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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타이완 - 2021-02-23-'강남사건' 그리고 그 후...

  • 2021.02.23
오늘의 타이완
작가 강남(江南, 우측 신문 스크랩)과 그의 저서 장징궈전(蔣經國傳).

오늘의 타이완 - 2021-02-23

198410강남사건

중화민국 국사관(國史館)에서는 지난 주말(2월20일) 신서 발표회를 가졌다. 일반 문학 작품이나 경제 분야 또는 쉽게 읽히는 책이 아닌 정치와 인권 등 엄숙한 주제가 담겨있는 서적들이다.

<228사건 문서 휘편(二二八事件檔案彙編)> 제28권과 제29권, <전후 타이완 정치 안건: 강남사건 사료 휘편(戰後臺灣政治案件:江南案史料彙編)> 3권, 그리고 <살어서 진상을 알리다: 차이콴위 선생 방담록(活著說出相:蔡寬裕先生訪談錄)> 등 3가지 서적이다.

모두 중요한 문서와 사료들이지만 이중에서 사회대중이 가장 관심을 갖는 주제가 있다면 일명 ‘강남안’이라 불리는 암살사건 사료를 토대로 저술한 3권짜리 <전후 타이완 정치 안건: 강남사건 사료 휘편(戰後臺灣政治案件:江南案史料彙編)>이다.

2월23일 오늘의 타이완에서는 이른바 ‘강남안’이 무엇이길래 이토록 독자들의 관심을 끄는지, 그리고 왜 지금의 여당에서는 이러한 사건을 파헤치며 진상을 밝히는 도서 출판에 특별히 힘을 쓰는지 알아보겠다.

강남사건이란

우선 ‘강남안’을 아주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강남(江南)’은 1932년 중국 쟝수성(江蘇) 징쟝(靖江)에서 태어나,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중국국민당 정부를 따라서 타이완으로 건너와 타이베이 정치공작간부학교(지금의 정치작전대학) 신문학과 중퇴, 타이완성립 사범대학교(지금의 국립타이완사범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중퇴, 미국 워싱턴D.C. 소재 사립 아메리카 대학교(America University, AU) 정치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으며, 그의 직업은 작가, 필명은 강남(江南), 그의 본명은 류이량(劉宜良, 1932.12.7.-1984.10.15.), 1967년에 미국 국적을 취득해 캘리포니아주 센프란시스코에 거주하고 있었다.

‘강남안’은 1984년, 당시 중화민국 정보국이 주도한 암살 행동이다. 그가 죽음을 불러온 이유는 1972년부터 저술하기 시작한 연재물 <장징궈傳-蔣經國傳-장경국전>이 발단이 된 것이라고 한다. 문장의 내용에서는 蔣씨 일가 내부와 중국국민당 내부의 파벌 투쟁을 기술하고 있어서 蔣씨 일가의 프라이버시를 파헤치고 있다는 의심을 받게 되었다. 1984년 10월 15일 오전 9시(미국 서부시간) 류이량은 국제 중국계 조폭에 속하는 타이완 죽련방(竹聯幫) 소속 천치리(陳啟禮-진계례) 등 조폭 성원들에 의해 총격으로 암살을 당해 죽었다. 그를 죽인 사람은 조폭 소속이지만 사주한 것은 당시 국방부 정보국이었다는 게 들어나 큰 파문을 일으켰다. 게다가 암살 행동이 펼쳐진 곳은 미국이고, 죽은 류이량은 당시 미국 시티즌이라, 미국이 방관하지 않았고, 그래서 일은 일파만파 커져갔고 심지어는 당시 중화민국 총통 장징궈의 후속 정치에까지도 영향을 미쳤다.

‘강남안’ 관련 정부 문서의 대외 공개를 추진하기 시작한 시기는 중화민국 제10대와 11대 총통(2000년~2008년)을 역임했던 천수이볜(陳水扁) 총통이 그의 임기 내에 전개한 것인데, 지금까지도 ‘강남안’ 관련 문서 중 기밀이 해제되지 않거나 아직 공개되지 않은 게 있어서 1984년 당시 발생한 사건의 전말을 파악하지는 못하고 있다.

강남 피살사건, 미국이 타이완에 와서 조사

타이완 뿐 아니라 특히 미국에서도 ‘강남안’을 매우 중요시 여기고 있는데, 당시 이미 미국 국적을 취득한 류이량이 미국 자택에서 암살을 당한 것은 미국 공민을 미국 땅에서 외국인이 범행을 저질러 살해했다는 점에서 당시 외교적 마찰에까지 치닫는 큰일로 번졌다.

조폭 성원이 류이량을 암살했다고는 하지만 사주한 것은 정보당국의 고위층이며, 정보 수뇌는 당시 총통 장징궈의 둘째 아들 장샤오우(蔣孝武)의 측근이라서 미국 측은 막후에서 암살을 주도한 자는 장징궈의 아들이라는 의구심을 표했었다. 그래서 장징궈는 이 일로 인해서 앞으로는 蔣씨 일가 그 누구도 통치지가 되지 않을 것이라며 더 이상 蔣씨 정권이 없을 것임을 공개 선언하였다.

그렇다면 장징궈는 ‘강남안’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졌었을까? 그의 태도는 어땠고, 그는 이 사건에 연루되어 있을까? 각계에서는 장징궈가 이 사실을 얼마만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해서 매우 관심이 깊다. 그래서 이번에 새로이 출간한 <전후 타이완 정치 안건: 강남사건 사료 휘편(戰後臺灣政治案件:江南案史料彙編)> 3권에서는 편집자가 특별히 장징궈의 이 사건에 대한 인식이라고 여기고 있는 직접적인 사료를 두드러지게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직접적인 사료라고 하면 이중에 고 장제스 총통 영부인 쑹메이링(宋美齡) 여사와의 전문과 편지가 포함되어 있다.

조폭 배후, 사주는 누구?

‘강남안’이 발생한 후 미국 측에서는 관계자를 파견해 타이완에서 조사를 펼쳤었다. 이 책에서는 당시 미국이 타이완에서 직접 조사할 때의 담화 진술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또한 예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사료들이다.

<강남사건 사료 휘편>에는 조사 당시의 진술 내용을 비롯해 암살행동을 집행했던 죽련방 조폭 성원 천치리(陳啟禮)가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 폭로하려고 사전에 녹음한 육성 녹음 파일 내용을 글로 옮긴 초본 내용도 수록했다. 이와 동시에 타이완주재 미국대표부 AIT 타이베이 사무실 대표 토마스 부룩스(Thomas S. Brooks)가 1990년도에 당시 타이완주재 미국대표부 AIT의 상대 기구에 해당하는 북미사무조율위원회(Coordination Council for North American Affairs,약칭CCNAA, 현재의 타이완 미국사무 위원회-Taiwan Council for U.S. Affairs,약칭TCUSA의 전신)  후스쉰(胡世勳) 위원장에게 서신을 보내 타이완 유관당국이 군사정보국장에 있을 때 류이량 암살의 배후 조종자로 유죄 수감된 왕시링(汪希苓) 등 관련자들을 특별사면할 가능성에 대해서 우려를 표명한 내용 등도 이번 <강남사건 사료 휘편>에 수록되어 있다.

무기징역 선고, 5년여 만에 가석방

왕시링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으나 몇 번의 감형 후 1991년 1월에 가석방되었다. 하지만 원래는 1990년 5월20일 리덩후이(李登輝)가 제8대 중화민국 총통으로 취임할 때의 특별사면 명단에 오를 뻔했다고 한다. 그러나 미국대표부 AIT의 토마스 부룩스는 1990년 5월19일자의 서신을 통해, 강남사건의 배후인 정보국장 왕시링 등은 이미 유죄 판결이 확정되었고, 게다가 무기징역에 처한데 대해서 매우 기쁘다며, 그러나 만약 그들이 특별사면이 된다면 매우 깊은 유감이 될 것이라고 당시 중화민국 당국에 메시지를 던져왔었다.

정보국, 조폭, 작가 사이에 일어난 ‘강남안’은 1984년에 발생한 사건이며 비록 100% 사료가 전부 다 공개되지는 않았으나, 이번 3권 들이 <전후 타이완 정치 안건: 강남사건 사료 휘편>을 통해 최소한 1980년대의 타이완 정치 관련 배경을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당시 중화민국 정부의 정치 발전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쳤는데, 당시 장징궈 총통이 정치 민주화, 언론 자유를 정착화시키는 데에 ‘강남안’의 파급영향도 한몫을 했다 할 수 있다. -jennifer pai

원고.보도: 백조미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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