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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석] ‘사랑의 화신’ 낭만주의 시인 쉬즈모(徐志摩)의 사랑이야기

  • 2024.08.12
포르모사 문학관
낭만주의 시인 쉬즈모(徐志摩)와 첫 번째 아내 장유이(張幼儀) - 사진: 차이덩산(蔡登山)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또다시 월요일이 찾아왔습니다. 청취자 여러분의 주말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지난 10일 토요일은 타이완의 발렌타인데이 ‘칠석(七夕)’으로, 행복과 사랑이 넘치는 핑크빛 주말이었습니다. 타이베이의 대표 여름축제인 다다오청(大稻埕) 불꽃놀이쇼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손을 붙잡는 커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순조롭게 막을 내렸습니다. 견우와 직녀가 만난 칠석날 밤, 수천 발의 불꽃이 하늘로 치솟아 타이베이 강변을 밝게 비췄습니다.

타이완문학 속의 사랑이야기 하면 20세기 초 낭만주의 시인 쉬즈모(徐志摩)를 떠올리는 타이완사람이 많은데요. 그의 대표작 <우연(偶然)>과 <재별강교(再別康橋)>가 시간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타이완 국어 교과서에 수록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여러 회자되는 노래와 드라마로 각색되었기 때문입니다. 영국 케임브리지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담은 <제별강교>의 노래만 해도 10곡 이상입니다. 

하지만 쉬즈모의 사랑이야기를 대중의 머릿속에 각인시킨 것은 1999년 타이완과 중국이 공동 제작한 드라마 <인간사월천(人間四月天)> 덕분입니다. 쉬즈모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세 여자와의 인연을 그린 이 드라마는 중화민국 초년 감성의 열풍을 불러일으켰고, 타이완 최대 식품업체 퉁이그룹(統一集團)이 이 열풍을 타고 지식인 량치차오(梁啟超)의 서재 ‘음빙실(飲冰室)’을 모티브로 한 음료 ‘음빙실차집(飲冰室茶集)’을 선보였을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20년이 지나도 타이완 국민음료로 자리매김해온 음빙실차집이든, 전설적인 드라마로 평가된 <인간사월천>이든 모두 쉬즈모 사랑이야기 열풍의 산증인입니다. 오늘은 평생 사랑과 자유를 추구한 ‘사랑의 화신’ 쉬즈모의 러브스토리를 소개해 드리고자 합니다. 


쉬즈모의 사랑이야기를 주제로 한 드라마 <인간사월천> - 사진: https://www.adaymag.com/2019/04/03/april-rhapsody.html


드라마 <인간사월천>에 따른 민국 초년 열풍을 타고 출시한 음료 '음빙실차집' - 사진: 안우산 

쉬즈모가 있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반은 전통적인 중국 가치와 현대 가치가 강하게 부딪힌 시대였습니다. 한국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시대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쉬즈모처럼 신식 교육을 받은 젊은 지식인들은 자유연애를 추구하지만, 대부분 집안 어른들이 정해준 약혼자가 있습니다. 또한 보수적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이혼은 매우 수치스러운 행위이며 특히 여자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전통혼인의 틀에서 감정적 기반이 없는 부부는 동상이몽하기가 쉽고, 불륜도 빈번히 발생합니다. 쉬즈모의 사랑이야기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전개되었습니다.

쉬즈모 인생에는 수많은 여자들이 스쳐 지나갔지만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사람은 첫 번째 아내 장유이(張幼儀), 애인 린후이인(林徽因), 두 번째 아내 루샤오만(陸小曼) 세 명이었습니다. 1897년 저장성에서 부잣집 독자로 태어난 쉬즈모는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유롭게 자랐고, 부모의 주선으로 장씨 집안의 딸 장유이와 혼인을 맺었습니다. 그러나 진보적 사상을 가진 이른바 신여성을 선호하는 쉬즈모는 장유이와 잘 지낼 마음은 없고 그를 대를 이을 파트너로만 삼았습니다. 두 사람의 첫 아이가 태어난 후 쉬즈모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장유이는 쉬즈모에게 ‘촌스럽다’는 조롱을 받았지만 100% 전통 여성은 아니고, 그의 친오빠 장쥔마이(張君勱)는 중화민국 헌법을 작성한 헌법 기초자로 사실상 명문 출신인데요. 단지 잘못된 사람을 만났을 뿐입니다.

미국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쉬즈모는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영국 케임브리지대에서 공부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여기서 평생토록 잊을 수가 없는 여자 린후이인을 만났습니다. 린후이인은 당시 사법총장이었던 린창민(林長民)의 딸로, 어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유창한 영어와 프랑스어를 구사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쉬즈모의 이상형에 딱 맞는 명실상부한 신여성이죠. 쉬즈모는 앞에서 언급한 음빙실 서재의 주인 량치차오를 통해 린창민을 알게 되었고, 이후 린후이인과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한창 연애할 때 아내 장유이가 아들을 데리고 영국에 왔습니다. 애인밖에 모르는 쉬즈모는 장유이를 무시하는 것은 물론, 친구 한 명이 집에 묵도록 하고 장유이와 단둘이 있는 시간을 피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와중에 장유이는 또다시 임신했습니다. 기쁜 마음으로 남편에게 임신 소식을 전했지만 “당장 낙태하라”는 잔인한 대답만 받았습니다. 장유이는 “낙태하면 죽을 수도 있는데”라고 하자, 쉬즈모는 “누군가가 기차에 치여 죽으면 너는 기차를 안 타는 거야?”라고 비아냥거렸습니다. 


린창민과 린후이인 - 사진: 위키백과

시종일관 남의 편만 드는 남편을 한심하게 생각하는 장유이는 결국 독일으로 가 친오빠에게 의지하기로 했습니다. 쉬즈모는 둘째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단 한 번도 아내와 아들에게 안부를 묻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쉬즈모가 이혼 합의서를 들고 장유이를 찾아왔을 때였습니다. 마음을 정하지 못한 장유이는 부모에게 의견을 구하려 했지만, 쉬즈모는 린후이인과 빨리 결혼하기 위해 장유이를 압박해 그 자리에서 사인하게 했고, 사인을 받으자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는 중화민국 역사상 민법에 따라 이루어진 최초의 이혼 안건입니다. 

다시 독신이 된 쉬즈모는 귀국 후 문학계 지인들과 함께 현대시에 주력하는 ‘신월시사(新月詩社)’를 설립했고, 시사 활동을 통해 린후이인에게 계속 구애했지만 실패로 끝났습니다. 린후이인은 결국 같은 건축학자인 량치차오의 아들 량쓰청(梁思成)과 결혼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의 감정은 쉬즈모가 죽을 때까지 지속되었는데요. 드라마 <인간사월천>의 제목은 린후이인이 작성한 시 <나는 그대가 이 세상 4월의 좋은 날이라 말해요(我說你是人間的四月天)>에서 유래했는데, 드라마 작가는 이 시를 린후이인이 쉬즈모를 위해 쓴 것으로 해석했습니다. 린후이인의 아들도 “아버지는 이 시는 어머니가 나를 위해 쓴 것이라고 했지만, 어머니는 나한테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쉬즈모의 애인 린후이인(林徽因) - 사진: 위키백과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사실 린후이인이 결혼하기 3년 전에 쉬즈모는 이미 세 번째 여주인공 루샤오만과 결혼했습니다. 성격이 활발하고 춤도 잘 추는 루샤오만은 린후이인과 다른 또 하나의 신여성인데요. 문학과 예술을 좋아하는 두 사람은 천생연분이지만 축복받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루샤오만은 기혼이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결혼 후 루샤오만의 사치스러운 생활 때문에 쉬즈모는 세 대학에서 동시에 강의를 해도 여전히 충분한 수익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쉬즈모는 전여친 린후이인을 많이 그리워하며, 심지어 병상에 누워 있었던 그를 여러 번 찾아갔습니다. 1931년 린후이인의 강연을 들으러 가는 중에 비행기 사고를 당해 3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쉬즈모의 두 번째 아내 루샤오만(陸小曼) - 사진: 위키백과

불과 15년 동안 쉬즈모는 세 여자 사이를 오가며 많은 문학작품을 남겼지만 진정한 행복은 얻지 못했습니다. 반면 세 여자는 그를 떠난 후 오히려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우선 장유이는 독일에서 학업을 마치고 중국으로 돌아가 최초의 여성 은행가 되었습니다. 린후인은 남편과 함께 건축계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었으며, 류샤오만은 쉬즈모의 작품을 정리해 출판하는 동시에 화가로 활약했습니다. 지금의 도덕적 기준으로 볼 때, 쉬즈모는 틀림없이 나쁜 남자일 거죠. 하지만 시대적 배경을 생각하면 그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칠석날에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쉬즈모의 이야기와 그의 작품을 읽으면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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