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아가고 있는 우리. 한 번이라도 다른 삶을 살아볼 수 있을까요? 반복되는 삶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바로 문학입니다. <포르모사 문학관>에서 타이완 특유의 문학 세계 속으로 함께 들어갑시다.
안녕하세요! 저는 <포르모사 문학관> 시즌2의 진행자 안우산입니다.
‘스토리를 하는 뮤지엄(說故事的博物館)’ 프로젝트의 마지막 시간입니다. 지난 2주 동안 타이완콘텐츠진흥원과 언론사 ‘오픈북(Openbook閱讀誌)’이 타이완만의 스토리텔링 소재 발굴을 위해 공동 발표한 프로젝트를 소개해 드렸는데, 국립타이완미술관에서 추천한 화가 린즈주(林之助) 내외의 러브스토리, 그리고 국립타이완역사박물관에서 추천한 올림픽에 출전한 첫 타이완인 선수 장싱셴(張星賢)의 이야기에 이어 오늘은 게임 세계로 모험을 떠납시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게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상당히 부정적이었습니다. 특히 중독성, 폭력성, 잔혹성, 선정성, 도박성이 짙은 장르가 신심의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죠. 그러나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라 이러한 시선은 많이 달라지고 있는데요. 오랫동안 유해물 취급받은 게임은 이제 만성질환, 정신장애의 디지털 치료제로 활용될 뿐만 아니라, 콘텐츠 산업을 이끄는 주축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가 열광하는 <포켓몬스터>와 <슈퍼 마리오>부터 심장을 뛰게 하는 호러액션 <바이오하자드>, <더 라스트 오브 어스>까지 게임은 문화예술의 일종으로 자리잡았습니다.
프랑스의 상징인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지난 2019년 대형 화재로 상당 부분이 소실되었습니다. 화재 발생 후 프랑스 정부가 복원 작업을 추진하는 가운데, 게임에 노트르담 대성당을 구현하고 성당의 3D 모델링을 가진 액션 게임 ‘어쌔신 크리드’에 이목이 쏠렸습니다. 이에 어쌔신 크리드의 개발사인 유비소프트는 성당 재건을 위해 50만 유로(한화 약 7.2억 원, 2024/2/17 기준)를 기부했으며 1주일 동안 게임을 무료로 제공했습니다. 세계문화유산의 복원에 힘을 보태는 동시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했습니다.
게임에 대한 인식이 크게 바뀌면서 많은 정부기관과 민간기구가 게임을 예술의 한 장르로 인정하는 추세입니다. 미국 국립예술기금은 2011년 게임을 매체 장르로 분류해 지원금을 제공하고 있으며 타이완콘텐츠진흥원도 관련 산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지난 2017년 평균 연령이 30세 미만의 한 타이완 디자인 회사(圖文不符)가 문화재 화재를 소재로 한 웹 게임(全能古蹟燒毀王)을 출시하자 큰 주목을 받았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타이완에서 평균 한 달에 한 문화재가 원인 불명의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해당 게임은 방화범을 주인공으로 하여 풍자적인 서사로 심각한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 것이 특징입니다. 같은 해 타이완 백색테러 시대를 배경으로 한 호러게임 <반교(返校)>도 타이완 전통문화를 담은 훌륭한 스토리텔링과 강한 독창성으로 영화, 드라마, 소설로 각색되어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타이완 게임 역사에 가장 회자되는 작품으로 꼽힌 <반교>는 자유를 누리지 못한 시대의 비극을 다루며 세계 최대 PC 게임 플랫폼인 스팀에서 랭킹 3위에 오른 바 있습니다.
오는 28일은 타이완 역사 상 최대의 아픔으로 남아 있는 228사건의 77주년입니다. 228사건이 발생한 지 2년 후인 1949년, 계엄령이 선포되면서 모든 국민이 언론, 출판, 집회, 결사의 자유가 박탈되고 38년 간의 백색테러 시대가 열렸습니다. 앞에 언급한 게임 <반교>에서 중학생인 주인공은 학교 선생님과 연인 사이로 발전한 후 선생님이 학교에서 금지된 책을 읽는 독서회를 열고 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 선생님은 주인공을 연루시킬까봐 헤어지고자 했습니다. 큰 타격을 받은 주인공은 같은 학교의 여교사를 제3자로 착각하여 홧김에 독서회를 고발했습니다. 결국 사랑하는 사람이 반란죄로 기소되어 처형당한 반면에 주인공은 간첩 신고로 전교 학생과 교사에게 칭찬을 받았으나 지우지 못한 죄책감 때문에 학교 옥상에서 뛰어내렸습니다. 그의 영혼은 환생하지 못한 채 학교에 영원히 머물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컨트롤하는 캐릭터가 바로 주인공의 영혼입니다. 게임 마지막에 두 가지 결말을 선택할 수 있는데, 사실에 직면해야 학교에서 탈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타이완의 아픈 역사를 재미와 예술성을 갖춘 게임으로 풀어낸 사례가 적지 않은데요. 구석기시대부터 지난 2014년 국회를 점령한 해바라기 학생 운동까지 타이완 400년 간 역사를 다룬 테이블 게임 <보야지 위드 타이완(走過.臺灣)>,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5년 연합군이 타이베이를 폭격한 사건을 담은 테이블 게임과 동명 PC 게임<타이베이 대공습(臺北大空襲)>, 타이베이 대표 관광지 다다오청(大稻埕)을 배경으로 한 테이블 게임 <다다오청(翻轉大稻埕)> 등이 대표입니다.
이러한 추세 속에 국가인권박물관은 스토리를 하는 뮤지엄 프로젝트에서 백색테러 시대의 랜드마크 ‘안캉응접실(安康接待室)’를 추천했습니다. 국가인권박물관은 지난 2015년부터 과거 권위주의 정부 아래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한 ‘불의의 유적지(不義遺址)’를 발표해 이에 관한 연구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2016년 정리쥔(鄭麗君) 중화문화총회 부회장이 문화부 장관에 취임한 후 관련 작업을 문화부의 중요 임무로 지정해 이행기 정의의 실천에 총력을 기울였습니다. 불의의 유적지는 정보기관, 정치범의 체포, 수사, 재판, 처형 장소 등이 포함되며 안캉응접실도 이 중의 하나입니다.
1973년 세워진 안캉응접실은 과거 정치범을 조사 심문, 구금하는 구치소로, 도심과 멀리 떨어져 있는 신베이시 신뎬(新店)의 산간지대에 있어 인근 주민조차 건물의 진면목을 알지 못했습니다. 훗날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폭로되면서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블랙 응접실’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1979년 메이리다오 사건(美麗島事件)에서 반란죄로 기소된 장쥔홍(張俊宏) 전 민진당 당대표, 야오자원(姚嘉文) 전 민진당 당대표과 천쥐(陳菊) 현 감찰원 원장 등이 이 곳에서 구금된 바 있습니다.
안캉응접실은 다른 구치소에 비해 보다 치밀한 계획을 거쳐 세워진 곳으로, 정치범들의 대응능력을 약화시켜 유죄를 인정하는 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시공간에 대한 판단력을 흐리게 하기 위해 감방에는 하루 종일 불이 켜져 있고, 지형과 건축을 통해 지하실에 갇혀 있는 착각을 주는 동시에 범인의 이동경로를 실내로만 한정시켜 심리적 압박을 가중시킵니다. 메이리다오 잡지의 편집장을 맡았던 장쥔홍은 감방생활을 회상하면서 안캉응접실에 갇혀 있었던 아픈 기억을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그는 “감방 문구멍에서 머리 하나가 나타날 때마다 크게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안캉응접실의 문구멍은 지나가는 교도관의 머리가 농구공처럼 커 보이도록 특별히 디자인되었기 때문입니다.
안캉응접실에 대해 연구해 온 학자 장웨이슈(張維修)에 따르면, 백색테러 피해자가 체포되자마자 유죄 판결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당시 법에 맞는 이른바 ‘합법적 절차’를 거쳤는데, 안캉응접실을 예로 들자면 범인이 유죄를 인정하며 공범을 자백하도록 유도하고, 반란 사상과 조직적인 반란 활동의 근원을 찾아내기 위한 곳입니다. 따라서 정치범은 치밀한 계획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고 불의의 유적지는 국가 폭력의 증거입니다.
1987년 민주화 인후 안캉응접실은 창고로 쓰이다가 2022년 불의의 유적지로 지정되었습니다. 장웨이슈는 오랜 연구 끝에 안캉응접실에 관한 자료가 어느 정도 완비되어 있지만 건물 자체와 피해자 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일했던 직원, 의사, 요리사, 경비원, 건축사 등도 백색테러의 중요한 목격자인데, 관련 자료가 충분하지 않아 아직까지도 많은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런 풀리지 않는 그레이존이야말로 스토리가 시작하는 곳이죠. 1954년 뤼다오(綠島녹도)재판란안(再叛亂案)을 배경으로 한 역사영화 <류마거우15호(流麻溝15號)>, 그리고 가상현실(VR) 영화 <떠날 수 없는 사람(無法離開的人)>은 좋은 예시입니다. 앞으로 불의의 유적지를 소재로 한 콘텐츠가 많이 나오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포르모사 문학관>과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상으로 RTI 한국어 방송의 안우산이었습니다.
▲참고자료:
1. 佐渡守,「說故事的博物館.遊戲篇》藏品之美融和歷史事件,文物修護、角色扮演、空間模擬都令人沉浸」,OPENBOOK閱讀誌。
2. 吳致良,「說故事的博物館.遊戲篇》集臺灣刑偵空間與技術的大成:安康接待室 ft.國家人權博物館」,OPENBOOK閱讀誌。



Rti 중앙방송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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