통부에서 차이잉원 총통과 면담할 때 우선 수훈의식이 있었고 이어진 치사에서도 타이완-미국 간의 든든한 우의, 확고한 지지에 대해서 서로 확인했다. 차이 총통은 ‘군사적 위협 앞에서 우리는 위축되거나 물러서지 않으며 타이완해협의 평화를 수호하겠다고 강조했다. 펠로시 의장은 미국은 절대로 타이완에 대해 약속한 것을 저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한편, 자신의 타이완 방문은 앞으로 기타 미국의 고위층들의 타이완 방문을 위해 포석하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미국이 ‘반도체 지원법’을 통과함에 따라 미국-타이완 간의 경제 교류에 기회를 제공해줬다고 평가했다.

펠로시와 차이잉원은 오찬 후 비공개 회담을 가졌는데, 양자간 무역협정에 관한 의제가 토론되었다고 하며, 펠로시는 이에 협정 진전에 대해 낙관적인 발언을 했다.

낸시 펠로시가 아시아 순방길에 오르기 전 ‘타이완’을 공개 일정에서 밝히지 않았었고 우리 외교부도 처음부터 확실한 답을 주지 않았었는데 8월2일 밤 전용기가 민감한 항로를 피해 우회적으로 비행하며 타이완에 도착한 후 다음날의 일정도 무사할지 우려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를 넘어섰다. 2일 오후까지만 했어도 만약 펠로시가 방문을 하면 아마도 3일 오전 10시에서 12시 사이에 출국할 것이라는 정보가 입수되었었다. 그런데 3일 점심에는 차이 총통이 국빈관에서 오찬을 베풀었고, 이날 오후 펠로시와 차이 총통은 비공개 회담도 가졌으며, 오후 3시가 조금 넘었을 때는 타이완의 민주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는 타이베이시 소재 징메이(景美)국가인권기념관에 들러 인권과 민주운동 인사들과 회견했다. 이미 모든 면에서 민주화가 잘 된 타이완이지만 펠로시의 인권기념단지 방문과 관계자들을 만난 일정은 1989년 베이징 티엔안먼(天安門천안문) 사건 이후 1991년 펠로시가 티엔안먼 광장에서 플래카드를 들고 민주운동을 지지했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중국의 민주주의 사업을 위해 희생된 열사들에게 바친다-獻給為中國民主事業犧牲之烈士-To Those Who Died For Democracy In CHINA’라는 글귀는 베이징당국에게 충격적이었지만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피땀 흘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주 큰 격려가 되었었다.

낸시 펠로시는 타이베이에 도착한 시각부터 1박2일이라고는 하지만 19시간의 아주 짧은 일정으로 주요 인사들과 회동하며 미국의 타이완 민주주의를 지지하며 타이완에 대한 약속을 반드시 지키고, 앞으로 미국 고위층들의 타이완 방문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기를 희망했다.

8월3일 오후 5시53분 펠로시 의장 일행을 태운 전용기는 숭산공항을 이륙하며 한국으로 향했다.

끝으로, 베이징당국이 왜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이번 타이완 방문을 1997년 뉴트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타이완 방문 때보다 더 심각하게 여기는지에 대해 짦은 견해를 말씀드린다면 앞서 티엔안먼 광장에서 민주운동 희생자들에게 바친다는 플래카드 외에 펠로시의 티베트 정신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의 만남과 티베트 지지 등의 요인도 있는데, 낸시 펠로시와 뉴트 깅그리치와의 25년 전후의 가장 큰 차이점은 깅그리치는 타이완을 방문하기 전 중국을 먼저 방문해 고위층과 면담하였고, ‘하나의 중국’과 ‘현상유지’를 밝혔던 반면 펠로시는 중국을 방문하지 않았다.  하지만 두 의장의 비슷한 점은 뉴트 깅그리치는 당시 만약 타이완이 무력 침공을 받는다면 “미국은 반드시 타이완을 방위해 줄 것”을 밝힘에 따라 그후에 문제시 된 것이다. 즉 미국이 양안정책에 있어서 줄곧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했었지만 그때 명확한 전략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펠로시의 타이완 방문은 타이완에 대한 지지를 훨씬 더 명확하게 드러냈다는 게 중점이다. 베이징은 1997년 뉴트 깅그리치의 타이완 방문을 ‘수긍’하였는데 베이징의 기대와는 어긋난게 미국이 유사시 타이완을 보위하겠다는 발언을 했던 충격을 받았기에 깅그리치보다 더 강경한 펠로시의 타이완방문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서게 되었다고 본다.  

낸시 펠로시 의장의 타이완방문은 타이완이 인류 보편적 가치에 부합하는 사회라는 걸 세계에 보여준 계기가 되었는데, 이에 따른 후폭풍도 감수해야만 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월요일 타이완.한반도.양안관계에서 분석하도록 한다. -白兆美

-원고.보도: 백조미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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