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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잃어버린 보건기구-주간시사평론

  • 2021.06.19
주간 시사평론
세계보건총회 개최지. -사진: 장더허우張德厚 2016.05.DB

우리의 잃어버린 보건기구-주간시사평론2021.06.19.

건강은 국경이 없다. 질병도 국경이 없다. 신분,계급,성별,나이,,, 그 무엇도 건강이나 질병을 임의로 받아들이거나 거부할 수 없다. 그래서 인류가 공동으로 이를 대처해 나가기 위해 경험을 공유하고 서로 돕는다면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 건강의 증진에 분명 적극적인 영향을 주리라 믿는다.

중화민국은 1971년 유엔에서 탈퇴한 후 반세기 동안 국제사회에서의 처지가 어려워, 한때 ‘국제사회의 고아’라고 부르기도 했다. 1990년대부터 중국공산당과 절대 함께할 수 없다는 원칙을 깨고 실리적인 외교를 추진하면서 각종 국제기구 가입이나 복귀를 위해 타이완은 피나는 노력을 해왔다. 타이완은 2017년도부터 관찰원-옵서버 신분으로 세계보건총회에 참여할 수 있는 초청장을 받지 못했다. 연속 5년 여러 방면으로 세계보건총회 복귀를 위해서 노력을 해왔고 국제사회에서의 타이완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이 그 어느 때보다 많고 컸지만 여전히 총회 참여 목표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타이완의 WHO와 WHA 참여는 비단 ‘건강, 보건’ 이슈에 그치는 건 아니다, ‘정치’ 분량이 더 큰몫을 차지하고 있다고 본다.

이상은 예전에 프로그램에서도 언급했던 부분이다. 오늘은 우리는 어떻게 해서 세계보건기구의 대표권을 잃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회고해 보겠다.

세계보건기구(WHO)는 회원국 정부의 보건 부문 발전을 위한 원조제공, 전염병과 풍토병 및 기타 질병 퇴치 활동, 보건 관계 단체간의 협력관계 증진 등을 목적으로 발족되었고 우리는 창설 당시의 회원국이었다. 그러나 1971년10월26일 유엔 제2758호 결의문에 의거해 중화인민공화국이 중화민국의 회원국 자격을 대체하도록 해 1972년5월에 중화민국은 세계보건총회(WHA)의 대표권을 상실하였다.

주요 원인은 국제정세의 변화가 중화민국의 국제상의 지위를 동요시켰기 때문이다.

제5차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제396호 결의에 따르면 ‘유엔 총회가 각 회원국 대표권에 관한 결정은 유엔의 기타 기구 및 각 전문기구에도 적용한다’라고 되어 있다. 이 결의문이 바로 1971년 10월 유엔에서 중화민국이 퇴출한 후 다음 해인 1972년5월에 세계보건기구에서도 퇴출할 수밖에 없었던 주요 근거였다.

1971년11월, 당시 세계보건기구 제2대 사무총장, 브라질 의사 마르콜리노 칸다우(Marcolino Gomes Candau)는 다음해인 1972년1월 제49차 집행위원회 때 중화민국의 회원국 자격의 쟁의에 관해 토론할 것이며 72년5월에 제25차 세계보건총회를 개최할 때 집행위원회의 의견을 근거로 중화민국의 회원국 자격 거취를 결의하겠다고 각 회원국가에 통보를 했다.

이 소식을 접한 중화민국은 1971년12월1일 당시 행정원 위생서(衛生署-지금의 위생복리부) 옌춘후이(顏春輝) 서장이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에게 서한을 보냈다. 세계보건기구는 정치성 국제기구가 아니라는 걸 강조하면서 72년1월에 개최 예정인 집행위원회에서 우리의 회원국 자격을 토론하지 말 것을 희망했다. 당시 중화민국 외교부에서도 마르콜리노 칸다우 당시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을 유세하여 토론 의정을 철회하도록 하기 위해 우방국가들에게 협조를 요청했었다.

그러나 마르콜리노 칸다우 사무총장은 대표권 문제를 이미 의정으로 삼겠다고 모든 회원국가에 통지를 한 상황 아래서 이를 철회할 경우 공산주의 국가의 반발을 일으킬 것이라는 이유로 중화민국의 대표권 토론 일정을 유지했다.

1971년12월말, 중화인민공화국은 마르콜리노 칸다우 사무총장과 중화인민공화국의 회원국 자격과 회비 분담 및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직원 및 보건기술 협력 등 의제를 이미 논의하고 있었다.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지만 1971년도의 미국은 높은 실업률과 통화팽창으로 당시 제37대 미국대통령 리차드 닉슨은 미 달러화와 국제 금값을 디커플링하기로 결정하고 미화의 평가절하 문제를 그대로 손놓으면서 글로벌 경제에 충격을 가했고, 세계보건기구의 경비는 따라서 대폭 축소되는 시기였다.

이때 세계보건기구는 예산을 대폭 증가했는데,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이 운영 경비를 대주겠다는 행동은 세계보건기구 집행위원회 다수 위원들이 환영하는 바이며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의 가입을 통해 기구의 회비를 충실히 하겠다는 데 무게를 두었다.

드디어 올 것은 왔다. 중화민국의 회원국 자격을 놓고 1971년11월 WHO에서 각 회원국에 집행위원회가 곧 토론하겠다고 통보한 후, 1972년1월, WHO 제49차 집행위원회는 13표대 4표로 중화인민공화국이 대표권을 대체한다고 결의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WHO는 중화인민공화국은 세계보건기구에서 ‘중국’을 대표할 수 있는 유일한 정부라는 것이다. 집행위원회 결의에 따라 사무총장은 제25차 세계보건총회의 초청장과 임시 의정 및 문건 모두 베이징으로 보내도록 권한을 부여했다. 이로써 타이베이당국은 베이지당국과의 싸움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1972년5월, 세계보건기구 제25차 세계보건총회가 열렸다. 당시 76표 찬성, 15표 반대, 27표 기권으로 중화인민공화국의 대표권을 인정하는 결의안이 채택됐다. 중화민국은 세계보건기구의 회원국 자격을 상실했고, 세계보건총회 참여도 불가능했다.

그러다가 마잉주(馬英九-2008.5~2016.5) 총통 시기에 양안간의 정치 분위기가 완화되면서 2009년부터 2016년 사이 연속 8년 우리는 ‘중화 타이베이(中華台北-Chinese Taipei)란 명의로 세계보건총회에 관찰원-옵서버 신분으로 참여했었다. 그후 2017년부터 지금까지 연속 5년은 문전박대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jennifer pai

원고.보도: 백조미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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