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문화협회 및 근대미술의 이해-린만리林曼麗 교수 인터뷰
-2022.04.04.-타이완.한반도.양안관계-
한국어 사전에서 ‘깨끗하고 시원하며 맛이 좋은 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또는 설탕을 달게 타서 끊인 물’로 해석된 ‘감로수’, 1920년대 타이완 예술가의 작품 중 ‘감로수甘露水’라는 이름의 조각작품이 100년 간 사라졌다가 최근에 대중 앞에 나왔다.
(1세기 동안 사라졌던 황투수이(黃土水) 작품 ‘감로수’. -사진: 백조미)
황투수이(黃土水-생몰: 1895년~1930년), 타이베이 멍쟈(艋舺, 현 완화萬華구) 출생, 일제시대 타이완 조각가, 타이완 첫 번째 일본으로 건너가 미술을 공부하였고 일본제국미술전람회에 입선한 예술가이다.
그의 작품은 타이완의 향토적 이미지를 서양 조소에 담아낸 게 특색이며, 목각, 이소(흙으로 빚는 조소), 대리석 조각, 구리 주물 등 재료로 구성한 시리즈 작품들을 창작했고, 이중에 ‘감로수’, ‘석가 출산(出山)상’, ‘물소 군상(水牛群像)’ 등은 특히 유명하며, 그는 타이완 근대 조소예술의 선구자로 꼽히고 있다.
3월28일(월) 전 국립고궁박물원 원장, 전 타이베이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현 국가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린만리(林曼麗) 교수가 특별 강의 해설을 진행했다.
1921년10월, 타이완 예술가 황투수이(黃土水)는 조소 작품 <감로수(甘露水)>로 일본제국미술전람회에 입선했다.
소녀가 조개껍질에서 탄생하는 당당한 모습은 마치 암흑에서부터 이 세계로 걸어나오는 듯하다. 그녀의 평안하며 굳센 모습은 타이완의 문예부흥시대를 곧 맞이한다는 걸 상징했다.
1921년10월17일, 타이완문화협회가 발족되었다. 발기인 장웨이수이(蔣渭水)가 발표한 ‘임상 강의: 타이완이라는 이름의 환자’라는 글에서 타이완은 “지식 영양 실조” 질환이라고 진단하며 반드시 문화운동을 통해 치료해야 하는데 문화운동을 추진하는 조직은 바로 타이완문화협회라고 밝혔다.
(천즈치(陳植棋)의 1927년 작품 '부인상'은 화가의 소박한 신혼 아내를 화려한 붉은 예복을 배경으로 그렸다. 국가문화예술재단 이사장 린만리(林曼麗) 교수가 화가 천즈치와 '부인상'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사진: 백조미)
(백조미 질문: 20세기 일본통치시기에 일본의 미술과 더불어 서양 사조 및 교육의 영향을 받았지만 이중에 그래도 매우 ‘향토적’인 예술가가 존재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그들은 어떠한 사명감이나 어떠한 예술을 추구했는가?)
린만리 교수 (음원): “비록 그 당시 타이완은 일본 치하에 있었고, 일본을 통해서 서양 문명을 배웠지만 이와 동시에 타이완인은 부단히 반성하며 타이완인이 일본이 통치하의 차별 대우 아래서 무엇이 우리의 토지이고 우리의 국가이며 우리의 문화인가, 우리의 가장 독특한 면은 무엇인지를 숙고했습니다.”
세계 제1차대전 이후 일본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대에 민족 자결 사조와 자유 민권운동의 충격 아래서 도쿄에 체류 중인 타이완 청년들은 식민통치 하에 받는 차별대우를 검토하며 집회를 조직하는 계기가 되었고, 린시엔탕(林獻堂)은 타이완의회 설치 청원운동을 주도하며 차이후이루(蔡惠如)와 도쿄에서 <타이완 청년>잡지의 출간을 이뤄냈다. 장웨이수이 등은 타이완 내부에서 타이완문화협회를 성립시키며 민중의 슬기를 일깨우고 사상 해방과 문화예술 계몽을 추진하는 첫 단추를 꿰는 선구자 역할을 담당했다.
문화협회가 추진한 문화운동은 세계 사조의 영향을 받아 새시대의 회화, 조각, 소설, 연극, 영화 등 새로운 시대를 반영하는 문화예술이 탄생하였고 문화운동과 맞물려 타이완에 새로운 예술 콘셉트를 주입했다.
(백조미 질문: 미술관/박물관의 주요 기능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린만리 교수 (음원): “미술관,박물관의 주요 기능은 현시대 살고 있는 사람들과 연계되어야 하며 대화를 나뉠 수 있어야 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미술관이나 박물관은 존재할 의미가 없습니다.”
뤼미에르 – 타이완 문화의 계몽과 자각- 전시회는 행정원 문화부와 재단법인 푸루(복록福祿)문화재단이 후원하고, 린만리 교수가 기획감독하며, 역사, 문학, 연극, 예술, 원주민과 여성, 법률 분야 학자들로 연구팀을 구성해 100년 전의 시각과 공간이라는 배경 속 사회운동과 발전에 초점을 맞춰, 예술작품과 문헌을 아우르며 상호보완 서술하는 방식으로 1920년대에서 1940년대의 문화협회와 관련 인물들이 살았던 사회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타이완문화협회에서 문화 수준을 제고시키고자 하는 행동과 정신을 반영하고 100년 전 타이완 문화의 계몽과 자각을 만나보도록 하는 전시회이다.
(백조미 질문: 이번 전시회가 전달하고자 하는 기획 의도, 그 특징은 무엇입니까?)
린만리 교수 (음원): “뤼미에르 – 타이완 문화의 계몽과 자각- 전시는 바로 이것(타이완의 정체성)을 탐구해 보려는 전시입니다. 그 시대의 사람들, 그 시대의 수많은 창작가들, 그들은 사실 일본인 통치하에서 일본을 통해 서양 문명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그들은(문화운동, 창작가들은) 여전히 (자국)문화의 독창성과 주체성을 표현하기 위해 견지했었습니다. 그건 그들의 중심사상이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회도 바로 그런 걸 탐색하고 연구하려는 의도에서 기획된 것입니다.”
전시는 ‘생명의 원동력’, ‘풍경의 창조’, ‘퍼블릭과 모던’, ‘자각의 현대성’, ‘현대의 메아리’ 등 5개의 주제 파트로 나뉘어 선보였다.
1920년에 ‘타이베이사범학교’로 개교해 초등학교 교사 양성의 요람이었던 현 국립타이베이교육대학교 소재 미술관(Museum of National Taipei University of Education, MoNTUE)에서 ‘타이완문화협회’창립 100주년을 맞은 2021년, 그 시대의 문화와 예술을 현 시대 눈높이에 맞춰 특별 기획하여 ‘뤼미에르-타이완 문화의 계몽과 자각’ 전시회를 개최하였다.
1920년대에서 40년대 사이 타이완 예술가 열 명 중 아홉 명은 사범학교 출신이라고 해도 과언을 아닐 정도로 예술 인재들이 바로 이곳 타이베이사범학교에서 속출했었다.
1895년 일본에 넘어간 타이완은 일본 통치 20여 년이 지난 후 1920년대에서 30년대 앞뒤로 20년 간 활력 넘치는 문화 운동과 문화 모임들이 많았다. 이중 1921년10월 장웨이수이의 발기로 ‘타이완문화협회’가 발족되었다. 성립 취지는 ‘타이완 문화발전에 힘을 보태자’이며, 독보사(讀報社), 도서관 등 문화 홍보를 위한 기관 설립을 기획하였는데 기획과 설립 과정에서 당시 일본인 통치 세력에 억압 받고 저지를 당했었지만 타이완문화협회가 주도한 활돌들은 그 당시 사회에 심원한 영향을 미쳤다.
이러한 사상 계몽과 조직의 발족은 바로 지식층들이 외래의 압박에서도 스스로의 정체성을 되찾고 문화 부흥과 발전에 헌신했던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거대한 사조의 변화가 이뤄지는 그 시대에 살던 타이베이사범학교와 의학교 학색들은 기숙사에서 잡지를 돌려가며 보고 있었다. 바로 일본 됴쿄에서 타이완 유학생이 편집한 ‘타이완청년’과 ‘타이완’이라는 잡지였다.
사실 ‘타이완문화협회’가 1921년에 발족될 때의 주요 성원은 바로 타이베이사범학교와 의학교의 학생들로 구성되었었다.
국립타이베이교육대학교 미술관(MoNTUE)에서는 2021년12월18일부터 오는 2022년4월24일까지 전시하며, 이어서는 남부 가오슝(高雄)시립미술관에서, 그 뒤를 이어서는 중부 타이중(臺中)시 소재 국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한다. 타이완의 근대 문화와 예술을 이해할 수 있는 전시라 생각하며 꼭 추천해 드리고 싶다. –白兆美
취재.영상.보도: 백조미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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