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히어로하면 아이언맨, 스파이더맨, 원더우먼 등 미국 만화 캐릭터, 또는 지난해 화제가 되었던 한국 드라마 <무빙>에 등장하는 초능력자들이 가장 먼저 떠오르죠. 그럼 타이완의 히어로는요? 지난 5월 21일 타이중 지하철에서 흉기난동범을 제압한 시민 쉬루이셴(許瑞顯)은 ‘망토 없는 영웅’으로 불리는데요. 쉬 씨는 흉기를 휘두르는 범인을 막으려다 얼굴에 상처를 입었지만 물러서지 않고 다른 승객들과 함께 범인을 제압했습니다. 쉬 씨는 지난 4일 타이중시 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은 후 인터뷰에서 “힘멜이라면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만화 대사를 인용하며 범인 제압에 나선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힘멜은 일본 판타지 만화 <장송의 프리렌>에 나오는 캐릭터로 ‘용기’와 ‘헌신’의 대명사이며, 쉬 씨가 말한 대사는 힘멜의 동료들이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하는 격려의 말입니다.
딱 10년 전인 2014년 5월 21일 타이베이 지하철에서 4명 사망, 24명 부상을 초래한 흉기난동 사건이 발생했는데, 당시 범인이 게임을 즐긴다는 이유로 게임이 범행 동기로 지목되었습니다. 게임, 만화, 애니메이션 등 이른바 서브컬쳐에 열광하는 오타쿠를 자처하는 쉬 씨는 콘솔 게임 ‘몬스터 헌터 시리즈’의 재킷을 입고 표창식에 출석해 “오타쿠는 그리 나쁜 사람이 아니다”라며, “내 행동이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쉬 씨 등 17명 용감한 시민 덕분에 사태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았고, 쉬 씨의 발언도 우리에게 더 넓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일깨워줬습니다. 이들은 진정한 타이완 히어로죠.
타이중 지하철에서 흉기난동범을 제압한 시민 쉬루이셴(許瑞顯)은 지난 4일 타이중시 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 사진: 타이중시정부
타이완 문학과 만화에는 어벤져스만큼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히어로는 없지만 티비가 보급되기 전 만화는 중요한 대중매체로서 적지 않은 영웅들을 탄생시켰습니다. 그 중에서 ‘원로 히어로’라 불리는 《제갈사랑(諸葛四郎)》은 1960-70년대 타이완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었던 만화로, 수많은 어린아이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주인공 제갈사랑은 중국 삼국시대 최고의 전략가 제갈량(諸葛亮), 그리고 중국과 타이완 민간전설에서 나오는 효도와 충의의 캐릭터 양사랑(楊四郎)의 이름을 따서 지은 겁니다. 붉은 옷에 검은 장화, 뿔같이 묶어 맨 총각 머리, 제갈사랑의 차림은 고대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어린아이의 옷차림입니다. 만화 속에 그는 동반자들과 함께 고향을 공격하는 적을 물리치고 모험의 여정을 떠났습니다. 만화가 예홍자(葉宏甲)가 1958년부터 1963년까지 만화주간에 연재한 이 작품은 타이완 최초의 영웅만화이자 콘텐츠 IP로 드라마, 영화, 연극, 애니메이션 등으로 각색된 바 있습니다.
고 예홍자의 100세 생신을 맞이하여 국가만화박물관이 주최한 ‘제갈사랑 특별전시회’가 지난 8일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타이중에서 열립니다. 전시회는 만화, 애니메이션, 독자 관점 등 3가지 섹션으로 나뉘는데, 만화 섹션에서는 만화 원고, 예홍자 아들 예자룽(葉佳龍)의 나레이션 영상, 애니메이션 섹션에서는 2022년 개봉한 3D 애니메이션 영화의 제작 과정, 독자 관점 섹션에서는 제갈사랑과 함께 자란 독자들의 감상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예홍자의 아들 예자룽은 지난해 타이완 국가급 만화대상인 금만장(金漫獎)에서 아버지의 작품과 원고를 문화부에 기증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전시회를 통해 소중한 자료들이 드디어 독자들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예홍자의 아들 예자룽(좌)은 지난해 타이완 국가급 만화대상인 금만장(金漫獎)에서 아버지의 작품과 원고를 문화부에 기증한다고 밝혔다. - 사진: CNA
1923년 신주(新竹)에서 태어난 예홍자는 만화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처럼 어릴 적부터 회화에 대한 재주를 보여 일본에서 2년 동안 유학했습니다. 귀국 후 타이완 최초의 만화 동아리 ‘신고만화집단(新高漫畫集團)’을 설립해 만화 연구와 창작에 투신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동아리는 일본 패배 후인 1945년 조국(중화민국)에 관한 문화 소식을 전하는 《신신(新新)》 잡지를 발행했는데, 예홍자를 비롯한 멤버들은 정부의 부정부패, 투기꾼의 만행, 심각한 인플레이션 등 사회문제를 만화로 다루다가 1947년 228사건이 발생하자 정치와 경제 문제로 《신신》을 폐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홍자도 풍자만화를 그렸다는 이유로 정치범으로 몰려 투옥되었습니다. 그의 부모는 재산을 탕진하고 나서야 그를 구했습니다. 이 사건은 예홍자 일생 중 가장 큰 고난이었지만, 훗날 《제갈사랑》을 창작한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잡지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동아리 멤버들은 그림을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방식으로 창작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당시 타이완 최대의 미술전에 입성한 사람도 있고, 다른 잡지에 만화를 연재하는 사람도 있는데, 예홍자는 두 목표를 모두 달성했습니다. 그는 출옥 후 출판업 관계자를 통해 기회를 얻어 《서유기》와 《타이완 민간고사》의 만화를 창작하면서 점차 인지도를 높였습니다. 이어 1958년부터 《제갈사랑》을 연재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예홍자는 고전소설과 민화를 바탕으로 고지라, 제임스 본드 시리즈 등 영화의 요소를 가미해 독보적인 판타지 세계를 만들어냈으며, 주인공 제갈사랑도 어린이의 문화대통령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아들 예자룽에 따르면, 당시 《제갈사랑》은 초등학생들이 집으로 찾아와 아버지를 훔쳐볼 정도로 전국을 풍미했는데, 아버지는 항상 독자들을 환영하고 심지어 그림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만화의 대성공으로 1962년, 1978년, 1985년, 거의 10년마다 동명 영화나 드라마 작품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자유가 보장되지 않는 백색테러 시대에 창작자에게 시련은 끝이 없었습니다. 정부가 1966년 만화 검열제도를 시행하면서 만화에 괴물 퇴치, 보물 획득 등 전투신이 너무 많이 나오지 못하도록 하고, 이미 출판된 작품도 수정해 검열을 통과해야 다시 출간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극히 제한된 상황에서 창작의욕을 잃은 예홍자는 출판사를 차려 작품을 어시스턴트들에게 맡겼습니다. 다만 이후 출판된 작품들은 재미와 예술성이 크게 떨어져 반응이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일본 만화의 해적판이 속출하면서 타이완 만화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예홍자는 다른 만화가들과 함께 보이콧에 나섰지만 퇴세를 반전시키기가 하늘의 별 따기였습니다.
아들 예자룽에 따르면, 은퇴 후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졌다고 느낀 예홍자는 1982년 제갈사랑을 언급한 노래 ‘어린 시절(童年)’을 듣자 아픈데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려 노래를 제작한 가수에게 선물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 꿈은 2019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타이완이 1987년 민주화되면서 예자룽은 아내의 격려로 다시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으나 실패로 끝났고, 결국 3년 후인 1990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예자룽은 아버지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가수의 콘서트에 가 스태프들에게 부탁했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가 2019년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37년의 세월이 흐른 끝에 아버지의 그림은 아들을 통해 가수 뤄다유(羅大佑)에게 전달되었습니다. 예홍자의 작품을 선택한 이유에 관해 뤄다유는 무협과 모험의 요소를 갖춘 《제갈사랑》은 1950-60년대 타이완인의 공동 추억을 가장 잘 살리는 작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평범하지 않은 일을 할 수 있다”라는 말은 예자룽이 아버지의 일생을 돌아보며 한 말입니다.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시절에 예홍자는 만화를 통해 이상적인 정의 사회를 이루었습니다. 제갈사랑이라는 히어로는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고 다양한 형식을 통해 다음 세대들에게 희망의 불빛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럼 엔딩곡으로 만년에 뜻을 이루지 못한 예홍자에게 희망을 준 노래 ‘어린 시절(童年)’을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郝雪卿,「國漫館『葉宏甲百年紀念』特展 重回諸葛四郎年代」,CNA。
2. 吳致良,「因白恐而畫英雄,葉宏甲百年紀念展,葉佳龍憶諸葛四郎,漫畫家齊聚國漫館」,OPENBOOK。
3. 藍祖蔚、楊媛婷,「遲了37年 諸葛四郎終於見到羅大佑」,自由時報。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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