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하늘에서 지금 살고 계신 도시를 내려다보신 적이 있나요? 보통은 타이베이101, 서울타워 같은 고층빌딩이나 비행기에서만 가능한 일이죠. 흔치 않은 기회인 만큼 볼 때마다 가슴이 뭉클하고 설렙니다. 축소된 도시는 우리를 현재의 위치에서 벗어나 보다 넓은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합니다.
건물 사이에 형형색색의 상점 간판이 걸려 있고, 무더위와 비를 막아주는 회랑인 치로우(騎樓)에서 오토바이가 줄지어 주차되어 있습니다. 횡단보도 신호등 속에 작은 초록색 사람이 움직이다가 빨간불일 때 멈추어 빨간색으로 변했습니다. 이 풍경은 타이완 예술가 장리런(張立人)이 14년에 걸쳐 타이완 길거리를 1대 12로 축소한 미니어처 ‘배틀시티’입니다. 배틀시티는 어느 타이완 도시의 축소판이 아니라, 장리런이 자신의 성장 경험을 바탕으로 만든 도시 풍경입니다. 모두가 이 배틀시티, 즉 전투의 성에서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맛보며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타이완 예술가 장리런(張立人)의 도시 미니어처 작품 '배틀시티' - 사진: 안우산
시간은 금요일 오전 9시 55분, 미술관 밖에는 배틀시티를 보러 온 시민 30명이 줄을 서 있습니다. 최소 30분을 기다려야 들어갈 수 있는 모양입니다. SNS를 통해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이러한 성황은 현대미술계에서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인데요. 지난 5월부터 7월 21일까지 타이베이 북사미술관(국립타이베이교육대학교 미술관)에서 열린 ‘배틀시티: 피날레(戰鬥之城‧終)’ 전시가 2개월 동안 북사미술관의 최다 관람객 수인 12만 3천 명을 기록했습니다. 오늘은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배틀시트로 떠납시다!


평일 10시부터 줄을 서기 시작한 배틀시티 전시회 - 사진: 안우산
배틀시티는 타이완의 여러 미술관에 전시된 바 있지만, 작품 규모가 워낙 크기 때문에 온전한 상태로 전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장리런은 지난해 13개국, 61개 팀을 제치고 북사미술관이 주최하는 제4회 ‘드리밍 프로젝트(作夢計畫Dreamin’MoNTUE)’에 선정되어 올해 전시 기회를 얻었습니다. 생생한 도시 미니어처뿐만 아니라, 애니메이션 영화 2편, 휴지로 만든 캐릭터 인형 108개, 만화 원고, 창작 과정 영상 등 희귀한 자료도 함께 전시되었습니다.
4층 건물인 북사미술관에는 총 3층의 전시공간이 있는데, 장리런은 허에서 실로 이어지는 관람코스를 계획했습니다. 지하 1층에는 애니메이션 영화 <타이완의 빛>과 <경제기적>, 만화 <포르모사>가 전시되어 배틀시티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보여줍니다. ‘배틀시티 3부작’이라는 이 3편의 작품이 서로 다른 매체를 택한 이유는 가짜인듯 진짜인듯 알 수 없는 모순적인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또한 타이완과 직결된 제목을 통해 타이완의 사회상을 그려내기도 합니다.
우선 ‘타이완의 빛’이란 2000년대 이후 타이완 언론에서 흔히 사용하는 용어로,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타이완인 또는 타이완 제품을 뜻합니다. 외교적으로 중국에 의해 억압되는 국제정세 속에서 타이완의 빛들은 타이완인이 정체성을 확립하고 우월감을 확보하는 수단이 되었습니다. 1부 영화 <타이완의 빛>에서 주인공은 영문도 모른 채 세계를 파괴하려는 테러리스트의 누명을 쓰고 군대의 추격을 받았습니다. 정부와 민간조직 간의 충돌 끝에 핵폭탄이 터지면서 배틀시티를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지정학적 요인으로 성공과 인정만을 추구하는 사회적 욕구가 결국 재앙을 불러왔습니다. 장리런은 이 이야기를 통해 여론을 조작하고 개인을 우상화하는 언론을 비판했습니다.
이어 ‘경제기적’은 한강의 기적처럼 2차 세계대전 이후 타이완의 급격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을 의미하는 용어입니다. 2부 영화에서 몰락한 배틀시티는 국제기구로부터 정치적 실체로 인정받지 못해 글로벌 기업의 신탁통치를 받았고, 투기매매 때문에 빈부격차가 심각한 지옥으로 전락되었습니다. 기업의 착취로 배틀시티는 눈부신 경제기적을 이루었지만 국민들은 값싼 노동력이 되어 자아가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영화 말미에는 반정부군이 무지막지한 기업을 무너뜨리기 위해 핵폭탄을 터뜨릴 뻔했을 때 주인공은 이를 저지했습니다. 일련의 비극 속에서 자본주의와 과학기술에 대한 비판이 극명하게 드러났고, 이러한 관점은 미래 세계를 다룬 3부 <포르모사>로 이어졌습니다.
영화 엔딩 크레딧을 보면 장리런이 연출, 시나리오, 미술, 촬영, 편집, 더빙 등 모든 작업을 혼자 해왔음을 알 수 있는데요. 창작에 대한 열정 외에도 하고자 하는 말이 있기 때문입니다. 3부작을 관람한 후에는 미니어처와 캐릭터 인형이 전시된 2층, 그리고 제작과정을 다룬 3층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연출, 시나리오, 미술, 촬영, 편집, 더빙 등 모든 작업을 혼자 해온 장리런(張立人) - 사진: 안우산

휴지로 만든 108개 캐릭터 인형 - 사진: 안우산
배틀시티의 창작은 도시 생활의 불쾌한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에는 경제적·자본주의적 억압, 공간적·육체적 억압, 정신적 억압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통해 가혹한 현실 속에서 이상을 실현하려는 예술가의 노력, 그리고 이상을 추구하면서 겪은 실망과 무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삶이란 끝없는 전투이죠. 끊임없이 부딪치고 실패하고 투쟁해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애초에 장리런은 타이베이의 작은 원룸에서 미니어처를 제작하기 시작했고, 작품 규모가 커지면서 타이완 남부 타이난의 한 폐공장으로 옮겼습니다. 하지만 TSMC 타이난 공장의 설립 때문에 인근 땅값이 하루아침에 치솟아 더 이상 월세를 감당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여기까지인 줄 알았는데 다행히 북사미술관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인생은 기묘한 여정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될 때도 있고, 가장 절망적일 때 희망을 얻을 때도 있죠. 이 치열한 배틀시티에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자신의 멋진 모습을 잊지 말고, 가끔은 힘내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셨습니다.
엔딩곡으로 잠이 안 올 때 듣기 좋은 노래, 타이완 밴드 Night Keepers(守夜人)의 ‘I Can't Sleep(我睡不著)’을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노래 가사는 잠을 이루지 못한 네티즌들의 댓글을 모아 쓴 겁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王寶兒,「張立人個展閉幕 創北師美術館觀展人次最高紀錄」,中央社。
2. 〈戰鬥之城.終〉,北師美術館。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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