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작곡가연맹(Asian Composers League, 亞洲作曲家同盟)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예술음악을 지향하는 작곡가들의 활동을 증진하고, 상호 교류를 발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1973년 설립된 중요한 국제 문화 기구입니다. 한국에서 대학 내 작곡과를 졸업한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꼭 들어봤을, 작곡계의 유명 단체 중 하나죠.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인 1973년, 아시아 작곡가 연맹은 홍콩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해 홍콩, 타이완, 한국, 일본, 필리핀 등 동아시아 지역 중심의 작곡가들이 공동으로 제1회 음악제를 개최한 이래 매년 꾸준히 작곡가 모임과 음악제를 열고 있습니다.
작년 2023년은 아시아작곡가연맹의 50주년이 되는 해로, 타이베이에서는 지난 9월부터 11월까지 3개월에 걸쳐 이를 기념하는 일련의 행사를 성대하게 개최했는데요. 아시아작곡가연맹을 통해 그간 창작되고 세상에 소개된 8곡의 작품을 공연하는 총 여섯 회의 콘서트에 이어 학술세미나, 50주년 기념전시까지… 여기에 역대 아시아작곡가연맹에서 청년 작곡상을 수상한 타이완 작곡가(천리리[陳立立], 리치티엔[李綺恬], 자오리웨이[趙立瑋])를 특별히 위촉해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작년 타이완에서 열린 아시아작곡가연맹 탄생 50주년 기념 음악회 시리즈 포스터 - 사진: 아시아작곡가연맹-타이완지부
주변 아시아-태평양 나라들도 마찬가지지만, 특히 타이완은 아시아작곡가연맹과 더욱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곳입니다. 50년 전 아시아작곡가연맹이 창립총회를 개최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던 데에는 지금은 작고하신 타이완 작곡가 쉬창후이(許常惠, 1929-2001)의 계획과 추진으로 탄생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곡가 쉬창후이는 1976년 11월 25일 중화민국 중앙일보(中央日報)에 ‘아시아작곡가연맹과 나(亞洲作曲家聯盟與我)’라는 글을 기고해 이 연맹이 처음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그 설립 의도와 창립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아시아, 즉 동양의 작은 나라, 중화민국 타이완에서 태어나 서양음악을 공부하고 서양음악으로 자신의 예술을 표현하는 작곡가로서 쉬창후이는 자신을 비롯한 주변 나라 작곡가들이 이웃 간의 작품에는 서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저 먼 유럽이나 미국 출신 작곡가에만 관심을 갖는 당시 작곡계 풍조에 물음표를 던졌습니다.
“서양음악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20세기 동양음악의 공통된 특징인 것 같다. (...) 이 현대 동양음악의 공통적인 특징과 더불어 우리 서로가 민족, 지리, 종교, 문화와 미학에서 서로 가깝기 때문에, 우리 음악과 다른 동양음악의 관계는 이치대로라면 서양음악과의 관계보다 훨씬 밀접하다. 그러나 오늘날 동양 출신 작곡가는 이웃 동양 작곡가는 외면한채 불레즈(프랑스), 슈톡하우젠(독일), 존 케이지(미국), 크세나키스(그리스), 펜데레츠키(폴란드) 등 서양 출신 작곡가의 일거수일투족은 놓치지 않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얼마나 부자연스러운 현상인가.”
그러면서 쉬창후이는 자신이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까지 필리핀 마닐라, 일본 도쿄, 한국 서울, 홍콩 등 아시아 각 대도시에서 열린 여러 작품 발표회에 참석해 이웃 나라 작곡가들과 접촉하고 소통하며 “강한 공감”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때 그가 말한 강한 공감이란 그가 앞서 문제제기했던 바와 같이, “동양 출신 국가의 작곡가는 그들의 작품을 통해 서로에 대한 이해를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이었죠. 아시아작곡가연맹이 탄생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인 작곡가 모임으로서 설립된 국제현대음악협회(International Society for Contemporary Music, ISCM)을 모티브 삼아, 아시아(동양)인의 요구와 사상을 기조로한 작곡가 모임을 만들고자 했던 쉬창후이는 자신과 뜻이 맞는 다른 이웃나라의 작곡가들과 연락하며 사람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쉬창후이의 제안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던 사람은 일본의 아트메니저 나베시마 요시로(鍋島吉朗) 씨와 작곡가로는 일본의 이리노 요시로(入野義朗, 1921-1980)와 홍콩의 린성시(林聲翕, 1914-1991), 그리고 한국의 나운영(1922-1993) 등이 있습니다.
쉬창후이는 1971년 12월 타이베이에서 타이완, 일본, 홍콩, 한국 이렇게 4개국의 5명 대표를 발기인으로 아시아작곡가연맹의 첫 준비회의를 가졌고, 2년 뒤인 1973년 연맹이 홍콩에서 제1회 음악제와 함께 정식으로 창립된 것입니다. 홍콩에서 열린 첫 대회에서는 중화민국, 일본, 홍콩 이렇게 3개국만이 공식적으로 참석했고, 한국은 서면 지지로, 뉴질랜드와 영국의 관련 인사들이 옵서버로 참여했습니다만, 이듬해 1974년 일본 교토에서 열린 제2차 대회에서는 총 11개국(중화민국, 일본, 한국, 홍콩, 호주, 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베트남)으로 늘어났고, 옵서버도 미국, 캐나다, 독일 등으로 추가되었습니다. 그리고 제4차 대회를 1976년 타이완 타이베이에서 주관해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치룬 바 있습니다.
그 이후로 아시아작곡가연맹 및 음악제는 정기적으로 회원국이 돌아가며 주최하여 그 역사가 지금에까지 이르고 있습니다. 현재 회원국은 기존의 타이완, 일본, 한국, 필리핀, 홍콩을 넘어 인도네시아,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그리고 이스라엘과 뉴질랜드, 호주와 터키까지 총 13개 국으로 확대되었는데요. 타이완 작곡가 쉬창후이가 1960-70년대 아시아 출신 작곡가로서 고민했던 문제와 그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이웃나라 작곡가들 간의 교류로 시작된 아시아작곡가연맹은 이제 이곳 청년 작곡가들의 중요한 등용문이 되었고, 또한 아시아 작곡가의 정체성을 보다 공고히 하는 역할로서 그 역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엔딩곡으로는 아시아작곡가연맹이 설립된 1973년 창작에 들어가 1987년 완성된 작곡가 쉬창후이의 작품 27번, 클라리넷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單簧管與鋼琴奏鳴曲) 1악장을 들려드립니다.
►참고자료
許常惠,亞洲作曲家聯盟與我,中央日報,1976-11-25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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