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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타이완 - 2021-03-09 친구의 적 = 적 ?

  • 2021.03.09
오늘의 타이완
중국-인도 국경 충돌 화면. -사진: AFP DB

오늘의 타이완 - 2021-03-09  친구의 적 = 적 ? 

오늘은 중국 ‘양회’가 아닌 중국과 인도 간의 갈등, 이에 대한 오늘의 타이완과 60년 전의 타이완, 즉 1962년도와 2021년도 타이완의 태도에 관해서 알아보겠다.

친구의 적 = ? /  적의 적= 친구 ?

‘친구의 적은 적인가?’, ‘적의 적은 친구인가’? 정말 그러할까?

워싱턴당국에서 최근 수년 인도태평양지역을 극히 중요한 전략적 지역으로 삼고 있는데, 수십 년 동안 이곳이 지금처럼 중요시 되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중화인민공화국과 주변 국가 간의 마찰은 비일비재했다, 특히 인도와의 긴장 국면은 수 차례 발생했었는데, 예컨대 1962년에 국경 문제로 중국과 인도는 전쟁을 치렀다. 당시 타이완은 ‘자유중국’으로 더 잘 알려졌었고, 총통은 장제스(장개석-蔣介石)이었다. 저 멀리 중국-인도 국경지대에서 양국이 싸우고 있는데 서태평양 가장자리에 있는 자유중국 타이완과는 무슨 상관이겠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대한민국 국민도 잘 알겠지만 1960년대는 100% 반공의 시대였다. 장제스는 더욱이 8년 동안 고생해서 일본군을 몰아난 후, 마오저둥(모택동-毛澤東)이 이끄는 중국공산당이 어부지리의 득을 톡톡히 보아, 국공내전에서 밀려나 3만6천 제곱킬로미터의 섬, 타이완으로 물러나 있었다. 하지만 매일 본토 수복을 머리와 가슴에 담고 벼르고 있었던 차에 중국이 인도와 국경 문제로 전쟁을 벌이고 있으니, 공산당 인민해방군이 남서쪽 변방지대로 몰리는 틈을 타서 미국의 도움으로 중국 본토 수복을 하고 싶어했다. 그때 중국이 외국과 전쟁이 없었더라도 장제스의 입장에서는 언제는 기회만 된다면 본토 수복을 위해서 불철주야 총칼을 갈고 있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중국-인도 국경 분쟁 타이완의 태도는

60년이 흐른 오늘날의 인도태평양지역, 중국과 인도의 국경에서도 영유권이나 군사 확장 등의 문제로 여전히 분쟁이 있다. 지금 중화민국 총통은 차이잉원(蔡英文)이다, 중국과 인도의 국경 충돌에 대해서 차이 총통도 그저 강건너 불구경하는 태도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인도태평양전략을 말한다면 차이 총통의 태도는 금방 달라질 것이다. 미국이 지금 남중국해를 비롯해 인도태평양 지역에 대해 극히 중요시하기 때문이며, 타이베이당국은 워싱턴당국의 전략에 최대한 호흡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40년 동안 그토록 권위 정권이라 비판을 받아왔던 장제스와 타이완에서 태어나 토착 민의를 대표한다는 차이잉원 총통과는 극히 거리가 멀다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하지만 이 두 정치 리더들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물론 상대쪽에 중국이 있어야만 고 장제스 총통과 현임 차이잉원 총통의 공통점이 들어난다.

우선 중국공산당에 대해서 장제스나 차이잉원 모두 적대시를 하고 있다. 60년 전은 물론이거니와 반세기나 한 40년 전만 했어도 중공은 그저 ‘공비’였다. 한국도 마찬가지로 북한을 정상적인 체재로 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옛날 그 시절에 장제스는 중국공산당은 모두 공비이고 살아서는 함께 같은 하늘 아래서 같은 공기를 마시고 싶지도 않았을 것이다. 치가 떨리지만 죽을 때까지 본토 수복을 하지 못해 안타깝다.

차이잉원은 어떨까? 중국은 우리 타이완을 압박하는 무뢰한이나 주변 사람을 괴롭히는 조폭처럼 생각할 것이다. 무엇으로 보이든 절대 좋게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 점은 장제스나 차이잉원 두 명의 중화민국 총통 모두 같다.

이어서 국경 분쟁을 놓고 말하자면, 중화인민공화국이 동족이든, 조상이 그 땅에서 왔든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중화민국 총통의 입장에서는 중국과 인도의 국경 분쟁의 책임은 중국에 있다고 여길 것이다. 국가 원수가 그렇게 생각을 했다고 일기에 썼을 수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그런 증거를 남겼다는 것이다.

중국-인도 전쟁을 기회 삼아 본토 수복 생각

1962년은 장제스 총통 시절이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1962년의 전쟁은 중국공산당이 내외적으로 곤경에 처해진 결과이며, 인근 주변국에 대해서 침투와 전복과 무력 위협의 산물이라고 선전했었다.

차이잉원 총통의 발언은 고 장제스 총통처럼 격하지는 않았다. 그저 ‘중국은 인도태평양지역 역내 평화와 안정에 위협이 된다’라는 암시를 했을 뿐이다. 격한 선전이든 조용한 암시이든 결과적으로 모두 중국의 잘못임을 지적한 것이다.

최소한 지금의 차이잉원 정부는 인도와의 경제무역 등 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적의 적은 친구다’라는 생각을 해서인지? 아니면 ‘국익에 도움이 되어서’일 수도 있다고 본다.

오늘의 타이완을 말하면서 60년 전의 타이완을 회고하며 비교를 해보니 특히 중국과 인도 간의 국경 분쟁에 대한 태도가 참 비슷하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가장 다른 점은 고 장제스 총통은 당시 ‘어찌했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본토 수복’의 염원으로 외교를 펼치고 중국과 인도의 충돌을 해석한 것이고, 지금의 차이잉원 총통은 초지일관 ‘중국에 대항한다’와 ‘타이완을 보위한다’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1962년, 중국과 인도의 국경 전쟁은 장제스가 국민군을 이끌고 대륙으로 반격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었기 때문에 두 나라의 싸움을 오히려 기대했을 것이다. 중국과 인도의 전쟁은 단순히 이 두 나라의 전쟁이 아니라 1962년 당시 미국이 미군을 인도 국경으로 파견해 함께 작전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미군이 개입을 하면 중공은 대규모 인민해방군을 국경지대로 파병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그 전쟁은 장기간 지속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게 된다. 여하튼 이는 당시 타이완의 장제스 정권에는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었던 기회였다.

같은 적을 뒀어도 마음은 같지 않아

아무리 같은 적을 두었다 하지만 당시 장제스의 목적과 지금의 차이잉원의 목적은 똑같을 수는 없다. 아주 쉽게 말해서 장제스는 본토 수복 + 중국의 정통성 계승이지만 차이잉원은 중국을 남으로 생각하며 탈중국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했다고 본다. 중국에 대항하는 데에는 1선에 선 차이잉원 행정부이다. 또 한 가지 실질적인 사례를 들자면 작년 시월 중국과 인도가 국경에서 대치하는 일촉즉발의 사태가 벌어지고 있을 때 중화민국 외교장관이 인도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당시 우쟈오시에 외교장관은 타이완과 인도 간의 협력에는 반드시 (중국의) 침략을 받게 될 가능성에 대해서 직시하며, 상호 의견 교환과 정보 교류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었다. 타이완과 인도는 여러 협력 영역이 있겠지만 우선은 중국의 침략 앞에서 상호 정보 교류는 필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jennifer pai

원고.보도: 백조미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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