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 6일 타이완에 크게 기여한 영어 교육자 도리스 브로엄(Doris Marie Brougham, 중국어 이름: 彭蒙惠 펑멍후이)과 시인이자 의사 정구이하이(曾貴海)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향년 98세와 78세입니다. 전자는 지난해 차이잉원(蔡英文) 총통으로부터 중화민국 여권을 발급받았고, 후자는 2016년 총통부 국책고문으로 임명된 바 있습니다. 이에 라이칭더(賴清德) 총통은 총통부 대변인을 통해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오늘은 여러 분야에서 큰 공헌을 한 두 인물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타이완에서 자랐다면 브로엄 여사가 발행한 , , 등의 영어 잡지를 모를 수가 없는데요. 지금 어떻게 진행하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저 같은 경우는 중고등학교의 첫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브로엄 여사가 진행하는 영어 영상을 보는 게 루틴이었습니다. 옅은 금색 곱슬머리에 날씬하고 오똑한 코를 가진 그는 얼핏 보면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패션잡지 편집장 역을 맡은 메릴 스트립과 꽤 닮았습니다. 그러나 악마 같은 영화 캐릭터와 달리 매우 친절하고 상냥한 선생님입니다.
미국 시애틀에서 출생한 브로엄 여사는 12살 때 교회가 주최한 서머 캠프에서 중국인 선교사의 영향을 받아 중국인에게 복음을 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대학원 졸업 후 6주간 배를 타고 상하이에 도착했지만 국공내전으로 인해 1951년 교회를 따라 타이완으로 건너왔습니다. 당시 선교사와 교회는 타이완 서부에 크게 집중되어 있었는데, 브로엄 여사는 상대적으로 인력이 부족한 동부 화롄(花蓮)을 봉사 장소로 정했습니다. 현지 원주민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산간지역에 가서 원주민에게 영어와 주일학을 가르치는 동시에 원주민어를 배우고 농구팀에 참가해 원주민 아이들과 한마음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타이야족(泰雅族)으로부터 ‘산골짜기의 백합꽃’을 뜻하는 타이야족어 이름 ‘리베카(利百加, Libeck)’를 부여받았습니다.
1960년대 초 전형적인 농업사회였던 타이완은 좋은 영어 학습환경과 교재가 부재했는데, 브로엄 여사는 타이완의 국제화를 위해 영어 교육에 투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방송국의 초청으로 영어 대화 프로그램을 진행해 큰 호평을 받았고, 1962년부터는 난이도가 각각 다른 잡지 3권을 잇달아 발행했습니다. 이 잡지들은 타이완 영어 교육의 지정 교재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타이완 가장 권위있는 방송상인 금종장(金鐘獎), 그리고 국가급 도서상인 금정장(金鼎獎) 등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타이완에 대한 기여에 감안해 브로엄 여사는 타이완에 온 지 50년이 되는 2001년 타이완의 영주권을 얻었고, 이듬해 국가유공자 훈장(景星勳章)을 수여받았습니다. 브로엄 여사의 고향인 시애틀시정부도 4월 2일을 ‘브로엄의 날(Doris Brougham Day)’로 지정했습니다. 이어 지난해 6월 정식으로 중화민국 국적을 취득했습니다.

지난 4월 29일 차이잉원(蔡英文, 좌) 총통과 만난 펑멍후이 여사 - 사진: 차이잉원 페이스북
지난 60년 동안 브로엄 여사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오전 7시 출근했고, 90세가 넘은 나이에도 항상 첫 번째로 회사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차이잉원 총통과 만난 자리에서 “마음이 있는 곳에 집이 있고, 내 마음은 타이완에 있으니 타이완은 내 집”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에 차이 총통은 “타이완은 영원히 너의 집”이라며 브로엄 여사에게 중화민국 여권을 건넸습니다. 타이완인의 영원한 영어 선생님 브로엄 여사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 지금 원주민 파이완족(排灣族) 가수 아바오(阿爆, Abao)의 ‘Thank you’를 틀어드립니다.
다음으로 소개해 드릴 시인 정구이하이 선생은 대중들 사이에서 인지도가 비교적 낮지만 타이완에도 큰 기여를 했습니다. 평생 타이완 본토 문학, 민주화와 생태보호에 힘쓴 정 선생은 시인, 의사, 사회운동가, 교육개혁자 등 다양한 신분을 갖고있으나 “시인 신분은 언제나 1순위”라고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타이완이 겪는 고통과 눈물, 기쁨과 희망이 담겨져 있으며 생각을 글로, 글을 행동으로 타이완인의 역량을 응집하는 힘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창작하기 시작하고 중국어, 하카어(客家語), 타이완어 3개 언어로 시, 에세이, 논평, 자연 수필, 가사, 뮤지컬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20살 때 작품 <시의 섬유(詩的纖維)>를 통해 시 간행물《립(笠)》에 입선했고, 40여 년이 지난 2009~2019년까지는 이 간행물을 출판한 ‘립시사(笠詩社)’의 사장을 맡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오슝을 기반으로 활동한 그는 1982년 예스타오(葉石濤), 정즁밍(鄭炯明) 등 남부 출신 작가들과 함께 타이완 남부 최초의 문학지 《문학계(文學界)》를 출간했습니다. 이어 1999년 같은 남부 하카인 출신인 작가 중리허(鍾理和)를 기념하는 재단 이사를 맡기도 했습니다.
가오슝 문화국에 따르면, 18년 만에 다시 열린 ‘2023 가오슝 세계 시 페스티벌(高雄世界詩歌節)’은 정 선생이 2022년 에콰도르 시 페스티벌에서 국제시인상을 수상한 것을 계기로 이루어졌습니다. 2005년 제1회 페스티벌에서 정 선생과 함께 그의 작품 <내일의 신도시(明日新城)>를 낭독했던 천치마이(陳其邁) 가오슝시시장은 2023년 페스티벌에서 “가오슝에 대한 기대와 사랑이 담긴 이 시처럼 가오슝은 수많은 노력을 통해 문화의 사막에서 문화의 도시로 탈바꿈했다”며 “정 선생을 비롯한 문학가들은 타이완의 중요한 존재로 우리를 세계무대에 오르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정 선생과 가오슝시정부의 추진을 통해 2023년 페스티벌에는 미국, 스페인, 일본, 한국, 말레이시아, 에콰도르, 이집트 등 12개국 22명의 시인이 참여했으며, 시인의 국제 교류와 가오슝의 문화 사업 촉진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2023 가오슝 시 페스티벌에서 함께 시를 낭송한 천치마이(陳其邁, 좌) 가오슝시장과 정구이하이(曾貴海, 우) 시인 - 사진: CNA
문학 외에 정부 정책과 사회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진 정 선생은 타이완 계엄령이 해제된 이듬해인 1988년, 타이완인권촉진회 가오슝지회 회장으로서 사회운동에 투신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주화 추진, 228사건 진상규명, 언론의 자유 쟁취, 정치범 구원, 환경보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모두 정 선생의 몸짓을 볼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의 작품에도 타이완 시단에서 보기 드문 탈식민주의의 관점이 담겨 있습니다. 리위안(李遠) 문화부 장관은 정 선생은 타이완의 민주자유와 환경보호에 일생을 바쳤다며, 그의 참여는 흔들릴 수 없는 강력한 힘이라고 말했습니다.
기초를 튼튼히 다져 놓은 선조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지금의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는 거죠. 타이완을 집으로 여겨주신 브로엄 여사, 그리고 타이완을 묵묵히 지켜주신 정구이하이 선생,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許秩維,「彭蒙惠過世享壽98歲 創辦空中英語教室陪伴台灣三代人」,中央社。
2. 林惠君,「彭蒙惠:台灣英語教主 好奇心不停歇」,遠見。
3. 「彭蒙惠為台奉獻70餘載!創辦空中英語教室 享耆壽98歲 遺願捐出一切」,Yahoo奇摩。
4. 邱祖胤,「詩人曾貴海辭世 文化部將呈請總統明令褒揚」,中央社。
5. 林巧璉,「陳其邁:曾貴海詩作充滿對高雄的期待與疼惜」,中央社。
6. 許高祥,「時隔18年 高市復辦『2023高雄世界詩歌節』」,台灣好新聞。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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