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타이완의 소리 RTI공식 앱 내려받기
열기
:::

장제스•장징궈 부자가 지시한 극비 임무 ‘타오위안 계획’…타이완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었다

  • 2025.03.13
포르모사 링크
▲CNN이 1일(미 현지시간) 온라인판에 40여 년 전 타이완의 핵무장을 수포로 만든 장셴이 전 중산과학연구원 제1연구소(원자력연구소) 부소장과의 인터뷰 기사를 게재했다. CNN홈페이지 캡처.

 [*아래 글은 실제 당일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해주시기 바랍니다.]

지난 한 주 타이완에서 가장 화제가 됐던 이슈를 과학 기자의 시각으로 들여다보고 정리해 알려드리는 Rti 한국어방송의 목요일 프로그램 포르모사링크입니다. 안녕하세요 포르모사링크 진행자 손전홍입니다.

국제정치에서 핵보유국이란 ‘합법적으로 핵무기를 가진 나라’를 의미합니다.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핵보유국'으로 공식 인정받은 국가는 핵확산금지조약(NPT) 제9조 3항에 규정된 5개국입니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과 영국, 프랑스의 공통점은 바로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자 5대 핵보유국(P5)이라는 점입니다.

1967년 이전 핵실험에 성공한 5대 핵보유국은 더이상의 핵확산을 막기 위해 국제적인 틀인 핵확산금지조약 NPT를 1970년 발효했습니다.

NPT는 기존의 핵보유국에는 핵확산을 못하게 하는 동시에 비핵보유국은 핵보유국으로부터 핵무기나 핵제조 관련 기술을 이전받지 못할 뿐 아니라 자체 핵개발도 할 수 없도록 했습니다. 5대 핵보유국 외 다른 나라가 핵무기를 갖는 것은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서는 모두 불법입니다.

다만 엄밀히 따지면 이 핵확산금지조약, 소수의 핵보유국과 핵 없는 다수의 국가 간의 대표적인 불평등 조약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핵이 없는 다수의 국가… 핵무장 없이 생존이 가능한가? 묻는다면,  정답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비대칭 무기라고 하는 핵무기와 재래식 무기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핵이 없는 나라가 아무리 최첨단 무기를 소유했다하더라도 핵무기 앞에서 무용지물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타이완이나 한국이 반도체 등에 힘입어 경제대국으로 인정 받고 있지만, 미국이나 기타 핵보유국의 눈치를 보는 이유도 다 이러한 점 때문입니다.

때문에 핵이 없는 자는 핵을 가진 자에게 종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핵인질’ ‘핵종속’이라고 하죠.

눈에는 눈, 핵에는 핵! 핵 보유국에게 끌려다니지 않으려면 동등하게 핵으로 무장해서 대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지만, 핵보유 5개 나라, 핵확산금지조약이 정식 발효된 1970년부터 5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당시를 기준으로 해서 계속해서 핵무기를 가지고 있고 핵 무기를 계속해서 더 많이 확보할 수도 있고 실험도 중단하지 않아도 되고 모든 권리를 다 향유하면서, 정작 다른 국가에겐 핵확산금지조약을 들이밀며 핵무기 개발도 하지 마라, 손도 대지 마라 강요하고 있죠.

기존 핵보유국에게만 유리한 핵확산금지조약은 철저하게 ‘이중잣대’를 갖고 있는 구시대적인 질서이자 불평등한 핵 조약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힘든 사실입니다.

물론 핵무기 위험합니다. 하지만 핵을 보유했다는 것 자체가 반드시 핵을 사용하겠다는 표현은 아니지 않습니까? 전 세계적으로 핵을 보유한 5개 나라 핵무장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자국의 안보와 평화를 지키는 데 유리할 뿐만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의 입지도 강합니다.

그렇다면 타이완은 왜 진작부터 핵폭탄을 개발하지 않고, 핵무기를 보유하지 못하게 된 것일까요? 개발 기술이 부족했던 걸까요? 그도 아니면 핵무기 개발에 관심이 전혀 없었을까요?

사실 중화민국, 타이완은 장제스(蔣介石), 장징궈(蔣經國) 총통 시절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극비리에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지만, 미국의 집요한 감시 압력으로 어쩔 수 없이 손을 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심지어 핵무기 완성을 코앞에 두고서 말이죠.

☢️핵무기를 개발하려했던 타이완

타이완이 오랫동안 핵무기 보유를 희망해왔고 극비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했었다는 것은 국제사회에서도 비밀이 아닌데요.

타이완이 ☢️핵무기 개발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게 된 시기는 1960년대 부터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중국이 첫 핵실험에 성공하며 양안(兩岸) 간 군사적 균형이 무너진 직후입니다.

때는 1964년 10월 16일 오후 3시. 중국 신장성 위구르의 소금 호수인 뤄부포(羅布泊)에서 거대한 버섯 모양의 구름이 피어올랐습니다. 중국이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해 첫번째 핵실험에 성공한 것입니다.

당시 타이완의 상황은 이러했습니다. 1954년 체결한 상호방위조약에 따라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었지만, 중국이 먼저 핵개발에 성공했다는 것은 양안 간 전쟁이 언제든지 핵전쟁으로 번질 수도 있다는 점에서 생사존망의 위험을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장제스 총통은 미국에 의존하기 보단 중국에 대한 반격과 군사 군형을 위해 핵 억제력을 갖춰야 겠다 결심을 하게 되고, 즉각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렸을 정도로 구상과 행보가 빨랐습니다.

이에 따라 60년대 말 장제스 총통은 가장 먼저 ‘이스라엘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언스트 데이비드 버그만(Ernst David Bergmann) 박사를 고문으로 영입하고, 나아가 버그만 박사의 도움으로 중산과학연구원 주비처를 조직한 뒤 1968년부터 핵무기 개발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신주(新竹)계획’을 시작합니다.

신주개획은 신주에 소재한 국립칭화대학교 내에 원자로를 설치하고 핵 개발을 추진한다는 계획이었는데, 신주계획에 참여한 과학자들… ‘하루라도 빨리 핵무장을 해야한다’라는 생각으로 불철주야 핵무기 개발에 매진했습니다.

이와 함께 핵무기 개발을 위한 원자력공학 관련 인재 양성에도 힘을 썼습니다. 해외 우수 인재들에게 귀국을 장려했고, 신주계획의 일환으로 후진들을 미국, 영국 등에 유학을 보냈습니다.

결론적으로 은밀히 진행하던 신주계획… 미국의 견제로 실패합니다.
장제스 총통은 핵무기 개발을 중단해야 할지 고민했습니다. 하지만 버그만 박사의 격려로 신주계획을 ‘타오위안(桃園)계획’이란 극비 계획으로 전환시키고 핵무기 개발에 멈추지 않았습니다.

1975년 장제스의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한 아들 장징궈 총통도 자체 핵무장을 고수했는데요.

이에 따라 타오위안계획은 속도를 더 낼 수 있었습니다.

먼저 캐나다로부터 연구용 중수로형 핵 반응로를 반입했고, 핑둥(屛東) 저우펑(九鵬)기지 지하에다가는 핵실험 설비를 완공했죠.

뿐만 아니라 캐나다에서 도입한 원자로에서 중산과학연구원 산하 원자력연구소는 재처리 기술을 이용해 ‘플루토늄’이라 불리는 방사성동위원소(Isotopes of plutonium)-239 추출에 성공했으며, 또 타이완의 주요 우방이자 당시 마찬가지로 비밀리에 핵 개발을 추진하던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터 우라늄 100t을 구입했고, 농축 우라늄 기술도 확보했죠.

이에 더해 ‘핵 무기화’의 관건인 핵 소형화 기술에도 진척이 있었고, 단거리미사일(SRBM)을 자체 개발하는 ‘천마계획(天馬計畫)’과 함께 타이완 국내 기술로 자체 개발 중이던 IDF(국산 방위전투기) 징궈호(經國號·AIDC F-CK-1)에 탑재 가능한 전술핵무기 개발도 추진했죠.

핵무기 개발에 탄력이 붙을 무렵, 타오위안계획에서 개발에 주도적인 역활을 한 인물이었던 장셴이(張憲義) 중산과학연구원 원자력연구소 부소장이 돌연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도주하면서 타이완의 핵무기 개발은 치명타를 맞게 됩니다. 이때가 핵무기 완성을 코앞에 둔, 끝 무렵이였습니다.

짐작하신 대로 장셴이 부소장은 미국 CIA의 스파이였습니다. 장셴이는 단순 핵무기 개발 책임자가 아니었습니다. 중산과학연구원 제1연구소(=원자력연구소) 부소장이자 대령급(上校·대령)의 육군 고위 장교였습니다. [참고***신주계획에 이어 타오위안계획에 중심이 된 중산과학연구원은 국방부에 직속돼 타이완 방위 산업의 중추로, 원장은 중장 이상 고위 장성이 도맡았고, 소속 연구원은 기본적으로 과학자이자 현역 군인 신분인 동시에 국비로 해외 유명 대학에서 원자력공학과 등 핵관련 학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은 엘리트 군 장교들이었습니다. CIA에 포섭된 장셴이는 1969년 미국 테네시대학 원자력공학과 석사과정에 입학해 석사 학위를 받았고, 4년 후 박사 학위도 취득했습니다.]

장셴이는 자신의 신분 덕분에 주변 동료들의 의심을 받지 않고, 핵무기 개발 계획 주요 내용과 일정부터 회의 내용, 개발 진척 상황 등 타오위안계획의 모든 고급 정보를 CIA에 넘겼습니다.

장셴이는 1988년 1월 일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망명했고, 미국은 장셴이가 넘긴 핵무기 개발 관련 비밀 문건을 타이완 정부에 들이밀며 핵무기 개발을 즉각 중단하라고 요구했습니다.

미국의 압박에 타이완은 타오위안계획을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미국은 전문가들을 타이완에 파견하고 비핵화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중수로를 빼내는 것부터 시작으로 핵 시설을 폐기하는 과정에선 모든 핵심 부품과 기기들을 지하로 옮긴 뒤 콘크리트로 지하를 덮어버리기도 했습니다.

눈 앞에 펼쳐진 풍경에 타오위안계획에 참여한 중산과학연구원 과학자들의 상심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습니다.

핵무기 생산이 단기간 내 가능한 수준까지 도달한 타오위안계획은 장셴이 미국 망명 사건으로 좌절됐습니다.

나는 국가를 배반한 적 없다

타이완 군 검찰은 1988년 장셴이에게 ‘군무이탈(軍中逃亡)죄’를 적용해 체포영장을 발부했습니다.  2000년 7월, 12년 6개월의 공소시효가 만료돼 장셴이는 법적 책임에서 자유로워졌습니다. 

타이완의 핵무장을 수포로 만든 장셴이는 타이완 나이로 올해 여든 하나가 됐습니다. 장셴이는 지난 1일 미국 CNN과의 단독인터뷰에서 1988년 자신의 행동은 떳떳하다면서 국가를 배신한 것이 아니라고 항변했습니다.

장셴이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본인은 40년 전 올바른 선택을 했고, 핵무기 개발 정보를 CIA에 제공함으로써 최소한 이런 방식으로나마 중국을 도발해 양안 간 전쟁이 발발하게 만들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장셴이에 대해서는 세간의 평가가 엇갈립니다.

핵무기 개발 계획을 망친 원흉이냐? 핵무장 계획을 폭로함으로써 타이완의 평화를 지킨 영웅이냐?... 청취자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댓글로 남겨주세요~

Rti 한국어방송의 목요일 프로그램 포르모사링크, 오늘 준비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진행에 손전홍이었습니다. 저는 다음주 목요일 이 시간에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청취자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참고자료

3월 13일(목) 포르모사링크 삽입곡

 [BGM : 루드비히 고란손 (Ludwig Göransson)- Quantum Mechanics (영화 ‘오펜하이머’ 중에서)]

《故事》(2015.06.20) <原來臺灣也曾發展過核彈:一段不為人知的歷史>,  https://storystudio.tw/article/gushi/nuclearweapon

《CNN》(2025.03.02) , https://edition.cnn.com/2025/03/01/asia/taiwan-cia-informant-nuclear-weapons-chang-hsien-yi-intl-hnk/index.html

프로그램 진행자

관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