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
타이완의 소리 RTI공식 앱 내려받기
열기
:::

타이완 최남단 헝춘(恆春)에서 물놀이 말고 뭘 하면 좋을까? 동아시아 정세 바꾼 역사의 현장으로 고고!

  • 2024.06.19
랜드마크 원정대
이국적인 풍취가 물씬 나는 타이완 여름의 대표 휴양지 컨딩(墾丁) - 사진: 위키백과

타이완 곳곳에 랜드마크를 찾아 현지인만 아는 이야기를 알려드리는 <랜드마크 원정대> 시간입니다. 이제부터 가이드북을 버리세요! <랜드마크 원정대>를 따라 타이완 여행을 즐깁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랜드마크 원정대>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지난주 단오절을 맞아 타이완의 전통풍습 ‘달걀 세우기(立蛋)’, 그리고 이를 모티브로 한 핑동(屏東)의 ‘수박 세우기’ 이벤트를 소개해 드렸는데요. 핑동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은데, 타이완 최남단의 휴양지 컨딩(墾丁)이라고 하면 좀 더 익숙할 텐데요. 타이완의 제주도라 불리는 이 해안 마을은 바로 핑동현에 위치해 있습니다. 단오가 막 지나자 타이완 곳곳에서 낮 기온이 35도 이상까지 치솟으면서 중앙기상국은 지난 12일 여러 지역에 폭염주의보를 발령했습니다. 찐여름이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는 가운데, 더위를 날려줄 시원한 컨딩 여행이 다시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여름을 맞이하여 이번주부터는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핑동으로 떠납시다!

타이완 최남단에 있는 핑동은 북쪽으로 가오슝시, 동쪽으로 타이둥현과 접하며, 전역이 열대지방에 위치해 사시사철이 따뜻합니다. 뒤로는 산을 등지고 앞으로는 바다에 면하여 풍부한 자연경관을 지니며 이국적인 풍취가 물씬 나는 타이완 여름의 대표 여행지입니다. 컨딩이 속한 ‘헝춘진(恆春鎮)’은 항상 ‘항’자와 봄 ‘춘’자로 구성되어 있는데, 일년 내내 봄이라는 뜻입니다. 핑동 일대는 일본 식민지 시대까지 원주민 파이완족(排灣族)과 마카다오족(馬卡道族)의 영토였고, 특히 파이완족은 일부 마카다오족과 중국에서 이주해온 한족으로부터 공물을 받을 정도로 세력이 막강했습니다. 원주민위원회에 따르면, 2020년 핑동현의 원주민 인구는 전체 인구의 7.4%로 타이둥현과 화례현에 이어 타이완 원주민 인구 비율이 세 번째로 높은 행정구역입니다. 

동아시아의 역사를 보면 핑동 원주민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특히 19세기 헝춘에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이 타이완, 청나라, 미국, 일본, 류큐의 관계를 크게 변화시켰습니다. 중국 역사 상 타이완, 신장, 티베트 등 외진 곳은 임금의 교화가 미치지 못하는 미개한 지역(化外之地)으로 여겨졌는데, 강희제가 1708년 선교사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청나라 지도(康熙皇輿全覽圖)에는 타이완섬 서부 해안 지대만 있고 원주민들이 거주하던 나머지 부분은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청나라는 1683년 타이완을 영토에 편입한 후 정씨왕국처럼 타이완을 거점으로 한 반란을 막기 위해 타이완섬 이주를 엄격히 통제하고 한족과 원주민의 왕래를 금지하는 등 소극적인 정책을 취했습니다. 헝춘도 1875년에 되어야 정식으로 청나라의 영토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타이완 원주민을 국민으로 여기지 않는 태도는 훗날 헝춘에서 일어난 여러 국제사건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강희제가 1708년 선교사에게 의뢰하여 제작한 청나라 지도(康熙皇輿全覽圖)에는 타이완섬 서부 해안 지대만 있고 원주민들이 거주하던 나머지 부분은 포함되지 않았다. - 사진: https://digitalatlas.asdc.sinica.edu.tw/

첫 번째 사건은 1867년 3월 발생한 ‘로버호 사건(羅發號事件)’인데, 당시 로버호라는 미국 무역선이 타이완해협에서 해난을 당한 뒤 선원들은 컨딩 일대의 원주민 마을 ‘스카뤄(斯卡羅/瑯嶠十八社)’에 상륙했습니다. 그러나 선장 내외를 비롯한 선원 13명이 원주민들에게 침략자로 오인되어 처형당했으며 유일하게 살아남은 중국인 선원은 가오슝으로 도망쳐 영국 영사관에 통보했습니다. 영국 외교관이 통보를 받자 영국 함점을 타고 컨딩에 가 원주민과 교섭하려고 했지만 공격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청나라 정부에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청나라 정부는 관할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수수방관만 했습니다. 청나라의 소극적 태도로 샤를 르 장드르(Charles William Le Gendre, 이선득) 샤먼 주재 미국 영사가 소식을 접하자 직접 타이완에 와 청나라 정부와 협의했으나 문전박대를 당했습니다. 그 후 미국은 군함 2척과 병사 181명을 컨딩으로 파견해 무력으로 원주민을 토벌하기로 했는데 뜻밖에도 호전적인 원주민에게 패배했습니다. 

작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미국의 출병은 청나라에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워 줬습니다. 청나라의 협조를 받은 르 장드르가 직접 원주민과 교섭한 결과, 원주민은 선장 내외의 물품과 시신을 반환, 앞으로 붉은 기발을 신호로 해난사고에 협조할 것을 승낙했습니다. 르 장드르는 2년 후인 1869년 다시 컨딩으로 가 원주민과 ‘남갑지맹(南岬之盟)’이라는 비망록을 체결했으며, 이는 타이완섬 주민이 처음으로 외국과 체결한 국제 조약으로 타이완-미국 외교의 기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르 장드르는 이를 통해 타이완 현지 자료를 많이 확보한 뒤 일본의 외교 자문관으로 초빙되어 1874년 일본이 타이완섬을 공격한 ‘무단서 사건(牡丹社事件 모란사 사건)’에서 관건적 역할을 했습니다. 지금 핑동 처청(車城)의 푸안궁(福安宮)에는 당시 청나라 관원이 교섭과정을 기록한 비문(劉提督碑)이 있으며, 로버호 사건도 소설 <괴뢰꽃(傀儡花)>, 드라마 <스카뤄(斯卡羅)> 등 작품으로 각색되었습니다. 

남갑지맹이 체결되었지만 해난을 당한 외국인이 타이완 원주민에게 살행당하는 일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1871년 태풍으로 타이완 남동부 바야오완(八瑤灣)에 온 류큐인 54명이 원주민에게 참수되었다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당시 류큐인들은 상륙한 후 남쪽으로 가 원주민 마을에서 음식과 숙소를 확보했지만, 계속 머물면 위험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원주민들이 사냥을 나간 틈을 타 도주했습니다. 이런 행동은 원주민에게 매우 무례하기 때문에 원주민은 류큐인들을 추격하고 처형했습니다. 결국 12명의 류큐인만 살아남았고 청나라 정부의 협조를 통해 류큐로 돌아갔습니다. 이 사건은 긴 역사 속에서 하나의 에피소드만 보였으나, 훗날 일본의 타이완 출병과 류큐 병탄의 구실을 제공했습니다.

바야오완 사건 이후, 청나라와 일본의 공동 속국이었던 류큐 왕국을 병탄하려는 메이지 정부는 청나라에 배상을 요구했지만 역시 관할지가 아니라는 이유로 거절당했습니다. 일본은 이를 계기로 타이완 출병을 결정했고 르 장드르를 통해 타이완 남부의 자료를 확보했습니다. 일본군은 1874년 무단향 스먼촌(牡丹鄉石門村)에서 원주민과 전투를 벌였고, 풍토병 때문에 많은 병사가 죽었지만 인적 우세로 원주민을 물리쳤습니다. 그 후 청나라는 일본과 <베이징 특약(北京專約)>을 체결해 배상 외에도 일본의 타이완 출병을 국민을 보호하는 의거로 인정했으며, 이는 류큐가 일본의 일부임을 인정한 것과 다름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항복한 원주민들이 마을에 일장기를 꽂은 것도 훗날 일본의 타이완 점령에 복선을 깔았습니다. 원주민과 미국, 일본 간 일련의 충돌로 인해 청나라는 타이완을 다스리는 데 적극적인 태도로 변하면서 원주민을 관리하기 시작해 1875년 헝춘현을 설립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20년 후인 1895년 청일전쟁에서 일본에 패배해 타이완을 잃어버렸습니다.


올해로 '무단서 사건(牡丹社事件)' 150주년을 맞아 관련 기념비가 핑동(屏東) 스먼(石門)에서 세워졌다. - 사진: CNA

무단서 사건에서 류큐인을 살해한 원주민 후손들이 2005년 오키나와로 가 화해의 길을 떠났습니다. 일본 학자 히라노 쿠미코는 이를 계기로 관계자 유족을 인터뷰하여 책(《牡丹社事件 靈魂的去向》)을 출판했는데, 타이완 원주민과 류큐인의 시각을 통해 동아시아 정세를 바꾼 무단서 사건을 재해석했습니다. 또한 올해로 무단서 사건 150주년을 맞아 핑동현정부는 전쟁이 전쟁이 발생한 스먼에서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앞으로 컨딩을 여행한다면, 아름다운 바다와 짜릿한 수상 액티비티 외에 역사의 깊은 숨결을 느끼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엔딩곡으로 헝춘의 민요를 띄워드리며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랜드마크 원정대>와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紀念牡丹社事件150週年 「macacukes石門古戰場」縣定史蹟碑5月22日揭碑」,屏東縣政府。
2. 平野久美子,《牡丹社事件 靈魂的去向:臺灣與日本雙方為和解做出的努力》。

프로그램 진행자

관련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