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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화의 아이콘! 일본 식민지 시대 타이완 3대 백화점① 🛍️

  • 2024.09.25
랜드마크 원정대
타이완 최초의 백화점 타이베이 '기쿠모토 백화점(菊元百貨)'의 건축모형 - 사진: CNA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타이난 400 행사에 이어 타이완 관광서가 제작한 관광 홍보영상도 지난 13일 미국 뉴욕 타임스 스퀘어에 등장했습니다. 이날 15초짜리 영상은 15분 동안 반복 재생되어 글로벌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14일부터는 10분마다 한 번씩 재생됩니다. 버블티를 컨셉으로 한 이 영상은 타이완의 랜드마크를 타피오카 펄처럼 둥글게 만들어 관광서의 흑곰 마스코트 오베어(OhBear, 喔熊)와 함께 타이완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있습니다. 겨울 여행 성수기를 앞두고 관광서는 올해 외국인 관광객 1,000만 명 달성을 위해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습니다.

타이완의 랜드마크하면 타이베이 101죠. 매년 12월 31일에 열리는 새해맞이 불꽃쇼와 타이베이 시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 외에, 쇼핑이나 식사를 하러 가는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연일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시원한 백화점에서 버블티를 맛보는 것만큼 좋은 피서법은 없습니다. 그래도 나라마다 비슷하게 생긴 백화점이나 쇼핑몰에 질렸다면 타이완 최초의 백화점으로 가볼까요?


타이완 최초의 백화점, 새로운 모습으로 재오픈 ✨️

1932년 타이베이의 긴자(銀座)라 불리던 ‘사카에초오(榮町)’에 세워진 ‘기쿠모토 백화점(菊元百貨, 쥐위안 백화점)’은 당시 타이완총독부에 이어 타이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이었습니다. 현재 타이베이 지도로 설명하자면 시먼딩(西門町)의 곱창국수집 아중몐셴(阿宗麵線)에서 도보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습니다. 7층짜리 건물에는 타이완 최초의 승객용 엘리베이터를 비롯한 많은 현대화 시설이 설치되어 번영의 아이콘으로 여겨졌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중화민국 정부에 인수되어 1979년까지 영업하다 폐기되었고, 2017년 타이베이시 문화재 자격을 받은 뒤 올해 7월 새로운 모습으로 타이베이 시민들과 재회했습니다. 현재 기쿠모토 백화점에서 개최 중인 특별전시회(守護城中.再現菊元)는 내년 1월 5일까지 열리며, 과거 백화점 상품과 설립자 후손이 제공한 역사 사진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타이완 최초의 백화점인 '기쿠모토 백화점'의 현재 모습 - 사진: 안우산

현대화의 상징인 백화점은 수도 타이베이에만 있는 게 아니죠. 기쿠모토 백화점이 개업된 지 이틀 만에 옛 수도 타이난(台南)에서 ‘하야시 백화점(林百貨, 린 백화점)’이 문을 열었습니다. 그로부터 6년 후인 1938년, 일본 정부가 동남아 진출의 교두보로 삼았던 가오슝에서도 타이완의 세 번째 백화점 ‘요시이 백화점(吉井百貨, 지징 백화점)’이 영업을 시작했습니다. 오늘은 일본 식민지 시대 타이완의 3대 백화점에 대해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백화점의 시작... 🛍️

도시에 사는 대부분 현대인에게 백화점은 특별한 장소가 아니죠. 그러나 19-20세기 사람들에게는 판타지 같은 신세계였습니다. 당시 산업혁명으로 인해 상품 가격이 대폭 하락하면서 일반 노동자들도 소비여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상류층에 집중되었던 소비문화가 중산층과 노동계급으로 전파됨 따라 백화점 설립의 토대가 마련되었죠. 1851년 세계 최초의 만국박람회가 영국 런던에서 개최되었는데, 형형색색의 예술품과 최신 기술로 만든 기계 외에 온갖 투명 유리로 꾸며진 행사장은 궁전에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164일간 이어진 박람회에는 당시 영국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620만 명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박람회의 대성공은 상인들에게 영감을 가져다줬습니다.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쇼핑할 수 있도록 넓은 공간에서 상품을 진열하고, 이미지와 가격이 표시된 카탈로그를 통해 소비 욕구를 자극하는 판매 방식입니다.

백화점 붐은 유럽, 미국에서 형성 후 메이지 유신을 경험한 일본에도 불어닥쳤습니다. 현재 널리 알려진 미쓰코시(三越), 다카시마야(高島屋) 등 일본 유명 백화점은 원래 기모노 가게였는데, 사무라이와 귀족층을 주심으로 한 고객층이 메이지 유신과 함께 사라지면서 도시로 몰려든 일반 시민이 소비주력으로 떠올랐습니다. 이러한 시장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기모노 가게들은 서양의 백화점을 참고해 업태를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백화점 문화가 어떻게 타이완에 왔는지에 대한 설명에 앞서 소비문화와 물질주의에 관한 노래, 9m88과 조안나 왕(王若琳)이 커버한 마돈나의 ‘Material Girl’를 띄워드립니다.


기쿠모토 백화점 특별전시회에 전시된 과거 백화점 상품 - 사진: CNA


일본 식민지 시대의 백화점 문화 🏬

1895년 타이완이 일본에 할양된 후 많은 일본 관료와 상인들이 타이완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소비력이 강한 이들은 바로 백화점의 핵심 타겟층이죠. 그러나 당시 일본 백화점들은 타이완 시장이 크지 않다고 판단해 타이완에 지점을 설립하지 않기로 했고, 이는 타이완에서 사업하는 다른 일본 상인들에게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타이완 3대 백화점은 모두 일본 유명 백화점이 아니라, 일본 상인들이 타이완에 새로 만든 브랜드입니다.

일본 정부가 1937년 제정한 <백화점법>에 따르면 , 백화점은 한 매장에서 의식주통(음식, 옷, 집,교통)을 포함한 다양한 상품을 진열, 판매하는 대형 종합소매업으로, 매장 내 면적은 3,000평방미터, 외곽의 가게 면적은 1,500평방미터에 달해야 합니다. 따라서 마트나 전통 잡화점은 백화점에 속하지 않죠. 백화점의 등장은 1930년대 타이베이, 타이난과 가오슝의 성숙한 소비 시장을 방증할 수 있다는 점에서 타이완의 현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기쿠모토 백화점은 타이완을 세계와 연결시킨 ‘현대화 쇼윈도’로서 타이베이의 도시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당시 판매된 상품을 보면 타이베이는 이미 상당히 현대화된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다음주는 계속해서 타이완 3대 백화점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廖漢原,「紐約時報廣場看板變珍奶手搖杯 台灣廣告15分鐘不間斷」,中央社。
2. 鍾明佑,〈日治時期臺灣百貨公司研究-以菊元、林與吉井為中心(1932-1945)〉。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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