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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엔 가나초콜릿, 타이완엔 메이지초콜릿

  • 2024.05.28
대만주간신보
메이지 초콜릿의 고전적인 포장 디자인 - 사진: 메이지 제과 공식홈페이지

한국의 대표적인 초콜릿하면 청취자님들께서는 어떤 초콜릿이 떠오르시나요? 저는 바로 ‘가나초콜릿’이 떠오르는데요. 가나초콜릿은 한국 롯데제과에서 1975년부터 생산하기 시작해 내년이면 벌써 5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의 국민 초콜릿이죠. 요즘엔 워낙 여러 나라에서 수입된 다양한 초콜릿을 판매해 초콜릿의 브랜드와 종류도 상당히많아졌는데요, 가나초콜릿 특유의 부드러운 밀크 초콜릿 맛은 그럼에도 잊혀지지 않는 국민의 맛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요. 

한국에 가나초콜릿이 있다면 타이완에는 바로 메이지초콜릿이 있습니다. 한국의 가나초콜릿이 한국 롯데제과 출시하기 1년 전 일본 롯데에서 먼저 출시되었다고 하는데요. 그래서 1975년 한국에서 가나초콜릿이 갓 출시 되었을 때에는 일본식 발음을 그대로 따와 ‘가나쵸코렡’이라고 표기하기도 했다죠. 타이완의 메이지초콜릿도 원산지는 일본 메이지 제과(明治製菓)에서 만든 상품입니다. 1916년에 ‘도쿄 과자(東京菓子)’라는 브랜드로 시작한 메이지 제과는 100년 역사가 훌쩍 넘은 식품회사로, 지금의 타이완의 편의점이나 슈퍼마켓에 가면 초콜릿을 비롯해 젤리, 치즈 등 ‘메이지(meiji)’ 라는 브랜드의 식품류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타이완에서의 메이지초콜릿은 언제부터 어떻게 판매되어 지금의 국민 초콜릿이 되었을까요? 

메이지 제과 설립자인 소마 반지(相馬半治, 1896-1946)는 19세기 말 일본 문부성 유학생 신분으로 유럽과 미국에 가 3년 간 설탕과 석유를 연구했습니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후인 1903년, 타이완 총독부의 초빙으로 타이완 현지 사탕수수 제당 산업을 시찰하게 되었죠. 타이완 총독부 산하 임시 당무국의 기술자를 맡은 소마 반지는 3년 뒤인 1906년 서른일곱 살의 나이로 정부 산하 기술자에서 제당 공장 사장으로 변신해 타이난 마더우(麻豆)에 메이지 제당 주식회사를 설립했습니다. 타이난에 설립된 이 설탕공장은 메이지 초콜릿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죠. 

메이지 제과 설립자 소마 반지(相馬半治, 1896-1946)씨는 제과 설립 전 1906년 타이난 마더우(麻豆)에 메이지 제당 주식회사를 설립했다. - 사진: 국립대만대학교

메이지 제당 공장은 타이난 마더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공장이 여럿 있었는데, 1930년대가 되자 타이완 중남부에만 이미 7개의 공장이 있었다고 합니다. 현재까지도 남아있는 장화의 시후 설탕공장(溪湖糖廠)이나 이제는 문화공원으로 탈바꿈한 타이난의 자리 설탕공장(佳里糖廠) 등이 모두 메이지 제당 공장이었다고 하죠. 

1906년 이미 타이난에서 제당 공장을 설치한 소마 반지 씨는 1916년, 도쿄의 니혼바시에 ‘도쿄 과자(東京菓子)’를 별도로 설립합니다. 타이완에 있는 설탕 생산 공장에서 일하던 사장인 소마 씨는 설탕 외에도 사탕, 우유, 스낵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이를 구현하고자 도쿄에 공장을 추가로 세운 것입니다. 그러나 도쿄 과자보다 십 여 년 전 먼저 설립한 모리나가 제과(森永製菓)의 매출을 따라가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시 매출 영업액을 비교해보면 초기 도쿄 과자는 6만엔에 불과했던 반면, 모리나가 제과는 350만엔에 달해, 30배가 훌쩍 넘었죠. 그러나 도쿄 과자는 1924년이 되자 백 배 넘게 성장했고, 매출 영업액이 600만엔을 돌파해 앞서가던 모리나가를 따라잡기에 이릅니다. 

이렇게 도쿄 과자의 매출이 급상승하는 시기에 바로 ‘메이지 초콜릿’이 등장했습니다. 마침 1923년 9월 관동대지진으로 도쿄는 큰 피해를 입었지만, 이를 복구하는 과정에서 다시 살아나는 도쿄의 새로운 기상이 마침 모던한 초콜릿과 어우러져 사회 분위기하고도 맞아떨어졌죠. 

1924년 9월 1일 관동대지진 피해 1주년이었던 이 날, 도쿄 과자는 ‘메이지 제과 주식회사(明治製菓株式會社)’라는 상표로 회사명을 바꾸고, 욱일기 속에 메이지의 영문 약자인 MS가 박힌 상표를 개발해 초콜릿 포장을 장식하기에 이릅니다. 

1924년 메이지 제과 주식회사 개명 당시 로고 - 사진: 메이지 공식홈페이지

1930년대에 이르자 메이지 초콜릿은 일본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아, 일본을 대표하는 국민 초콜릿이 되었습니다. 여기에는 메이지 초콜릿의 이미지와 홍보 마케팅도 한몫했죠. 메이지 초콜릿을 홍보하는 전용 노래를 만들어 음반을 제작하는 것은 물론, 광고와 영화까지 제작하는 당시로서는 식품 광고계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배출해냈습니다. 

1924년부터 일본 대중들의 입맛을 사로잡은 메이지 초콜릿이 타이완으로 넘어온 것은 1929년 무렵입니다. 이때부터 메이지 과자는 타이베이를 중심으로 타이완에 적극적으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데요. 타이베이 본정 2정목(지금의 타이베이기차역과 228공원 사이)에 메이지 과자 판매소 설치를 시작으로 1930년에는 지금의 시먼 주변에 또 다른 판매소를 설치해 찻집으로 운영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과자점에서 만든 사탕이나 초콜릿 등을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의 헝양루(衡陽路)에서 시먼 방향으로 가는 길에 있는 이 판매소는 3층 높이의 흰색 건물로 건물 가운데에는 큼지막한 글자로 ‘明治チョコレート’라고 써있었습니다. 그리고 건물 맨 위에는 ‘메이지’의 영문표기인 Meiji가 써있었죠. 건물 만으로도 상당히 모던한 자태를 드러내었을뿐만 아니라 이 건물의 간판은 타이완 최초의 네온사인 광고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신문물이었던 네온사인까지 달고 있던 타이베이의 메이지 과자 판매소는 1934년 <타이완 부인계(臺灣婦人界)>라는 당시 유명 여성잡지에 ‘타이베이 찻집 순례’라는 기사에서도 기자가 방문한 13곳의 찻집 중 가장 높은 지명도를 갖고 있는 장소로 묘사됩니다. 메이지 과자점은 직장인, 학생, 부인 등 할 것 없이 매일 만석이었고, 찻집 안의 화려한 레이스 커튼과 화려한 색상의 벽지가 이들을 반겨주어, 타이베이 시민들은 이곳에서 커피를 마시며 음반을 듣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메이지 과자점의 3층은 타이완의 문예 모임의 단골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일제시기에 활동한 타이완의 유명 문학가인 뤼허뤄(呂赫若)도 1942년과 1943년에 쓴 자신의 일기에 여러차례 메이지 과자점을 언급하죠. 타이완 문예가 협회 회의를 이곳에서 개최한 사실과 타이완 음악감상의 밤도 이곳 3층에서 열려 동료들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출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기록하고 작가는 있습니다. 

이렇게 메이지라는 브랜드는 일제시기 이미 타이완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2차 세계 대전 전, 메이지 과자점의 광고는 곱슬곱슬한 파마를 한 젊은 여성이 초콜릿을 손에 들고 있는 이미지를 통해 세련된 멋을 부각시켰고, 초콜릿뿐만 아니라 연유, 사탕 등 설탕을 사용해 단맛을 최대한 끌어내는 디저트류의 제품 판매를 통해 일본과 타이완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리고 메이지 초콜릿의 고전적인 포장 패턴은 지금까지도 계속 사용되고 있습니다. 

 

 ►참고자료

       陳柔縉,《舊日時光》,2012。

       메이지 제과 공식홈페이지

 

서승임 徐承任 (seungim@rti.org.tw

프로그램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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