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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키나와 살이 21년차 타이완인이 전하는 오키나와 이야기

  • 2024.10.01
대만주간신보
오키나와 나하시에 소재한 슈리성. 일본 체제에 편입되기 전 류큐왕국의 상징이다. - 사진: Rti 서승임

“저는 슈리성을 참 좋아해요.” - 타이중 출신 오키나와인 현지 가이드

흔히 일본의 최남단에 있는 섬이라고 알려져 있는 오키나와. 한국 인천공항에서는 2시간 반 걸리는 오키나와가 타이완 타오위안 공항에서 출발하면 1시간 반도 채 안되어 도착할 수 있습니다. 타이완과 오키나와가 이렇게 가깝구나라는 걸 새삼 느낄 수 있는데요. 실제로 오키나와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중 타이완 관광객이 가장 많기도 합니다. 올해 오키나와 TV와 류큐방송(RBC)의 보도에 따르면 작년(2023년) 총 52만8500명의 타이완인이 오키나와를 방문해 전체 외국인 관광객 중 41.8%를 차지했다고 하죠. 게다가 타이완과 유사한 아열대 기후를 갖고 있는 오키나와는 9월 말에도 한낮 30도를 웃도는 여름 날씨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타이완이 사탕수수 생산과 흑설탕 산업의 역사가 있듯이, 오키나와 또한 흑설탕 산업이 현재까지 섬을 대표하는 주요 산업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키나와와 타이완 모두 19세기 말 일본 제국의 일부가 된 채 지난 20세기 반세기를 일본의 통치 하에 보냈다는 역사도 있죠. 

여러모로 타이완과 많은 공통점을 가진 오키나와. 오늘 대만주간신보에서는 21년 전 오키나와로 건너 와, 현재 여행 가이드 겸 운전을 직업으로 삼고 있는 한 타이완 이모의 이야기를 통해 오키나와의 역사와 이곳 사람들의 정서를 들여다보는 시간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키나와 섬의 남쪽 나하시에서 출발해 가장 북쪽 오키나와 현까지 오키나와 섬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국도 58호. 해변가와 바로 인접하지 않아 해변보다는 산과 가게들을 더 많이 보게 되는 이 길로 특별히 우리를 안내한 타이완 이모는, 이 길이 오키나와 남단에서 시작해 일본 규슈 가고시마까지 이르는 국도라며 이 길의 의미에 대해 소개했습니다. 실제로 국도 58호는 오키나와 남부에서 시작해 바다를 가로 질러 있는 그 위의 작은 섬들을 지나, 일본 규슈 섬의 남부 가고시마까지 이어주는 대규모 국도로, 육상 구간(274.9 km)보다 해상 구간(609.5 km)이 훨씬 더 길다는 재미있는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국도 58호는 오키나와 섬과 그 주변 열도, 그리고 일본 본토를 연결시켜 주는 상징적인 도로인셈이죠.  

오키나와와 일본 본토를 연결하는 국도 58호와 달리 오키나와 나하시에 소재한 오키나와현립박물관(沖繩縣立博物館)과 슈리성(首里城)에서는 오키나와를 일본과 연결되어 있는 하나의 작은 시골 마을이 아닌, 류큐왕국이란 역사를 전후로 이 섬에서 독자적인 생활을 영위했던 오키나와 사람들의 터전으로 인식하게 합니다. 오키나와를 대표하는 전통 악기 산신(三線)이 연주하는 멜로디가 배경음악으로 깔린 오키나와박물관은 선사시대부터 현재까지 오키나와 섬에 살았던 사람들의 역사를 한 눈에 보여줍니다. 

12세기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해 작은 오키나와 섬에 세 개의 왕국이 존재하는 ‘삼산시대’를 시작으로, 1429년 삼산을 통일한 제1대 쇼씨 왕조와 함께 본격적으로 시작된 류큐왕조. 명나라에 조공하고, 조선과 일본, 그리고 타이완 이남의 동남아 왕조들과 무역하며, 동아시아의 남북을 잇는 중간기지의 역할을 했던 류큐왕조는 17세기 임진왜란으로 기세등등해진 사쓰마 번의 침략을 받아 사쓰마의 군사지배 하에 들어서면서 서서히 일본의 영향 하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명나라와 조공무역을 하면서도 사쓰마의 군사지배하에 놓인 오키나와는 결국, 일본이 메이지 시대에 들어서자 1879년 ‘류큐처분'에 의해 메이지 중앙정부의 일개 지방으로 강제 합병되고 말았죠. 그리고 그 사이 류큐 표류민이 타이완 섬 남부 핑동에서 타이완 원주민에게 살해당하는 이른바 ‘무단서 사건'이 발생하면서, 메이지 정부는 이를 계기로 오키나와뿐만 아니라 타이완에도 주목하기에 이르죠. 이곳 오키나와박물관에도 무단서 사건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료로 당시 미국인 기자 에드워드 H. 하우스(Edward H House)가 쓴 <정대기사(征台紀事)>(1875)를 전시해놓고 있습니다.  

통일된 류큐왕국을 상징하는 ‘슈리성'은 오키나와인들의 자랑이자 보물입니다. 그러나 이곳 역시 일본 메이지 정부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일본군을 위한 군영기지나 학교 등으로 사용되는 등 더 이상 왕궁으로서의 류큐왕조의 전통은 살아날 틈이 없었습니다. 

젊은 시절 오키나와인과 결혼해 무려 21년 간 오키나와에서 거주하고 있다는 타이중 출신의 타이완 이모는 자신은 슈리성을 참 좋아한다고 말합니다. 

“저는 슈리성을 참 좋아합니다. 정말로. 제가 좋아하는 이유는 이렇게 작은 나라에서 당시 왕과 왕후들이 정말 열심히 해서 백성들을 보살폈다는 게 느껴져서에요. 중국과 조공무역을 하던 때, 중국에 가서 문물을 배워와 자기 사람들에게 가르쳐주고…”

슈리성과 과거 류큐왕조에 대한 그녀의 기억은 마치 한국인이 경복궁과 조선시대 몇몇 왕들의 민본정치를 떠올리는 것과 유사했는데요. 비록 오키나와와의 인연은 그녀의 일생 중 절반밖에 되지 않지만, 자신을 당당히 오키나와인이라고 말하는 그녀에게 오키나와는 그녀의 또 다른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녀는 강조합니다. 류큐는 일본과는 구별되는 하나의 나라였다고.

“여기 사람들은 일본과 관계가 그렇게 좋지 않은거에요?”

“일본 보다는 오히려 미국이랑 좀 더 좋다고 봐야죠. 왜냐하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79년 중에서 일본 정부가 인정하는 류큐의 역사는 겨우 55년이에요. 그렇다면 20여 년은 어디간걸까요? 미국이 도와주었던 기간이죠.”

“일본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오키나와 사람들을 무시하는 경향도 있었어요.”

“일본인과 여기 사람은 다른 민족이죠?”

“맞아요. 지금도 그렇죠(무시하죠).”

“일본인들이 오키나와에 많이 놀러와서 놀긴하죠. 그쪽과는 환경이 다르니까. 그런데 오키나와 사람을 좋아하진 않아요.”

“그런데 젊은 친구들은 많이 융화되었어요.”

“그럼 여기 젊은 친구들은 자기를 ‘일본인'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렇죠. 옛날 역사를 잘 모르고, 시간이 흘러 모든 것들이 씻겨나갔으니까…”

“과거 세대한테 있어서는 어쩌면 일본이라는 원수가 침략해 통치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네 일본을 싫어해요.”’

“그렇겠네요. 원래 류큐국이었으니까요. 자기 왕조가 있었고.”

“과거 일본이 오키나와를 침략해서 오키나와가 일본의 일부가 되어서 많은 오키나와 사람들이 일본 본토에 가서 공부하거나 일을 했어야 했는데,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는 일본 여권을 주지 않았어요. 일본에 가려면 별도의 여권을 보여줘야했죠.”

“아니 오키나와가 일본이 된지 그렇게 오래됐는데도요? 일본이 오키나와를 동일시 하지는 않았나보죠?”

“전혀요. 오키나와 이곳을 일본 자신들의 일부라고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나마 최근 10여 년 사이에 인터넷이 발달하고 정보가 풍부해지면서 사람들이 놀러오기 시작했고, 그제서야 ‘아 여기가 우리 일본의 일부였어?’라고 아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죠.”

-타이완 출신 가이드와 오키나와 여행 중인 타이완 노부부의 대화 中-

 

“일본에 침략을 당한 곳 중에 왜 타이완 사람들만 유독 일본을 좋아할까요? 오키나와 사람들도 싫어하고 한국 사람들도 싫어하는데”

21년 넘게 오키나와에 살고 있는 타이완 출신 이모와 오키나와로 여행 온 타이완 노부부와의 대화는 이 질문으로 마무리 되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서는 타이완의 일제시대 역사뿐만 아니라 오키나와와 한국의 식민 역사도 함께 들여다보는 노력이 필요하겠지요.

순백색의 건물들과 푸른 에메랄드 빛의 바다가 어우러지는 오키나와 섬은 일본 본토와는 다른 색다른 풍경과 문화를 만날 수 있습니다. 먹을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오키나와의 전통주인 아와모리(泡盛)는 태국쌀을 이용해 만들었고, 일본 본토의 면요리와 유사하면서도 사뭇다른 오키나와 소바가 있고, 멕시코의 타코를 밥위에 얹여 먹는 타코라이스가 이곳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손꼽힙니다. 이 작은 섬의 음식에서부터 동남아, 일본, 저 태평양 건너의 남미와의 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 시내의 작은 중고 서점에는 오키나와 음식, 오키나와 동요, 오키나와 전통민요 등 오키나와만이 갖고 있는 문화와 역사에 대한 서적들이 가득했고, 일본의 식민 경험이 있는 한국과 타이완과 비교하는 비교연구 서적도 눈에 띕니다. 

   9월 말 오키나와 도로 곳곳에 피어있는 꽃들. 오키나와는 타이완과 같은 아열대 기후로 9월 말에도 한낮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이어졌다. - 사진: Rti 서승임

형형색색의 꽃들이 저마다 자기 색을 잃지 않고 도로 곳곳에서 얼굴을 내밀고 있는 오키나와. 경복궁 안에 설치되었던 조선총독부를 철거했다고 해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한국인들의 아픔이 쉽게 씻겨나가지 않듯이, 일제강점기는 과거의 역사가 아닌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이듯이, 오키나와 사람들에게도 일본은 여전히 해결하고 투쟁해야 할 대상으로 남아있습니다. 일본의 침략과 식민 역사에 공감하는 한국인, 타이완인이라면 적어도 오키나와를 일본의 최남단이 아닌 일본 본토 규슈 섬 아래에서 타이완 섬 사이에 존재하는 약 200여 개의 섬들로 구성된 류큐 열도(혹은 난세이 제도 南西諸島) 중 하나의 섬, 그리고 과거 자신의 왕조가 있었던 나라라고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요?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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