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타이완 현대시의 거장 시인 야셴(瘂弦, 본명 王慶麟 왕칭린)이 캐나다 시간으로 지난 11일 92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타이완 3대 신문사 중 하나인 《연합보(聯合報)》의 문화면 《연합부간(聯合副刊)》에서 20년 이상 편집장을 맡은 그는 〈노래와 같은 안단테(如歌的行板)〉 등 회자되는 시를 남겼을 뿐만 아니라, 산마오(三毛), 시무룽(席慕容), 장쉰(蔣勳) 등 인재를 많이 육성해 ‘문단 백락(伯樂)’이라고 불립니다.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타이완 문화부, 문단, 그리고 작가의 만년 거주지인 캐나다의 문인들이 모두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연합보》계약 작가로 활동했던 리위안(李遠) 문화부 장관은 야셴이 풍부한 문화적 저력을 바탕으로 신문 문화면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고 고 가오신장(高信疆) 작가와 당시 타이완 문화계의 양대 산맥으로 타이완을 세계와 접목해 타이완인들의 문화적 시야를 넓혔다고 언급했습니다. 문화부도 보도자료를 통해 야셴의 시는 음악성과 문학성을 겸비한 동시에 깊은 역사적·사회적 배려를 담고 있다며, 총통에게 표창을 요청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야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작가 장쉰은 페이스북에서 “한로가 지난 이후 호수의 연잎은 하루아핌에 조각처럼 녹색에서 구릿빛으로 변했고, 시인의 죽음도 이처럼 육신에서 불멸의 시구가 되었다”며 애도의 글을 올렸습니다. 야셴과 40년 가까이 친분이 있고, 같은 캐나다에 사는 시인 쉬왕윈(徐望雲)은 “대학 시절에 《연합보》 문화면에 자주 투고했는데, 야셴은 내 작품을 고르지 않아도 항상 회신에 격려의 말을 넘겼다”며, “그는 문단 거장이지만 거드름을 전혀 부리지 않고 오히려 젊은 세대들을 많이 격려했다”고 말했습니다.
지난해 타이베이문화상을 수상한 아버지 대신 시상식에 참석한 야셴의 딸 작가 루핑(鹿苹)은 수상식에서 수상 소식을 접한 아버지는 갓 데뷔한 청년처럼 기뻐했다며, 그는 다양한 일을 해왔지만 늘 시인을 자처한다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야셴 별세 후 그의 가족들은 야센의 페이스북을 통해 1954년 발표한 야셴의 첫 시 〈나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작은 꽃〉을 인용하며 야셴의 별세를 밝혔습니다. 오늘은 평생의 창작으로 타이완 문단에 큰 영향을 미친 시인 야셴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눈을 감고 모든 것을 운명에 맡기고, 조용히 떨어졌다. 나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작은 꽃이다”
「於是,我閉著眼,把一切交給命運,又悄悄的墜落,墜落,我是一勺靜美的小花朵。」
"실패한 인생만큼 시다운 것은 없다" 🌟
시로 유명하지만 야셴은 팔색조 같은 전방위적인 창작자입니다. 시인, 편집자, 평론가는 물론 시 동아리인 시사(詩社)와 출판사를 설립하고 연기까지 도전했습니다. 1965년 연극 <국부전>에서 중화민국 국부 순원(孫文) 역을 맡아 최우수남자배우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90살에 일생을 돌이켜보며 시를 적게 쓴 자신을 ‘미완성한 사람’이라고 비유하며, 딸에게도 “아버지의 문학과 삶은 모두 실패했다”고 털어놨습니다. 그의 딸은 듣자마자 “실패한 인생만큼 시다운 것은 없다”고 회답했습니다. 부녀의 대화는 곧 시이죠.
야센은 21살에 시를 쓰기 시작해 30살도 안 되어 절정에 이르렀지만, 40살까지 창작을 중단했습니다. 중단한 이유는 타이완 문단의 영원한 수수께끼로 남아 있습니다. 야셴은 《연합보》와의 인터뷰에서 “시 창작은 아주 민감하고 연약한 예술로 한 번 멈추면 다시 시작할 수 없다며, 서랍에는 미발표 작품이 몇 편 있다고 고백한 바 있습니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아 신작이 나오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1932년 중화민국 시대의 중국 허난(河南)에서 태어난 야셴은 1949년 중화민국 국군에 입대해 군을 따라 타이완으로 건너왔습니다. 1953년 현대시인 탄즈하오(覃子豪)가 담임을 맡은 창작 반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시 창작을 시작했습니다. 이듬해 국방대학교 연극영화 및 예술학과를 졸업한 후 국군 소속, 가오슝 줘잉(左營)에 있는 라디오 방송국에 입사했습니다. 같은 해 줘잉에서 훗날 ‘타이완 시단 철의 트라이앵글(詩壇鐵三角)’로 불리는 ’장모(張默), 뤄푸(洛夫)와 함께 ‘창세기시사(創世紀詩社)’를 설립하고 잡지《창세기(創世紀)》를 출간했습니다. 1960-70년대는 그의 창작 전성기였습니다.
창세기시사는 모더니즘을 강조하는 ‘현대시사(現代詩社)’, 그리고 낭만주의를 계승한 ‘푸른 별 시사(藍星詩社)’와 함께 당시 타이완 3대 시사라 불리며, 현재는 창세기시사만 운영되고 있습니다. 국군 방송사에서 근무했던 야셴 외에 당시 장모는 줘잉 해군 , 뤄푸는 줘잉 해병대에 있었습니다. 따라서 창세기시사는 군대 색채가 짙은 시사로 1990년대 민주화 이후 다원화된 타이완사회와의 대화에 초점이 맞춰졌습니다.
야셴은 1962년 국방대학교 교수로서 중국 무용역사와 예술 개론을 강의했습니다. 1966년 소령으로 제대한 뒤 미 국무부 초청으로 아이오와대학교 주최의 국제창작프로그램(International Writing Program, IWP)에 참여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바로 지난주 언급된 타이완 시인 양무(楊牧)와 한국 작가 한강이 참여한 프로그램입니다. 귀국 후 문학지 《유스 문예(幼獅文藝)》와 《연합부간》에서 각각 8년, 20년 편집장을 맡아 신예 작가의 발굴과 육성에 힘썼습니다. 특히 《연합부간》때는 《중국시보 인간부간(人間副刊)》의 가오신장 편집장과 함께 타이완 신문의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례는 노벨문학상의 보도입니다. 당시 외신을 번역해 수상자 지명도에 따라 심층보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상례였는데, 1197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발표되자 야셴은 국제전화로 해외 학자들을 인터뷰하고 수상작을 직접 번역해 다음날 크게 보도했습니다. 이 때문에 《중국시보 인간부간》도 관련 보도를 내보내어 기존 작업 방식을 바꿨습니다.
1999년 양무의 초청으로 화롄(花蓮)에 있는 동화(東華)대학교 주재 작가로 1년간 활동했고, 정년퇴직 후 캐나다로 이주했습니다. 1930년대 중국문학의 순수함과 현대 서양소설의 세련미가 어우러진 야셴의 시는 피에서 흐르는 악보라고 양무는 평가합니다. 그럼 이어서 야셴의 대표작 〈노래와 같은 안단테〉와 비슷한 이름을 지닌 차이콥스키의 ‘안단테 칸타빌레(Andante Cantabile)’를 띄워드립니다.
야셴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
야셴이라는 필명은 그가 군대에서 집을 그리워할 때 중국 전통 악기 ‘얼후(二胡 이호)’를 연주하는 습관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얼후의 삐걱삐걱 소리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과 일치해 쓸쓸한 소리를 묘사하는 ‘아(瘂)’자와 활시위 ‘현(弦)’자를 선택했습니다. 17살에 고향을 떠난 그는 “고향과 어머니는 평생의 한”이라며, “지금의 모든 것을 어머니와 살 수 있는 삶으로 바꾼다면 반드시 바꿀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야셴과 함께 창세기시사를 창립한 시인 장모는 야셴의 시는 극적, 사상적, 향토적, 세계적 철학적인 해석이 담겨있으며, 단 맛은 그의 언어, 쓴 맛은 그의 정신, 그는 모순적이면서도 조화로운 존재라고 평가했습니다. 야셴은 자신을 ‘미완성’이라고 했지만, 실은 다른 사람들의 ‘완성’을 창조했습니다. 수많은 문단 후진을 양성했을 뿐만 아니라, 그의 딸 루핑도 소설가와 시인으로 타이완 문단에서 활약하고 있습니다. 타이완문학관 주최의 타이완문학상 금전장(金典獎)이 지난 14일 올해 후보 명단을 발표한 가운데, 루핑의 최신 소설 《달콤한 빵의 섬(甜麵包島)》도 이름이 올랐습니다. 오는 11월 초 최종 수상자를 발표할 예정입니다. 비록 야셴은 하늘의 별이 되었지만, 타이완 문단은 그가 닦아놓은 탄탄한 기초 위에 계속 빛날 겁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葉冠吟,「詩人瘂弦辭世 李遠感謝他打開台灣人文化視野」,中央社。
2. 程愛芬,「詩人瘂弦去世 溫哥華文人深深哀悼」,中央社。
3. 陳怡璇,「詩壇巨擘瘂弦過世 北市文化局同感哀悼」,中央社。
4. 張博瑞,「留下詩與火種 『文壇伯樂』瘂弦92歲辭世,聯合新聞網。
5. 陳宛茜,「瘂弦為台灣文壇打造黃金盛世 卻感嘆『沒有完成自己』」,聯合新聞網。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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