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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말하는 일본의 민주주의

  • 2021.08.02
臺韓. 在臺灣한인사회. 한반도. 양안관계 및 시사평론
타이베이 그랜드호텔(圓山飯店, 사진)은 7월15일 일본이 타이완에 코로나 백신을 무상 제공한데 대한 감사을 뜻을 전하기 위해 객실 베란다 등불로 '台❤日' 점등을 했다. -사진: 그랜드호텔 제공圓山飯店提供)

臺韓. 在臺灣한인사회. 한반도 및 양안관계 - 2021-08-02

일본인이 말하는 일본의 민주주의

지난 7월 시사 종합월간지 천하잡지 인터넷판 독립평론의 기고문에 마침 현재 타이완에서 대학교 부교수로 있는 사사누마 도시아키(笹沼俊暁)가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와 타이완’이라는 제목의 문장을 발표했고, 일본 여류작가 아라이 히부미(新井ひふみ-Arai Hifumi)는 ‘일본 민주주의의 황혼’이라는 제목의 문장을 발표해, 이 두 기고문의 내용을 정리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타이완에 한동안 체류한 한국인이라면 타이완인은 일본을 아주 좋아한다고 인식하게 된다. 타이완과 한반도 모두 일본이 점령 통치를 했던 곳으로, 2차 대전 후 일본을 대하는 태도에서는 상당히 다르다. 타이완이 일본에 극히 우호적이라는 건 실질적으로 틀리지 않다. 그런데 1945년 이후 수십 년이 아닌 최근 30년을 말한다면 정부 당국의 태도와 연관성이 있다. 현 정부는 중화인민공화국과 연계된 끈을 끊고 주권 독립 국가로서의 역사 기억을 재정립하고 있으며, 미국,일본 등 국가와의 관계를 극히 중요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사누마 도시아키 부교수는 타이완과 일본은 상대방을 깊이있게 이해하지 못하며 타이완인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만화, 게임, 연예인, 관광지, 전통풍습 등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으나 2차 대전 후의 일본 민주주의에 대해서는 모르거나 이해하려 하지 않는 것을 발견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일본인이 타이완을 말한다면 아마도 진주밀크티, 샤오롱바오, 그리고 일본어를 잘하는 타이완의 노년층 등에 대해서는 익숙하지만, 2차 대전 후 타이완에서 발생한 역사 과정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거나 잘 모른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일본과 타이완이 상대 국가에 대해서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상상한 바 그대로 그 나라의 이미지로 인식한다고 지적했다.

타이완과 일본 간은 왜 ‘전후’에 대한 인상이 결여되었을까? 냉전 체제 아래서의 동아시아 국제교류가 정체되었었기 때문이라고 사사누마 부교수는 주장했다.

타이완의 도서관에는 일제시대와 최근 20~30년 일본과 관련한 자료가 매우 풍부하지만 1945년에서 1980년대 사이의 도서 소장량이 상대적으로 적다. 그 시대의 타이완의 중국국민당과 일본의 자민당 간에는 외교 채널이 유지되어 있었고, 일본인이 타이완을 비즈니스 방문을 하거나 관광을 왔었다. 다만 지금의 양국 교류와 비교해 그 규모는 다소 국한된 편이었다.

1980년대 말, 타이완에서 계엄령이 해제된 후 본성인(本省人)으로 불리는 타이완 출신 사람들이 타이완과 일본 간의 교류에 있어 주역으로 부상했고, 일본어 구사능력이 매우 유창한 사람들을 통해서 교류를 하다보니 일본측은 ‘타이완 사람은 친일파이다’, ‘타이완 사람은 일본의 식민통치에 감사한다’라는 인상을 받았고, 이러한 인상을 지금 일본 국내에서 타이완의 주류로 논술하고 있다.

일본의 거품 경제 후 장기간 불경기가 계속되었고 이와 동시에 중국이 국제사회에서 부상하는 ‘중국의 굴기’로 인해 적지 않은 일본인은 국가의 자존심이 상했다고 여기며, 그래서 타이완이 보존하고 있는 일제시대 때의 흔적과 일본식민정책을 찬양하는 일부 타이완인의 언행을 가지고 자신의 민족적 정서를 위로하고 있다.

계엄령 해제 후 타이완인의 역사적 공감 의식을 창조해 내기 위해 일제시대의 역사 기억을 찾아내는 사람이 많았다. 이들 타이완사람은 ‘일본’과 관련한 사물이나 이미지를 중화민족의 대(大)중화주의를 배척하며 타이완의 정체성과 공감대를 모색하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며 주체성은 타이완인 자신에게 있다고 여긴다.

타이완인은 왜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소홀하면서 일본의 우파에 접근할까?

타이완은 2차 대전 패전 후의 일본 국민은 전쟁과 권위주의의 상처와 기억과 싸우며 민주주의, 평화주의 국가 정체성을 모색하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모순에서 애를 써왔는지에 대한 2차 대전 후 일본의 역사 경험에 대한 이해가 결핍한 상황이다. 현재 타이완에서 생각하는 일본의 주류 이미지는 일제시대와 현대의 서브컬처(Subculture)로 구성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타이완-일본 교류의 일본측 정계 주체를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慎太郎). 아베 신조(安倍晉三), 아소 타로(麻生太郎) , 모리 요시로(森喜朗)로 간주하고 있는데, 이들 모두 전후 민주주의를 증오하는 우파인사들이다.

사사누마 도시아키는 기고문에서 많은 타이완인들이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를 소홀하면서 이들 우파 정치인들에게 접근하는 데 대해 자신이 일방적으로 비판할 수는 없는 일이라고 했다.

타이완은 혼자의 힘으로 중국대륙과 맞설 수는 없는 게 현실이라서 미국과 동남아 국가들 그리고 일본 등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 사사누마 부교수는 현재 일본 정계의 실권자는 우파 세력인데, 전후 민주주의 정치 영향력이 쇠락해져 국제 각축에서 유력한 역할을 맡기가 힘들다고 평가했다.

그는 2차 대전 후 수많은 일본 국민들은 예전의 권위주의 체제를 반성하고 비판하며 ‘민주, 근대, 개인’ 등을 기반으로 하는 사회, 국가를 재건하고자 했다며, 비록 대일본제국을 혐오하지만 ‘일본’ 자체를 배척하지는 않으며 대다수는 강렬한 민족 의식을 품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일본인의 ‘애국’ 정서의 기초는 전시 총동원 체제의 경제 사회 구조와 전국민의 전쟁 경험 아래서 공동체 의식이 피동적으로 강화된 것이고, 이러한 민족의식과 미국에 대한 복잡한 감정으로 인해 2차 대전 후의 일본인은 새로운 일본의 창립을 시도했다고 설명했다.

2차 대전 후의 타이완은 중국대륙에서의 국공내전에서 패하고 타이베이로 임시 천도한 중국국민당 정권은 독재 권력을 통해서 전국적인 경제 사회 구조를 건설했는데, 이 과정에서 타이완인은 공통된 역사를 경험했고, 계엄령 해제 후에도 권위주의 체제를 털어버리며 상대적으로 거대한 중국대륙과의 대치 속에서 공동체 의식이 점차 강해진 상황 아래 타이완인의 민주주의 의식도 발전하게 된 것이라고 사사누마 도시아키 부교수는 분석했다.

1945년에서 1980년대 사이의 발전 흐름을 타이완과 일본이 서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 주장한 그는 2차 대전 후의 일본과 오늘의 타이완은 시대와 국제환경이 완연 다른 것이라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며 현재의 일본을 이해하고 타이완의 미래를 사고하려면 여하튼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와 이와 관련한 역사 경험을 파악해야 할 것이며, 그래야만 이해 도모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 여류작가 아라이 히부미는 지난 7월의 기고문에서 일본 정계에 대해 비판했다. 아라이 히부미는 민주주의제도는 1인1표를 기초로 하고 있지만 일본은 정권을 장악한 사람들에 의해 선거가 좌우되며, 국가 정치는 이들 집정자들의 권력 게임에 불과하여, 아베 신조, 아소 타로의 경우 그들의 외조부가 총리를 지낸 정치 가문에서 자라 더욱이 국가정치를 권력게임으로 간주하며, 관료제도를 파괴하고 있는데, 이것이 국가 국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가한다고 비판했다.

아리아 히부미는 일본의 민주제도는 1945년 태평양전쟁에서 고배를 마신 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이 부여한 것으로 처음부터 스스로 추구한 제도가 아니라서 그런지 소중히 여기지를 않으며, 민주헌법을 공포한 지 75년이 지난 일본의 민주주의는 벌써 황혼무렵에 다다른 것 같다고 지적했다. –jennifer pai

원고.보도: 백조미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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