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전쟁, 영국 단파방송의 유럽 부활-2022.03.07.-타이완.한반도.양안관계
단파방송을 송출하는 쪽과 청취하는 쪽은 서로의 역할이 중첩될 수 있는데 서로 상대방의 팩트나 뉴스를 자신에 유리한 선전물로 사용할 수 있다. 19세기에는 펜 한 자루는 모제르총 3천 자루에 비견된다는 말이 있었고, 나치 정권의 선전 담당 요제프 괴벨스는 국제방송을 한계가 없는 매체라고 했으며, 이를 국제 외교와 설득 또는 협박할 수 있는 주요 도구로 간주했다.
만약 언론매체와 전쟁을 묶어서 20세기의 분쟁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인쇄매체(프린트 미디어) 전쟁,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특히 국제단파방송을 포함한 라디오방송 전쟁, 베트남전쟁 때는 TV방송 전쟁, 1차 걸프전(1991년) 때는 위성과 유선TV 전쟁, 제2차 걸프전(2003년) 때는 TV 라이브방송 전쟁과 인터넷 전쟁이라 할 수 있다.
20세기 이데올로기로 편가르기가 명확했던 양대 집단의 첨예한 대치 시절 즉 냉전시기에 전세계적으로 각 국 정부가 지원하는 단파방송이 대세였다. 특히 자유와 인권에 대해 알지 못했던 사회주의, 공산주의 체제 하의 국민들을 대상으로, 또 특히 전쟁이 진행 중인 곳에 사는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파간다 단파방송이 중요시되었었다.
비록 우리는 지금 아날로그 시대에 느꼈던 옛스러운 감성을 그리워한다 해도 영락없는 디지털세계에 살고 있다. 오늘 방송은 이데올로기, 단파, 아날로그라는 단어로 시작을 했는데, 그건 국제단파방송에 대해 언급을 한 3월4일자 영국 가디언지의 보도가 번쩍하며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옛날 이야기가 아닌 지금 진행 중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단파방송 송출을 재개했다는 최신 소식이다. 단파방송의 부활은 특성상 오랜 기간 평화로울 때보다 무슨 큰 사건, 예컨대 전투나 전쟁 같은 일이 발생할 때 더 요긴하게 쓰이며 의존하게 된다.
중화민국의 단파라디오방송은 난징에 수도를 뒀던 시대에 이미 발족되었었다. 1934년 집권당의 선전기구로 쓰였던 중국국민당 중앙광파사업관리처에 ‘강력단파전대’를 설립해 선전 범위를 국제로까지 넓이는 단파방송이 정식 탄생하였는데, 1936년 중앙광파사업관리처 우다오이(吳道一, 생몰: 1895년~2003년)처장을 책임자로 한 중앙단파광파전대 주비처가 성립돼 영국 마르코니사에서 35킬로와트 송신기를 비롯해 방송설비, 안테나, 발전기 등등의 설비를 구매했고, 관계자들은 영국으로 건너가 라디오 방송에 대한 실습과 설비 제조를 견학했다. 본격으로 단파방송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건 일본군이 1928년부터 중국대륙을 침법하더니 대규모적인 전쟁으로 치달았던 1937년부터이다. 참혹한 살육에까지 번진 일본군을 대항하는 대일항전을 선포한 때부터라 할 수 있는데, 당시 장제스 총통이 전면적인 대일 항전 선포를 바로 이 방송을 통해서 국제에 전하였고, 그때의 방송국은 수도 난징이 일본군 손에 들어가 지금의 스촨성 중칭(당시 임시수도)으로 방송 설비가 옮겨졌고, 시험방송을 거쳐 정식 개국한 건 1939년2월이었다. 당시 국제선전을 위한 방송으로 일본의 중국대륙 침략전쟁과 일본군 만행을 세계에 알리고자 집권 중국국민당 산하 중앙선전부 국제선전처가 중앙광파사업관리처를 맡아 관리하여 시작된 것이다. 참고로 1936년2월 수도 난징에서 송신한 ‘난징단파광파전대’의 호출부호는 XGOX(9460kHz)였고, 1939년2월부터 정식 방송한 중앙단파광파전대는 국제광파전대(국제방송)으로 이름을 변경하였고 XGOY라는 호출부호를 썼는데 사실 그당시 중화민국의 국제방송 호출부호는 VOC였다. Voice of China로 후에 타이완에서 성립한 자유중국의 소리(Voice of Free China)의 전신이기도 하다. 1940년에는 전쟁으로 중칭에 임시수도를 뒀기 때문에 국제방송은 ‘중칭 중국국제광파전대’라는 명의로 대외 송출했었다.
보통 1961년8월15일부터 중화민국에서 한국어로 방송을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그건 중화민국정부가 국공내전에서 패해 타이완으로 건너와 ‘VOFC자유중국의 소리’ 대외방송을 성립한 후에서야 한국어방송이 다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화국체제가 건립된 후의 국제방송을 보면 1938년2월에 9개 언어, 1941년에는 17개 언어로 증가했는데, 바로 이때(1941년) 한국어도 포함되었었다. 전쟁으로 인해 전세계에 중국대륙에서 발생하고 있는 실제 정황을 대외에 알리고 국제사회의 협력을 호소하기 위한 방송이었다.
20세기는 그랬다.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만약 발생하였다면 무선, 단파를 이용해 선전을 하거나 사실을 보도했고 혼돈 속의 시민들도 라디오방송을 매우 의존했었다.
단파를 이용한 방송은 세계 제2차 대전 당시 선전 도구로 요긴하게 쓰여졌고, 냉전시대는 국제단파방송의 전성기라 할 수 있다.
새로운 과학기술이 속출하면서 아날로그시대가 저물었다고는 하지만 라디오는 늘 살아 숨쉬고 있다. 이번 단파방송이 다시 중요해진 원인 중의 하나는 현재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해 현지에 외부 소식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부활시킨 것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국제단파방송들이 그동안 프로그램 편성과 송출 시간을 줄이거나 폐지하는 등의 사태가 계속되어왔다. 그런데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BBC가 단파를 부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러시아가 이번에 외부 언론을 차단한 건 비단 BBC영국 공영방송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러시아의 국가 정보 통신 및 매스컴 감독기관 로스콤나드조르(Roskomnadzor)는 현지시간 3월4일 BBC영국공영방송, 독일의 소리 도이체벨레(Deutsche Welle), 라투비아 리가에 본부를 둔 러시아어 뉴스 사이트 메두자(Meduza), 미국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자유유럽방송/라디오 리버티(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 등 언론의 웹사이트(홈페이지, SNS)를 차단(봉쇄)할 것임을 선포했다.
러시아 국가두마(국회)에서는 또한 15년 징역까지 처벌이 가능한 허위 정보, 가짜 뉴스 처벌법을 통과시켜 서방세계 언론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다.
언론은 정치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기자는 진실을 알릴 의무가 있는데 국제단파방송이 처음 송출될 때의 취지는 선전용이라고 생각해도 되겠지만 20세기 말 냉전이 종식된 후 국제단파방송은 선전용이라기 보다는 자국의 각종 면모를 대외에 알리며 외국과 상호 이해를 도모하는 역할로 한결 부드러워졌다.
최근 BBC영국 공영방송은 러시아가 BBC웹사이트를 차단하자 러시아 역외에서 소식을 전달할 수 있는 단파방송을 재개하며 러시아를 향해 뉴스를 보도하게 되었다. BBC의 러시아향 단파방송 송출 재개를 영국 가디언지가 현지시간 3월4일자로 전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아무리 시대가 변하였다고는 하지만 라디오는 무선인데다가 국경을 넘나드는 특성으로 여전히 존재의 가치가 있음을 증명했다고 여겨진다.
BBC가 단파방송을 76년 간이나 해오다가 2008년도에 유럽에서의 단파방송을 폐지했다.
BBC는 인터넷 홈페이지가 러시아에 의해 차단되기 몇 시간 전에 러시아지역을 향해 2차 대전 시대에 사용했던 방송기술을 재개한다고 선포했다. 해당 단파방송은 우크라이나 시간으로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15,735 kHz로, 밤 10시부터 12시까지 5,875 kHz로 각각 2시간씩 영어로 뉴스를 보낸다며 키예프(키이우)와 일부 러시아지역에서 이 방송을 들을 수 있다고 전했다. -白兆美
원고, 보도: 백조미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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