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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먼 답사 3 -진먼에서 바라 본 양안관계, 학자의 시각-

  • 2024.09.23
臺韓. 在臺灣한인사회. 한반도. 양안관계 및 시사평론
국립진먼(金門)대학교 국제ㆍ대륙사무학과 루정펑(盧政峰) 교수. -사진: jennifer pai백조미

진먼 답사 3 -진먼에서 바라 본 양안관계, 학자의 시각

-국립진먼(金門)대학교 국제 및 대륙 사무학과 루정펑(盧政峰) 교수 인터뷰_2024.09.23.-


진먼 인상

‘진먼(金門)’에 대한 인상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면 2024년6월초 이전과 이후가 다르다고 우선 대답할 것이다. 실제로 진먼을 방문하여 현지인과 만나 그들의 인생 이야기, 그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듣고, 또한 직접 보고 느낀 결과 예전에 나 자신이 편견을 갖고 있었거나 세상이 변하여 달라 보였음을 깨닫게 되었다. 정권 다툼과 동족상잔의 내전이 벌어져 중화민국 중앙정부가 1949년 타이베이를 임시수도로 정할 때 진먼은 여전히 전투가 일어나는 곳이자 부흥기지라는 중대한 역할을 맡았기에 진먼은 그저 군사기지, 제한구역, 언제라도 전쟁이 터질 위험한 곳이라는 인상을 주는 섬으로 생각되어 왔었다.  

1992년11월7일을 기해 진먼은 누구든 자유로이 방문할 수 있는 지자체가 되었고, 2001년1월2일부터는 예전에 ‘공비’라고 부른 중국인 가운데 가까운 푸졘성(福建省) 주민들과 자유로이 왕래하게 되었는데 이보다 십수 년 전인 1987년11월2일에 이미 양안 민간 차원의 인적 왕래가 개방되었었다. 진먼이 개방된 게 몇 년 늦기는 하지만 양안 인적 교류 상황을 보면 출발 시점은 뒤졌지만 오히려 앞선 조치를 추월하는 현상을 보였다.

최근 8년 양안 간의 정치 분위기는 극히 냉랭하다. 심지어 해상 사고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양안 소3통 마저도 중단되었다가 올해 다시 마주(馬祖)와 진먼의 중국과의 소삼통이 회복되었다.

9월초, 전 진먼현의회 루즈취안(盧志權) 의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작성하면서 군사구역 시기와 지자체로 변화한 시기를 현지인이 몸소 체험한 바를 공유하였는데 오늘은 국립진먼(金門)대학교 루정펑(盧政峰) 교수와의 인터뷰를 통해 학자의 시각으로 본 진먼의 특수성 및 양안관계를 알아본다.


진먼협의ㆍ소삼통ㆍ대삼통

진먼은 베이징 관할의 중국대륙과 극히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고 타이완을 지키는 최전방이었다. 오랜 기간 군사 통제를 받았던 곳이었고 중화민국 실질 관할지역 가운데 군사적 대치가 가장 첨예했던 곳이다. 21세기로 접어든 후 양안 간은 ‘소삼통’을 합의하며 인적 교류가 매우 활성화되었다. 우리가 말하는 양안 ‘소삼통’은 중화인민공화국 푸졘성과 진행하는 소규모적인 통상(무역)ㆍ통항(교통)ㆍ통우(우편)를 지칭하는데 군사 최전선 진먼과 마주 외에도 가오슝과 가까운 타이완해협에 있는 아름다운 어부들의 섬으로 불리는 펑후(澎湖)도 이 조치에 포함되어 있다. 모두 섬들이다. 양안 소삼통 개방 이후 가장 많이 이용되었던 거점은 바로 진먼이다. 그건 진먼의 편리성은 마주 또는 펑후에서 중국으로 가는 소삼통 대비 훨씬 뛰어났기 때문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종식된 후 대륙진출 타이완 기업이나 임직원들은 다른 어느 곳보다 진먼을 이동 수단 중의 최우선으로 하였다고 한다. 루정펑 교수는

(음원: 루정펑, 국립진먼대학교 국제ㆍ대륙사무학과 교수)

진먼은 과거의 군사적 긴장과 양안간이 단절되며 대립하였던 환경에서 벗어났고, 진먼주민은 대륙, 샤먼(廈門)과의 상호 왕래가 확실히 빈번하며 일반 타이완인의 중국대륙 체험이나 왕래 방식과 비교할 경우 진먼인은 타이완인과 확연히 다르다 (金門已經慢慢的從過去的這種軍事緊張、兩岸的隔絕對立,慢慢的金門人跟大陸、廈門的關係,他們確實跟大陸的互動往來,跟臺灣人對中國大陸的這種體驗,或者是他們的往來模式,真的是完全不一樣。)’고 지적했다.

지난 2008년에 타이완과 중국은 ‘대삼통’이 개방되었기는 하나 실제로 양안 인적 교류에 있어서 진먼을 경유하는 사람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본다.

20세기 후반 타이완이 대륙을 능가한 여러 우수성 가운데 중화 전통 문화를 보전하며 발전해 온 것을 비롯하여 민주주의 체제와 고도의 경제 성장 등을 들 수 있다. 그래서 예전 중화민국에서도 ‘궁극적인 통일’을 추구하던 시기를 말한다면 지금처럼 중공이 언제 도발할까 걱정하는 게 아니라 자부심, 긍지, 자신감이 넘쳤었다. 그래서 우리가 대륙을 흡수통일한다는 생각을 하였던 시대였는데 지금은 ‘통일’이라는 단어 자체가 타이완에서 거의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로 사회대중의 관념이 변화하였고(정책과 교육의 영향이 큼) 여론 조사에서 통일을 바라는 응답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반면 베이징은 거리낌 없이 ‘타이완은 중국의 일부분으로 조국통일을 이뤄야 한다’고 주장하며 군사, 경제 등 수단으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진먼주민들의 마음은 조금 다르다. 유사한 상황을 생각하며 한반도는 어떠할지 알고싶다. 남북한 주민이 해상에서 만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하는지 잘 모르는데 만나도 되는 건지도 잘 모른다. 그럼 진먼의 상황을 볼 경우, 지척의 거리에 있는 샤먼 주민과 진먼 주민이 해상에서 만나면 무엇을 할 것인지 또 목적은 무엇인지는 양안 교류의 제도화 이전과 이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양안 협상의 중개자로 적십자사의 역할이 컸던 1990년9월, 해상 선박을 이용해 밀입국한 상대방 시민을 원래 타고온 선박과 당사자를 함께 돌려보내고자 협상을 진행한 결과가 바로 ‘진먼(금문)협의’이다. 쉽게 말해 양안간은 사법공조 협의를 도출시켰고 범죄자 송환이 그 후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양안간 밀입국자만 있는 건 아니다 밀수입도 자주 일어났었다. 진먼은 양안간 포격전투가 치열했었고 이른바 10만 대군이 주둔해 있던 곳이었지만 진먼과 샤먼 수역에서의 불법 무역은 첨예한 대치 시기에도 존재했었다. 숙어에 ‘목숨을 내놓는 장사꾼은 있어도 밑지고 장사하는 사람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즉 아무리 군사적으로 대치를 하거나 서로 수용하지 못하는 이데올로기를 가지고 있어도, 먹고 살기 위한 민생 수단으로 또는 재물을 축적하여 부를 누리기 위해 불법 거래를 하는 사람은 어디에든 존재한다. 루정펑 교수는 그동안의 양안간 협상을 보면 불법 무역 왕래를 근절하기 위해 양안간 제도화, 법제화 무역 환경을 만들어줬고, 진먼은 이러한 발전에 상당히 이득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옛날에는 밀수를 했지만 지금은 정당한 방식으로 제도와 법규에 따라 거래를 하므로 상업무역의 왕래는 더 번영할 수 있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루정펑 교수는 이러한 배경 아래서 진먼주민은 샤먼에 대해 또는 전반적인 중국대륙에 대해서 공동생활권이라는 개념을 갖게 되며 샤먼 또는 푸졘성에 대한 친근감은 타이완보다 더 깊어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전에도 수 차례 지리적 거리를 언급한 바 있는데 타이완과 진먼은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다. 그러나 진먼과 샤먼은 선편을 이용해도 30분이면 닿는 곳이고 요금도 항공권보다 훨씬 저렴하다. 그러니 필요하면 샤먼으로 건너가 관광이나 쇼핑을 할 수 있고, 진먼인 절대 다수가 가까운 푸졘성 출신들이라 성묘 차 매년 소삼통을 이용해 대륙을 방문하다보니 ‘언제 양안 군사 대치가 있었냐?’라고 진먼주민들이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정체성

진먼 답사 2에서도 언급했던 게 정체성에 대한 진먼주민의 견해이다. 루정펑 교수는 진먼은 타이베이와 멀리 떨어져 있는 낙도이며 양안 군사 대치의 전쟁터였기에 스스로를 ‘진먼인’으로 인식해 왔는데 진먼이 군사 통제에서 정상적인 지자체가 되고 소삼통을 이용하고자 타이완섬에서 진먼으로 건너와 중국대륙으로 이동하는 여객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진먼주민은 점차 그들도 사실은 ‘타이완인’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만약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바라볼 경우 전통적인 사람이라면 옛날 타이완인은 중국에서 건너왔으니 자신도 ‘중국인’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며 그래서 진먼 현지 주민들은 스스로를 ‘진먼인/타이완인/중국인(푸졘인)’이라는 3가지 신분을 동시에 수용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음원: 루정펑, 국립진먼대학교 국제ㆍ대륙사무학과 교수)

(談到金門人的認同,他們因為有離島,甚至是這種戰亂啊。這種軍事對峙的這種經驗,所以他們認為他們是屬於金門人,因為這個跟大陸也長期隔絕,那跟臺灣又是地理上距離的搖遠,但是慢慢的兩岸有小三通的往來,然後有更多人,像臺灣的這些旅客來往金門之後,他們也慢慢的覺得他們其實也是臺灣人。那當然在這種歷史或是文化上,再加上過去的傳統概念,我們其實過去的臺灣人也都認為自己是中國人,所以在認同上,這確實是出現比較多同時可能會有三種身份的存在。)


(9월초 방송 내용 발췌)

“진먼은 규모가 작아 국제공항이 없다. 그래서 현지 주민들이 진먼과 샤먼을 잇는 ‘진샤(金廈)대교’의 건설을 촉구하는 가장 큰 원인은 그저 ‘배를 탈 필요없이 차를 몰고 샤먼에 갈 수 있어서’가 아니라 지척의 거리에 2026년 준공될 예정인 샤먼 샹안(翔安)국제공항이 있어 진먼인의 출국이나 국제 여객의 진먼 관광이 가시적이라서 그렇다”고 국립진먼대학교 루정펑(盧政鋒) 교수가 인터뷰에서 분석한 바 있다.

(음원: 루정펑, 국립진먼대학교 국제ㆍ대륙사무학과 교수)

국립진먼대학교에 중국대륙 학생들이 유학을 오며 양안간의 학생들이 공동으로 여러 활동에 참여하며 서로의 이해를 증진하고 있다. 중국 학생들은 배움의 태도나 성적 면에서 우수하며 진먼대학교에서 학부 과정을 마친 후 타이완의 국립타이완대학교, 국립정치대학교, 국립타이완사범대학교로 건너가 석사 과정 공부를 하는 비율은 90%에 달한다고 한다.


한때는 전쟁터였기는 하나 30년 전만했어도 진먼은 샤먼보다 훨씬 더 발전되어 있었다. 지금은 첫눈에 봐서 샤먼은 완전 국제도시로 성장해 있고 고층 빌딩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이와 달리 진먼은 여전히 고풍스러운 전통 건축을 유지하고 있으며 푸르른 들판과 녹음이 짙은 언덕이 그대로 보전되어 있어서 자연미가 넘치는 곳으로 진먼의 농지는 상반기는 밀, 하반기는 수수 등을 재배하는데 비행기를 타고 상공에서 내려다 보면 ‘언제 여기에서 전쟁이 났었나?’라는 의구심이 생기면서도 너무 아름다운 풍광에 취하게 된다. -白兆美

취재ㆍ보도: 백조미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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