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타이완 문학계의 최대 행사인 타이베이국제도서전이 지난 9일 성황리에 막을 내린 가운데, 도서전을 직접 방문한 정치인들의 추천 도서 리스트가 주목됩니다. 라이칭더(賴清德) 총통뿐만 아니라 줘룽타이(卓榮泰) 행정원장, 전 문화부 장관인 정리쥔(鄭麗君) 현 행정원 부원장, 장완안(蔣萬安) 타이베이시장, 린자룽(林佳龍) 외교부장 등도 도서전에서 다양한 서적을 구입하며 타이완 출판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라이 총통의 리스트를 보면, 1번 작품은 제7·8대 Rti 중앙방송국 회장인 핑루(平路, 본명 路平 루핑)의 시리즈 소설 ‘타이완 3부작’인데요. 타이완 최고의 소설가 중 하나로 평가받는 핑루는 사회이슈와 역사를 모티브로 한 소설로 유명하며, 여러 언론사에 칼럼을 집필한 바 있습니다. 그의 대표작인 타이완 3부작은 《동방지동(東方之東)》, 《포르모사(婆娑之島)》, 《몽혼의 땅(夢魂之地)》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 제목은 모두 타이완을 의미합니다. 전작에 이어 12년 만에 출판된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 《몽혼의 땅》은 민간신앙을 통해 장징궈(蔣經國) 전 총통의 내면세계를 그려내며 2024년 타이완문학상 금전장(金典獎)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오늘은 작가 핑루와 타이완 3부작에 대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난 4일 타이베이국제도서전에서 다양한 책을 구입한 라이칭더 총통 - 사진: CNA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배려가 나의 초심 🌟
작가로 이름을 날렸지만 핑루는 뜻밖에도 이공계 출신입니다. 심리학 대가인 아버지의 영향으로 타이완 최고 명문대인 타이완대 심리학과를 졸업한 후 미국으로 떠나 통계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박사과정까지 마쳤지만 직장을 위해 논문을 포기했습니다. 1982년부터 여가시간에 틈틈이 소설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듬해 미국에 거주하는 타이완인을 주제로 한 자서전적 소설 〈옥수수밭에서의 죽음(玉米田之死)〉으로 타이완 3대 신문의 하나인 《연합보》 주최의 소설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취미로 시작했지만 글쓰기에 매료되어 높은 연봉의 직장을 그만두고 1994년 타이완으로 돌아와 전문 작가로 활동하기로 했습니다.
핑루는 타이완대 심리학과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배려가 나의 초심”이라며, “심리학이든 글쓰기든 모두 사람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소설 창작은 핑루가 사회를 성찰하는 방법이자 심리학에 경의를 표하는 방식입니다. 심리학의 훈련을 통해 이성과 감성을 겸비한 서사로 복잡한 사건을 묘사해 독자들이 보다 전면적인 시각에서 사회이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합니다. 2013년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던 살인사건(八里媽媽嘴咖啡店雙屍案)을 모티브로 한 소설 《검은 강(黑水)》이 대표적인 작품인데요. 핑루는 “당시 언론과 사회 여론은 이 사건을 단순한 강도 살인으로 여겼는데, 사람이 왜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반성하지 않고 단지 범인에게 ‘나쁜 사람’이라는 꼬리표만 붙였다”며, “정상인이란 운이 좋아 보다 많은 선택지를 가지고 있을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소설이 독자들에게 던진 가장 큰 메시지는 범인과 우리 사이에 큰 차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검은 강》은 사회이슈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소설이라면, 타이완 3부작은 타이완 역사를 재해석하는 걸작입니다. 3부작이라고 하지만 서로 연결되지 않는 독립소설이라 어느 작품부터 읽어도 좋습니다. 3부작의 공통점은 타이완 역사와 정치에 대한 성찰, 현재와 과거를 넘나드는 서사, 그리고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한 캐릭터 설정입니다. 문화평론가 잔웨이슝(詹偉雄)은 《몽혼의 땅》 추천 글에서 “역사소설의 역할은 역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에 질문하고 역사를 재해석하는 것”이라며, “독자들에게 특정한 믿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유로운 상상을 독려한다”고 분석했습니다.

지난 2020년 Rti 한국어 단파방송 재개 경축행사에 참석한 핑루(가운데) 전 Rti 회장 - 사진: Rti
핑루 최고의 소설 '타이완 3부작' ✨︎
3부작의 첫 번째와 두 번째 작품 《동방지동》과 《포르모사》는 양안 긴장이 완화되고 타이완-미국 관계가 지금만큼 긴밀하지 않았던 2011년과 2012년에 출판되었습니다. 우선 《동방지동》은 중국에서 사업하다 연락이 두절된 남편을 찾으러 중국으로 간 주인공이 남편이 내연녀와 함께 마카오로 떠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시작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 곁에서 떠나려는 남편의 마음은 주인공이 쓰고 있는 시나리오와 얽히는데, 이 시나리오는 타이완을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가 정지룡(鄭芝龍)의 건언을 듣고 자금성에서 벗어나려는 청나라 제3대 황제 순치제(順治帝)의 이야기입니다. 정지룡은 타이완 최초의 한족정권인 정씨왕국의 첫대 왕 정성공(鄭成功)의 아버지입니다. 핑루는 정지룡-정성공 부자간의 대화를 통해 타이완의 중요성과 전략적 역할을 부각시키는 동시에, 동방으로 도망가려는 주인공 남편과 순치제의 심정을 통해 중화민국의 타이완 이전 과정, 그리고 양안관계의 복잡성을 재조명했습니다.
이어 《포르모사》는 1979년 타이완-미국 단교 전후를 배경으로, 타이완 외교관과 사랑에 빠져 국가기밀누설죄로 1년 징역을 받은 미국 외교관, 그리고 타이완 원주민과 사랑에 빠진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VOC)의 마지막 타이완 총독 프레데릭 코예트(Frederick Coyett)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두 캐릭터를 통해 대국 사이에 끼여있는 타이완의 현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하는데요. 네덜란드를 몰아내고 정씨왕국을 세운 정성공도 다시 등장해 독자들을 역사의 현장 속으로 데려갑니다. 정성공이 타이완을 차지하기 전, 코예트 총독은 일찍부터 정성공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요새 강화를 추진하려 했지만,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로부터 거절당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존엄하게 귀국했으나 스웨덴계의 신분 때문에 타이완을 잃어버렸다는 죄목으로 처형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코예트 총독의 이야기가 점차 잊혀버렸지만, 그의 후손은 2006년, 2024년 타이완으로 건너와 정성공을 모시는 절을 방문했을 뿐만 아니라, 정성공의 후손들과도 만났습니다. 미국 외교관과 코예트 총독은 모두 국가로부터 ‘배신자’로 지목되었으나, 정작 배신한 쪽은 국가죠. 또한 소설에는 두 사람과 사랑에 빠진 타이완 외교관과 원주민 여성의 관점이 부재하는데, 이는 작가의 실수가 아닌 의도적인 겁니다. 소리를 내지 못하는 여성들은 곧 자기 마음대로 행동할 수 없는 타이완입니다.
마지막으로 올해 초에 출판된 《몽혼의 땅》은 전작보다 더 현대적이고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데요. 신령에 빙의된 무당이 장징궈 전 총통의 노년 시절로 소환된 이야기를 통해 장제스-장징권 부자 및 정지룡-정성공 부자의 갈등을 그려내는 동시,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중화민국의 아픈 역사를 민속 신앙으로 풀어냈습니다. 역사, 정치, 종교, 신앙을 다룬 이 작품은 핑루가 10여 년 간 고민해온 성과이자 3부작의 집대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타이완 3부작은 모두 현재와 과거 두 가지 스토리 라인을 오가며 허와 실을 뛰어넘는 서사로 타이완만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다음주는 계속해서 《몽혼의 땅》에 대해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타이완 3부작 - 사진: 청핀서점
엔딩곡으로 뉴 포르모사 밴드(新寶島康樂隊, New Formosa Entertainment Troupe)의 ‘포르모사(福爾摩莎)’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平路,《東方之東》、《婆娑之島》、《夢魂之地》。
2. 平路主題館,臺灣文學館。
3. 「專題研講:平路_歷史夾縫中的婆娑之島,命運將走向何處?」,臺灣大學臺灣文學研究所。
4. 人物專訪-作家平路,臺大心理學系季報105年03月刊。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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