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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어놓을 수 없는 연관성, 한반도와 양안 정세

  • 2023.07.31

떼어놓을 수 없는 연관성, 한반도와 양안 정세

-2023.07.31.-타이완ㆍ한반도ㆍ양안관계ㆍ시사평론-

1894년 동학농민혁명으로 인한 청일전쟁 발발하여 타이완이 일본 식민지가 됨, 191211일 중화민국 건국 이후, 일본의 침입, 국공(중국국민당-중국공산당) 내전, 1945년 일본 패망 후 타이완광복, 1949년 중화민국 국민정부 타이완으로 천도, 19928월 중화민국-대한민국 단교, 1993년 주타이베이한국대표부/ 1994년 주한국타이베이대표부 설립.

191931일 한반도 독립만세 운동, 1919411일 상하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일본의 중국 침략 기간 임시수도의 소재지가 수차례 바뀌었고, 1940년 전쟁 중의 중화민국 임시수도가 충칭으로 옮겨질 때 대한민국 임시정부도 충칭에 자리하였음), 1945815일 한반도 해방, 19488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1950625일 북한의 남침 ‘6.25전쟁 발발’, 1953727일 한반도전쟁 정전협정 체결.


지난 목요일(7/27)은 6.25전쟁으로 불리는 1950년 한반도 전쟁이 발발한 지 3년1개월여 지속된 후 유엔 대표(유엔군 총사령관) 마크 클라크, 북한 대표(북한군 최고 사령관) 김일성, 중공 대표(중국 인민지원군 사령관) 펑더화이가 판문점에서 정전협정(Korean Armistice Agreement)을 체결한 날이다. 올해로 70년을 맞게 되는데 70년이란 세월 동안 한반도는 여전히 기나긴 휴전 상태를 의미하지 전쟁이 끝난 것은 아니다.

대한민국에서는 국가보훈부가 ‘위대한 헌신으로 이룬 놀라운 70년’이라는 슬로건을 정하였고, 부산에서 20여 참전국가 대표들이 참석한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의 주재로 유엔군 참전의 날 및 정전협정 70주년 기념 행사를 가졌는데 윤 대통령은 참전 유엔군의 희생과 헌신으로 공산 전체주의 세력으로부터 자유를 지켜낼 수 있었다며 그동안 지켜온 자유의 가치가 미래 세대에게도 이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인민군 승전일’ 70돐이라는 명의로 평양에서 러시아 국방장관(세르게이 소이구), 중국 전인대 상무위원회 부위원장 겸 중공중앙정치국 위원(리홍중)이 참석한 가운데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열병식을 사열했다.이들 3국은 공산주의 최후의 보루로 무력을 과시하며 서방세계와 선을 그은 듯 보였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는 시점에서 러시아 국방장관이 북한의 ‘승전일’ 행사를 위해 수십 년 만에 평양을 방문한 것은 현대 공산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상통하는 것 외에도 1991년 구소련이 해체된 지 32년이 지난 이제서야 러시아가 북한에 파견한 최고위급 국방 관원이 어서 주목을 끌었다. 혹시 전쟁에 필요한 무기 지원과 관련이 있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하다.

중국측은 7월27일 국방 대변인(탄커페이)이 중공군은 ‘항미원조(抗美援朝)’의 정신을 더욱 확대해 선양하며 전쟁을 대비한 전투능력을 전면적으로 제고할 것이라고 발표하였는데, 바로 전날(7/26) 김정은은 북한 영내에 있는 ‘중국인민지원군열사묘지’를 찾아 경의를 표하고 한반도 전쟁에서 전사한 마오저둥의 장남 마오안잉(毛岸英) 묘지에 헌화하였는데 이에 대해 중국 외교 대변인(마이닝毛寧)은 북한이 중국인민지원군의 업적을 소중히 여기는 것을 보여준 것이고, 새로운 역사적 시기에 양국 전통 우호관계의 계승과 발전을 구현한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한반도 전쟁의 정전협정은 오늘날의 동아시아 지정학적 기반을 마련한 것이기도 한데, 지금 미ㆍ중 갈등이 아무리 심하다 해도 73년 전에 미군과 중공군이 한반도에서 서로 총구를 겨눴던 것처럼 2020년대에 양국이 무력으로 대결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대리전쟁의 가능성은 전혀 불가능한 게 아니라 우리도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양안관계와 남북한관계를 같은 저울에 놓고 비교하는 건 무리이다.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분단이나 각자 독립의 결과를 낳는 데까지의 발전 상황은 상당히 다르다. 그렇지만 만약 양안간 전쟁 폭발 가능성을 말할 경우 지정학적으로, 정치외교와 군사 등 어느 면에서 보더라도 단순히 베이징이 타이베이를 무력으로 친다는 것으로 귀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7월27일 평양에서 열린 행사에 중ㆍ러 고위층이 참석한 것을 좀더 의미있게 바라볼 경우, 어느날 중공군이 타이완해협에서 전쟁을 일으킬 작정을 한다면, 북한은 한국주둔 미군을 견제하고, 러시아는 일본주둔 미군을 각각 견제하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높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지금 서방세계가 우크라이나에 각종 지원을 해주고는 있지만 파병까지는 못하고 있으며, 직접적인 참전도 없다. 이를 양안관계에 적용시킬 경우 타이완이 얼마나 위험할 것인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비록 현재의 세계는 미국이 군사나 경제, 국력에서는 최고의 패권국가로, 기타 버금간다는 국가라 해도 짧은 몇 년 안에 같은 위치에까지 도달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지금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는 방식 중 가장 효과를 보는 게 반도체 공급망 재편이 아닐까 생각되는데, 반도체 기술과 생산이 정체되면 첨단과학기술로의 발전이 어려워 중국이 미국을 따라가거나 도전하는 건 훨씬 더 어려워진다는 것도 명확하다.


근현대사 속의 청나라와 조선왕조, 중화민국과 대한민국은 떼어놓을 수 없는 운명적 연결성이 있다. 1894년 동학농민혁명이 일면서 일본군이 합류해 진압한 후 서울에서 떠나지 않자 청나라가 개입하면서 청일전쟁이 발발하였고, 타이완섬과 주변 도서들이 일본에 넘어가 반세기가 지난 후에서야 제2차 대전의 종식으로 타이완이 당시의 중화민국 정부로 이관되었다. 그러다 1950년1월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애치슨이 동아시아에 대한 군사 방위선을 그은 이른바 ‘애치슨 라인’에서 마침 한반도와 타이완 그리고 인도차이나반도가 라인의 밖으로 제외되었고 그래서 김일성이 한반도 무력통일을 꿈꾸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는 등의 역사적 사실에서 서로의 운명에 영향을 가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애치슨 라인을 발표한 시기, 미국은 타이베이에 임시수도를 정하고 중국대륙을 수복하겠다는 장졔스(장개석) 총통 정권을 포기하기로 하였다는 것도 이미 잘 아는 사실인데, 1950년6월 한반도에서 전쟁이 폭발하면서 미국이 한국과 타이완은 이데올로기 뿐 아니라 지정학적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위치라고 여기며 참전하게 된 것인데, 이때 중화민국 국군의 한반도 전쟁 파병은 미국에 의해 저지되었었다.

한반도의 불행, 6.25전쟁이 없었다면 미국이 타이완을 보호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그래서 중화인민공화국이 무력으로 타이완을 점령하는 사태가 벌어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렇기에 냉전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한반도 전쟁에서 타이완이 참전하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 편에 서면서 6.25전쟁 정전협정 이후 70년의 세월을 거쳐오며 오늘날과 같은 민주주의의 타이완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여긴다.

한반도 전쟁에서 가장 큰 피해자는 한반도 국민이다. 남이든 북이든 전쟁에서 가족을 잃거나 헤어져 평생 분단의 아픔을 안고 살아가야 했고, 수십 년의 고생 끝에 한국은 드디어 빈곤에서 탈출해 세계 경제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데 성공하였다.

북한은 전쟁 후 더큰 각고를 감수해야 했는데 피해자는 역시 북한 국민이다. 냉전의 종식을 고하는 1990년대 소련의 해체 이후 전체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그동안 북한에 지원했던 걸 끊어버리게 되었고 김일성 정권에 위기가 닥쳤지만, 김씨일가가 무려 75년 동안이나 독자적으로 정권을 단단히 잡고 있을 수 있는 기초는 강압, 독재, 세뇌, 영웅주의 등과 더불어 한반도전쟁이 1953년7월에 진정으로 끝난 게 아니라 아직도 ‘휴전상태’라는 특수성에도 기인했다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한국에서는 남북평화협정을 원한 것이라 사료된다.


중화민국(타이완)과 대한민국의 관계를 말할 때 단교 이후에 국가 원수나 중앙정부 관원들의 상호방문과 국방군사와 외교가 1992년8월 이전처럼 유지되지는 않고 있지만 기타 인적교류와 경제 및 문화 등 차원의 관계는 상호 껄끄러울 만큼의 부담은 없고, 매우 좋다고 평가된다.

올해로 단교 31년차이자 상호 대표부 설립 29주년과 30주년을 맞는다. 지난 30년 동안 양국의 관계는 더없이 가까워졌고 앞으로 한층 더 관계 발전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간다. 따라서 우리는 30년 전에 했던 것처럼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기에 어떻게 도와줬고, 1992년 단교 때 대사관 등 우리의 재산을 빼앗겼다는 걸 더 이상 끄집어내어 서로 불편하게 하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白兆美

원고ㆍ보도: 백조미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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